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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결혼-55화 (55/72)

55화.

은하는 도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당황한 은하의 얼굴 위로 도훈의 얼굴이 더 가까이 내려왔다.

“난 당신이 성우와 같이 있는 것만 봐도 미칠 것 같았거든.”

“……도훈 씨?”

여전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은하가 눈을 끔벅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키스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심장이 쿵쿵 더욱 거세게 뛰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바본가?”

“네?”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그러면 내 식대로.”

도훈이 순식간에 은하에게 입술을 포갰다.

갤러리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들고 싶은 걸 겨우 참은 도훈이었다.

그 열망이 너무 뜨겁게 솟아나서 잡아먹을 듯이 은하를 파고들었다.

은하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읍…… 도훈 씨, 잠깐만요……. 숨이 막혀요.”

은하가 그의 품에서 바르작거리자 도훈이 겨우 입술을 떼고 그녀를 꽉 껴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내가 당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당신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잖아.”

“……네?”

“당신은 화가 났다고 했지만, 나는 죽이고 싶을 정도라니까.”

갑작스런 도훈의 고백에 은하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놀리는 얼굴은 아닌데…… 정말로 진심일까?

“나도 이젠 안 되겠어. 당신만 보면 터질 것 같은 이 마음을 더 이상은 숨길 수가 없어.”

당황해서 흔들리는 은하의 동공을 보며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다시 한번 말해줘? 내가 여은하를,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돼 버렸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은하는 어안이 벙벙해서 도훈을 마주 보았다.

혼자만의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니.

은하는 좋으면서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럼 그동안 왜…….”

“왜 그렇게 냉정하게 굴었냐고 묻는 거겠지?”

“네…….”

계약결혼이라서 감정이 개입되길 원치 않는다는 도훈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은하도 그의 말에 충실히 따르려고 했었고.

하지만 둘 중 한 명의 짝사랑이 아니라 둘 다 좋아하는 감정이라면, 굳이 은하의 마음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를 힘들게 하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은하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도훈을 보았다.

도훈이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대꾸했다.

“……겁이 났어.”

“……네?”

“우리 집이 좋은 본보기는 아니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일준의 여성 편력과 친모 혜련의 자살, 계모 선주의 히스테리까지. 그녀에게 창피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론 가장 큰 건 하늘식품과 엮인 세훈의 만행이었지만, 이건 지금 당장 말할 용기는 없었다.

이제 막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했는데, 조금만 더 그녀와 시간을 보낸 뒤에 말해도 되지 않을까.

도훈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후회될 일이 생길까 걱정도 돼.”

“…….”

“지금 내 선택이 당신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으니까.”

세훈의 일은 분명 은하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도훈을 원망할 수도 있었다.

은하가 힘들어하며 그를 원망할 생각을 하니 도훈은 벌써부터 마음이 아려왔다.

“아뇨,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은하는 단호하게 제 생각을 말했다.

“뭐가 됐든, 도훈 씨를 혼자 짝사랑하면서 힘든 것보다는…… 당신을 마음껏 사랑해도 된다는 걸 확인한 지금이 더 나으니까요.”

은하의 말에 도훈은 울컥 감정이 솟아오르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도 그래. 나도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뭐든 이겨낼 수도 있겠지.”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하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예뻐서 도훈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마음껏 안았으면 하는데.”

“네……?”

어떻게 얘기가 그리로 튀나 싶었나 보다. 은하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실은, 그동안 당신만 보면 안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거든.”

“도훈 씨…….”

도훈은 은하가 대답도 하기 전에 입술을 다시 포갰다.

이번에는 한층 더 야릇하고 격렬한 키스였다.

그동안 말 못 했던 감정이 봉인 해제되었기 때문일까.

도훈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은하를 몰아붙였다.

“하아, 하아.”

적나라한 거친 숨소리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뜨거워진 몸이 서로를 원하고 있었다.

도훈이 은하를 번쩍 안아 침실로 이동했다.

“우리 먼저 씻고…….”

“그럴 시간 없어. 얼마나 참았는데.”

도훈은 그 말을 증명하듯 은하를 침대에 뉘이고는 빠르게 옷을 벗겼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은하를 보자 도훈의 심장이 뻐근해졌다.

“너무 예뻐.”

“당신이 더 멋있어요.”

도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제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화보처럼 어울리는 명품 슈트와 딱 붙는 와이셔츠, 드로즈까지 모두 사라지고 마침내 도훈의 몸이 드러나는 순간. 은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안 그래도 큰 도훈의 그곳이 한층 강력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곳을 보기만 해도 은하의 양 볼이 터질 듯 빨갛게 물들었다.

“얼마나 참았으면…… 이렇겠어.”

“그…… 러네요.”

“그러니까 각오해. 오늘 밤엔 재울 생각이 없으니까.”

“실은…… 저도 기다렸어요.”

“응?”

“그때 병원에서…… 집에 오면 실컷 안겠다고…….”

“아…….”

도훈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병원에서 참지 못하고 내뱉은 속마음을 은하가 기억하고, 심지어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렇게 솔직한 여자를 봤나.

그러고 보니 은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했다. 제 감정에도 충실했고.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지?”

“네?”

은하가 말간 눈을 깜박이며 수줍게 도훈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도훈의 입매가 절로 올라갔다.

“너무 사랑스러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도훈 씨…….”

“사랑해. 사랑해, 여은하.”

몇 번을 말해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전하고 싶었다. 자신이 은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도훈의 마음에 화답하듯 은하도 속삭였다.

어느 때보다 황홀하고 충만한 두 사람의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도훈은 재우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을 이번에도 철석같이 지켜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몇 번이나 은하를 한계에 몰아붙였다.

그제야 은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기다렸다는 둥, 그를 도발한 듯했다.

도훈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은하를 안고 또 안았다.

결국 은하가 손사래를 치고 기절하듯 잠들고 나서야 도훈도 행위를 멈췄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의 여파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은하는 설레고 떨리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도훈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으니까.

그동안 속앓이를 하면서 참 힘들었는데…… 바보처럼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도훈은 밤새 그녀를 안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중요한 바이어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바빴던 일이며, 서영과 키스를 하게 된 것도 갑자기 일방적으로 당한 상황이었을 뿐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도훈의 입으로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외박을 할 정도로 바쁘다던 도훈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은하만 안고서 밤을 보낸 것도…….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풀어지기에 충분했다.

눈을 뜨고도 도훈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서 잠시 그의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도훈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은하를 돌아보았다.

“괜히 내가 깨웠군. 조금 더 자.”

그가 부스럭거려서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원망스럽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서 피곤이 가신 상태였다.

오히려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친 도훈을 보니, 잠을 거의 못 잤을 것 같았다.

“벌써 출근하셔서 어떡해요? 잠도 거의 못 주무셨는데.”

“걱정 마. 오히려 컨디션이 최상이야.”

도훈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정말로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몸이 좋아서 그런 걸까?

만약 그렇다면, 하리가 왜 그렇게 몸이 좋은 남자를 칭송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몸만 좋다고 다 그럴 것 같지 않긴 한데…….

그때였다. 도훈이 은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을 맞추며 말했다.

“회사에 가지 말라는 뜻인가?”

“네?”

“지금 내 몸 보고 있었잖아.”

은하가 깜짝 놀라 마른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그의 몸을 빤히 훑었던 모양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쳐다보면 또 안고 싶어져.”

“안 돼요. 더 못 해요.”

은하가 놀라서 작게 외치자 도훈이 픽, 웃음을 흘렸다.

“정말 안 되는 건가? 내가 애원해도?”

“네? 무슨 애원씩이나…….”

은하도 조금은 체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바쁜 도훈이 출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난처함에 입술을 말아 물 때였다.

“하긴, 너무 내 생각만 했군. 당신도 쉬어야 하는데. 그럼 다녀오지.”

도훈은 아쉬운 마음을 이마에 하는 뽀뽀로 대신하고는 출근을 했다.

은하는 밤새 안고도 모자라 출근하다 말고 또 하고 싶다며 자신을 자극하는 도훈의 정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정력을 가진 남자가 저에게 한 번만 해달라 매달리고 애원한다는 건, 은하에게도 즐겁고 짜릿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걸려온 선주의 전화 때문이었다.

-당장 본가로 와라.

선주는 전화를 받자마자 은하에게 명령하고는 끊어버렸다.

또 무슨 일일까. 어제 심부름을 제대로 안 해서……?

그래도 이런저런 정황상 은하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은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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