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花 * 개화(開花) (3)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처소를 옮기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랑이 머무는 곳인 희수궁의 정문.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건 넓어도 너무 넓잖아!”
어디로,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 정체불명의 7살 정도로 추정되는 작은 여자아이가 명랑하게 미소 지으며 희수궁의 정문을 당당히 지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지만! 이 정도로 굴복할 수아가 아니랍니다~.”
물론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많은 병사가 있었지만, 너무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그 아이를 막을 수가 없었더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떻게……. 사람을 부를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지만 저리도 당당히 들어오는 걸 보면 왕후 마마의 지인 분이실지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요. 저런 어린 나이의 자녀분을 둔 대신이 어디 계시다고……. 대부분 다 나이가 지긋…….”
최근 궐 안의 화젯거리였던 시하루와 소이랑의 러브스토리로 잔뜩 신이 나 있던 궁인들이었지만 요즘 들어 기운 없어 보이는 듯 늘 우울해 보이는 시하루의 태도와 그가 희수궁으로 찾아가지 않은 지 어느새 4일이 지나가고 있었다는 시점에서 그들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 작은 아이의 희수궁 방문은 또 하나의 화젯거리의 시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기……. 꼬마 아가씨?”
그래도 명색의 희수궁인데 함부로 아무나 들였다가 자칫 왕후님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목이 날아가는 건 자신들이었으니…….
우물쭈물거리며 서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커다란 궁궐 풍경에 신이 난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던 여자아이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곳은 함부로 들어오는 데가 아니…….”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희수궁의 호위를 맡고 있는 자로서 나름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인상을 쓰며 물었는데, 겁을 먹기는커녕, 아이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잘됐네요. 죄송한데 제가 지금 길을 잃은 거 같아서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아…….”
오히려 당황하는 건 병사 쪽이었다.
그 눈앞의 작은 아이 앞에서 꼼짝을 못 하고 있던 병사와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던 아이의 대화를 도중에 끊게 하는 이의 목소리가 희수궁의 정문에 울려 퍼졌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여기 있었네. 안 그래도 마중 나가려고 했는데.”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순수한 눈을 바라보며 움찔거리고 있던 병사 한 명이 누군가의 등장으로 다시 빳빳하게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면서까지 과도하게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유시후 님.”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던 궁인들이 그 작은 아이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타이밍에 찾아와준 구세주의 등장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지만, 왠지 그 구세주인 인물은 지친 듯 피곤해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동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어떻게 들어온 거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에헴. 제가 좀 그런 면에서는 탁월하달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큰일 났네. 점점 이랑 님을 닮아가는 거 같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정말요?”
절대 칭찬이 아닌데 자신의 ‘침입’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듯 으스대며 말하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던 유시후가 피식 웃더니 그녀를 붙잡고 있던 병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 아이는 이랑 님의 손님이니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예, 예!”
이런 작은 꼬마가 왕후님의 지인이라니.
주변에서 웅성거리던 궁인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하고는 다시 자신들의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여기 너무 넓은 거 아니에요? 영희궁 정도가 딱 좋았는데 말이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그러네.”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는 유시후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쓸데없이 크기만 크면 뭐해요, 실속이 없는데. 공간낭비라는 생각은 안 드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자꾸 너랑 이랑 님은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니. 내가 설계했니.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냥 너무 넓다고요. 길 찾기가 힘들잖아요. 뭐야, 또 이랑 님이랑 한 판 하셨구나~.”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눈치 백 단이라니까. 이래서 여자들이 무섭다는 거였어.”
전에 이랑이 머물던 영희궁은 작아서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번에 옮겼다는 희수궁은 너무도 넓어 도저히 이랑이 있는 곳까지 찾아갈 수가 없어 헤매고 있었다고 투덜거린 수아라는 아이는 다행히도 유시후의 안내 덕에 그녀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찾아올 수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미안. 수아야. 요즘 내가 처소 옮기느니 뭐로 바빠서……. 그나저나 진짜 오랜만이네~.”
자신을 보기 무섭게 누군지 알아차리고 반갑다는 듯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 이랑의 열렬한 환영에 길을 헤매느라 쌓였던 짜증들이 훨훨 날아간 건지 이랑을 따라 실실 웃기 시작하는 수아의 모습에 유시후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정말 오랜만이에요. 이랑 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이랑의 맞은편 자리에 앉던 수아가 그때까지도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꾸러미를 투덜거리며 푸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이 요즘 통 연락이 없으셔서 일이 밀렸다고요.”
수아가 꽁꽁 묶어두었던 매듭만을 느슨하게 풀고는 그 꾸러미를 통째로 탁자의 중앙쯤에 놓으니 이랑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 꾸러미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 하나를 꺼내 보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와. 진짜 엄청나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화당(書話堂)이 마비될 지경이었다고요.”
앞에서 계속해서 투덜거리던 수아를 바라보며 한 번 웃어주고는 꾸러미를 뒤집어 안에 들려 있는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종이들이 몇 장인지 세기 시작하는 이랑을 바라보던 유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미안. 미안.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쓸게.”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시후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한 번 노려봐주던 이랑이 다시 하나……둘……하며 종이의 수를 계속해서 세기 시작했다.
곧 다 센 건지 어느새 보따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종이들이 이랑의 손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묶여 있었고, 그들 중에 가장 맨 위에 놓여 있는 종이를 빼든 그녀가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펼쳐 종이에 적힌 글들을 소리 내어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서화당의 ‘유아’ 님께. 저는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이 낮아 감히 혼사 이야기를 집안에 꺼낼 용기가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우와~ 이거 대박이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머, 멋져요!”
감동한 듯한 눈빛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편지를 끝까지 읽어 내린 이랑이 미소를 지으며 유시후가 옆에 갖다 준 붓을 들더니 뭐라 뭐라 아래쪽에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잠시 뒤 작업이 다 끝났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라고 쓰셨어요?”
이랑이 글을 쓰는 동안 책을 읽고 있던 유시후가 궁금하다는 듯 물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만족스럽게 웃으며 펼쳤던 편지를 다시 봉투 속에 집어넣은 이랑이 완벽하게 입구를 봉해 유시후에게 넘겨주자 귀찮다는 듯 편지를 받아들은 그가 [完] 자가 새겨진 도장을 가져와 봉투 위에 찍어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진정한 사랑이라 확신이 들면 밀고 나가라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이랑의 대답에 유시후가 피식 웃더니 아직도 산더미인 종이의 산으로 시선을 옮기며 다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나 참. 과연 이 편지를 보내는 이들은 그들의 고민 해결사인 ‘유아’라는 존재가 이 나라 왕후이자, 나이 한참 어린 18살짜리 꼬마라는 걸 알고 있을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모르겠지, 아마?”
‘꼬마’라는 말에 이랑이 살짝 움찔거렸지만,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는 편지들이 있었으니 일일이 반응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한 장을 꺼내 읽어보고 있던 이랑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열심히 붓을 움직이자, 가만히 있기도 심심했던 건지 유시후가 읽으려고 펼쳐뒀던 책을 덮고는 이랑이 앞에 쌓아놓은 종이 뭉치 중 하나를 집어 펼쳐 보다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거의 사랑 고민이네요. 이랑 님 정서발달에 좋지 않을 거 같은데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 정서발달?”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이랑이 유시후의 손에 들린 편지 빼앗아와 자신의 앞에 놓고, 이제 막 답 글을 단 편지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또다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유시후가 [完] 도장을 찍어 따로 모아두자, 하나둘 답글을 단 편지들을 가지런히 다시 보따리 속으로 정리를 하며 넣고 있는 수아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벌써 3년이 넘어가네요. 이랑 님이 ‘서화당(書話堂)’을 만드신 지…….”
열심히 도장을 찍어 넘기고 있던 유시후가 추억을 떠올리듯 갑자기 과거 회상 모드로 돌입을 하며 이랑에게 말을 걸자, 이랑 역시 시간 참 빨리 흘러간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이랑이 벌인 일들의 뒤처리에 힘들 법도 한 유시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녀를 초반부터 말리지 않는 건 이러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가다 늘 새로운 시도와 특이한 발상으로 그녀가 벌이는 일들에 유시후 본인도 놀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서화당(書話堂)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랑이 12살 때, 궐 밖 장터에 만든 곳으로 얼핏 보면 그냥 주위의 다른 가게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서화당에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파는 물건이 없었고, 종업원의 자리로만 판단되는 자리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인 그런 장소였다.
‘고민을 사는 가게.’
사람들에게는 뭔가 고민이 있거나 남에게 말 못 하는 어떤 이야기.
그것을 털어놓고 같이 고민해줄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이랑이 마련한 곳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이 가게의 주인으로 알려진 ‘서화당의 유아’ 앞으로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를 보낸다.
이곳의 어린 종업원인 수아가 어느 정도 모인 편지들을 이랑에게 전달해주고, 이랑은 그 편지들에 답을 한 뒤 다시 서화당으로 보내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의 특이한 가게.
‘서화당의 유아’는 이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현재는 엄청나게 유명해져, 심지어 궁 안의 궁녀끼리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누구도 유아의 정체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흐음……. 요즘 나라 경제가 문제인가 봐. 세금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의 고민 편지가 더 늘어났어. 서화당은 괜찮아?”
이랑이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수아에게 묻자, 아이가 똑소리 나게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올해 초에 가뭄이 와서 곡식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적어서 그런 거 같아요. 아, 서화당은 이랑 님께서 봐주신 덕분에 운영상 문제는 없어요.”
일종의 1:1 우체국과 같은 곳인 서화당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데다가 종이조차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듣고 싶다는 이랑의 뜻에 따라 종이와 붓, 먹을 가게 내부에 비치했다.
자기보다 어린 꼬맹이 둘이 마주앉아 나라에 대해 걱정을 하며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흐뭇하면서도 약간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던 유시후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도장을 들어 올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평소에도 저렇게 똑 부러지시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의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고, 불과 2시간 정도 만에 엄청난 속도로 편지들에 답을 단 이랑 덕분에 수아는 해가 지기도 전에 그 답글이 달린 편지들을 들고 희수궁을 나서게 되었다.
문제는 수아가 돌아가고 난 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 살살 좀 하세요. 막 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또다시 유시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수아가 돌아가기 무섭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철이 들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랑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유시후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에 그녀를 잠시만이라도 얌전히 있게 만들기 위해 그는 팽이를 꺼내다 갖다 놔준 것.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내 것만 안 돌아가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좀 잘 해보세요.”
하지만 요령껏 팽이를 치고 있는 다른 궁인들과 달리 이랑은 그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팽이를 계속해서 치고만 있는 꼴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거 꽤 어렵다고.”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게 할 거라는 의지를 보이던 그녀가 주위에서 재미있다는 듯 하하 호호 웃으며 궁인들의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팽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자신의 돌 생각이 없는 팽이로 시선을 옮겨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물론 그 집중력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팽이로도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기는 실패인 거 같았다.
한숨을 내쉬며 흥미가 없어져 버린 이랑이 던져놓은 팽이들을 회수하고 있던 유시후가 이랑의 방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조그마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어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이랑 님. 이건 무슨 상자에요?”
방 안을 굴러다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자를 발견하고는 일단은 확인해 두기 위해 물어봤던 건데, 바닥에 엎드려 팽이에게 배신당해 울상이던 이랑이 갑자기 표정이 활짝 펴지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그의 손안에 들려 있는 상자를 채어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가 준 중앙 서재 출입증!”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중앙’ 서재 출입증이요?”
거슬리는 단어를 들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유시후였다.
평소의 이랑이라면 그 목소리에서 느껴져 오는 ‘불편함’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아무 상자 안에 넣어놓고 잊고 있던 그 물건을 지금 이 상황에서 보니 예상치 못한 반가움에 지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책이다! 책이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잠깐만요, 이랑 님! 저도 같이 갈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이 옆인데 괜찮아.”
심심함을 달래줄 책의 등장에 금세 흥분해서 밖으로 나가려는 이랑을 붙잡은 유시후가 그래도 걱정이 되니 자신도 함께 따르겠다, 말했지만, 오히려 방해된다는 듯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는 이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그럼 저녁 시간 전까지는 돌아오셔야 해요. 아셨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 말라니까. 가끔 보면 유시후는 너무 과잉보호야.”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방을 나서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시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배웅을 마친 유시후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도대체……. 전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 건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날짜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때까지 조용히 지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뭐, 전하께서 이제 와서 이랑 님을 마음에 두었다고 해도 걱정은 없겠지만요.”
궁녀의 말에 역시 곁에서 정리를 돕던 또 다른 궁녀가 정색하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히려 그편이 더 안 좋은 일이 되겠죠. 그분의 집착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니 우리가 더욱더 조심해야겠죠.”
유시후의 말에 곁에서 정리를 돕고 있던 궁인들이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아……. 이랑 님이 ‘꽃따리 오빠’라 부르는 사람이 사실은 전하라는 걸 알게 된다면 꽤 충격받으시겠죠?”
불안하다는 듯한 궁녀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시후를 바라보며 묻자 그 역시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니 출궁 날까지는 이랑 님께서 절대 전하의 정체를 알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자신들의 왕후님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또한,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반대로 이랑 님이 시하루 님에게 마음을 여는 일 역시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이제 조금, 아주 조금만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없으면 모종의 사건에 휘말릴 것만 같은 걱정스러운 존재를 떠올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는 그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딱 십 년. 십 년이 약속한 기간이었습니다. 더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무관 일을 계속 할 생각은 없다고요.”
유시후의 투정 같은 말에 재미있다는 듯 웃던 궁녀들이 저마다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 같은 것들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궁녀들은 화려한 장신구 등의 착용할 수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방에 있던 궁녀들은 팔에 얇은 팔찌들을 차고 있었다. 저마다 색을 달랐어도 그 팔찌에 새겨져 있는 [花]라는 문장은 모두가 같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희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믿음직스러운 그녀들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던 유시후가 다시 어질러진 방 청소에 집중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그 왕도 이상하지.’
이미 왕에게는 마음을 준 여인이 있다는 것. 그래서 24살인 지금까지도 정식으로 왕후로 인정한 여인이 없다는 것.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 그가 왜 ‘꽃따리 오빠’라는 우스꽝스러운 별호까지 들어가면서 이랑의 곁을 맴도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유시후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이제 와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고 보니……. 괜찮을까요?”
계속 궁시렁거리며 방 정리를 돕고 있던 유시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어느 궁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란 듯한 그의 표정에 뭔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궁녀 한 명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님께서 전하께 받았다는 왕궁의 중앙 서재 출입증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재 출입증이 왜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중앙 서재’라면, 본궁에 있는 시하루 님의 개인 서재잖아요. 거기서 두 분이 만나게 되면…….”
이랑이 하나도 벅찬데 이제는 하나를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에 유시후는 지금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은 심정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젠……장! 그 왕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면 좀 지능적으로 움직이던가! 왜 내가 이제는 왕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 건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 유시후 님. 일단 진정하세요. 이랑 님의 걸음이라면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지금 쫓아가시면 따라잡으실 수…….”
잔뜩 흥분한 유시후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궁인들이 나름대로 위로의 한마디씩을 하려 했지만, 짜증이 난다는 표정의 유시후가 재빠른 속도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버리는 바람에 그들의 위로는 전달되지 못했다.
한편, 문제의 그 본궁의 중앙 서재.
서재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병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굳게 닫힌 서재의 문을 연신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닫혀 있는 그 문이 또, 언제 벌컥 열리며 난리를 피울지 몰랐으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요, 요즘 시하루 님 상태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말이야……. 한층 더 날카로워지신 거 같달까……. 요즘 들어 매일같이 서재에만 박혀 계시고 말이야.”
변덕스러운 자신의 주군의 성격 덕분에 피곤한 건 그를 모시는 이들이었다.
어제는 또 어땠는가, 갑자기 조용하다 싶던 서재 안이 시끄러워져 놀라 들어가니 난장판이 되어 있지를 않나, 주군께서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시는 건지 그 화를 죄 없는 책들에게 내고 있는 듯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언제쯤이면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심지어 오늘 야근이라고.”
덕분에 밤새 서재를 정리하랴, 책을 정리하랴. 잠을 한숨도 못 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제발. 오늘은 얌전히 책만 읽다가 돌아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아직은 별다른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상태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는 그들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은 아직 잠잠하네. 다행이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 난 그래서 오히려…….”
그래, 물론 그 서재를 향해 신 나게 달려오고 있는 어느 존재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있는 채로 말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불안한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