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37화 (37/44)

三十八花 * 꽃의 이름을 아는 자 (5)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군. 진유한.”

안 좋을 수밖에.

시하루의 부름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는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

아직 머릿속이 복잡했고.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설마 했지만, 그 어린 왕후가 소유아일 줄이야!

궐 안에 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심지어 왕과 대비마마의 마음에 들었으니…….

게다가 그 아이가 왕후가 되면 삼화 법칙이 적용된다.

그렇게 되면 후궁도 들일 수 없고! 어쩌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면 이미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

자신이 그 아이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는 정말로 위험했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돼!’

“일전의 일에 대한 벌을 내리려고 했지만. 왕후가 처벌을 원하지 않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니 그 일 때문이라면 그렇게 굳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가볍게 며칠 근신 정도로 마무리 지을 테니.”

안심은커녕, 오히려 어제 일에 대한 처벌을 받을 거라 각오하고 온 그는 심란했다.

‘도대체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인 거야!’

혼자만의 고민에 빠진 진유한은 현재 시하루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바라보던 시하루가 하고 있던 일에서 손을 놓더니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자신의 외숙부인데 처벌받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

왕이 알고 있다.

그 어떤 때보다 놀란 진유한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전부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반응이 이상했다.

왕후를 아끼기로 소문이 자자한 그라면 분명 분개하며 저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런. 긴장 풀라고 한 말인데 어째 더 긴장한 듯 보이네.”

진유한과 달리 시하루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은 진유한이 자신의 앞에서 쩔쩔매고 있으니 그것이 유쾌한 모양이다.

“저, 전하…….”

“걱정하지 마라. 짜증은 나지만 자기 집안 싸움이니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받았으니까.”

시하루가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도와주겠다는 그에게 이랑은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집안 싸움에 왕이 끼어들면 보기 안 좋을 거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럴싸했지만 물론 그것은 핑계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본인의 힘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물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시하루. 그가 어떤 사람인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었다고.

“나는 지금 기다려주는 거다. 스스로 물러날 기회를 주는 거지.”

“…….”

“지금 순순히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린다면…… 물러난 다음에도 그대는 나를 다시 봐야 할 거야. 물론 나쁜 쪽으로.”

소월가의 가주권을 원래 주인인 유아에게 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지만, 반대로 고집을 부리면 나중에 유아에 의해 물러나더라도 자신이 벌을 내릴 거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니 다시 고민에 빠진 진유한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사항이 있었다. 하나는 모든 것은 잃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왕을 적으로 돌리는 위험한 방법.

어느 쪽이든 잃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원래 그 아이의 것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제 것입니다.”

“나랑 싸우겠다. 이건가?”

시하루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꼬리를 내리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자신에게 싸움을 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행방불명된 지난 십 년 동안 소월가를 지켜온 제 입장도 한번 생각해 달라는 거지요. 오직 소월가를 위해 살았는데 그 아이에게 모든 걸 준다면 저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대의 입장이라…….”

“제가 어찌 감히 전하를 적으로 두는 방법을 선택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갖고 있는 것을 내놓으니 그에 합당한 것을 받아야겠다는 겁니다.”

소월가의 가주권을 내놓는 대가로 자신도 무언가 이득을 취해야겠다는 말이다.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바뀌었다.

진유한은 여유로워 보였고, 시하루는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원하는 거지?”

소월가가 전부인 그가 그것을 버리는 대신에 원하는 게 있다고 하니,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희수궁의 자리를 원합니다.”

소월가의 가주를 포기하는 대신, 왕의 장인 자리를 얻겠다 이건가.

“……싫어.”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머릿속에 그 말들이 한 번에 몰리다 보니 진심이 가득 담긴 단답형이 나왔다.

오히려 그것이 진유한에게는 다행일지도. 온갖 욕과 짜증을 들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제 딸아이를 희수궁의 자리에 앉혀주십시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

여전히 바뀔 생각 없는 시하루의 대답에 한 걸음 물러난 진유한이 잠시 말이 없다.

“알겠습니다.”

의외로 포기가 빨랐다.

“그러면 제 딸아이를 포함해 제대로 된 간택전을 펼치게 해주십시오. 거기서 떨어진다면 깔끔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진유한 성격에 그나마 많이 양보한 것이다.

고민에 빠진 시하루는 입을 다물었고, 곧 결심한 듯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좋다. 그렇다면 간택의 방법은 내가 정한다. 그래도 괜찮겠나?”

“물론이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 *

“장난하십니까?! 간택전이라니요?!”

요즘 시하루가 성실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신은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시하루는 그동안의 잔소리를 한 번에 모아서 듣고 싶었던 걸까.

“만에 하나의 이야기지만, 유아님은 후궁이 될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시죠?”

“…….”

“빨리 정리하지 않으시면 서하연에서 들고일어날지도 몰라요.”

안 그래도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이신 때문에 시하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고는 해도 이랑, 아니. 유아를 왕후로서 데리고 온 건데 이 시점에서 간택전을 연다고 하면 서하연의 려화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만약, 아주 만약의 경우에 희안궁의 여인 중 한 명이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삼화인 유아를 후궁으로 올릴 수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유아. 그녀가 간택되는 건데……정작 그녀가 그럴 의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어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조금은 걱정 좀 해주지?”

앓고 있던 감기가 나아 쌩쌩해진 유아는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관심 없어 보였다.

그동안 아파서 못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는 바람에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평소 아침 조회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시하루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이신은 묘안을 내렸고, 그게 바로 유아를 참관 대신 자격으로서 조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늘 듣고 싶어 하던 조회를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그 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이 밀려 더욱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 책임져.”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제야 책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뗀 유아가 투덜거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책임이라 하시면……?”

말은 안 했지만 조금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이번에는 네가 날 도와줘야지. 나 이러다가 여우랑 결혼하게 생겼다고!”

“그럼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노력해!”

앞뒤 말 다 자르고 노력하라는 그의 말에 유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노력하라’라고 말하는 건지.

“지금 저에게 ‘노력’을 요구하시는 건가요?”

“네가 공부를 생각하는 마음의 딱 반만. 나를 신경 쓰는 데 써줘.”

어쩐지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비굴해 보이기도 했다.

마치 애정결핍에 걸린 강아지마냥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만일 제가 간택 안 되면요?”

“할 수 없지 뭐……. 억지로라도 결혼해야지.”

불쌍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절대 굽힐 수 없는 의지를 표명하는 그를 보며 유아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는 간택될 거야.”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시하루가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확신인지.

“……권력남용은 안 돼요…….”

“어떻게 너는 이 상황에서도 규칙 같은 걸 따지냐.”

유아의 말에 시하루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왠지 즐거워 보였다.

“내가 꼼수 쓰지 않아도. 넌 분명히 될 거야. 나한테 생각이 있거든.”

그에게 계획이 있다는 말에 이신을 포함한 방 안에 있던 이들이 의미 모를 시선을 주고받았다.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마세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 *

“모셔왔습니다.”

반 이상이 제 발로 나가버린 덕분에 희안궁에 남아 있는 이들의 수는 다섯 명 정도였다.

“안타깝지만 너도 저기에 서야겠다.”

시하루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유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곁에서 떨어지기 싫은 듯. 말 그대로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그와 달리 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횅하니 내려갔다.

잠시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어디에 서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가장 뒤에 서 있던 여인의 뒤로 갔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희안궁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대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고자 이리 간택전을 열었다.”

월향을 제외한 다른 희안궁의 여인들이 놀란 듯 보였다.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 보이는 이들과 달리 월향. 그녀 혼자만은 어딘가 비장해 보였다.

‘반드시 네가 간택되어야 한다. 네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면, 그 계집에게서 소월가의 인장을 빼앗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냥 기뻐하던 다른 희안궁의 여인들 역시 눈을 반짝였다.

‘이건 기회야. 계속 버티고 있길 잘했어! 전하께서 드디어 저 꼬맹이에게 싫증이 나신 게야.’

그리고 맨 뒤에 있던 유아는 혼자 우울해 보였다.

‘이럴 시간 없는데……. 빨리 보고서도 써야 하고……. 내일 있을 신입교육 준비도 해야 하고……. 서하연에서 내준 과제도 해야 하고……. 서화당의 편지들도 봐야 하는데…….’

“그럼 규칙을 설명하겠다. 말하는 동안. 이신. 그것을 나누어줘라.”

시하루의 말에 웬 바구니를 들고 있던 이신이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리 말하는데. 결과를 인정하고 신속히 궐에서 나가야 한다. 알겠느냐?”

“예. 전하.”

비장해 보이는 여인들을 관찰하던 유아는 색다른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의 각오가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시하루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집중력 역시 상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장함은 이신이 나누어주는 물건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저마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말없이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는 유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신이 당황하다 못해 어이없어하는 유아에게 싱긋 웃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최선을 다하시면 될 겁니다.”

아니. 이걸로 뭘 어쩌라는 건데…….

유아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앞에 쌓여 있는 힘없는 볏짚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로 툭툭 쳤다.

유아와 월향을 포함한 이들이 얼이 빠진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반응을 즐기고 있던 시하루는 조용한 침묵이 지속되자 결국 먼저 입을 열어 설명해주었다.

“그 볏짚으로 새끼줄을 가장 길게 꼬아온 이에게 희수궁 자리를 주겠다.”

“예에?!”

조용했던 방 안이 갑자기 웅성이기 시작했다.

마치 쓰레기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건 끈이다! 자신을 왕후의 자리와 이어줄 수 있는 끈!

“기한은 내일 묘시(오전 5~7시)까지이며, 각자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혹시 돈을 주고 산 것과 바꿔치기 등의 부정행위를 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경합이 끝날 때까지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할 것이다.”

시하루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지금 희안궁의 여인들은 어떻게 새끼줄을 꼬아야 하는지 주위에 있던 궁녀들에게 묻기 바빴다. 그러건 말건. 시하루는 꿋꿋이 제 설명을 끝마쳤다.

“내일 묘시까지. 매일 아침조회가 열리는 곳에서 함께 검사할 테니. 모두 그곳으로 오도록. 이상. 각자 지정된 방으로 가 시작해라.”

시작을 알리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여인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그러나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유아만은 방 안에 혼자 남아 멀뚱히 볏짚들을 바라보고 섰다.

그녀는 생각했다.

‘꼼수 쓰지 않아도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며! 나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막막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던 이신이 시하루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 *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너무하네.”

시하루가 느긋하게 난간에 기대, 약간 떨어진 어딘가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이신이 뭘 기대했느냐는 식으로 끼어들었다.

“유아님이 그렇죠. 뭐.”

자신은 예상했다는 이신의 반응과 달리 시하루는 기운 빠졌다는 듯.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났다고. 경합은 완전 뒷전이야. 지금 과제가 중요해? 이건 그냥 일상생활 모습을 보는 거 같잖아! 내가 뭐 열심히 밤을 새우면서 까지 하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생각 안 해?”

“이참에 전에 못 이룬 폐위를 당하실 생각이 아닐까요?”

눈치 없는 이안의 말에 모두가 긴장했다.

이신은 ‘오랜만에 한 대 맞겠구나.’ 하는 시선으로 제 아들을 바라보았고, 시하루는 무표정이었다.

“……아닐 거야…….”

그러나 목소리에서 확신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나랑 약속했다고.”

“글쎄요. 시하루님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요.”

바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는 조용했다. 그러자 이신이 먼저 이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주의를 시켰다.

옆에서 부자간의 다툼이 있건 말건. 시하루는 유아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 *

여기 시하루 말고도 안달이 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마마님. 이제 슬슬 시작하셔야죠!”

희수궁에서 급하게 호출이 된 궁녀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그러나 유일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유아는 여전히 제 할 일에 몰입 중이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재촉이 지겨워질 때쯤.

그녀 역시 이제는 정말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책을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앞에 쌓여 있던 짚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손을 뻗어 한 움큼 집었다.

“……문제가 있어…….”

“예?”

“나 어떻게 하는지 몰라.”

유아가 손안의 볏짚으로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곁에 몰려 있던 궁녀들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기운 내라는 듯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우리 힘내서 꼭 왕후 자리를 지켜내자고요!”

“왜들 이리 의욕이 넘쳐?”

사실 궁녀라는 신분이 윗사람을 모시며 충성하는 것이 의무였지만, 그들에게도 ‘선호대상’이라는 게 있었다.

희안궁의 여인들이 까다로운 건 둘째 치고, 소월가의 월향.

그녀는 사상 최악이라는 건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희수궁의 궁녀들은 최대한 그녀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유아를 제외한 이들은 전부.

“으으……. 대충 예의상 3개 정도만 하면 되겠지?”

나름대로 노력하던 유아가 울상이 되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도저히 새끼줄로 봐줄 수 없는 무언가였고 그 결과물을 바라보던 궁녀들은 막막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님! 다른 분들은 벌써 아~까 전부터 하고 계신다고요! 어떡해요. 식사도 거르시고 밤샐 기세로 하고들 있다는데!”

“대충 해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일단 좀 가르쳐주라. 나 해본 적 없어.”

그녀가 대충 이리저리 꼬아놓은 결과물에 몇몇 궁녀들의 웃음이 터졌다. 이미 긴장감이 도는 경합의 분위기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정말 세 개만 하시고 그만하시게요?”

“당연하지.”

너무도 당당히 대답하는 태도에 궁녀들은 어이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왕후 자리가 그렇게 싫으세요? 욕심 좀 가지세요!’

“……전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건지…….”

한편. 조용한 유아의 처소와 달리, 다른 이들의 처소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월향 님. 저녁은…….”

“지금 밥을 먹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그러지 말고 너도 어서 돕지 못하겠느냐!”

“아. 네!”

계속되는 짜증에 시녀들은 쉴 틈이 없었다. 저녁까지 거르겠다는 월향의 의지에 그들 역시 오늘 저녁은 굶은 것으로 확정됐다.

“아니다. 너는 얼른 다른 이들의 처소에 가서 대충이라도 좋으니 얼마나 했는지 알아봐!”

“예? 예!”

“아. 그 꼬맹이는 어쩌고 있대?”

월향의 질문에 끝쪽에서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던 시녀 한 명이 대답했다.

“경합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늘 그렇듯 책만 보고 계시던데요?”

그 말에 그녀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다른 이들은 걱정되지 않았지만, 유아만큼은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줄의 길이는 사람의 인원수와 비례할 것이며 많은 시녀를 데리고 있는 사람의 승리나 다름없다.

희안궁의 여인들은 궁녀가 아닌, 따로 집에서 데려온 시녀들을 두었기 때문에 조력자의 수가 현저히 부족했다.

월향은 그들 중 가장 많은 시녀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리한 상황. 하지만 희수궁의 궁녀들을 거느리는 유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놓고 있다니. 이런 기회가!

“아직 모르나 본데, 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감정만 있으면 다 돼는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계략이라고. 전하의 마음을 얻는 건 그다음이야. 뭐. 꼬맹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겠지만 말이야.”

간택전에 참가한 이들이 바쁜 만큼 그들의 시종들 역시 바쁜 건 당연지사.

온 힘을 기울여 새끼줄을 꼬던 월향이 이를 악물고 끙끙거리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내가 희수궁을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두고 봐. 그 자리에 어울리는 게 누군지 보여 줄 테니까!”

그날 밤.

다른 이들의 처소의 불은 꺼질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딱 한 곳. 늘 그렇듯 해시(오후 9~11시)만 되면 불이 꺼지는 방이 있었으니. 바로 새 나라의 어린이 유아의 방이었다. 그것은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밖에서 불이 꺼진 유아의 처소를 바라보고 있던 시하루에게 이신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어왔다. 그러나 걸음을 돌리는 시하루의 얼굴에는 오히려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잘 될 거야. 분명.”

“전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꼬맹이는 일찍 자야 큰다는 말 안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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