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40화 (40/44)

四十三花 * 소유아 이야기 (1)

아침 일과 중 하나이다.

멀뚱멀뚱.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먼저 일어난 사람이 깨워주기.’라는 약속을 한 그들이었고, 오늘은 유아가 먼저 일어나 이렇게 시하루의 방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난 탓인지, 그녀는 시하루를 깨우기도 전에 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앉아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버린 것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녕.”

멍하니 바라보기를 얼마. 피식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였고, 그 목소리에 잠이 깬 유아가 인상을 찌푸리자, 시하루가 그녀의 이마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침부터 왜 인상 써.”

어딘가 불편한 건지 일어나자마자 인상을 쓰던 유아는 기지개를 켜더니 다시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조회 안 나가요?”

아침부터 일 이야기라니.

어느새 결혼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 데. 유아는 여전히 일과 공부를 중요시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추워서 밖에 나가기 싫은걸.”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대는 걸 보니 그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공주병.”

시하루가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왜 갑자기 ‘공주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잠에서 막 깬 탓에 현란하던 유아의 언어구사력이 떨어졌나 하고 그냥 넘어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윽. 목 아파…….”

잠깐이었지만 침대에 삐딱한 자세로 기대 잠들었던 게 무리가 갔나 보다.

아프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왜 바닥에서 잤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 깨우러 왔다가 너무 졸려서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음부터는 고민 말고 위로 올라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하자 드디어 잠이 다 깬 유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음부터는 이렇게 일찍 안 일어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하루가 오늘 따라 반짝이는 그녀의 눈에 불안감을 느꼈다. 물론 유아가 기분이 좋은 게 불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오늘따라 기분 좋아 보이네.”

평소라면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짜증을 냈을 텐데 오늘은 얌전한 게 더더욱 수상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는 별난 것을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끝낸 그의 비장한 표정에 유아가 피식 웃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 신입관리교육 마지막 날이거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이상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 시하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네. 그 지겨운 2년의 수련과정이 오늘로서 끝난다니.

이는 그에게도 기쁜 일이 틀림없다.

뭐든 열심히 하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그동안 하루 일정이 엄청나기로 유명한 신입관리교육 때문에 유아는 희수궁과 기숙사를 번갈아가며 생활해야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행이네. 그러면 오늘은 조회 참가 안 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은 오전 수업이에요. 자! 난 수업을. 꽃따리 오빠는 조회를! 갑시다!”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유아에게 못 이긴 시하루는 오늘도 끌려 나오듯 조회실을 향해 걸어가야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침부터 기운 넘치네…….”

* *

웅성웅성.

방 안에 모여 있는 국시합격생들 사이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이신이 길쭉한 나무통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던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던 이신의 눈에 장시간 대기로 인해 짜증이 가득한 유시후가 들어왔다.

이신이 입을 뻥끗 거리는 것으로 뭐라 묻자, 유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답했다.

그때. 또 한 번. 문이 열리고. 유아가 다급히 들어왔다.

워낙에 지각을 싫어하는 이신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유아라고해도 한마디 하려는 데 그녀가 먼저 손을 들며 발언권을 얻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전하요.”

누군가를 아침조회에 늦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 늦었다는 그녀의 말에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는 듯 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오히려 ‘빠져나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원하기까지 하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그럼……. 그동안 신입교육을 받으시느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인데요……. 뭐, 다들 짐작하고 있겠죠?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천유국 전통이기도 한 ‘과제 뽑기’입니다. 각자 이 통에서 뽑은 과제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내년에 다시 국시를 보셔야 할 겁니다.”

천유국의 신입관리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

그것이 바로 ‘과제 뽑기’이다.

이론적인 면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이뤄지는 실기시험이기 때문에 과제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실제로 다뤄지고 있는 문제들이었다.

그래도 신입이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에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았나. 통 안에 들어 있는 약 백 개 정도 되는 문제 중. 두 개의 특이한 문제가 존재한다.

그것들은 연노랑의 종이에 적힌 다른 문제들과는 다르게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된 종이에 적혀 있으며, 확률상으로 지난 몇 년간 그 문제를 뽑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검은색은 현재 천유국의 대신들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얀색의 종이에는…….

이신이 그들을 나란히 줄 세우더니, 한 명 한 명. 앞으로 가 종이가 들어있는 통을 내밀었다.

먼저 유아의 옆에 서 있던 유시후가 인상을 찌푸리며 통 안에 손을 넣었고. 곧 그의 손에 하얀색의 종이가 들려 있는 걸 본 이신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음 차례인 유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후……좋아.”

그녀도 어느 정도 긴장을 한 건지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통 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쉽게 뽑지는 못했다.

결국,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중얼거리던 유시후가 아직 확신이 없는 건지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통에서 빼버리고 말았다.

그에 놀라, 딸려 나온 검은색의 종이에 소란스럽던 방 안이 고요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고정됐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왜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챈 유아의 질문에 그 누구도 대답해 주려 하지 않고 있다. 유시후도 포함해서. 심지어는 이신까지도.

그저 이걸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선만 교환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으흠. 그럼 모두 기간 내에 과제를 끝내주시길 바랍니다.”

수상하게도 급한 마무리였다.

재빨리 돌아선 이신은 유아가 자신을 찾아와 검은색 과제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빨리 마무리 짓고는 방 안을 빠져나갔다.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그늘이 지어져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쯧. 하필이면 유아님이 그걸 뽑으시다니……. 큰일 났네…….”

이신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했던 궐 안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질 것만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 *

여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큰일 났다…….”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던 유아는 지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도망치려던 유시후를 붙잡는 데 성공한 그녀는 자신의 검은 과제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그에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는 것이다.

과제가 어려워서 해결하기 어려울까 봐? 아니, 그게 아니다.

지금 그녀가 걱정하는 건 과제의 난이도가 아니라, 어느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말해볼까? 아니. 안 그래도 요즘 희안궁의 출입이 잦다는 이유로 툭하면 괴롭히는데, 이 일까지 알려졌다가는…….

게다가 아까 보지 않았는가? 오늘로서 신입관리교육이 끝난다는 말에 그렇게나 좋아하는 모습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지만 난 더 이상 애가 아닌걸. 애는 무슨 이제는 유부녀이기까지 하잖아? 스스로 선택할 나이 아닌가?”

뭔가 결심한 듯 유아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종이 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막상 결심은 했지만 최대한. 이 일을 시하루에게 들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한편. 온 마음을 담아 도장을 찍은 유아와 달리 그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짜증나.”

시하루의 앞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의 한쪽 손에는 옥새가 들려 있었고 그는 지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물론 약속은 했지만…….”

평소라면 별다른 고민 없이 도장을 찍었겠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녀석들은 이제 궐 안에서까지 연애 행각을 벌이겠다 이거지.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아무래도 그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종이의 정체는 유시후의 부서 배치에 관한 문제인 게 분명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 녀석들 짜증나……으아…….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하세요?”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있던 시하루가 유아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옥새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간 유아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옥새를 들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쳇. 약속했으니 지켜야겠지…….”

결국 그는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내며, 종이 위에 옥새를 찍어 이안에게 건네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마지막 수업은 잘 하고 왔어?”

옥새 하나 찍는 거에 짜증 낼 때는 언제고, 시하루의 표정이 바로 풀어졌다.

마지막 수업이 어땠느냐 묻는 그의 표정은 밝았지만, 유아는 그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마도?”

대답이 애매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럼 이제 기숙사에서 안 지내도 되는 거지? 희수궁으로 돌아올 거지?”

그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러나 유아는 눈치만 볼 뿐. 그가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며, 며칠 정도는 더 머무를 생각인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아직 정리할 게 남아 있다고나 할까……뭐 그런?”

이안조차 속아 넘어가지 않을 연기를 펼치는 유아에 시하루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 돼. 정확한 이유를 듣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더니, 역시나이다.

유아는 항상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워낙 억압받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하루는 그 나름대로 그녀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묻는다고 해도 그녀에게서 타당한 이유를 듣지 못할 거라는 거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며칠이면 되는데?”

그리고 자신은 그녀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약간의 고민 끝에 그가 먼저 한 발자국 물러섰다.

‘며칠’이라는 말에 유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었고, 곧 양손을 활짝 펼쳐 그에게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열흘?! 장난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것도 최대한으로 줄인 건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 돼. 네 방에는 다른 사람을 넣으라고 할 거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런 게 어디 있어요?!”

결국, 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혼한지 어느새 2년. 그 사이에 이런저런 다툼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그동안과 다른 느낌이 들었고, 방 밖에서 대기 중이던 이안과 궁녀들은 불안하다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잠시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그들이었지만, 갑자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열린 문에 의해 한 번 놀란 그들은 그 문을 열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오는 유아에 두 번을 놀라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된 건지 알 턱이 없는 그들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고, 잔뜩 화가 나 있는 유아와 방 안에 남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하루의 표정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번 역시 자신들의 왕후님이 승리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잔뜩 화가 나 있는 유아의 표정으로 보아, 이번에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예상만 할 뿐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제 내 마음대로 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 그녀는 열려 있던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분이 안 풀린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중앙궁을 벗어났다.

그렇게 그들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훗날 사람들은 이날을 그들의 공식적인 첫 부부싸움이라 말하게 된다.

하지만 천유국에서 유명한 금술 좋은 부부라는 이름답게, 역대 부부싸움 중 가장 오랜 기간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이유는 다른 싸움에서도 그렇듯 항상 져주는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나 진짜…….”

다리에 힘이 빠진 시하루가 문에 기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다툼을 한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녀의 마음이 풀리도록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시하루였지만, 어떻게 사흘 동안 한 번도 안 마주칠 수 있단 말인가!

뭔가 이상해서 희수궁과 기숙사에 가봤지만, 두 곳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즉시 궐 안의 모든 곳을 찾아봤지만, 그 조그마한 여인은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하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들어가서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던 중. 그는 그녀가 갔을 만한 곳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 동안 잊혀진 구석에 있는 곳인 영희궁.

과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걱정되어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한 그와 달리 손 많이 가는 그의 사랑스러운 부인께서는 너무나도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잠이 오니? 응? 와?”

어느새 다가간 그가 쿨쿨 자고 있는 유아의 이마를 쿡쿡 찌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야야야야야야야야.”

끌어 오르는 화를 참아내던 시하루는 아예 그녀를 깨우려고 작정한 듯했다.

이마를 찌르는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불에 돌돌 말아 이리저리 굴려대기도 했다.

들어올 때 인상을 찌푸렸던 그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귀엽네.”

이미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여인은 그의 유일한 약점과도 같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번에는 제대로 화를 내야 할 텐데.”

깨우려던 손을 거둔 시하루가 뒤로 물러났다.

일단은 대화로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에서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나저나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분명 나 몰래 뭔가 일을 벌이려는 건데…….’

방 안을 돌아다니던 그의 발에 작은 주머니 하나가 걸렸다. 그것을 주워들어 옆의 탁자 위에 내려놓으려던 그가 멈칫했다.

주머니에 찍혀 있는 익숙한 문양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건 이신의 인장?”

척하면 척이라고.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주머니가 신입관리의 과제 뽑기라는 걸 눈치채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

하지만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가 주머니의 끈을 풀어내자, 그 안에서 검은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 색종이에 고정되었다.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시하루는 한숨을 내쉬며 무너져 내리듯 바닥에 앉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무슨 뽑기 운이 이렇게도 없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 뭐하는 거예요? 얼른 그거 돌려주세요!”

언제 일어난 건지 모를 유아가 시하루가 그 종이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한 건지 그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종이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것 때문인 거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괜히 그에게서 그만두라는 말이 나올까 걱정된 유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물쭈물거리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주고 있던 시하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잘 들어. 부부사이에는 거짓말하는 것도 물론 안 되지만, 해야 하는 말을 숨기는 것도 안 되는 거야. 알겠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어느새 상황이 역전되었다.

유아의 앞에 자리 잡고 앉은 그는 어느새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에 대한 훈계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유아는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굵고 짧은 훈계를 끝낸 그가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기죽어 있는 유아에게 따지듯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내가 말릴 거라고 생각했어? 말했잖아. 네가 하고 싶은 거 최대한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나도 당황스러워서……. 말 안 해서 미안해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검은색의 종이에 겁을 먹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선택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걸 뽑았냐…….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유시후는 뭐 뽑았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라버니는 하얀색 종이를 뽑았어요.”

그녀는 하얀색 종이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시 모르고 있었다.

얼핏 그가 그 종이를 뽑았을 때, 주위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좋은 게 틀림없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녀석이 더 대단하네. 이번에는 좋은 의미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좋은 거예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건 그냥 통과야. 운도 실력이라고 하잖아.”

유아는 갑자기 배가 아파져 오는 거 같았다.

오라버니가 자신의 위에 서 있다는 것도 불만인데, 이런 운까지 따르다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과제 내용이 뭐야? 뭐기에 그렇게 겁을 먹은 거야?”

다시 원래의 문제로 관심을 돌린 그가 묻자 아무 생각 없는 유아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휘도(島)와의 교역문제 해결! 이거 뭐에요? 재미있을 거 같은데?”

순간. 시하루의 얼굴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번에 천유국에서 열리는 연회 때 하휘도에서 사신이 온다고 들었거든요. 그때가 바로 기회에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들었어. 그나저나 하휘도라…….”

하휘도(島).

그곳은 천유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섬나라. 면적은 천유국보다 절반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오직 그 나라 안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는 자급자족의 나라.

하지만 이 섬의 특정 환경에서만 재배되는 약초의 효능은 유명해, 다른 나라들이 엄청난 액수를 부를 정도였다.

그것은 천유국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몇 년 동안 그들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기도 전에 이런 말해서 정말 미안한데……. 너 이거 못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해보기도 전에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자신에게 한계를 정하지 마라!’라는 명언도 있잖아요.”

무조건 할 수 있다. 말하는 유아를 바라보던 시하루의 머릿속에 어떤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그는 어떤 이름을 입 밖으로 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궁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휘도의 왕. 서궁후. 그 녀석은 정상이 아니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하지 마세요. 단련됐으니까.”

아무렴. 성질 나쁜 호랑이와 그냥 못된 남편을 견디어낸 세월이란 게 있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시하루는 지금 너무도 낙천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뜻을 꺾어야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그 왕은 미친놈이야. 대화가 안 통하는 놈이라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차근차근 시도해보면 대화 정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그게 아니라.”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는 몰라도, 모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아에게 보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제대로 알려주는 게 우선이다.

그러한 다음에도 그녀가 겁을 먹지 않는다면 그때는 남편으로서 어떻게든 도와줘야지 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지금까지 그 녀석 목소리를 들어본 적조차 없어. 심지어는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만난 적은 많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에는 ‘걱정’이란 단어 따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괜찮아요. 꽃따리 오빠가 도와줄 거잖아요?”

그녀의 말에 또 한소리 하려던 시하루의 표정이 풀리더니 실실 웃기까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너 자신을 믿는 게 아니라, 날 믿고 있는 거였구나. 그건 좋은 마음가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