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7화 (7/44)

七花 * 개화(開花) (2)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희수궁(姬秀宮)의 문이 열리다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왕후라니요! 그 누구도 신경 안 썼던 애가 불쑥 밖으로 나온 것도 모자라, 희수궁을 차지하게 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잔뜩 약이 오른 목소리가 밖까지 들려오는 게, 문밖에 서 있던 궁인들은 벌써 불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은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운 거 같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말이에요.”

그들도 잘 알고 있듯이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들의 성격은 하나같이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인간들이었으니까.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커다란 궁의 문패에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일 정도 크기의 글씨로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 희안궁(姬安宮)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말이 안 됩니다. 이건!”

날카로운 눈매의 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외치니, 그녀의 붉은 비단옷에 주렁주렁 달린 화려한 장신구들이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던 여인들이 하나둘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월향의 말이 맞습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렇습니다.”

그 여인을 중심으로 대충 10명 정도 되는 여인들이 둥근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디서 온 지도 모를 저런 조그마한 계집애가 희수궁을 차지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들.

희안궁에서 살아남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궁 안의 장소는 제한이 있는데 당연하다는 듯 계속해서 들어오는 귀족들의 여식들 때문에 희안궁의 여인들은 자신들이 있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툭하면 서로를 헐뜯고 욕하고 모함을 해 한 명 한 명 그 수를 줄여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까지 마음이 하나로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그녀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자신들끼리 그렇게 싸우고 있을 때, 예상치도 못한 이가 희수궁을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이제 와서 전하의 눈에 들 줄이야……. 우리도 이렇게 몇 년째 이리 무시당하고 있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건방집니다. 태생조차 모르는 아이가 감히!”

여인들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붉은 옷의 여인의 입가에는 더욱더 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적어도 그 자리는 우리 중 누군가가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맞아요. 우리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 자리에 어울린단 말입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당장 그 아이를 끌어내려야 합니다.”

방안에서 서로 자리 잡고 앉아 눈치를 보고 있던 10명 정도 여인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위처럼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여인들. 둘째, 우물쭈물거리며,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마지막, 이래저래 상관없다는 듯한 방관 스타일의 여인들.

점점 이야기가 험악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세 가지의 유형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여인들이 눈치를 보다 나름의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 하지만 그 아이에게 섣불리 손을 대었다가는 우리 목이 날아갈 것입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그 말에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던 여인들이 조금은 진정을 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역시 맞는 말입니다. 지금 전하가 문제가 아니에요. 전하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그 아이의 뒤에 있지 않습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애당초 그 아이를 영희궁 안에 데려다 놓은 게…….”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여인들의 머릿속에 어떤 인물이 떠올리기 무섭게 그 재잘거리던 입들이 닫혔다.

이 모든 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누군가의 계획대로라 생각하니 그 대상에 대한 공포심이 더욱 증폭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설마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예상하시고 계셨던 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럴 리가요. 그 아이를 들인 건 십 년 전의 일입니다.”

누군가의 발언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인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버럭 외쳤지만 이미 분위기는 더욱더 무거워져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지만 만일 이 모든 게 그분의 예상대로라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역시……. 무서운 분이십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틈만 나면 우리를 내쫓으려고 하는 사람이니까요. 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쨌든,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 일단은 더 두고 봅시다.”

늘 시끌벅적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던 희안궁이 조용해졌다는 소식은 이미 궁 안에 널리 퍼진 지 오래였다.

적지 않은 소음공해로 궁 안에서 꽤 민폐를 끼치고 있던 궁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궁인 대부분은 그 잠잠함이 걱정된다는 듯 마음을 졸이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소망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차라리 시하루 님께서 이랑 님께 홀딱 빠져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말이에요.”

최근에 시하루와 소이랑. 그들의 사랑을 남몰래 멀리서 응원하는 모임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궁 안에 널리 퍼진 상태였고, 그 모임에 가입한 궁인들의 수는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며, 만나기만 하면 늘 펼쳐지는 대화의 주제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도 간다는데, 이 나라 주인인 시하루의 귀에까지 들어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를 대하는 시하루의 반응 역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남들 입에서 본인 이야기가 거론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만큼은 그냥 웃으며 말하기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버려 둬라.’

그 의외의 반응이 시하루의 측근 이안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오자, 궁인들의 입은 더욱더 바빠져 그들에 대한 소문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게 되었다.

그저 단순한 ‘무관심’은 사실 몸이 약하신 어린 왕후님을 너무도 사랑한 전하께서 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간섭이 적은 영희궁으로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고,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미화되는가 하면, 사실 이번에 희수궁으로 왕후님이 돌아오시는 이유는 왕후께서 회임하셨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소문까지도 돌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웃기시네.”

이러한 상황을 나름 즐기고 있는 시하루를 포함해 이미 궁 안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그 이야기들이 아직 통과하지 못한 구역이 있었으니, 바로 본궁에서 가장 가까운 희수궁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요즘 들어 주위 시선이 뜨거운 거 같은데. 이상하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물론 이랑의 곁에 있는 궁인들은 모두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희수궁을 지키고 있는 성질 못된 호랑이에 막혀 그 어떠한 이야기도 이랑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형체가 없는 소문이라 해도 유시후의 방어는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은 늘 순식간에 흘러간다.

영희궁 식구들과 함께 희수궁으로 이사한 지 어느새 닷새나 지나버렸다.

확실히 왕후가 머무는 궁이어서 그런지 조경이라던가, 궁 안의 내부 시설들은 영희궁보다 신식이었다. 거기에 영희궁에서는 적은 수의 궁인들을 도와 종종 일손을 거드는 것으로 심심할 틈이 적었는데 이곳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뭘 하려고 하면 자기들끼리 눈 깜짝할 새에 일을 끝내버려 정말 할 게 없었다.

희수궁으로 이사한 지난 닷새 동안은 그냥 죽은 듯 누워서 보낸 이랑이었다. 책들도 거의 다 읽어버려서 더 이상 그녀의 흥미를 붙잡아 놓을 만한 책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왕이 머무는 본궁과 가장 가깝다던 희수궁에 왔으니 그 잘난 왕의 얼굴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이랑이었지만 그런 일 역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건 개인적으로 이랑의 생각이었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건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어떻게 한 번을 안 마주치지? 애당초, 나를 희수궁으로 부른 거 자체가 이해되지 않아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게. 그 왕 진짜 이상하네. 아, 이것도 먹어. 누가 그러던데 기분 안 좋을 때는 단 게 최고라더라.”

이제는 자기 자신 험담도 잘하는 시하루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에 비해 오빠는 완전 멋져요. 완벽해요!”

그녀가 그렇게 만나기 소망하는 그 잘난 왕이 사실은 매일 쓸데없는 이유로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랑이었으니, 그저 저 멀리 떨어져서 그런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유시후만 답답한 상황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때? 여기 넓고 좋지?”

지금까지 실컷 이 크기만 크고 전혀 재밌지 않은 희수궁에 대한 단점만을 요목조목 설명한 이랑이었지만 그동안의 말은 다 어디로 흘러 들은 건지, 좋지 않으냐고 웃으며 물어오는 시하루가 사악하게 보이기 시작한 이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건 네가 작아서 그런 거야.”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다며 아까부터 계속 그녀의 인식을 바꿔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시하루였지만, 이랑의 마음은 흔들릴 생각은 않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네.”

사실 막상 자신 혼자 들떠 일을 벌여놓았는데, 정작 희수궁에서 행복한 얼굴로 방긋방긋 웃을 줄 알았던 이랑은 오히려 영희궁에 있었을 때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던 그였기에 조금이라도 그녀가 편할 수 있게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여긴 너무 심심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원래 삶이라는 게 그런 거더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따리 오빠 몇 살인데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나? 24살.”

이름을 물었을 때는 대답을 듣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의외로 나이에 있어서는 금방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우와. 20대 초반이 지나가는 나이라면 피부의 노화도 슬슬 시작될 때인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쓸데없는 거에 신경을 쓰는 녀석이군. 그리고 그 손 치워라.”

베실베실 웃으며 지금이라도 당장 얼굴을 꼬집기라도 할 듯한 이랑의 움직임을 예측한 시하루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심심해도 너무 심심한걸.”

어찌 보면 왕후로서 매우 성실해 보이지 않는 발언 같기는 했지만, 이랑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넓고 좋은 건물이라 해도 그건 상관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환경과 편안한 마음이었으니까.

‘난 희수궁이 좋지 않다.’란 의미가 담긴 말을 연신 중얼거리던 이랑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시하루의 상태를 살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혹시라도 전하께서 제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매우 불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주세요.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적응 못 하고 있다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해주기야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게 전한다고 해서 널 다시 영희궁으로 돌려보낼 왕은 아닌 거 같은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럼 어떻게 하면 절 다시 영희궁으로 돌아가게 해줄까요? 같이 고민해봐요. 뭐 좋은 방법 같은 거 없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가 그걸 어찌 알아.”

그녀가 시하루를 붙잡고 ‘싫다.’와 ‘심심하다.’ 따위의 단어들을 계속해서 말한 건, 그가 왕의 호위를 맡는 군사라고 알고 있는 이랑으로서, 이곳에서의 자신의 생활이 불행해 보이면 분명 그가 왕에게 돌아가 보고할 때 그리 전할 것이고 그리되면 왕이 다시 영희궁으로 돌려보내 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 아예 없는 이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상황. 이랑은 스스로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아.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이거 너에게 전해달라고 하셨어.”

‘그러고 보니’라는 말로 어색하게 화재 전환을 시도한 시하루는 일단 계속 해서 심심하다는 말을 읊어대는 이랑을 잠시 동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아무거나 좋으니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 있기를 바라며 자신의 앞주머니며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무심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한 손에 충분히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 옥으로 된 패에는 섬세한 문양과 함께 글씨까지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패?”

옅은 색의 매끄럽고 반듯한 옥 위에 조각되어 있는 걸 보니 분명 뛰어난 장인의 솜씨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옥 위에 새겨진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던 이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서재 출입증(書齋 出入證)?”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궁 안에서 가장 큰 중앙 서재의 출입증이야. 그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장소이기도 해. 네가 심심해하지 말라고 이렇게 챙겨주셨어.”

책이라는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져, 바로 표정에 미소로 드러나는 이랑을 보며 덩달아 흐뭇해지는 시하루였지만 곧 다시 인상을 찌푸리는 이랑에 의해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해를 못 하겠어. 도대체 나랑 뭐하자는 걸까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뭐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날 싫어하는 게 분명한데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불만 가득한 이랑의 차를 마시고 있던 시하루가 움찔거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럴 리가 없어. 내가 예뻐 죽겠으면 그동안 나 몰라라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러겠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는 듯 정색을 하는 시하루와 자신의 말이 옳다는 듯 완강한 표정으로 탁자를 손으로 탕탕 치기까지 하며 강력하게 부정하는 이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유가 있었겠지. 예를 들면……너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던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말도 안 돼.”

고개를 저으며 시하루의 말 따위 사실일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이랑의 태도에 잠시 아무 말 없이 고민에 빠진 듯 보이던 그가 이랑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쩌면 말이 될걸. 내가 그 왕이랑 친해서 잘 아는데, 최근까지도 자기가 미혼인 줄 알았으니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미혼? 희안궁에 후궁이 그렇게 줄줄이 있으면서도?”

‘희안궁’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기분 나쁜 걸 들었다는 듯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는 시하루였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지?’라는 듯 난감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희안궁은 후궁들의 처소가 아니야. 귀족들이 공석으로 있는 왕후의 자리를 노리고 여식들을 계속해서 희안궁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지. 하지만 이 나라 왕은 아직 결혼 같은 거 할 생각이 없거든. 그러다 보니 왕도 이제는 아예 신경을 쓰지도 말자. 라는 주의로 바뀌어 버린 거야. 희안궁에 누가 있는지, 몇 명이 있는지조차 몰라.”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나.

최대한 이 나라 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얻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얌전히 앉아 꽃따리 오빠의 말을 경청 중이던 이랑이 방금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귀족들의 간섭이 그렇게 싫다면 빨리 혼인을 하면 되잖아요. 물론 나랑은 말고.……왜 결혼을 안 한대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이랑이 화풀이인 것인지 탁자 위에 놓인 다과들을 쓸어다가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시하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떤 여인을 아직도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 작은 목소리를 용케 들은 이랑이었다.

다만 그 목소리에서 어렴풋이 느껴져 오는 ‘슬픔’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떤 여인? 전하께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잘됐네. 그럼 그 여자랑 혼인하면 되잖아요.”

일이 해결되었다는 듯 밝게 말하는 이랑이었지만 전혀 밝지 않은 분위기였다.

아까와는 다른 눈에 보이지 않은 무거운 공기가 둘 사이를 맴돌고 있었고, 대충 그러한 분위기를 읽은 이랑은 ‘차라리 묻지 말걸’이라며 후회가 되었다.

이랑과 시선을 맞추지 않고 옆을 돌아보고 있던 시하루의 열릴 생각을 않던 무거운 입이 서서히 열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죽었어. 이제 못 만난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아직은 다른 여자를 사랑할 자신이 없대.”

……전에도 말했듯, 긴 시간 동안 남아도는 시간을 사용할 곳은 '공부'가 거의 전부였기에 그녀는 꽤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많은 접촉을 해 본 적이 없어 실전은 적어도 여러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을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이는 이랑이었다. 아니,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녀는 자신이 눈앞에 상처받은 듯 보이는 남자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그러니까…….”

이랑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를 챈 건지 우울해 보이던 시하루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분위기 완전 무겁네. 어쨌든! 그런 전하가 계속 비워뒀던 이 궁을 너한테 내어 주신 거야. 그러니까 만천하에 자랑한다거나 좀 좋아해 봐.”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째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했는데,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왕은 아직은 다른 이를 마음에 담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그 왕은 자신을 희수궁으로 부른 걸까?

이랑의 질문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시하루가 이만 돌아갈 시간이 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다, 덩달아 기분이 우울해진 듯 보이는 이랑의 표정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글쎄……. 네가 그녀와 어딘가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시하루의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랑이 방금 전까지 표정에서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슬퍼했던 감정은 어디다 치워버린 건지, 갑자기 씨익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나 같은 절세미녀가 이 세상에 또 있었구나.”

분위기 전환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말이 제대로 먹혔는지 이 무거운 이야기가 나온 뒤로부터는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시하루가 큰 소리로 웃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실실거리며 따라 웃는 이랑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만 가봐야겠네. 무슨 일 있으면 불러. 본궁 근처니까. 바로 달려올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신경 써야 할 대상이 틀렸잖아요. 일은 제대로 해야지요. 그거 근무태만이에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하지 마. 난 유능하니까. 인심 썼다. 특별히 너도 지켜줄게.”

이랑의 배웅을 받으며 희수궁의 문을 나서는 시하루였다.

곧 문을 나서기 무섭게 뒤를 돌아 문 너머로 들여다본 희수궁의 정원에는 벌써 들어갔는지 이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착잡한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희수궁에 걸려 있는 현판(懸板)을 올려다보는 시하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글쎄……. 정말 왜일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시하루 님.”

그가 희수궁에서 나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문이 닫히기 무섭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안이 그에게 다가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알아보라는 건.”

돌아보지도 않고 앞장서 본궁으로 걸음을 옮기던 시하루가 잊고 있었다는 듯 손을 내밀며 말하자, 그의 말에 이안이 들고 있던 종이 한 장을 말없이 건네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조사하느라 힘 좀 들었습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엄살은.”

그것을 받은 시하루는 재빨리 내용을 훑어 내리더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는 듯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역시……. ‘그 사람’이 개입되어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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