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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결혼-59화 (59/72)

59화.

레스토랑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물론 도훈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은하 혼자서 신경 쓰는 중이었다.

“혹시 아까 제 친구가 한 말 들었어요?”

“어떤 말? 아…… 좋아해서 술 마실 때마다 보고 싶다고 말했다던, 섹시함의 끝판왕 남자?”

“헉.”

은하가 저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손을 입으로 가렸다.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네? 그게 무슨……?”

“나보다 더 섹시한 남자는 있을 수 없는데. 섹시함의 끝판왕이라니.”

아닌 척해도 질투하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잘난 척을 하는 것도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인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도훈 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다고 믿는 거예요?”

“물론. 여은하 한정이지만.”

도훈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은하가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그때도 지금도 제 눈에는 당신이 제일 섹시해요.”

“응? 그게 무슨……?”

“잊으려고 했는데…… 아니, 잊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당신과의 첫날밤이 너무 강렬했거든요. 당신도 눈치챘다시피 제 첫 경험이었고, 제 인생에 첫 남자였으니까.”

은하가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며 말했다.

“내 첫사랑이기도 하고요.”

“은하야…….”

“언젠가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도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연한 얘기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첫사랑이 알고 보니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가슴 떨려 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을까.

“아마, 그래서 더…… 당신에게 결혼하자고 무모하게 덤빈 것 같아요.”

“무모하긴 했지.”

도훈이 은하를 당겨 안아 제 무릎 위에 앉혔다.

넓었던 운전석이 은하로 인해 꽉 찼다.

“도훈 씨, 여기 차 안이에요. 그것도 레스토랑 주차장…….”

은하가 난처해하며 도훈을 보았다.

“뭘 상상한 거지, 난 이렇게 눈 마주치고 얘기만 할까 했는데.”

“아…….”

은하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빨개졌다. 혼자 오버했구나 생각하는 듯했다.

“기대한 것 같으니 키스까지만 할게.”

하지만 도훈은 이내 제 입술을 은하의 입술에 맞추며 속삭였다.

은하를 사랑하는 벅찬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중이었다.

***

며칠 뒤.

어둠에 싸인 제일병원, VIP병동.

남자 간호사복을 입은 찬우가 은표의 병실로 들어섰다.

간호사복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워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짜증이 치솟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얼마 전 돈으로 겨우 매수한 간호사 은영에게서 30분 전 급하게 연락이 왔다.

마침 경호원도 교대 시간이고, 자신도 환자들을 체크하는 시간이라 일을 치르려고 마음먹었으나……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거였다.

‘저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지금 마침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까 들어와서 직접 하세요. 제가 들키지 않게 주변을 살펴봐 드릴게요.’

적어도 일을 치르려고 했다는 말은 사실인지 그녀는 덜덜 떨고 있었다.

주사 한 방이면 되는 걸, 그걸 못 해서 이 난리를 치다니.

찬우는 기가 찼지만, 그래도 좋은 점도 있었다.

은영에게 주기로 한 1억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돈이 무척 아까웠는데 잘됐다 싶었다.

망을 봐주는 대가로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협의를 볼 계획이었다.

아예 안 줄 수 있는 핑계를 만들면 제일 좋겠는데…….

돈이 굳는다는 생각을 하자 간호사복을 입는 것도, 몰래 병실에 숨어 들어오는 것도 못할 것도 없었다.

은표를 제 손으로 보낼 수 있다니, 그것 또한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게다가 혹시 모르니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웬걸?

간호사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은영하고만 눈짓을 주고받은 뒤 찬우는 바로 은표의 병실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

“와, 병실 죽이네. 이게 1인실이라고?”

찬우는 입이 떡 벌어지는 병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넓고 쾌적한 것은 물론, 작은 소품 하나도 허투루 꾸민 게 없었다.

“이래서 사람이 돈이 있어야 해.”

다시 한번 그 진리를 깨달은 찬우는 은표가 누워 있는 침대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쨌거나 이 일을 빨리 처리해야 또 돈을 받을 수가 있으니까.

“매형, 이렇게 또 만나네요.”

찬우가 반갑다는 듯 히죽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아무 힘도 못 쓰고 누워 있는 은표를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니까 그때 그냥 죽어줬으면 서로 불편한 일 없고 좋았잖아.”

찬우가 한 손으로는 주사기를 꺼내고, 또 한 손으로는 은표의 팔에 매달려 있는 긴 링거줄을 만지작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러게 인생을 잘 좀 살지 그랬어. 사람은 말년이 좋아야 한다는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바로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까.”

뭐가 재밌는지 혼자서 낄낄대던 찬우는 준비해 온 주사액을 링거에 꽂았다.

주사액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찬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세훈에게 보고를 했다.

“최 팀장님. 접니다. 장찬우. 여은표, 방금 해치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소리에서 거만함이 묻어나왔다.

-확실합니까?

하지만 세훈은 여전히 의심이 많았다.

“의료진도 못 미더워서 제가 방금 해치우고 전화드린 겁니다. 돈이나 더 준비하세요. 이번에는 확실히 더 챙겨주셔야…….”

그때였다. 누군가 찬우의 다리를 덥석 잡았다.

“악!”

놀란 찬우가 짧게 소리치고는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 제 소리가 너무 컸을까 싶어 얼른 문 쪽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바깥은 조용했다.

안도로 마음을 쓸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뒷머리가 쭈뼛 섰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는 찬우와 침대에 누워 있는 은표, 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방금 은표는 자신이 넣은 독극물로, 지금쯤 송장이 되어야 정상인데.

찬우가 설마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제 다리 쪽으로 돌렸다.

-이봐요, 장찬우 씨. 무슨 일이에요? 일 처리가 제대로 안 된 겁니까?

세훈이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를 쳤지만, 찬우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예상대로 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 다리를 잡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찬우…… 너…….”

은표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찬우를 잡은 팔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의식이 돌아왔었어?”

평소에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본 찬우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놀랐다. 전혀 예상을 못했으니까.

당황해서 힘껏 뿌리치자, 은표의 팔이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찬우는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분명히…….”

그제야 확인해 보니 은표의 팔이 놓였던 침대 한편이 젖어 있었다.

찬우가 독극물을 넣는 걸 보고, 은표가 링거 바늘을 빼버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질긴 목숨이네, 우리 매형. 그냥 그대로 죽지 그랬어?”

찬우는 이 힘없는 인간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치솟았다.

“당신이 사는 걸 누가 좋아한다고. 그냥 죽었으면 편하게 죽었을 거 아니야. 굳이 고통스럽게 죽겠다면야 나도 마다할 건 아니지만.”

찬우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은표의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은표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며 물었다.

“왜? 왜긴 왜야? 당신이 재수 없으니까 그렇지. 날 그렇게 내쫓을 땐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거든.”

“난 네 매형이야…… 네 누나 남편이라고. 내가 잘못되면 네 누나도…….”

“우리 누나는 보험금 탄다고 더 좋아했어. 당신 죽이는 거, 누나는 찬성했다고.”

찬우가 은표를 순진하다는 듯 비웃었다.

제일 큰 이유야 돈이었지만, 찬우는 애꿎은 하늘식품도 아주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요 기술을 빼돌려 세훈에게 넘기고, 아부 떠는 양 은표까지 처리했다.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나서 고생시킬 줄은 몰랐다.

반면 은표는 충격을 받고 멍해졌다. 찬우야 그렇다 치고 찬숙까지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

그동안 찬숙에게 진심으로 대했는데, 그녀는 아니었나보다.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가 있나 싶었다.

정신을 차린 은표가 찬우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렇게는 안 돼. 아직은 정의가 살아 있거든.”

“정의? 웃기시네. 그건 저승에 가서 옥황상제랑 얘기 재미나게 나누시면 되겠네.”

찬우의 얼굴이 비열하게 빛나더니 은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

깊은 새벽. 도훈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행히 은하는 잘 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훈은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여러 번 은하를 안았고, 그러다 결국 또 은하가 녹초가 된 뒤에야 놔주었기 때문이었다.

첫사랑이라니.

아직도 그 말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제 품으로 왔는지.

아직 은표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은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물론 이제 곧 이 행복한 시간도 끝이겠지만.

도훈이 복잡한 심경으로 잠든 은하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협탁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이긴 했지만 협탁 위에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제법 컸기에 도훈은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는 영철이었다. 도훈이 일어나서 옷부터 챙겨 입었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만큼 가슴을 선뜩하게 만드는 게 없음을 실감하며.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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