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41화 (41/44)

四十四花 * 소유아 이야기 (2)

아침. 눈을 떠보니.

시하루가 자신의 옆에서 손을 잡은 채 잠들어 있는 게 유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여전히 잠들어 있을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아는 그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손을 빼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그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고 있는 시하루 관찰에 들어갔다.

솔직히 꼭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으로 봐도 완벽한 남편감인 건 확실하다.

물론 보통 이상의 집착과도 비슷한 성격 때문에 배로 귀찮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건을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직업상 왕이면 말이 필요 없고, 마음씨도 나름 착하고. 외모도! 괜히 처음 만났을 때 ‘꽃따리 오빠’라는 애칭을 붙여줬겠는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무슨 생각을 하는데, 날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깼으면 얼른 일어나지. 괜히 자는 척을 해서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희수궁에서 자요? 그리고 왔으면 깨우던가.”

자는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창피한 건지 유아는 살짝 당황해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분명 나쁜 생각이나 이상한 마음을 먹은 적은 없다만, 눈앞에 있는 상대가 무려 모든 저 좋을 대로 받아들이는 남자 시하루였으니. 아침부터 놀림당할 순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가 있는 방이 내 방이지.”

목소리에서 여전히 졸린 것이 느껴져 왔다.

제정신이었으면 끝까지 추궁했을 그의 판단력과 집착이 아침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반 정도 깨어 있는 상태로는 그녀의 마음을 읽기 힘든 모양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럼 오늘 저녁은 야외취침이나 해볼까요? 대자연을 방으로 삼으면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감기 걸려.”

자신이 있는 곳이 제 방이라 말하고 있는 시하루에게 유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그가 바로 대답했다.

그건 조금 곤란하다는 그의 표정을 즐기고 있던 유아는. 곧 시하루의 얼굴에 맴도는 악마 같은 미소에 멈칫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런데 아까 나 보면서 무슨 생각 한 거야?”

아침이어서 판단력이 흐려졌다든가 그런 건 아무 문제 없었나 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벼, 별생각 안 했거든요……. 그냥 꽃따리 오빠는 시력이 나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거뿐이에요.”

일단 시선을 피해 보는 것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했지만, 그녀는 결국 대답을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시력? 내 눈이 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무리 내가 귀엽다고는 해도. 2년이면 콩깍지가 벗겨질 때도 되었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듣기 싫어? 귀엽다는 말.”

평소에도 자신의 입으로 예쁘다느니 뭐라 하면서 그가 말하는 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 그냥요. 솔직히 귀엽다는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난 거 같은데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말보다도 누가 그렇게 말했느냐가 중요한 거지. 개인적으로 난 좋던데. 너랑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했던 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제가 뭐라고 했었죠?”

당시의 유아는 오래간만에 처음 보는 낯선 이를 만났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실은 일방적으로 한 말이 너무나 많은지라, 그중에 딱 하나를 꼽을 수가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요즘은 예쁜 남자가 대세라고. 그래서 오빠는 꽃따리 오빠. 이 부분.”

꽃따리 오빠라는 애칭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인데.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스스로 서화당에 보낼 편지에 가명으로 ‘적화유’라고 적어 보냈겠는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물론 멋지다는 말이 더 좋은 건 사실이지만, 누가 말해준 건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도 멋져요. 단지 예쁘다는 생각이 좀 더 클 뿐이지.”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면 참 좋을 텐데.

유아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한 말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시하루는 스스로 매를 벌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야? 오늘따라 왜 이리 순순히 인정해? 진짜 뭐야? 드디어 나 최대의 연적인 공부를 뛰어 넘은 거야? 아니면 외모에 신경 쓰는 사춘기에 접어든 거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런 거 아니거든요!”

2년차 부부의 가벼운 아침 다툼에 문밖에 서 있던 궁인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도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걸 보니 평화로운 하루가 되겠군요.”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 됐어?”

계속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유아가 방을 나서기 무섭게 시하루가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아주 잠시 유아의 옷차림을 훑어보는가 싶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기품이나 지위가 느껴지는 왕후로서의 복장과는 거리가 먼. 단정함을 최우선으로 둔 평범한 신입관리의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 묶는 게 더 예쁜데…….”

마무리로 머리를 깔끔하게 질끈 묶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그러자 유아가 피식 웃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과제 끝나면 계속 풀고 있어야겠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렇다고 안 어울린다는 건 아니었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알아요. 난 뭐든 잘 어울리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 것인지, 당당해도 그녀는 너무 당당했다. 물론 그 역시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그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해볼까요?”

나름대로 눈에 힘을 주고 있었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는 시하루는 이번 역시 두렵다는 반응을 연기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알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과제기간에는 왕후가 아닌, 평범한 예비관리로 대할 것.”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좋아요. 만에 하나라도. 약속을 어기면! 영희궁에서 십 년 동안 지내다 올 거예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대신 약속 지켜. 통금시간 잘 지키고. 일이 끝나면 신입관리기숙사가 아니라 희수궁에서 지낼 것.”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약속.”

서로와의 약속을 다시 확인한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일단 약속을 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몇 가지 조항들이 여전히 거슬리는 듯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끝까지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도와줘도 된다고 했으면서. 나 믿는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유아가 그에게 했던 ‘믿는다.’라는 말에 적지 않은 감동을 느꼈나 보다.

그의 작은 투덜거림에 앞서 가던 유아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니까. 대놓고 도와주지 말라는 의미였어요. 여기까지. 알아들었겠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잘 알아들었어.”

뒤에서 몰래몰래 도와주는 건 괜찮다는 말이네. 좋았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벌써 다 왔네.”

왼쪽은 중앙궁의 조회실로 가는 길. 오른쪽은 신입관리교육관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 도달한 시하루가 아쉬워하며 중얼거렸다.

갈림길에 도착한 시하루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며 잡고 있던 유아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잠시 그의 기분에 맞춰 주고 있던 유아가 피식 웃더니 가만히 있던 시하루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췄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집중! 서로 각자 일에 힘내자고요. 알았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이것이 바로 그녀가 이 나라. 천유국의 왕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런 그녀의 능력(?)을 볼 때마다 이신은 매번 감탄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조심하세요. 하휘도의 왕. 서궁후. 그분은 보통이 아닙니다.”

하휘도에서 온 사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유아를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나섰던 이신이 오히려 더 긴장하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동안 아무 반응도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사신을 보내는 게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물론 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교역을 위해 천유국에서 보낸 편지들이 얼마나 되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답한 적 없는 하휘도에서 유아의 편지 한 통에 이리 넘어온다는 건 정말 거짓말 같은 일.

도대체 편지에 뭐라고 쓰셨기에?

답장을 보내왔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교역을 원하는 건 우리 쪽. 즉. 사신을 보내도 우리가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직접 사신을 보낼 줄이야.

마침 천유국에서 열리는 연회에 하휘도의 사신을 보내겠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조차도 이신은 믿지 못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사신이라고는 하지만. 그 왕에 그 신하니 아마 만만치 않을 거예요. 조심하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걱정하지 마세요.”

시하루도 그렇고, 이신도 그렇고.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겁을 주다니.

귀빈이 머무는 방 앞에 도착한 유아가 마지막으로 깊이 숨을 내쉬며 눈을 반짝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좋았어.”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아…….”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하휘도의 사신 일로 신경이 예민해진 탓에 더욱더 피로감을 느낀 유아가 한숨을 내쉬며 정원을 걷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사신과 만나 교역에 관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어야 했지만…….

터덜터덜. 힘없이 걷던 유아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한 번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방금 전. 그녀를 덮쳤던 소동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시하루와 헤어진 그녀는 당당하게 사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분명히 계셨는데! 잠시만요! 유아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 안이 소란스럽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계셨다는 하휘도 사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자리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궁인들이 당황해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인지 예상치도 못한 일에 유아는 약간 남아 있던 긴장이 풀려버렸다.

행방불명된 사신을 방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기 지루했던 그녀는 잠시 밖에 나갔다가 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자신을 막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나와 정원을 걷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졸려…….”

수면부족인 건가.

아까 시하루의 앞에서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약한 모습 보이는 건 싫은걸.’

유아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힘내보자 속으로 다짐하며 한 발자국 내딛으려는 순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그녀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를 내려간 그녀의 시선에 사람의 발로 추정되는 것이 들어왔다.

사람이 분명하다.

옆에 있던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하늘하고 조금은 화려한 치마를 입은 상대는 눈이 부신 것인지 팔로 눈을 가린 채 누워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기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정원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판단해야 했기에 유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일단 가볍게 몇 번을 흔들어 깨워보려 했지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대충 맥이라도 짚어보기 위해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제야 유아의 기척을 느낀 건지 누워 있던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이제 막 잠에서 깬 탓에 약간은 멍해 보이는 여인의 눈이 유아를 향했다.

유아 역시 궐 안에서 본 적 없는 여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같은 여자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투명하고 새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그녀는 평범한 궁녀라고 생각하기에는 차림이 너무나 화려하고 기품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유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생글생글 웃더니 대뜸 처음 만난 유아에게 한다는 말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귀엽게 생기신 분이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감사합니다…….”

귀엽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유아는 당황했고, 뜬금없이 칭찬한 여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저 잠이 들어버린 건가요? 이것 참. 타국에 와서 이런 추태를 보여 정말 죄송합니다.”

뜬금없는 칭찬에 이어 갑작스러운 사과를 하는 그녀에게 휩쓸린 유아 역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죄송해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깨웠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그냥 졸려서 잠깐 앉아 있으려고 한 게 그만 잠이 들어버렸네요.”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여인이 자세를 바로잡아 다소곳 앉으며 말했다.

유아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신경 쓰였지만, 왠지 모르게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다 보니 어느새 처음 보는 그녀를 따라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친해진 둘은 어느새 마주 앉아 이야기꽃을 피어나갔다.

유아는 이미 그녀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지금 하휘도의 사신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상태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이거 드실래요?”

말 많은 여인 둘이 모이니 별거 없는 대화라고는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출출해진 유아가 품 안에서 과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내 들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나이가 비슷한 분은 오랜만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해버렸네요. 다른 사람은 항상 저를 어린애 취급하거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그 기분 알아요.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모습을 본 사람이 더더욱 그렇죠. 정말 귀찮다니까요.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유아가 내민 과자를 집어 먹던 여인이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도망이라……. 하지만 전 그쪽 용기는 또 없어서…….”

남편이라는 남자는 이 나라의 왕이요. 피가 섞이지는 않아도 일단 오라버니라는 남자는 호랑이였으니.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다는 건 거의 무리 일지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우리 그 점은 다르네요. 전 도망쳤거든요. 도망이라고는 해도 일 때문이지만. 원래 다른 사람이 하기로 한 일이었지만, 갑갑한 곳에서 벗어날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죠! 하하. 아마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겠네요.”

너무도 당당하게 도망쳤다고 말을 하는 여인을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유아가 ‘그러고 보니…….’라는 말을 하며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고 보니. 궐 안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이제 와서 묻기도 뭐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경비가 삼엄한 이 궐에서. 대낮에. 그것도 저렇게 화려한 차림을 한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낮잠이나 자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일’이라고는 했던 거 같지만.

유아의 질문에 여자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싱긋 웃으며 앉은 채로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하휘도에서 온 사신, ‘사유’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쉴 틈 없이 말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사고가 정지된 사람처럼 멍하니 자신을 ‘사유’라고 소개한 여인을 바라보던 유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외쳤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죄송합니다! 하휘도에서 오신 사신인 줄 모르고!!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신입관리로 뽑힌 소……이랑이라고 합니다.”

그제야 자신의 의무를 떠올린 유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해하자, 사유란 여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본명이 아닌, 서하연의 호를 그녀에게 말했는지는 그녀역시 의문이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달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괜찮아요. 저도 이렇게 귀여우신 분이 신입관리일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설마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이런 화려한 여인이 사신으로 올 줄은 유아 역시 생각지도 못했다.

뭐지? 애초에 하휘도에서는 이 교역문제에 관해 관심이 없는 건가? 그냥 관광차원으로 사유를 보낸 건가?

아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그녀 역시 특별한 존재인 걸까?

사유 역시 유아 못지않게 그녀에게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듯 아무 말 없이 유아를 응시하던 사유가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면 하휘도에 그 편지를 보내신 분이…….”

사유의 말에 유아가 움찔하며 잠시 시선을 피하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제가 보낸 거 맞아요. 혹시 화를 내셨다거나 그러진 않으셨나요?”

그렇다는 유아의 대답에 사유의 호기심 가득하던 눈이 이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뇨아뇨. 그 녀석은 바보니까. 아니지. 오히려 그런 걸 더 좋아한달까요? 참고로 우리 왕은 취향이 독특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행이네요. 사신으로 가기 전에 편지를 보내라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찾아뵙기 전에 미리 방문 편지를 보내라는 이신의 말에 그녀는 습관처럼 연노랑 색종이를 앞에 놓고 붓을 들었다.

하지만 도통 뭐라고 써야 할지.

그동안 많은 사람이 하휘도의 왕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방문허가는커녕 답장조차 오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내가 보낸다고 그 왕이 읽을까?

문제는 ‘읽게 하는 것.’ 일단은 겉봉을 뜯어 편지를 읽게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편지를 읽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유아는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것을 때려치우기로 했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 것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우와. 그 편지를 쓰신 분을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런 우연이! 제가 볼 때 이건 보통 연이 아닌 거 같아요.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아. 천유국에서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왠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에 유아는 미소 지었다.

사신이라는 말에 잔뜩 긴장부터 했지만, 그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그러면 우선…….”

드디어 일할 생각이 든 건가 싶은 유아가 눈을 반짝이며 방으로 안내하기 위해 앞서 가려는데 그녀의 손을 붙잡은 사유가 그대로 반대쪽으로 그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저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해요? 저는 단 거면 전부 좋은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음 저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어디 가시는 거……. 회의실은 저쪽인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무슨 소리예요! 타국에 왔으니 우선은 시장조사가 먼저죠!”

시장조사라는 말에 나름대로 바닥에 붙어 있기 위해 힘주어 버티던 유아의 발걸음이 떨어졌다.

천유국에 대한 정보조사 먼저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역시! 의욕적이신 분이셨어!

새롭게 존경심이 들기 시작한 유아였지만, 그녀의 기대는 곧바로 무너져 내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우선은 천유국에서 유명한 맛집 탐방이 우선이겠죠?”

일하러 왔으면서, 일보다도 이상한 걸 우선시하는 여인에게 유아는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중앙문을 향해 끌려가다시피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기요. 저기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려가는 유아를 힐끔 바라보던 사유가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나저나 정말 귀엽게 생기신 분이네요. 이거이거 큰일인데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것을 용케 들은 유아가 끌려가는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큰일이라니요?”

그녀의 질문에 앞서 가던 사유가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듯 빙글 돌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궁후. 우리 왕은 귀여운 분에게 약하시거든요. 아아~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나~.”

앞으로 어떻게 나오다니? 뭐지?

유아는 계속해서 자신을 힐끔거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유의 시선이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그게 뭐 대수랴. 이 교역문제는 그녀에게 있어서 전쟁과도 같았다.

즉. 서궁후라는 왕은 적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사유를 통해 적에 대한 정보를 얻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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