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겁도 없이 결혼-71화 (71/72)

특별외전 4화.

그곳에는 성우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은하는 놀라서 성우에게 달려갔다.

“오빠!”

“넌 어떻게 아이를 낳아도 그대로네? 아니, 더 예뻐진 건가?”

제주도에서 보고 성우도 근 1년 만이었다.

어차피 가족끼리 하는 돌잔치라고 생각해서 성우를 부를 생각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우가 떡하니 나타나니 은하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빠가 여기 웬일이에요?”

“초대 안 한 사람이 와서 실망한 건 아니지?”

“오빠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얼마나 오빠를…….”

좋아하는지 알면서.

하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성우는 다 안다는 듯 웃으면서 대꾸했다.

“네 남편이 와야 한다고 하도 난리를 쳐서.”

“도훈 씨가요?”

의외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냉랭한 관계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시 사이가 좋아진 건가?

은하가 눈을 끔벅이며 쳐다보자 성우가 메고 있는 카메라를 보여 줬다.

“리훈이 돌사진을 찍어 달라던데.”

“아…….”

그러고 보니 포토그래퍼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던 도훈의 말이 떠올랐다.

성우를 염두에 둔 거였구나. 그 정도로 다시 두 사람이 가까워졌나 싶어서 은하는 더없이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성우가 그런 은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얼른 변명을 시도했다.

“아, 근데 어설픈 기대는 마. 우리 아직 화해한 거 아니니까.”

“네?”

“오늘은 일하러 온 거야. 내 몸값이 얼마든 상관없다고 하기에 콜 했어. 아주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을 불러 보려고.”

“풉.”

그래 봤자 성우가 애정으로 왔다는 걸 아는 은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성우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일확천금을 준다고 해도 올 사람이 아니니까.

“어? 진짜야. 도훈이 녀석 등골 빼 먹으러 왔다니까?”

“도훈 씨가 잘못했네요. 공짜로 와 달라고 해도 오빠는 와 줬을 텐데.”

“은하 너, 내가 네 남편에게 돈 많이 못 부르게 하려고 수 쓰는 거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도훈 씨 힘들게 하면 안 돼요.”

“뭐야?”

“농담이에요. 마음 약해지지 말고 엄청 불러 버려요. 저도 이럴 때 오빠에게 신세 좀 갚게.”

“어쭈. 우리 은하, 재벌가 사모님 다 됐는데?”

은하의 반응이 예상 밖인 듯 성우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다시 농담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은하는 기뻤다.

“오빠가 와 줘서 정말 좋아요. 너무 고마워요.”

“그래, 리훈이 돌 진심으로 축하해. 참. 이거 내 선물.”

“사진 찍어 준다면서 뭘 또 선물까지 사 왔어요.”

“사진은 비싼 값 쳐서 받을 거니까 선물은 따로지. 아, 그리고 이건 하리 씨 선물.”

성우는 주머니에서 작은 반지 케이스 두 개를 꺼내 은하 앞에 내밀었다.

하리의 프로필을 찍어 준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작업을 같이하곤 했다. 그래서 여전히 친분을 가지며 연락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하리가 성우에게 부탁해서까지 리훈이 돌을 챙길 줄은 몰랐다.

“직접 와서 보고 싶어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잔치 장소가 집이라서 직접 오기는 뭐했나 봐.”

“그럼요. 이해해요.”

아무리 쿨하다고 해도 이혼한 시댁 잔칫날까지 와서 어른들 보며 웃을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은하는 하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때 집 안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은하가 놀라서 쳐다보니 성우가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무슨 좋은 일 있나 본데, 가 봐.”

“네. 둘러보고 식사 먼저 하고 계세요.”

은하가 서둘러서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안에는 이학과 도훈, 그리고 일준과 은표까지 모두 모여서 리훈이를 보고 있었다.

잠들어서 잠깐 재웠는데 그사이 깬 모양이었다.

“리훈이가 깬 거예요?”

“어, 은하야. 이리 와 봐.”

“왜요?”

도훈이 은하를 안아서 리훈이 잘 보이는 데로 데려갔다. 리훈이 꺄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놀랐지?”

“네. 지금 걷는 거예요?”

“그래.”

“세상에, 어쩜 이렇게 귀엽게 걷는지.”

리훈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물론 몇 걸음 못 걷고 다시 주저앉긴 했지만, 재밌는지 꺄르르 웃으면서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나 걸었다.

“이 녀석 뭐가 되려고. 돌 때쯤 걷는다더니 딱 돌에 맞춰서 걷네.”

“안 그래도 왜 안 걷나 걱정했는데.”

“그랬어?”

“그럼요.”

아이들이 돌 때쯤 걷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엄마 마음이 어디 그런가.

빠른 아이들은 10개월에도 걷고 한다니까, 돌이 다 되도록 걷지 않는 게 한편으로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돌잔치 날 맞춰서 걸어 주니 기쁨이 두 배였다.

“우리 아들이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요.”

어느새 은하도 도훈도 팔불출이 되어서 리훈을 바라보았다. 리훈은 은하를 보더니 바로 걷던 걸 멈추고 기어서 은하에게 다가왔다.

은하가 리훈을 안아 올리며 볼을 비볐다. 엄마에게 빨리 오고 싶어서 조금 더 편한 자세로 다가오는 걸 보니 이보다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돌잔치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리훈이 걸음마를 시작했다는 게 화제가 돼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시끌벅적한 이벤트 대신 어른들이 한 마디씩 리훈에게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돌잡이로 끝을 냈다.

돌잡이 때도 리훈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바로 돈을 잡은 것이다.

사업가 집안이니 이왕이면 돈을 잡아야지, 하던 이학은 리훈이 돈을 잡자마자 만족스럽게 껄껄 웃었다.

뭘 잡든 상관없이 건강하게 잘 크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은하와 도훈은 이학이 좋아하는 걸 보자 차라리 돈을 잡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리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미 곯아떨어졌다. 덕분에 은하와 도훈도 조금은 편하게 차에서 쉴 수 있었다.

“피곤하지?”

“조금요. 당신은요?”

“나는 괜찮아. 당신이 고생 많았지.”

사실 은하도 쉽게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친 격이었다.

손님도 안 부르고, 집 안 꾸미는 것도 선주가 도와줘서 크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잔치가 끝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내내 긴장한 것이 풀려서인 듯했다.

“그나저나 할아버님과 아버님 선물은 너무 과한 거 아닐까요?”

“주식 때문에?”

“네.”

이학과 일준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리훈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직 정식으로 넘긴 건 아니지만, 그들이 선물한 주식을 다 가지면 도훈보다 리훈이 더 주식 부자가 될 판이었다.

은하는 그 모든 것이 부담스러운데 도훈은 아닌 듯했다.

“그냥 받아도 되는 선물이야.”

“정말 그럴까요?”

“응. 아님 당신이 받을래?”

“네?”

“그것보다는 리훈이가 받는 게 낫잖아.”

“지금 농담이 나와요?”

“어차피 이대로만 자라면 제일그룹은 리훈이 것이 돼. 미리 주식 좀 받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

도훈의 말에 은하는 묘하게 설득당하는 중이었다.

“참, 당신은 차 마음에 들어?”

“아, 맞다……. 그것도 사실 저는 엄청 부담스러워요.”

리훈에게 본인이 갖고 있는 주식을 선물한 이학은 은하에게는 자동차를 주었다.

은하는 너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차를 선물로 주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심지어 너무 좋은 차였다.

“당신 그동안 리훈이 낳고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주시는 거니까 편하게 받아. 안 그래도 당신 리훈이 데리고 어디라도 다니려면 차가 있는 게 편하겠다 싶었어.”

“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재벌가 며느리의 삶이 은하는 이럴 때마다 확 와닿았다. 그때 도훈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잠깐만.”

도훈은 은하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픽 웃었다.

“왜요?”

“진성우가 오백을 불렀네.”

“네? 뭘……. 아, 설마…….”

“그래. 오늘 하루 일당.”

“어머.”

은하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비싸게 부를 거라고 했고, 은하도 최대한 많이 부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하루 일당으로 오백만 원을 부를 줄은 몰랐다.

성우의 엉뚱함에 절로 웃음이 났지만 도훈에게는 눈치가 보였다.

“하여간 진성우 괴짜 녀석.”

“저기, 도훈 씨.”

“응?”

“실은……. 제가 오빠한테 최대한 많이 부르라고 했어요. 이럴 때 신세 좀 갚는다구요. 그래서 오빠가 더 많이 불렀나 봐요.”

은하가 순순히 이실직고를 하자 도훈이 은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얘기는 또 언제 했어?”

“아까 도훈 씨 안에 있을 때…….”

“나 없을 때 당신이 성우랑 단둘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별로야.”

“아…….”

“그리고 진성우 이 녀석은 당신이 뭐라고 했건 제 생각대로 불렀을 거야. 아,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반절은 깎아서 부른 거겠네.”

“네?”

반절이나 깎았으면 성우가 천만 원을 부를 생각이었다고? 에이, 설마.

은하가 아는 성우는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훈은 확고했다.

“안 믿네? 그 녀석 원래 성격이면 하루 일당으로 나한테 천만 원, 아니, 이천만 원도 불렀을 걸? 물론 난 달라는 대로 다 줬을 테고.”

“네에?”

아무리 재벌가 자제들이라지만 천만 원이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돈 단위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그걸 달라는 사람이나 달란다고 다 주겠다는 사람이나, 은하는 둘 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까다로운 고객이 될 거니까 상관없지. 나의 집요한 컴플레인을 받게 될 테니까. 근데 오백이면……. 컴플레인을 조금만 걸어야 하나?”

도훈은 뭐가 웃긴지 자꾸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혹시라도 마음이 상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왠지 도훈은 신나 보였다.

은하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두 사람은 아닌 척해도 이미 예전의 친구 사이가 다 된 듯 보였으니까.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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