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겁도 없이 결혼-65화 (65/72)

외전 3화.

“사랑을 나누기 딱이네.”

도훈이 손을 끌고 찾아간 침실은 로맨틱한 분위기가 뚝뚝 묻어났다. 침대 위에 수건으로 만들어진 원앙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 장미 꽃잎이 하트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요. 너무 예쁜데요.”

“그래도 당신만큼 할까.”

도훈이 부드럽게 은하의 입술을 탐하며 침대 위를 흐트러트렸다. 장미 하트가 없어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은하도 도훈을 안는 게 더 좋았다.

은하의 옷을 벗기고 조심스레 옆으로 눕힌 도훈은 제 옷도 훌러덩 벗어 던진 채 뒤에서 바짝 몸을 붙여 왔다. 커다란 그의 분신이 벌써부터 그녀의 엉덩이를 찔러 댔다. 하지만 도훈은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손을 놀려 은하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으읏……. 도훈 씨.”

도훈의 손이 조금만 닿아도 은하는 금방 흥분이 됐다. 도훈은 은하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어딘지 너무 잘 알았다.

아랫배가 조여 오기 시작하고 흥분에 몸을 맡기려는 찰나, 콩알이가 발로 찼다. 둘 다 놀라긴 했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은하가 흥분을 하면 콩알이도 같이 신나는지 몇 번이나 발로 차서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녀석아, 가만히 좀 있어. 엄마 아빠 사랑 좀 나눠야 하니까.”

도훈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은하의 배에 대고 속삭였다.

“벌써부터 질투가 많아서 걱정이야. 자기주장도 강하고.”

도훈의 진지한 말에 은하가 살며시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콩알이를 가지고 은하는 입맛이 많이 바뀌었다. 고기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고기만 찾았고, 국물 요리도 잘 안 먹었는데 요즘은 탕이나 국이 없으면 밥도 잘 못 넘겼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발로 차서 잠도 잘 못 자는 걸 보더니, 도훈은 녀석이 자기주장이 강하다며 벌써부터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당신 닮아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리고 난 남자가 자기주장도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하가 배를 문지르며 기분 좋게 대답했다. 도훈만큼 멋진 남자로 자라 주면 참 좋겠다 생각하면서. 하지만 도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나를 닮았으면 당신을 좋아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일 테고. 당신도 벌써부터 콩알이 편드는 걸 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네.”

“도훈 씨, 지금 자기 아들을 질투하는 거예요?”

은하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런데 도훈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심히 걱정돼. 벌써부터 이러는데 태어나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건 아닐지.”

“설마요.”

은하는 도훈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귀여웠으나 도훈은 정말로 심각했다.

“걱정 말아요. 콩알이는 섹시하지 않잖아요. 나를 흥분시키는 남자는 당신뿐이라고요.”

“…….”

“그러니까 그만 질투하고……. 하던 거 마저 하는 게 어때요? 다행히 콩알이도 이제 조용한데.”

어느새 잠잠해진 콩알이를 느끼며 은하가 도훈을 향해 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하면……. 더 흥분시키고 싶잖아.”

도훈이 감격한 눈빛으로 입술을 다시 포갰다. 손놀림은 아까보다 한층 더 자극적이고 깊어졌다.

“하아. 도훈 씨…….”

은하의 몸이 저도 모르게 들썩였다. 도훈의 손가락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것만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도훈은 은하에게 귓속말을 하며 부드럽지만 집요하게 은하의 몸을 탐했고,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땀에 젖은 채로 최고의 절정을 맞이했다.

***

다음 날은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다행히 날도 좋아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잠시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전 준비됐어요.”

바닷가를 산책할 기쁨에 은하가 얼른 외출 준비를 마치고 도훈을 돌아보았다. 혹시나 도훈이 걱정할까 봐 발목까지 오는 거위 털 파카에 털모자, 그리고 털신까지 신었다.

그런데도 도훈의 표정은 영 마뜩잖아 보였다.

“앉아 봐.”

“네? 왜요?”

도훈은 의아해하는 은하를 소파에 앉혔다. 그러고는 언제 준비했는지 주머니에서 수면 양말을 꺼냈다. 곰돌이가 그려진 앙증맞은 디자인이었다.

“그건 언제 챙겼어요?”

“아까. 혹시나 해서 편의점에 들렀더니 있더라고.”

“나 때문에 일부러 산 거예요? 털 부츠라서 굳이 수면 양말은 필요 없는데…….”

“그래도 발 시릴 수 있어.”

도훈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앉은 채, 은하가 신고 있던 면양말을 벗기고 친절히 수면 양말을 신겼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것도.”

도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꺼냈다. 핫 팩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있어. 반쯤 데워 놨으니까.”

“알았어요. 누가 보면 밖이 영하 10도쯤 되는 줄 알겠어요.”

오늘따라 유별난 도훈의 모습에 은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훈은 진지하게 은하의 주머니에 핫 팩을 넣어 주었다.

“이제 가자.”

도훈은 혹시 모른다며 마지막으로 두꺼운 숄도 하나 더 챙겼다. 안 그래도 배가 많이 나와서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롱 패딩을 입었더니 더 뒤뚱거렸다.

하지만 밖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은하는 발을 콩콩 찍었다.

“와……. 바람 좋다.”

“그렇게 좋아?”

“좋죠. 제주 바닷바람인데.”

아직 바람은 차가웠지만 시리게 추운 건 아니라서 오히려 상쾌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솔직히 한 손은 주머니에서 핫 팩이 데우고 있었고, 또 다른 손은 도훈이 잡아 주고 있어서 추울 겨를도 없었다.

신나서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저기 뭐 있나 봐요? 우리도 구경 갈까요?”

“그냥 지나가지? 정신없고 불편할 텐데.”

“전 가 보고 싶어요. 도훈 씨, 네?”

은하가 조르자, 도훈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신이 나서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 알 것 같았다. 스태프들과 장비들을 보아하니 드라마 촬영 중인 듯했다.

“드라마 촬영 중인가 봐요. 신기해.”

“이제 그만 돌아가자. 괜히 사람들 많은 데 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네.”

은하는 아쉽긴 했지만 도훈의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어서였다.

한낮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 은하는 도훈이 잠시 전화로 업무를 해결하는 동안 혼자서 호텔을 돌아다녔다. 호텔 안에도 볼 게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룸으로 올라가려는데, 로비에서 떡하니 아는 사람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

“형님!”

바로 하리였다. 은하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그녀가 세훈과 이혼하고서 처음 보는 거였다. 모든 것은 세훈의 잘못이었지만 그래도 하리가 이혼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 쓰였던지.

“동서……. 아니,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여기는 웬일이에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요. 잘 지내고는 있죠. 저 이번에 드라마 들어갔어요.”

“어머! 연기 다시 시작한 거예요?”

은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집에서 꽂아 준 건데, 단역이에요. 예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지금은 단역이라 비중이 크게 없어서 그런지 부담도 없고 제법 재밌어요.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만.”

“그럼 혹시 바다 앞에서 촬영하던 팀이…….”

“맞아요.”

그 말을 하면서 하리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났다. 결혼과 이혼을 겪고 나서 하리도 제 삶을 찾은 듯했다.

“너무 잘됐어요.”

잘하면 아까 촬영하는 것도 봤겠구나 생각하니 새삼 신기했다.

“형님도 좋아 보이네요.”

하리가 은하의 커다란 배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네. 벌써 8개월이에요.”

“와, 대박! 아이 낳으면 연락 줘요. 선물이라도 사 들고 갈 테니까.”

“고마워요.”

하리는 여전했다. 이혼은 했지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아주버님은 어쩌고 형님 혼자예요?”

“아……. 잠시 일 때문에 룸에 있어요.”

“아주버님은 다 좋은데, 너무 바쁜 게 흠이라니까요. 제주도에 와서라도 일이라니.”

하리가 안 봐도 불 보듯 뻔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찰 때였다.

“은하야!”

하리 뒤에서 나타나는 한 사람을 보고 은하는 또 한 번 기함했다.

“성우 오빠……. 오빠는 여기 또 웬일이에요?”

“저랑 같이 왔어요. 제 프로필 사진을 부탁 좀 했거든요. 본격적으로 다시 배우 하려니까 프로필이 없더라고요. 전남편과 얽혀 있는 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포토그래퍼를 피할 수는 없잖아요?”

“아…….”

은하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겠지만 하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성우를 봐서 좋기도 했다. 은하는 그동안 성우와 직접적인 연락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성우와 연락하는 것에 도훈의 눈치를 보진 않았지만, 스스로 망설여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성우의 마음을 알게 돼서 조금 더 어려워졌달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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