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五花 * 서화당(書話堂)의 꽃 (6)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오전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이랑의 입에서는 그 어떤 말도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계획에 없던 ‘낯선 손님’들의 방문은 그녀의 평범한 하루 일과라는 틀을 깨버리는 데 충분한 충격과도 같았다.
손님 대접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이랑이었기에 눈치 빠른 궁녀들이 분주히 움직여 다과상을 준비해 내오기는 했지만,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막막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우와……. 완전히 얼어붙으셨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 판단한 유시후가 다른 궁인들과 함께 이랑과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는 정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시후 님. 가만히 좀 있으세요! 물가에 애 내놓은 엄마처럼 아까부터 왜 그러세요?”
혼자 남은 이랑이 불안한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유시후가 거슬린다는 듯 궁녀 몇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의를 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지만 이랑 님……. 같은 또래와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으셔서 어려워하시는데…….”
아까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유시후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이랑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곁에 가야겠는데 무슨 생각인지 자신을 막아서는 궁인, 그들 중에서도 특히 궁녀들 때문에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거 이거 어쩌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 그래도 요즘 희수궁 이야기가 너무 잠잠했다고요!”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남자들은 서로 불편하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랑과 불청객들의 대치를 바라보는 궁녀들의 등쌀에 못 이겨 죽은 듯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유시후 님. 여기서 뭐 하세요?”
때마침 서화당의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희수궁을 찾은 수아가 유시후와 다른 궁인들의 수상한 동태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수아의 등장에 궁녀들에게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던 유시후가 때마침 잘 왔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곧 그녀에게 뭐라 뭐라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일단……. 인사부터 해야겠죠?”
한편 갑자기 아침 댓바람부터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주위 조경이라도 관찰하고 있는지 자꾸 두리번거리며 차를 한잔 하고 있는 뻔뻔한 세 명의 불청객 중 한 명의 여인이 입을 열었고, 드디어 기나긴 침묵 속에 ‘대화’라는 것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할 말이 있어서 왔으면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왜 이렇게 질질 끄는지 모르겠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녕하세요. 저희는 희안궁의 여인들이랍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희안궁? 아. 후궁…….”
‘희안궁’이라는 말에 자신의 머릿속에서부터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이랑이 곧 ‘후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눈앞의 그녀들과 자신의 관계를 정리했다.
본의 아니게 왕후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과 그녀들은 어떻게 보면 ‘연적’이라는 관계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후궁 자리에도 못 가본 비운의 여인들이죠.”
희안궁의 여자라고 설명한 그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인물정리가 끝나고 있을 무렵 이랑의 귀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그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마치 구세주를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반기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수아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화당의 일 때문에 왔는데, 이미 손님이 계셨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돌아가는 거였는데……제가 방해됐나요?”
마치 이랑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줄 전혀 몰랐다는 듯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수아를 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유시후는 다시 한 번 그 어린아이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 연기력은 절대 어린아이의 실력이라 할 수 없어!’
어찌 되었든 유시후가 보낸 어쩌면 그보다 강력할지 모르는 지원군에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어 보이는 이랑이 그제야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하……. 이 아이가 이랑 님의 지인으로 유명한 수아라는 아이군요?”
방금 전 수아의 발언에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표정에서부터 볼 수 있을 정도로 희안궁의 여인들은 심기가 불편해져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저를 알고 계세요? 꽤 많은 감시가 붙어 있나 보네요.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면 다른 사람 관찰하는 데 그 아까운 시간을 쏟아 부을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잇…….”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나중에 저런 어른은 되고 싶지가 않아요.”
살짝살짝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수아의 대화 실력에 희안궁의 여인들이 꾹 참아내고 있던 화가 서서히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것을 눈치챈 이랑이 재빨리 수아와 그 여인들의 사이에 끼어 양쪽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자자. 그만하시고. 그래서 무슨 일로 희수궁에……?”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는 이랑의 질문에 그제야 자신들이 희수궁에 온 목적을 기억해낸 것인지 작은 아이의 도발 하나에 흥분했던 그녀들이 각자 시선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며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의 태도에 후회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희가 희수궁에 찾아온 이유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떤 ‘사실’을 이랑 님께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사실’이라면 어떤……?”
꽤 흥미로운 대화 주제에 이랑이 관심이 생긴 듯 보였고 그제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낀 여인들은 만족스러운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그런 반응을 놓치지 않은 수아는 왠지 불안하다는 듯 저 멀리서 원격조종처럼 손짓 발짓으로 어떤 말을 전달하고자 안쓰러운 노력을 하는 유시후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이 그렇게 찾아 헤매고 계시는 ‘전하’에 대한 정보이지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맞다. 이랑 님. 그러고 보니 저 꼭 전해드릴 말이 있었는데요…….”
그제야 이 여자들이 이랑에게 어떤 말을 하러 온 건지 눈치를 챈 수아가 갑자기 혼자 바빠져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랑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는 핑계로 그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응? 왜 그래?”
그런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랑이 좀 조용히 있어달라는 듯 수아에게 차를 따라주며 다시 흥미로운 대화 주제로 관심을 옮기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수아가 마치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듯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 이랑 님은 저보다 전하가 더 중요하세요? 맨날 나쁘다고 뭐라 하셔도 역시 남편은 남편이라는 거예요? 저 엄청나게 중요한 말인데……. 꼭 해야 하는데……. 그 얼굴도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런!”
멀찍이 떨어져서 그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궁인들과 불안해하고 있던 유시후가 수아의 말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건지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제가 뭐라 했습니까! 불안하다고 했잖아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떡해요, 유시후 님!”
이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벌써 정자를 향해 달리고 있는 유시후였다.
평소의 수아라면 자신에게 매달리는 일이 없었고, 공부 이외의 일에서 이렇게 필사적인 그녀의 모습은 처음이라 적지 않게 당황한 이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하랑 저랑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해요?”
조금은 유치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여기서 ‘전하’라는 대답을 들으면 조금은 쓸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수아가 애써 자신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당연히 수아가 더 중요하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면 방에 들어가서 들을까?”
예상외로 수아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는 말과 함께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랑의 행동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당황한 희안궁의 여인들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잠깐만요! 이거 안 들으시면 진짜 후회하실 텐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와 주시겠어요?”
그새 달려온 건지 숨을 몰아쉬던 유시후가 약간 위협적인 목소리로 이랑에게 달라붙으려는 여인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 이분들은 제가 알아서 잘 배웅해 드릴 테니까 먼저 들어가 계세요.”
유시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자에서 벗어나는 이랑과 수아였고, 분하다는 표정으로 유시후에게 막혀 그대로 희수궁 밖으로 쫓겨난 희안궁의 여인들은 이를 갈며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고생했어.”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유시후가 이랑의 방에서 잔뜩 기운이 빠졌다는 듯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나오고 있는 수아를 불러 세웠다.
희수궁의 평화를 지켜낸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아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대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는다는 듯 배웅해 주겠다는 그를 얌전히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눈치채고 있었나 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뭘요?”
깜찍하게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묻고 있는 수아를 바라보던 유시후가 잠시 주위에 듣는 이가 없나 확인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라는 사람의 정체 말이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께서 틈만 나면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거든요.”
자신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말투로 사악하게도 씨익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작은 여자아이가 이제는 진심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면 이랑이 보다도 더 한 존재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쩌면 그러지 않을까 하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런데 왜 그동안 이랑 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야? 넌 늘 이랑 님 편이었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따로 별호까지 붙이시는 걸 보면 꽤 마음에 들어 하신 거 같은데 여기서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충격받으실까 봐요. 이제 이 궁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그때까지 모르다가 조용히 나가서 평범하게 생활하시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잘못 판단한 걸까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거냐는 듯 유시후를 돌아보며 아이가 묻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해. 나였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
그 큰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유시후는 나름대로 ‘칭찬’을 하려는 거였지만 그것을 받아드리는 입장인 수아로서는 마치 ‘애’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해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한 듯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나저나 이랑 님은 정말 괜찮으실까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수아가 탈출에 성공하고는 유시후와 조금 거리를 두며 다시 이랑이 걱정된다는 듯 어느새 멀어진 그녀의 방으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무슨 확신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유시후가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괜찮아. 이랑 님이 평소에는 좀 생각 없어 보이는 거 같아도 사실 속은 나보다 더 깊거든. 게다가 어쩌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쩌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자, 얼른 가자. 해가 지기 전에 서화당으로 돌아가야지.”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요즘 꽃따리 오빠가 안 보여.”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요. 툭하면 찾아왔었는데. 근데 이거 꼭 제가 해야 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럼 누가 해? 내가 할까?”
희수궁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자신을 찾고 있다는 궁인들을 말에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불안해진 유시후는 빠른 걸음으로 이랑의 방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무슨 일 있느냐는 질문을 다 하기도 전에 이랑이 자신을 향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사과’였고, 지금 그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사과 깎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랑이 특별히 추가한 ‘절대 끊기지 말고 한 번에 깎아.’라는 세심한 주문과 함께.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좀 싸웠거든. 아니지 싸웠다고 하기도 뭐하네. 일방적으로 투정을 부렸다고나 할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누가요, 이랑 님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그 오라버니가.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말이야. 참 어린애 같지?”
사과 깎기에 집중하면서도 유시후는 용케 이랑의 말을 들으며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가 마음에 안 들었대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기 본명이 뭐 어쩌고……. 맞다, 유시후!”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던 그를 떠올린 듯 이랑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탁자를 탕탕 내려치며 자신의 말을 좀 들어달라는 듯 유시후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그의 팔을 탁탁 치기 시작했다.
과도를 들고 열심히 사과 깎기에 몰두하던 그가 놀란 듯 움찔거렸지만, 방금 엄청나게 좋은 걸 떠올린 이랑에게 그의 그런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놀란 유시후만 자신이 칼에 베이지 않았다는 것과 아직 끊기지 않은 사과껍질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같은 호위무사라면 서로 이름은 알고 있겠지? 저번에도 둘이서 대화하고 그랬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그럼요. 알고 있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럼 나 좀 알려주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예?”
뜬금없는 그녀의 요구에 살짝 당황한 유시후의 열심히 움직이고 있던 손은 순간 멈추었고 나름대로 그 짧은 멈칫거림이 어색하지 않게 바로 다시 껍질에 집중하기 시작한 그였지만 이랑이 그 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랑이 살짝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은 것으로 보아 분명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생각을 바꾼 게 틀림없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름. 알려달라고.”
퉁명스럽게 계속해서 요구를 해오는 이랑 때문에 다시 고민에 빠져버린 유시후였다.
과연 순순히 이름을 알려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그녀의 성격이라면 분명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낼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올 게 분명했다.
물론 이랑은 왕인 그의 본명을 모르고 있었으니 알려줘도 문제가 될 건 없을 거 같기도 했지만…….
전하의 이름이라는 게 알려고 하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했으니 괜히 알려줬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지기도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시하루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무슨 문제가 있겠어.’
의외로 순순히 알려준 유시후가 아직도 사과에 집중하며 짧게 대답을 하고는 곁눈질로 이랑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시하루? 좋았어. 다음에 만나면 한 마디 해줘야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다 좋은데 사람 괴롭히는 건 적당히 좀 해주세요.”
주로 무술을 하는 남자의 솜씨라고는 생각이 안 될 정도로 흠집 하나 없이 너무나도 매끈하고 완벽하게 껍질을 벗겨놓은 사과를 정확한 크기로 나누어 접시에 담은 유시후가 부탁을 하며 탁자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더불어 이랑이 했던 추가사항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증거인 껍질까지 옆에 보란 듯이 내려놓으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말도 안 돼. 놀리려고 한 건데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줄이야.”
너무나도 완벽한 솜씨에 놀란 이랑이 깔끔한 사과 조각들을 세밀하게 관찰을 하며 투덜거리자 천으로 손을 닦으며 방을 나서고 있던 유시후가 피식 웃고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사실은 휴일마다 자주 하는 일이거든요.”
도대체 휴일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이런 능력까지 갖춘 건지 모르겠다는 듯 닫힌 문을 노려보는 이랑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눈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이랑이 한숨을 내쉬다가 유시후가 깎아놓은 사과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아……. 어떻게 할까나…….”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지금 동문에…….”
오늘 무슨 날인가. 아니면 이 희수궁이 물 좋기로 소문난 장소라도 된단 말인가.
희수궁으로 이사를 온 뒤부터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진 유시후가 이제는 슬슬 한계라는 듯 또 다른 호출을 받고 동문을 향하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길 생각을 않은 희수궁이었지만 이번 손님은 생각만 해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의 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깜짝이야.”
무표정으로 책을 읽듯 말을 하고 있는 유시후가 더 놀랍다는 듯 동문의 앞을 서성이던 시하루가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호위무사가 어딜 그리 돌아다니는 거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희수궁 밖을 서성이고 있는 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리 나왔습니다만……. 설마 전하셨을 줄이야.”
가뜩이나 오늘 예상치 못한 불청객들의 등장으로 체력이 고갈된 유시후에게 또 다른 손님이 희수궁의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소처럼 들이닥치다시피 희수궁에 들어오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하……들어오시지 않고 왜 밖에서…….”
평상시의 유시후라면 필사적으로 출입을 막았겠지만, 여느 날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시하루 때문에 저도 모르게 ‘왜 안 들어오고 있느냐.’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희수궁 출입은 네 허락 없이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유시후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그를 발견하기 무섭게 그늘이 지어졌던 시하루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더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들었다고 갑자기 이 왕이 왜 이러는지 수상하다는 눈으로 시하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유시후가 곧 눈치를 챘다는 듯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지금 시하루 그는 입장 허락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못·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오전에 희안궁의 여인들이 희수궁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겠지.
보는 궁인들의 시선이 많았던 만큼 이야기가 그의 귀까지 들어가는 데에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으리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떻게, 들어오시겠습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아니 난 그냥…….”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한 유시후가 길까지 비켜주며 들어오라고 하고 있는데도 시하루는 쉽게 들어오고 있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뭐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하지 마세요. 이랑 님이라면 아직 모르시니까요.”
걱정하지 말라는 유시후의 말에 그제야 ‘아, 그래?’라는 듯 다행이라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 시하루가 망설일 때는 언제고 동문 기둥에 서 있는 유시후를 지나쳐 안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그제야 왜 자신이 이 남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할 생각을 했나 하고 후회가 된 유시후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뒤를 가만히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 편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딱히 전하의 편을 드는 건 아닙니다. 이랑 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도 계속 모르고 있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착각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의외로 받아드리는 속도가 빨라진 시하루는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너도 남자잖아. 그럼 날 도와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대답하기 싫다는 듯 건성으로 답하며 뒤따르고 있던 유시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시하루를 따라 제자리에 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안 들어가시려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역시 오늘은 안 되겠다. 일단 아직 모른다는 걸 알았으니 됐어.”
기껏 다 와 놓고는 그냥 돌아가겠다 말하고 있는 시하루 때문에 자신만 이게 무슨 고생하는 거냐는 듯 한숨을 내쉬던 유시후가 아무 말 않고 있다가 다시 동문을 향하는 시하루의 걸음에 맞추어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도와드리겠습니다. 단 전하의 정체를 이랑 님께 숨기는 것까지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것만으로도 얼마야.”
너한테는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말하고 있는 시하루의 반응으로 보아 이미 그는 어느 정도 유시후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이 끝난 듯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그동안은 ‘꽃따리 오빠’라는 좋은 오라버니로 계셔주셨으면 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얼마 남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는 시하루와 설마 모르고 있었냐는 유시후. 완벽하게 다른 이 두 반응이 충돌해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대비마마께 전부 들으신 거 아니셨나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듣다니 뭘.”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기한’이요. 이랑님이 이 궁에 들어올 때 대비마마님께 약속받은 기한에 관한 이야기요.”
시하루는 지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했고 그의 얼굴에서 진심으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유시후 역시 놀라 두 눈이 잠시 커지더니 곧 한심하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동문의 문턱을 넘는 시하루를 향해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럼 언제까지고 이랑 님이 이곳에 계실 줄 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