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겁도 없이 결혼-67화 (67/72)

외전 5화.

마치 소변이 새는 듯한 느낌이었다. 속옷도 축축하게 젖은 것 같고. 요의를 느끼지는 않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도훈 씨. 나 잠깐 화장실 좀.”

“그래.”

막달이 되면서 화장실도 자주 갔던 터라, 도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속옷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로 젖어 있었다.

양수가 새는 게 틀림없었다. 경험은 없지만 육아 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막달에 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속옷이 젖으면 양수가 새는 거라고.

은하는 그길로 다시 나와서 도훈에게 속삭였다.

“도훈 씨.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응? 왜?”

“양수가 새는 것 같아요.”

“뭐?”

도훈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은하가 오히려 침착하게 행동했다.

“괜찮아요. 지금 바로 병원에 가면 될 거예요.”

“알았어.”

도훈도 금세 이성을 찾고 병원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은표에게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다며 사정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은표가 잔뜩 흥분해서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였다.

“아빠. 아빠는 여기 직원분들과 계셔야죠. 오늘 첫 출근이신데. 가서 상황 봐서 연락드릴게요.”

이번에도 은하가 차분하게 만류했다. 할 수 없이 은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도훈에게 부탁했다.

“그럼 상황 봐서 바로 연락 주게.”

“네. 그러겠습니다.”

은하와 도훈은 그길로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은하는 준비된 병실로 향했다. 양수가 새는 게 맞았고, 바로 분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모든 상황이 무척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라 그런지 문득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은하의 마음을 읽었는지, 도훈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안심시켰다.

“내가 있잖아. 괜찮아.”

“고마워요, 도훈 씨. 그런데 사실 나 조금은 무서워요…….”

“당연하지. 그래도 당신은 잘 해낼 거야.”

도훈이 은하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힘을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은하는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내진이 시작되고 분만을 당기는 촉진제가 들어가면서 은하의 고통도 점점 심해졌다. 다행히 자궁문이 정석대로 잘 열린다고 의사가 격려를 이어 갔다.

그러나 자궁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진통도 시작되면서 은하의 머릿속은 점점 더 하얗게 변해 갔다. 무통 주사를 맞았지만, 통증이 허리로 오는 바람에 거의 소용이 없었다.

“도훈 씨…….”

“은하야. 조금만 참아. 조금만.”

도훈은 땀에 젖은 은하의 머리카락을 떼 주며 같이 힘을 주고 있었다. 은하는 벌써 12시간이 넘게 버티는 중이었다.

“숨 쉬세요, 산모님. 숨 쉬셔야 해요.”

허리로 오는 통증도 심한 데다 저절로 자궁 쪽으로 힘이 들어가다 보니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걸 눈치채고 의사가 소리쳤지만 은하는 여전히 숨을 헐떡였다.

“계속 숨 못 쉬면 아이가 위험합니다!”

그 소리에 은하는 안간힘을 다해 숨을 내뱉었으나 역부족이었다. 필사적으로 호흡하는 사이 산소 호흡기가 도착하고, 은하는 산소 호흡기에 기대어 겨우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다행히 은하는 금세 호흡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아래로 힘을 줄수록 덜 아프다는 것도 깨달았다. 정말 몸이 스스로 터득한 거였다.

“이제 잘하시네요. 계속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자, 힘주세요.”

의사의 목소리에 은하가 몇 번 더 힘을 줬다. 그러고는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 밑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애. 응애, 응애.

드디어 분만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전날 오후에 들어와 그 다음 날 오후에 분만을 했으니 거의 24시간이나 버틴 셈이었다.

“잘생기고 늠름한 왕자님이십니다.”

“아기는……. 건강한가요?”

“네.”

은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그때까지도 도훈은 은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고생했어, 은하야. 정말 너무 대견해.”

도훈이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서 은하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또 대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래서 엄마들은 위대한 것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었다.

“아기가 건강하다니 다행이에요. 혹시나 내 고집 때문에……. 콩알이가 위험했을까 봐 걱정했는데.”

은하는 다른 것보다도 콩알이가 건강하다니 그걸로 만족했다. 자신이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콩알이까지 위험했을 순간을 떠올리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아이 올려 드릴게요. 산모님.”

“아, 네…….”

이 병원은 가족 분만실에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곳이라 아이를 낳자마자 엄마 가슴에 올려 젖을 빨게 한다고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은하는 이 순간이 기대가 되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은하의 환자복 앞섶을 살짝 풀어 헤친 뒤 그 위로 콩알이를 올려 주었다. 콩알이는 본능적으로 은하의 가슴을 찾아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빨았다. 처음 이 얘기를 들을 때는 어떤 느낌일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직접 겪어 보니 참으로 경이롭고 신기했다.

“너무 신기해요.”

“본능이에요. 아이들은 다 알거든요.”

“너무 예뻐요…….”

“그래. 우리 콩알이 참 예뻐. 당신이 낳은 당신 아들이야.”

도훈이 감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은하 역시 가슴이 벅차올라 그저 콩알이가 하는 양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아기의 건강을 생각해서 오래 하지는 못했다. 바로 노폐물을 닦아 내고 체온 유지를 위해 옷을 입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은하 역시 후처리를 위해 의사가 바쁘게 움직였다.

“산모님 너무 고생하셨고요. 오늘 밤에는 열이 날 수 있어요. 어지러울 수도 있고요. 혼자 움직이다가 쓰러지시면 큰일 나니까 화장실도 혼자 가시게 하면 안 됩니다. 아기는 다시 이곳으로 데려다줄 건데요. 오늘 밤은 편히 쉬시라고 신생아실에 재울게요. 내일부터는 계속 돌보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의사가 마지막으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주의 사항을 당부하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모든 상황이 종료됐고, 은하와 도훈이 단둘이 병실에 남았다. 도훈이 은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애틋하게 물었다.

“괜찮아?”

“네……. 아직은요.”

자연 분만이라서 그런지, 아픈 부분은 따로 없었다. 의사 말대로 피를 많이 쏟아서 조금 어지럽긴 했지만 그것도 심각하진 않았다.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콩알이가 다시 두 사람 곁으로 왔다. 이번에는 한층 깨끗해진 얼굴로 따뜻한 옷을 입은 채였다.

고슴도치도 제 아이는 예쁘다고, 어쩜 이렇게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앵두 같고 눈썹도 짙고 긴지. 은하는 콩알이를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도훈도 마찬가지 심정인 모양이었다.

“우리 아들 벌써부터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

“어쩜.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신 꼭 닮아서 그런가.”

“무슨 소리. 내 눈에는 당신을 더 닮았는데.”

“에이, 아니에요. 당신을 더 닮았어.”

서로 누가 더 닮았나 얘기하다가 두 사람은 서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 호르몬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은하는 이 순간 너무 행복했다.

“은하야……. 나 당신에게 더 잘할게.”

“왜요? 아이 낳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요?”

“그래.”

도훈이 수긍했다. 콩알이를 만나서 너무 좋지만, 생명의 탄생이 너무 신비롭고 감격스럽지만, 은하가 고통받는 모습은 두 번은 볼 게 안 되었다. 이럴 바에는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족계획도 다시 세우는 게 좋겠어.”

은하와 도훈은 둘 다 아이를 좋아해서 우스갯소리로 셋도 좋고 넷은 더 좋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돈도 있겠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애국하는 거라는 말도 곁들이면서.

하지만 오늘 은하의 고통을 보고 도훈은 생각이 싹 바뀌었다.

“나도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가족계획을 변경하는 건 보류하도록 해요. 지금도 콩알이가 너무 예뻐서 콩알이 동생도 낳고 싶긴 하거든요.”

도훈은 새삼 은하가 더 위대해 보였다. 자신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정작 가장 힘들었던 당사자는 덤덤한 데다 아이를 더 낳는 것에 거부감도 없으니 대견스럽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작고 마른 사람 안에……. 정말로 큰 사람이 들어앉아 있네.”

“좋은 말이죠?”

“그럼.”

도훈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은하가 놀라서 도훈을 놀렸다.

“당신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아닌데……. 정말 처음이야. 왜 이렇게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어. 당신이 원한다면 그 어떤 것도 다 해 줄 거야. 보석을 갖고 싶다면 어떤 보석도 다 구해 줄 거고.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가 필요하면 그런 것도 다 사 줄게. 뭐든 원하는 걸 말만 해.”

정말로 감격했는지, 도훈답지 않게 물건으로 은하의 환심을 사려 했다. 은하는 피식 웃으면서 도훈을 진정시켰다.

“도훈 씨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도훈 씨가 이렇게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문득 은하의 얼굴에 옅게 그림자가 졌다. 도훈이 의아해서 은하를 살폈다.

“은하야, 왜 그래? 이제 아픈 건가? 아니면 힘들어?”

“아……. 아뇨.”

사실 눈에 띄게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을 뿐. 우물쭈물하던 은하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도훈 씨,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방금 아이를 낳고 행복해야 할 산모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니 도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음……. 도훈 씨.”

“응?”

자꾸 뜸을 들이는 게 이상해서 도훈이 채근했다.

“혹시……. 아까 저 분만하는 거 보고……. 기분이 이상하진 않았나 해서요.”

도훈은 은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아이 낳는 거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해서요……. 성욕도 떨어지고 아내가 여자로 보이지도 않고…….”

은하는 가족 분만실을 잡으면서도 그 점이 계속 걱정스러웠다. 마지막에는 그냥 들어오지 말라고 할까도 생각했다. 도훈의 손을 잡고 아이를 낳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망설여진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까는 너무 급작스럽고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24시간을 병실에서 혼자 보내는 건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도훈과 함께 분만을 했는데, 그게 그때는 너무 좋았는데 돌이켜 보니 아차 싶었다.

“아…….”

도훈은 그제야 은하의 마음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당신이 방금 막 출산한 몸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안을 수 있는데……. 볼래?”

“네?”

도훈이 은하의 손을 잡고 제 중심으로 가져갔다.

“어머, 도훈 씨…….”

“당신이 그 말 하는 순간 이렇게 됐어. 이제 대답이 됐지?”

“……네.”

은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혼자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 순간 도훈의 입술이 은하의 입술에 포개졌다.

“읍……. 도훈 씨.”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안 되겠어. 키스까지는 할 수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은하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도훈은 아주 부드럽게 혀를 움직였다. 짧은 입맞춤을 끝내고는 부서질 듯 조심히 그녀를 안았다.

“사랑해. 은하야. 평생……. 너만 사랑하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생각하며 살 거야.”

“저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눈 좀 붙여.”

“네……. 그럴게요.”

은하는 도훈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충만한 행복감을 안고 눈을 감았다.

-외전 마침-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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