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1화 (1/44)

一花 * 서장(序章)

천유국 신후왕 43년.

다음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늘 불안하던 시기에 첫째 왕자의 탄생을 시작으로 이어서 2년 동안 배다른 왕자들이 태어나는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경사와 함께 찾아온 전쟁.

이미 오래전부터 어떠한 일에 있어서든 ‘평등’을 추구해온 천유국이었기에 왕실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고, 그렇기에 그들이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후계자 선택에 관련된 문제였다.

왕후의 자식이건, 후궁의 자식이건 상관이 없었으며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순서도 상관없었다. 후계자 선택에서 보는 건 딱 하나.

그것은 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이에 각 왕자들의 모(母)끼리의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많은 음모가 오가는 가운데 각 왕자의 교육관을 뽑는 시험에 당당히 여인이 통과하는 전에 없던 일이 일어났고, 그 여인은 셋째 왕자를 선택했다.

남녀평등이라지만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단어인데다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자들 수 역시 적지 않았기에 교육관으로 뽑힌 그 여성을 좋게 보는 이들의 수는 적었다.

모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셋째 왕자와 그의 교육관이 여자라는 점에서 이미 모든 이들의 외면을 샀지만, 여인만은 꿋꿋하게 셋째 왕자의 곁에 머물며 열심히 그를 보필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놀랍게도 왕의 축복을 받으며 왕위에 오른 것은 첫 번째로 태어난 첫째 왕자도 아니었고, 왕후의 자식인 둘째 왕자도 아닌, 셋째 왕자였다.

그는 여인의 공로를 인정하여 상을 내렸으며, 그 뒤 여인이 차지하는 사회적인 위치는 상승했다.

왕위에 오른 왕자는 그 여인의 이름을 따 ‘서하연(曙荷娟)’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었고, 나라 안의 평민 중의 3할. 그리고 나머지는 상인이나 귀족 가의 여식들이 그 기관에 들어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서하연 특유의 높은 학습수준에 모든 왕족이든 귀족이든 할 거 없이 여식이 태어나면 ‘서하연’을 다니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그곳을 졸업한 여인들은 아무리 신분이 평민이라 해도 귀족 가(家)에서 서로 데려가려 안달이었다.

‘서하연’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도 매년 일어나는 행사 중 하나라 할 정도로 규모가 컸고, 그곳의 교육관들은 모두 3위안으로 급제하여 졸업한 자들만을 뽑는 등의 규칙 때문에 서하연의 학생들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아주 치열한 경쟁 속에 핀 꽃이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그녀들을 ‘서하연의 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천유국 신율왕 10년.

셋째 왕자가 왕위에 오른 지 10년이 되던 해. 그때까지도 자신의 교육관이자 사랑하게 된 아름다운 ‘서하연’과 모두의 축복 속에 혼인하게 된다.

왕후의 자리에 오른 서하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기관 서하연의 ‘독립’이었으니, 서하연의 전통성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아무리 이 나라의 왕이라 해도 멋대로 서하연의 규칙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제정한다.

그로부터 백 년하고도 수십 년이 흐른 천유국 제율왕 34년.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하던 천유국을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

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데다, 천유국의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명문 소월 가(家)의 가주(家主) 소유란과 그의 부인인 윤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이 있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원래 건강이 좋지 않던 제율왕 역시 세상을 뜨게 되고 그의 어린 아들인 ‘시하루’가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연이은 이들의 죽음에 슬퍼하던 백성들의 눈물이 어느 정도 마르고 진정이 될 즈음. 서하연의 내부에서는 어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서하연의 꽃 그 누구도 본 적은 없지만, 서하연 역사상 최연소. 6살의 나이에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그 서하연에 발을 들인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

이 이야기의 시작은. 시하루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이 지난 어느 추운 겨울날부터 시작된다.

여느 겨울과 달리 그해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온 추위 때문인지 어둠이 깔린 저잣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차가울 정도로 시린 달빛 아래, 빠른 그림자 하나가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어둠 속에 묻어 아주 조심히 움직이고 있던 그 그림자는 곧 어느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이상하게도 그 큰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이들은 보이지 않고 있었고, 오직 검은 복장의 한 남자만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남자의 등장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그들이 들고 있던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그들이었다.

“밖을 지키는 병사들은…….”

“손을 써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분’께서 이미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간이 없다는 재촉에 잠시 숨을 돌리던 이들이 방금 내려놓았던 가마를 다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그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어놓았다.

어떻게 된 건지 커다란 내부 역시 밖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너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그 이상하다는 느낌은 어느 커다란 궁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이번에는 기품 있는 목소리와 함께 어느 중년의 여인이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가마를 들고 있던 이들이 최종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듯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오는 길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예. 다행히 저잣거리가 조용해 아마 본 사람이 있다 해도 적을 겁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최대한 눈들을 피해야 하는 문제니 말입니다.”

작은 가마를 향해 다가가던 여인이 앞으로 나 있는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안을 살피더니 곧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가. 이제 그만 나와도 좋습니다.”

“…….”

“밖에는 아주 어여쁜 달이 떠 있답니다.”

그녀의 말에 조용했던 가마 안에서 부딪히는 듯한 쿵쿵거리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오더니 곧 작은 여자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이 아가씨가 바로 ‘그’ 아가씨군요.”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놀란 듯 보이는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옆에서 있던 중년의 여인이 손을 잡아주자 그제야 방긋 웃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바라보던 남자가 약간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여인을 향해 물었다.

“너무 어리지 않나요?”

“할 수 없죠.”

수 없이 오가는 어른들의 대화 속에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는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넓고 웅장한 궐 안 풍경에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른 거 같은데……. 조금 더 나중으로 미루는 게…….”

“눈앞의 일보다는 적어도 한 10년 후를 내다봐야죠.”

자신을 두고 하는 대화였지만 아직은 아이가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했다.

“10년 후면 아주 훌륭한 여인이 되어있을 겁니다. 내 장담하지요.”

“과연 말씀대로, 눈빛이 예사롭지 않군요. 이거 앞날이 기대되는데요? 여러 가지로.”

인자해 보이는 어느 남자의 말에 중년의 여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후훗.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잠시 어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을 마중 나온 궁녀들에 의해 그 큰 궐 안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신의 주인을 태우고 궐 안으로 들어왔던 가마는 속을 텅텅 비운 채, 다시는 궐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 가마의 주인인 당시 8살의 소이랑이 그날이 바로 자신의 결혼식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이란 사람이 바로 12살의 나이에 이 나라 ‘천유국’의 왕의 자리에 앉은 남자라는 걸 알게 되는 건 그것보다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는. 그녀가 궁에 들어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의 이야기이다.

*

봄이 왔음을 알리려는 듯 꽃향기가 가득 담긴 바람이 정원 안을 가득 맴돌고 있었다.

과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작은 궁은 그 주인의 신분을 쉽게 예측할 수가 없게 만들고 있었다.

작았지만 궁 안의 기둥 하나하나에 그려진 화려한 색채들의 문양은 궁 안에 머물고 있는 이의 신분이 높음을 짐작하게 해주었지만, 손질이 잘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잡초들의 모습은 그 신분은 깎아내리고 있었다.

“이랑 님! 어디 계세요!”

때마침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그 작은 궁의 주인에게로 찾아가던 어느 남자의 발걸음이 넓은 정원 안에서 멈추었다.

잡초들이 가득한 정원보다도 지금 이 시간이면 정원 안을 굴러다니고 있을 ‘무언가’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남자의 표정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너무 조용한데……설마…….”

조용하던 궁 안이 순식간에 뒤집혀 소란스러워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이랑 님!”

작은 궁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이들을 붙잡고 물어도 원하는 답은 얻을 수 없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 한 시간 동안을 뛰어다녔나,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남자는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숨이 찬 듯 호흡은 거칠어 져 있었다.

“도대체……. 또 어딜 가신 거야!!”

“유시후. 미안한데 나 아침 먹기 전에 달달한 게 먹고 싶은 데 말이야.”

뒤를 돌아 다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던 남자가 곧 위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기 시작한다.

“안녕. 유시후. 아침부터 기운도 좋네. 체력훈련 중이야? 엄청 열심히 한다.”

“…….”

놀란 가슴 진정시키느라 말이 없는 그를 피식 웃으며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으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화려해보이긴 했지만 입자마자 몸 전체가 ‘불편’이라는 단어와 친구를 맺을 거 같은 느낌의 옷을 입은 여인이 그 차림으로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그 자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였는데 어째 그 여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뭐 잊은 거 없으세요? 이랑 님?”

그녀에게 ‘유시후’라 불린 남자가 어느 정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싱긋 웃어 보이며 묻자, 나무 위의 여인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었다. 곧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감았던 눈을 뜨는 그녀였다.

“오늘 날씨 엄청 좋다. 그렇지?”

“그거 말고요.”

“내가 아침 인사를 잊었던가?”

“인사는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고 하는 게 예의라고 안 가르쳐드렸던가요? 당장 내려오세요.”

“그럼 유시후가 올라오면 되겠네.”

곧 죽어도 내려갈 생각이 없다는 듯 보이는 그녀였다.

순수하게 나무 위가 좋아서 내려가기 싫다고 말하고 있는 거면 그나마 용서가 되었겠지만, 그녀의 눈과 입가는 자신이 다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으니, 이는 괘씸죄가 추가되는 상황이었다.

“연애하기 딱 좋은 날이네. 안 그래 유시후? 혹시 주변에 괜찮은 남자 없어?”

“글쎄, 그건 유부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거 같은데요.”

“유부녀라고 하지 말라고 했지.”

유난히 ‘유부녀’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아직까지도 아래에 버티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기 위해 고개를 내린 여자의 얼굴은 상당히 앳되어 보였다. 유부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랑 님.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편하게 사시는 겁니다.”

이랑이라 불린 여인이 다시 한 번 나무 아래에서 자신을 약 올리고 있는 듯한 남자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남자의 표정은 너무나 침착했다.

“이제 진짜 그만 내려오시죠?”

“연애하고 싶다…….”

오히려 이랑이 나뭇가지에 매달리듯 달라붙기 시작하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아주 얇은 인내심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이랑 님.”

“연애…….”

그러나 그 나무 위의 화려한 행색의 여인은 아직도 연애 타령이었다.

“제가 올라가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내려오시는 게 어떠십니까, 왕후님?”

결국에 폭발하고 만 나무 아래의 남자가 ‘왕후님’이시라는 분을 매섭게 노려보며 경고하듯 말하자 더는 반항할 힘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는 이랑이었다.

“하여간에 끝까지 가는 걸 못 봤다니까?”

“뭐가요?”

“유시후 놀려먹는 건 좋은데, 후반부의 재미가 약해.”

“저는 마마를 지키기 위해 있는 존재이지 재미를 주는 존재가 아니랍니다.”

‘지켜? 웃기고 있네.’

빨리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는 그의 뒤를 순순히 따르던 이랑이 말이 없고 조용하자 괜히 또 불안해지기 시작한 유시후였다.

슬금슬금 뒤를 따라오는 이랑의 눈치를 보던 유시후는 결국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랑 님이 조용하시면 뭔가 불안한데 말입니다.”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 하시는데요?”

유시후의 질문에 잠시 이랑이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의 어깨에 두 손을 턱 하니 얹어놓고는 진지한 표정과 함께 질문공세를 펼쳤다.

“내가 매력이 없나? 남자가 보기엔 어때? 나 어딘가 이상해 보여?”

“어……. 안 이상해 보이십니다.”

“어떻게 이 예쁜 나를 독수공방시킬 수가 있는 거지? 유시후.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일단 끌어내리기는 성공했지만, 발이 바닥에 닿기 무섭게 다시 헛소리하고 있는 이랑을 바라보고 있던 시후는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그러나 따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이상 이 영양가 없는 대화의 길이를 늘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혼인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부부라지만, 남편이란 사람은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고 있지, 어떻게 말이나 걸어볼 수도 없으니 이랑이 지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는 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모시는 작은 왕후님의 상대는 이 나라의 왕이었고, 또 지나가는 소문에 의하면 그 왕에게는 따로 마음을 준 여인이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이거 완전히 그녀는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궐 안에서도 왕이 머무는 중앙의 본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위치한 작은 별궁. 영희궁(英姬宮)을 이랑의 처소로 지정해 준 게 분명했다.

“아니, 내가 딱히 왕후란 자리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거든? 그건 너도 알지?”

“네. 네.”

“정말이야, 난 이 자리 얼마든지 내어 줄 수도 있단 말이야.”

왕후 취급은 안 해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궁궐의 예의범절이며 기타 법도에 관련한 수업일정은 왜 이리 빡빡한지…….

재빨리 아침 식사를 끝낸 뒤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향하며 이건 불공평하다고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무슨, 그냥 모르는 아저씨지.”

현재 이랑의 나이 18살. 그리고 하늘 같다는 이 나라 왕의 나이 24살. 애매했지만 ‘아저씨’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유시후가 여전히 별다른 말 없이 씩씩거리며 복도를 지나고 있는 이랑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

남들은 이 좋은 날. 궐 밖에서 사랑의 시 따위를 읊으며 연애를 하고 있을 봄날에 자신은 왜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이랑이 자신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리 8살,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정치적인 목적이든 어떤 목적으로 인해 이 나라의 왕후란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궐 안의 이 작은 별궁 안에서 보내야만 했던 이랑이었다.

십 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그건 분명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리라.

이제 영희궁에는 8살의 작은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 있는 18살의 여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한테도 연애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요.”

“그렇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겠다는데 그렇게 문제가 되나?”

“어……. 글쎄요.”

어쩐지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유시후였다. 그의 표정은 ‘이제는 나도 귀찮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 거 같아.”

십 년씩이나 궁 안, 그것도 이 좁은 영희궁에서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얌전히 있어줬으니 자신에게도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랑이었다.

어차피 위치상의 왕후였으니 그 십 년간 한 번도 만나러 오거나 보러 올 생각조차 않는 왕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듣자하니 후궁도 여럿 두고 있다던데 굳이 그녀가 왕후가 될 필요 또한 없는 최고의 상황인 거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통의 ‘자진 폐위희망서’를 보냈지만, 답장 한 번 받을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왕은 근본적으로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은 가만히 못 있겠는지 오늘만큼은 다짐이 남다른 이랑은 평소보다 더 진지했다.

이렇게 아리따운 18살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끝내주는 연애 한 번은 해보고 죽어야지 싶은 그녀였다.

“나도 이제 내 인생 찾아가야지. 안 그래?”

문 앞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던 이랑이 내뱉은 뜬금없는 말에 유시후가 흠칫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 곧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모시는 작은 왕후님께서 또 무슨 일을 꾸미시려는 건지 벌써 걱정이 되는 유시후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소원은 이거 하나라고. 부디 이 나라 왕이 아닌 남자를 만나 완벽한 연애 한번 해볼 수 있기를.’

“이랑 님! 어디 가세요?!”

“전쟁 선포하러!”

눈을 반짝이며 빠른 걸음으로 수업을 받아야 할 자신의 방에서 멀어지는 이랑을 붙잡기 위해 일단 뒤를 따르는 유시후였지만 아무래도 오늘 하루도 이렇게 순탄치 않게 보낼 거 같은 절망적인 기운이 스멀스멀 들고 있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이랑이었다.

‘흥. 후회해도 늦었다고. 나도 당신 싫어. 그러니까 당신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나한테 신경 쓰지 마. 원망은 하지 않을게. 우린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니까.’

왠지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 같다는 유시후의 불안감을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이 소설은 역사적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시대와 배경, 기타 규칙은 모두 역사와 무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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