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33화 (33/44)

三十四花 * 꽃의 이름을 아는 자 (1)

“서하연의 려화를 움직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시하루의 말에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던 이신이 깜짝 놀랐는지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여느 때라면 뭔가에 놀랄 때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척을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역시 반응이 남달랐다.

최근에 시하루가 무슨 일을 벌일 거 같기는 했지만, 설마 그 서하연의 려화를 움직이다니.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뭔가가 더 있는 모양이군요. 그래서 다음으로는 또 뭘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이게 다는 아니겠죠?”

이신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시하루가 손에 들린 어느 종이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나운 개 한 마리를 움직여 볼 계획이 있기는 하죠.”

‘사나운 개’라는 비유에도 불구하고 이신은 그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금세 눈치를 챘다. 하지만 대상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는 걱정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아는 데, 웬만해서는 힘들 겁니다.”

“저도 아는데, 이번만큼은 제가 이깁니다.”

너무나 당당한 그의 태도에 오히려 이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 둘이 붙으면 항상 지는 쪽이 자신이 모시는 주군인데 이번에는 뭐가 그리 당당한지.

혼자 실실 웃고 있던 시하루가 어리둥절한 이신에게 약간의 실마리를 주기 위해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꽤 떨어진 거리 때문에 그 내용까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새하얀 종이의 아래쪽에 찍혀있는 인장은 예전에 이랑의 신원보증사건 때 서하연의 려화가 찍어주었던 것과 같은 거였다.

“글쎄요. 서하연의 려화에게서 얻은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뭐 두고 보세요. 제가 서하연을 건드리면서까지 뭘 얻었는지.”

* *

유시후는 지금 상황이 매우 불만스러웠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자신은 물론이요. 제 앞에 앉아 있는 상대 역시 이 자리가 불편할 텐데.

하지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상대의 미소가 너무도 거슬렸다.

“협조해라. 유시후.”

“……뜬금없이 사람을 불러다 놓고 한다는 말씀이 그것이십니까.”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으며 유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호출이 들어왔다기에 또 장기 때문에 부른 줄 알았는데, 남자끼리 한잔 하러 가자며 자신을 끌고 갔다.

그리고는 굳이 궁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기 무섭게 한다는 소리가 ‘유아와 자신의 사이를 방해하지 마라.’였다. 거기에 덤으로 ‘협조’까지 바라고 있으니 욕심이 과했다.

“좋게 말할 때 듣지?”

‘협조’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협박에 가까웠다.

유시후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가 자신을 부른다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자리를 피하겠다고.

“세간에서는 ‘좋은 말 할 때 협조해라.’라는 말은 좋게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일단 끝까지 들어보는 게 어때? 너한테도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시하루의 말이 먹힌 건지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듯 유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서하연의 려화에게서 유아의 증표를 대가로 어떤 법을 바꾸겠다는 답을 얻었다.”

그의 말에 유시후는 탁자 위의 산적을 노리던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산적보다 서하연의 려화를 협박하면서까지 얻은 물건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나저나 ‘유아의 증표’라니. 역시 이쯤이면 눈치채고 있는 게 당연한 건가.

과연. 이신이 그가 서하연의 려화를 협박했다기에 무엇으로, 어떻게 그런 짓을 한 건지 궁금한 유시후였는데 이제야 이해 간다는 표정이었다.

려화에게 있어서 이랑. 즉 유아는 특별한 존재이다.

물론 자신의 오랜 벗이 남기고 간 딸이기도 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가 자라는 모습을 봐왔었고,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려화에게 있어서 그녀는 친딸과도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런 려화에게서 이랑을 빼앗을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것이 증표였다.

증표를 왕이 갖고 있었으니, 려화는 그가 함부로 이랑을 서하연에서 데리고 나갈 수 없게 그 증표를 무효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겠지.

하지만 아무리 려화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다.

“설마……. 려화도 혼인을 할 수 있게 한다느니 뭐 그런 건 아니겠죠? 그건 있을 수…….”

“아니. 내가 요구한 건 ‘명예 삼화’를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 삼화이지만 려화에는 도전하지 않는 여인들. 혼인의 제약에서 벗어난 삼화들을 말이야.”

‘난 절대 당시의 말에 넘어갈 생각이 없어.’라는 말과 함께 그를 경계하던 유시후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머리에 돌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곧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뭔가 짜증이 난다는 표정과 함께 노골적으로 ‘당신 진짜 마음에 안 들어.’라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서하연의 려화를 협박해서 얻어낸 것이……. 저를 협박할 수 있는 무기였군요.”

“처음부터 내가 생각한 최고의 장벽은 려화가 아니라 너였거든. 그때 궁에서 잠깐 봤지만, 그 여자가 네 약점이라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지. 또 꼬맹이한테 많이 듣기도 하고 말이야.”

예전에 이랑의 폐위 문제를 놓고 펼쳐진 접전에서 합격 통지서를 들고 나타났던 히연을 유시후와 연관 지어 주의 깊게 관찰한 모양이었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이랑이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일상 모습은 유시후가 그 여인에게 잡혀 사는 생활이었고, 그녀 역시 이랑과 마찬가지로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학생이라는 것 또한 예측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는 예전에 유시후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

‘사랑하니까 곁에 있어달라고 하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미안한 감정을 갖고 살아야 할 거예요.’

그것은 유시후와 라히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자신에게 하는 나름의 충고였던 것.

“자자. 일단 진정하고 생각해봐. 꼬맹이는 삼화가 되도 나랑 혼인할 수 있어. 왜?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내가 누구냐? 이 나라의 왕 아니야. 그런데 그 뭐야, 아히연? 그녀는…….”

일단 유시후를 설득시키는 게 우선인 시하루는 필사적으로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했다.

“라.히.연.”

스스로 왕이라고 으스대듯 말하고 있는 시하루의 말을 싹둑 자르고 싶었지만, 꾹 참던 유시후가 그가 히연의 이름을 잘못 말하자 무섭게 지적했다.

“그래그래. 라히연. 어쨌든 내가 알기로는 그녀는 너랑 혼인하기 위해서 삼화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

“그리고 너는 그녀가 너 때문에 학업 때려치우고 다 버리고 내려오는 건 싫을 거 아니야. 너한테도 좋은 조건 아닌가?”

유시후의 약점이라고 말하기 충분했다. 더는 으르렁거리지 않고 깊은 고민에 빠진 그였다.

이윽고 생각이 정리된 건지 그가 한숨을 내쉬며 웃고 있는 시하루에게 물었다.

“……대가는요?”

유시후의 입에서 ‘대가’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시하루의 머릿속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천하의 유시후를 설득시켰다는 데에서 온 기쁨을 억누른 그가 재빨리 말했다.

“더는 나를 방해하지 말 것. 인정하기는 싫지만 난 너는 이길 자신이 없거든.”

방금 시하루의 말을 해석해보면 유시후를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는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과 같았다.

“ ‘방해하지 마라.’라……. 두 번째로 듣는 말이네요. 아, 누가 말했는지는 안 가르쳐드릴 거예요. 분명 누군가가 좋아할 테니까. 하아……. 거절하면 즉시 ‘려화와의 거래를 없던 일로 하겠다.’라고 하실 테죠?”

더 무슨 대답이 필요하겠는가.

유시후는 그저 ‘이제 이겼다.’라는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시하루가 너무도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해. 꼬맹이 대신에 넌 네 사랑 찾아가는 거잖아?”

“그것 참 마음이 편해지네요.”

여기까지 와서도 비꼬다니. 역시 유시후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시하루는 얼마 전에 이신이 알려준 ‘이제 시간이 없어. 얼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이 기회가 날아갈지도 몰라.’라는 협상의 방법을 살려 마지막 재촉에 들어갔다.

“자. 어때? 어느 쪽을 선택할래? 유아? 아니면 라히연이라는 여자?”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가만히 바라볼 뿐. 유시후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시하루는 그가 거절의 의사를 표할까 불안해졌다.

하지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시후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낚아채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더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그대로 자리를 뜨려던 그는 곧 뒤탈이 걱정되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당부를 했다.

“나중에 혹시나 이랑이 물어본다면, 그래도 조금은 고민했었다고 말해주세요.”

“걱정하지 마. 포장 잘해줄게.”

유시후는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분명 저 약속은 지켜지지 않겠구나.’라고.

* *

“요즘 들어 유시후 오라버니가 조금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한데?”

이미 그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시하루는 그 사납기로 소문이 자자한 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오늘은 장기 둘 마음이 없다는 핑계로 장기 말들을 하나하나 쌓아올리고 있던 이랑이 꽤 되는 높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려다가 멈춘다는 느낌?”

“아……. 지금 아마 그 녀석 심정은 여러모로 복잡할 거야. 내가 잘 알지.”

잘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었으니.

평소 상대하기 버거운 유시후의 일상을 무너뜨렸다는 기쁨에 시하루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

괜히 이랑에게 의심을 샀다가는 자신이 한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시후 오라버니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히연 언니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아. 아마 그 언니란 사람은 지금 기분이 좋을 거야.”

어찌 보면 이 싸움에게 가장 이익을 본 인물은 라히연이라는 여인일 것이다.

“꽃따리 오빠가 어떻게 알아요?”

이랑은 말만 하면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자,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한 시하루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서하연에서 들은 거 없어?”

“서하연이요? 요즘 궐 안 일이 많아서……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못 갔네요. 그런데 서하연이 여기서 왜 나와요?”

요 며칠 서하연의 무언가가 엄청나게 바뀌어 소란스러울 텐데.

열심히 일하느라 그 흔한 소식 하나 듣지 못했다는 말에 시하루는 당장에라도 그녀의 상사인 이신을 불러다나 뭔 일을 그렇게 시키느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자신이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이랑에게 혼나는 건 자신이었으니 그냥 내버려두자는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

“그럼 오늘 꼭 서하연에 가보도록 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뒀으니까.”

물론 이랑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법률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즐겨하는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히연 언니’라는 존재가 특별한 인물임이 틀림없으니까.

“이미 식구 같은 존재지만 얼른 언니가 오라버니랑 혼례식 올렸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차례가 되어 이제는 꽤 높이 쌓아올린 장기 말 탑 위에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리고 있던 시하루가 이랑의 중얼거림에 잠시 주춤거렸다.

“아……. 아마 당분간은 못할걸…….”

“왜요?”

“조만간 금혼령이 내려질 예정이니까. 윽.”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랴, 서서히 흔들거리며 위험신호를 보내오는 장기 탑에 집중하랴.

결국에는 와르르. 높게 쌓아올렸던 장기 탑이 잠깐의 방심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다.

“금혼령?”

뜬금없이 이 시기에 무슨 금혼령이냐는 질문에 주변으로 흩어진 장기 말을 줍던 시하루가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를 마주하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너한테 다시 청혼할 생각이거든.”

그 말을 듣고도 이랑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감동은 기대도 하지 않은 시하루였지만 ‘당황’이라던가 ‘놀라움’ 정도의 반응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제 할 일에 몰두 중인 이랑이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제가 연애를 안 해봐서 그러는데요. 보통 그런 건 당일까지 비밀로 하지 않나요? 원래 계획 단계부터 세세히 보고해요?”

“갑자기 청혼하면 거절할 거 같아서.”

기가 죽은 건지 시하루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것을 느낀 이랑이 짓궂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제가 받아드릴 거 같아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조금은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질문에 안 그래도 불안하다는 시하루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우리 화해했잖아. 그리고 너 나 좋아하면서. 나 좀 예쁘게 봐줘.”

“……무슨 자신감이래요? 내가 꽃따리 오빠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시하루는 옆에 놓인 서랍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뭔가 단단히 결심이라도 한 듯 그 앞으로 걸어가더니 맨 아래의 서랍을 열어 고이 모아놓았던 두툼한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좀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걸 보면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아, 지금은 보지 마! 창피하니까.”

봉투를 받아들기 무섭게 내용물을 확인하려던 이랑을 시하루가 재빨리 막았다. 그리고는 꼭.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돌아가서 보라고 당부했다.

“나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지만 말이야. 버리지 않고 모아두길 잘했어.”

뭐가 재밌는 건지 모르겠지만 실실 웃고 있는 그의 반응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던 이랑은 더욱더 봉투 안에 든 게 무엇인지 신경이 쓰였다.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명예 삼화 직이 뭐야?”

그동안 일에 몰입해서 그런가. 아니면 누군가의 압력이 있던 덕분이었나.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나 낮의 시하루의 조언대로 이랑은 집에 가는 길에 서하연에 들렸다.

워낙 바쁘신 려화는 만날 수 없었지만 마침 서하연에서 나오던 히연을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서 생소한 명칭을 듣고 질문한 것이다.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서하연 입구에서부터 소란스러움을 느낀 그녀였지만 곧 있으면 시작되는 승급시험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래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거 같아서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듣지 못했어?”

히연의 말에 이랑은 순간 낮에 들은 ‘서하연에게 들은 거 없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자신이 서하연에 가지 못한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왜 자신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지 답답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하께서 진심으로 우리 이랑이를 아끼고 있기는 한가 봐. 조금은 안심이 되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이랑을 바라보는 히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듣기로는 얼마 전에 전하께서 려화님과 만나고 싶다고 하셨나 봐. 거기서 나름대로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까지 서하연의 법을 고치고 싶어 하셨대. 그 결과 생겨난 게 바로 ‘명예 삼화!’ 삼화의 자격을 갖고 있긴 하지만 려화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혼인의 자유를 갖고 있는 여인!”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본인과는 전혀 상관없지 않나?”

그는 왕이기 때문에 딱히 삼화(三花)의 규칙과 상관없을 텐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글쎄~. 아마도 누군가의 목표가 바뀌길 바란 건 아닐……. 어? 유 낭군!”

집의 대문 앞에서부터 살짝 화가 난 듯 보이는 유시후가 히연과 이랑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더욱더 찌푸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집에 늦게 온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듣겠거니 싶어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던 이랑의 걱정과는 다르게 유시후의 걸음은 그녀를 지나쳐 옆에 있던 히연에게로 향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너 앞으로도 계속 서하연 다닐 건데 좀 적당히 일찍 일찍 다녀라. 전에는 ‘이제 얼마 못 다니니까 다닐 수 있을 동안 마음껏.’이라는 이유로 눈 감아줬다지만 이제는 아니잖아?”

혼나는 건 죽어도 싫으면서 자신을 안 보이는 사람 취급하는 건 서운한 모양인지 이랑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걱정 안 하지?”

평소라면 유시후의 눈을 피하려고 노력했을 이랑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오라버니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못해 그것마저 무시당하자 말을 꺼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넌 네가 알아서……어? 그건 뭐냐?”

무표정으로 답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유시후가 이랑의 품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봉투에 시선을 고정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이거? 몰라. 꽃따리 오빠가 주던데? 뭐라더라……. 이걸 보면 자신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라면서. 중요한 건가 봐. 이야기 나온 김에 지금 볼까?”

혼자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이랑이 품 안에 안고 있던 봉투를 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유시후와 히연이 서로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떠야 한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앞다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둘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한 가지의 추측이 문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건 분명…….’

역시.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게 뭐야!! 이 편지들을 왜 꽃따리 오빠가 갖고 있는 거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이랑의 외침이 그들의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유시후는 벌써부터 한숨을 내쉬며 저걸 또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방 안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그는 ‘그러고 보니…….’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히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라히연.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적화유가 전하라는 사실.”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듯 유시후가 질문하자 히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첫 번째 편지 읽었을 때부터. 봐봐. 내용도 내용이지만 말이야. 가명이 ‘적화유’라니. 너무 뻔하잖아.”

사실 그녀는 이미 첫 번째 편지를 읽을 때부터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오는 편지들을 계속 읽으면서 확신을 했다.

딱히 말을 하지 않은 건. 왕과 이랑이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채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관계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큭. 창의성이 없긴 하지. 교묘하게 순서를 섞기는 했지만 말이야. 대충 말을 맞춰보면 답이 나오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적화유(?花儒). ‘아름다운 꽃 같은 선비’ 이랑이 입에 달고 다니는 ‘꽃따리 오빠’가 말이지.”

이해가 간다는 듯 히연을 따라 큭큭 웃던 유시후가 아직까지도 밖에서 난리를 부리고 있는 이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정작 이름 붙인 녀석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거 같지만 말이야.”

남의 일에 있어서는 눈치가 빨랐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눈치가 없는 게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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