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二花 * 이 세상에 한 송이밖에 없는 (5)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적화유의 편지가 안 오는데…….”
어느새 적화유의 편지에 빠져버린 히연이 툴툴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 정리를 하고 있던 이랑은 피식 웃었다.
이 자리에 유시후가 함께 있었다면 분명 뭐라 했겠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서하연이 아니던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장소였다.
물론 유시후는 절대 그 편지를 읽지 말라 신신당부했지만, 그는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 경고하고 곁에서 감시하는 거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왜 요즘 안 오는 거지?”
사실은 히연뿐 아니라 이랑역시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매일 같이 수아가 들고 올 편지를 기다렸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시에 합격한 이랑은 오전에는 궐에서 일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는 시하루와 장기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끝낸 뒤에는 보통 서하연으로 가 삼화(三花)로서의 교육을 받았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서하연이 아닌 유시후의 집으로 가, 쉬면서 서화당의 편지에 답장을 몰아 쓰고는 했다.
“일이 잘 해결된 걸지도.”
어쩌면 늘 고민하던 연애문제가 잘 해결이 되어, 더는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어진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반대로 일이 틀어져 아예 포기해버렸다던가.
“……먼저 보내보는 건 어때?”
서하연의 서재 정리가 그들의 임무였는데 책들은 아직도 꽤 쌓여 있었다. 이 상태로는 오늘 안에 끝내기 어려워 보였다.
요즘 엄청난 일정들을 견디어 내느라 고생하는 이랑이 걱정된 히연이 제안했다.
그녀의 말에 그제야 대화에 관심을 보인 이랑이 들고 있던 책을 빈 책장에 넣으며 말했다.
“……상대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지도 모르는데…….”
“뭐 어때? 어차피 가명이고. 서로 고민 상담하는 거 괜찮지 않아?”
이랑의 정리를 돕기 위해 다가오던 히연이 뭐가 문제냐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어느 정도 넘어간 이랑은 생각에 잠겼다.
“……나 고민 없는데?”
약간의 뜸을 들이던 이랑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히연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키득키득 웃다가 재빨리 웃음을 거뒀다.
“아. 그래?”
“……정말 보내도 민폐가 아니겠지?”
고민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랑은 금세 말을 바꿨다.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중요한 문제 같았다.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히연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고, 곧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걱정하지 말래도. 적화유란 사람도 네 쪽에서 먼저 보내면 반가워할걸?”
“응. 그럼 한번 보내 봐야겠다!”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이던 히연의 미소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 *
“……다시 말해봐.”
시하루는 당황스러웠다. 오죽 당황스러웠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바짝 달라붙어 있을 정도였다.
문가에 서 있는 대신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기 위해 그는 계속 구석 쪽으로 들어갔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보라고.”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확실한 건지 재확인을 해야 했다.
겁먹은 표정으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시하루의 시선은 여전히 대신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종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 서화당의 유아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하는 대답이었지만 시하루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게 무슨 어려운 말이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건지……. 결국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이안이 버럭 외치듯 말했다.
“서화당의 유아에게서 온 편지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왜…….”
서화당의 유아 = 소이랑.
그는 이미 서화당의 유아가 이랑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적화유라는 걸 모르는 상황.
그 역시 서화당의 유아의 정체를 몰랐을 때는 그녀의 편지를 기다렸지만, 막상 다 알고 나니 이게 또 이상했다.
방금 대신이 들고 온 문제의 편지는 이랑. 그녀가 자신에게 쓴 편지가 아닌가!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게다가…….
벽에 달라붙어 있던 시하루가 방 안에 함께 있던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하필 호랑이를 지금 부른 건지 몰랐다.
최근에 얻고자 하는 정보가 있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얻을 수 없는 정보였다. 혹시 그는 알까 싶어 이리 불렀건만…….
계속 들고 있기가 뭐했는지 우물쭈물 거리던 대신이 편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 앞에 앉아 있던 문제의 호랑이의 시선이 그 종이 한 장에 고정됐다.
“편지…….”
“잠깐. 나한테 온 거잖아.”
탁자 위의 편지를 엄청난 기세로 노려보던 유시후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것을 낚아채려 했다.
다행히 그를 예의주시하던 시하루가 다가와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납치됐었을 편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나도 아직 못 읽었는데, 그 전에 빼앗길 수는 없지!’
“……과잉보호라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나?”
“전하께서는 본인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한 번도 생각 안 해보셨나요?”
유시후가 응수했지만 시하루는 절대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를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집부리는 그를 바라보던 유시후가 한숨을 내쉬더니 곧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좋아요. 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으셔서 부르신 거겠죠?”
사실 시하루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까 고민했지만, 눈치가 빠른 유시후가 먼저 입을 열어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서하연의 규칙……알고 있어? 아니 그 전에……알려줄 생각은 있어?”
얼마 전에도 대가를 두고 장기로 내기했었으니 이번에는 또 그가 무슨 대가를 원할지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하루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못 알려드릴 것도 없지요. 어차피 어떻게든 알게 되실 텐데요.”
이미 시하루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너무 잘 파악해버린 유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성격이라면 어떻게든 알아내고 말 테니 말이다.
“묻지 않아도 분명 ‘증표’와 관련된 이야기겠죠?”
그냥 알려준다는 데 기뻐하기는커녕 불안하다는 표정. 시하루는 성질 나쁜 호랑이가 친절하게 나오니 오히려 수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을 사기꾼 취급하는 그를 바라보던 유시후가 피식 웃으며 약간은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마 전하시라면 쉽게 사용 못 하실 테니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쉽게 사용하지 못한다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에 제가 한 충고 아직 기억하시나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충고?’
잠시 머리를 굴러가며 기억을 더듬던 시하루가 예전에 그가 자신을 찾아와 한 말을 간신히 떠올리고는 인상을 썼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와 비슷한 상황인 거 같아서요.’
안타까운 건 그 뒤에 어느 긴말을 한 거 같았는데,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왠지 그 뒤의 말이 더 중요했던 거 같은데……뭐라고 했더라……?
표정으로 보아하니 기억을 못 하는 게 분명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하연의 꽃이 자신의 이름을 넘겼다.’라는 증표는 단순해요. 그냥 자신의 물건에 자신이 직접 이름을 쓴 물건을 건네주는 게 증표가 되죠. 그 물건은 뭐가 되듯 상관없어요. 네. 예를 들면…… 전하께서 갖고 계신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름 하나 달랑 적혀 있는 종잇조각도 예외는 아니겠죠.”
어떤 대단한 물건이기에 유시후가 이리 나오는지 불안에 떨던 시하루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유시후가 별 쓸모도 없는 종잇조각에 관심을 보인다기에 뭐가 이상하다 싶은 감은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것일 줄이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미 내 손에 있는 거라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떻게 그것이 전하의 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이랑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으실 거예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째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보아하니 저번에 제가 드린 충고. 잊으신 거 같은데 한 번 더 해드릴까요?”
시하루가 그럴 리 없다고 반박을 했지만 유시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엄청난 확신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사랑하니까 곁에 있어 달라고 하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미안한 감정을 갖고 살아야 할 거예요.”
전에 한 말과 완벽하게 똑같은 말을 내뱉은 유시후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시하루를 바라봤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하께서 무를 수 없는 혼인을 주장한다면 아마 이랑이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군말 없이 왕후가 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는 또다시 그 녀석의 꿈을 짓밟아버리는 게 되겠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하연 입학이 문제라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려화. 즉 서하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여인. 그게 바로 이랑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자신의 미래에요. 그리고 지금은 그 꿈에 아주 가까워진 상태죠. 오직 그 한 가지를 향해 달려온 녀석이에요. 려화가 되기 위해 서하연에 입학했고, 려화가 되려면 그 전에 먼저 삼화(三花)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번 삼화 진급 시험에도 통과했죠. 그리고 그동안 궁 안에 있느라 채우지 못한 출석점수를 가산점으로 채우기 위해 국시까지 보고 통과했어요. 거기에 이번 삼화 중에는 라히연이 포함되어 있어요. ‘삼화는 왕 이외의 남자와 혼인할 수 없다.’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히연은 곧 삼화에서 물러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려화는 이랑이와 또 다른 한 명의 삼화의 경쟁이 되는 거죠. 그런데……그 모든 걸 무너뜨리시겠다고요?”
궁금하다고 해서 다 말해주었는데 시하루는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마음이 복잡해지기만 했다. 오히려 듣기 전이 더 마음이 편했다는 듯.
그러고 보니 전부터 이신이 계속 자신이 무슨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이것을 두고 한 말인 거 같았다.
잠시 그의 푸념을 들어줄까 고민하던 유시후는 곧 생각을 바꾼 건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시하루를 향해 ‘선택은 전하의 몫이에요. 잘 생각해보세요.’라는 말만 달랑 남겨두고는 방에서 나가버렸다.
갖고 있지만,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 *
[ 적화유님께 ]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요즘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해서 이렇게 보냅니다. 그동안 고민하던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잘 해결되셨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간의 소식이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부탁드릴게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는 제 고민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제 주위에는 별로 없거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상한 상소문이라도 올라왔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를 읽던 시하루를 향해 이랑이 물었다.
편지를 읽던 시하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약간 시선을 돌려 멀쩡한 의자를 내버려두고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본인이 쓴 편지가 설마 지금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이랑이 너무도 답답하고 재밌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꼬맹이. 너 자꾸 바닥에 그렇게 앉으면 감기 걸린다고 몇 번을 말해야…….”
괜히 나랏일에 관심 많은 그녀가 자신도 보겠다고 나설까 봐 걱정된 시하루가 재빨리 편지를 접어 집어넣고는 말을 돌렸다. 그러자 이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버럭 외쳤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잠깐만요. 우리 저번에 약속했잖아요?”
저번에 이랑이 시하루를 딱 한 번 이겼을 때 그녀가 그에게 요구한 게 있었으니. 그게 바로 ‘꼬맹이’라고 부르지 않는 거였다.
그녀가 그 호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알았어. 꼬맹이라도 부르지 말 것. 그나저나 너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있어도 꽃따리 오빠한테는 말 안 할 건데요.”
이랑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왜?’라는 말과 함께 살짝 토라진 표정으로 바뀐 시하루가 금세 또 바닥에 앉으려는 그녀를 억지로 일으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믿음직스럽지 못하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사실 나 엄청 믿음직한 남자야.”
그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남자에게 솔직하게 고민을 고백한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게 그녀였다.
시하루는 그동안 계속 실연으로 끝난 줄 알았던 첫사랑의 주인공이 그녀였다는 걸 이랑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궁금했다.
그냥 확 서하연의 규칙을 이용해 바로 문제 해결을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사랑하니까 곁에 있어달라고 하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미안한 감정을 갖고 살아야 할 거예요.’
과연. 이제야 유시후가 남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래도 왕이니 이랑이 계속해서 삼화를 할 수 있었지만, 유시후와 라히연의 관계는 달랐다.
둘이 이어지려면 라히연이라는 여자는 삼화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유시후는 항상 그것이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려화와 왕후. 두 자리에 모두 오를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신도 경고했듯이 둘 중 딱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선택이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혹시라도 고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정 나를 못 믿겠으면……그 뭐냐, 내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주위에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털어놓는다거나……. 그러면 좀 마음이 편해질 거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건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긍정적으로.”
* *
[ 적화유님께 ]
요즘 들어 장래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목표이고, 지금처럼만 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그런 목표입니다만 어째서인지 정상에 가까워지니 이제 와 흔들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딱 그 꿈을 이루는 것에만 신경 써왔기 때문에 그다음의 일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할 따름입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또 졌어…….”
패배의 슬픔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랑. 그리고 승리를 했지만 어째서인지 개운하지 못한 표정의 시하루가 그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장난 아니야!’
점점 빠른 속도로 추격해오는 이랑의 실력에 슬슬 상대하기 힘든 그는 충격에 빠졌다.
요즘 고민이 있다며! 어떻게 이런 집중력이 요즘 고민에 빠져 있는 녀석에게서 나오는 거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꽃따리 오빠. 오늘은 책 같이 못 읽어요.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게 있어서 가 봐야 하거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잠깐만.”
그의 부름에 나가려던 걸음을 멈춘 이랑이 빨리 요점만 말하라는 듯 그를 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막상 불러놓고 딱히 할 말이 없던 시하루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다 아까 본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너 장래희망 같은 거 있어?”
아주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 질문에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따지고 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녀답지 않게 고민에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려화?”
처음에 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어째서인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 역시 어딘가 시원치 않은 느낌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가 저번에 주의에 믿음직스러운 사람 있으면 고민 털어놓으라고 했던 거 기억나?”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글쎄요. 일단 한 명 붙잡고 말은 해봤는데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아요.”
하긴.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 고민이 다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것뿐이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긴 시간 동안 고민하던 시하루가 결국 한다는 말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힘내. 넌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강해.”
언제는 자신에게 왕후가 되라고 권하던 그가 이런 말을 해오니 지금 저게 진심으로 하는 응원인지 아니면 그냥 영혼 없는 말뿐인 건지 이랑은 알 수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는 제가 아는 남자 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남자예요.”
짐을 챙긴 이랑이 그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오늘은 빨리 돌아가야 한다더니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급하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남은 시하루가 여유 있게 손을 흔들어주더니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딱 맞췄네. 안 그래도 지금부터 터무니없는 일 하나 준비 중이거든.”
* *
[ 적화유님께 ]
인생에서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인생이라니 아직 제 나이로 말하기에는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단어 같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적화유님의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 저보다는 많으실 거라 생각이 됩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거예요.
최근에 지인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라 대답을 하기 어려웠던 질문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책을 뒤져가며 찾아봤지만, 왠지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지식인 거 같습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려화님.”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려화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하며 책을 덮었다.
“무슨 일이죠?”
“려화님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
한 해에 고위 귀족들이나 영향력이 있는 가문의 가주들이 자신의 딸을 서하연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보내는 편지의 양은 상당했다.
뇌물과 중요한 편지를 나눠야 했기 때문에 오죽하면 그런 편지들을 정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편지의 대부분이 그 부서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웬만한 편지들은 려화에게까지 바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극소수로. 그 관례를 깨고, 그 어떠한 것도 거치지 않은 채 려화에게 도달할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존재했다.
편지를 받아들은 려화가 봉투 바로 위에 찍힌 도장을 보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안에서 편지를 꺼냈다.
[ 당신이 아끼는 소유아의 증표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사용하지 않길 바라신다면 잠시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누군가가 이 나라의 왕에게 제 약점을 일러준 거 같네요. 이거 곤란한데요?”
말은 곤란하다고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서하연의 법에 대해 잘 알고.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두 명이 떠오르지만, 이 세상에는 딱 한 명밖에 없네요.”
“한 명이라 하시면…….”
“수령.”
려화의 입에서 어떤 여인의 이름이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다른 서하연의 꽃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리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수령? 수령님이라면…….”
오랜만에 불러보는 벗의 이름에 정감이 가는지 려화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전 서하연의 삼화이자, 저와 이랑의 어미인 유희와 벗이기도 한 여인. 그리고……. 현재 이 나라의 대비마마이기도 한 여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