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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결혼-32화 (32/72)

32화.

[본부장님께서는 떡국을 좋아하십니다.]

떡국이라니!

만들이 어려운 음식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육수에 따라 맛이 달라져 입맛을 꼭 맞추기는 까다로운 음식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레토르트 국물을 사서 넣을 수도 없고.

은하는 그래도 정성이 최고라는 마음으로 소고기와 다시마, 멸치 등을 넣고 육수를 직접 끓였고, 계란 고명도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만들어냈다.

“이러니까 정말 신혼 같네.”

문득 도훈을 위해 요리하는 자신을 보자 진짜로 사이좋은 신혼부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어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정신 차리자, 여은하.”

은하는 얼른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뛰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제쯤 집에 도착하시는지 물어볼까?”

떡국은 너무 끓이면 풀어져서 맛이 없으니 도훈이 도착하기 직전에 떡을 넣고 바로 끓여 그릇에 담아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도훈이 나타났다.

아직 부엌도 엉망진창이고 무엇보다 아직 음식이 다 완성되지 않았으니, 은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할 때 메시지를 보냈는데. 못 본 모양이군.”

은하의 놀란 모습을 보고 도훈이 휴대폰을 가리켰다.

은하는 그제야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도훈으로부터 ‘30분 뒤 도착’이라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30분 전에 와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 부엌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저녁 먹자는 게 설마, 집에서 먹자는 거였나?”

“아, 네…….”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민망했지만,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오늘 오후 도훈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혹시,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도훈은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하더니, 알겠다고, 출발할 때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이제야 보고 만 것이다.

“제가 직접 떡국을 끓였거든요. 좋아하신다고 하기에.”

“그걸 어떻게 알았지?”

“박 실장님께 여쭤봤어요.”

“……그랬군.”

도훈은 기분이 이상했다. 떡국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잘 만들고, 좋아하시던 음식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떡국을 먹을 때면 늘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떡국뿐만 아니라 끼니때마다 받던 밥상에도 특별한 정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고용인들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도훈을 위해 특별히 정성을 쏟는 음식이 있을 리 없으니까.

본가에서 대가족으로 살면서도, 도훈이 늘 외로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은하가 도훈이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고, 그를 위해서 직접 준비한 음식이라니 당연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용인은 어디 가고 당신이 직접 한 거지?”

“실은…… 오늘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만 부르기로 했어요.”

은하가 뿌듯하게 대답했다. 나름 서프라이즈였다.

도훈에게는 고용인과 관련하여 처음에 상의한 이후 선주와의 상황 등을 따로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도훈은 놀라기는커녕 걱정과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은하에게 물었다.

“본가에서 정말 허락을 받았다고?”

“네. 제가 도훈 씨를 직접 챙기고 싶다고 하니까 어머니께서도 허락해주셨어요.”

은하가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도훈은 여전히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고생했네.”

도훈이 은하의 노력을 인정해주었다. 감시하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니 집이 한결 편한 건 사실이었고, 그건 모두 은하 덕분이니까.

“씻고 오세요. 금방 다 돼요.”

“그래.”

도훈의 칭찬에 은하는 기분 좋게 요리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도훈은 그 뒷모습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

은하의 떡국은 제법 그럴듯했다.

큼지막한 소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는 데다, 계란과 김도 고명으로 올라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직접 끓인 떡국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은하는 초조하게 도훈의 입만 바라보았다.

“제법인데?”

도훈이 제 앞에 놓인 떡국 한 그릇을 보고 감탄을 했다.

“맛이 좋아야 하는데…… 제가 정성껏 끓이긴 했어요.”

도훈은 은하의 기대에 부응하듯 국물부터 맛을 음미했다. 이후 떡까지 다 먹어 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맛있어.”

“정말인가요?”

“그래. 너무 잘 끓였어.”

정말로 맛있었다. 은하의 요리를 먹는 건 처음이었는데, 정성이 담겨서 그런가 더 따뜻하고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너무 다행이에요.”

은하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도훈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렇게 좋아?”

“네. 음식은 정성이라는데, 제 정성이 통한 것 같아서 좋아요. 제가 이제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릴 테니까 도훈 씨가 잘 먹고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은하의 말에 도훈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겨우 떡국 한 그릇을 다 비워 낸 다음, 도훈은 은하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

은하는 당황하여 잠시 망설이다 그의 곁으로 갔다.

도훈은 그녀를 안아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어머.”

놀란 은하가 도훈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의중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도훈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 영문을 모르는 은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도훈 씨, 얼굴이…….”

“조금 피곤해서 그래.”

도훈이 적당히 둘러댔지만 은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살펴보았다.

“많이 피곤하세요?”

“걱정하지 마. 금방 좋아질 거니까.”

하긴, 지금 은하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아니었다. 그녀가 걱정되는 마음을 감추고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그때, 도훈이 은하를 바짝 끌어안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밥 같은 거 안 해도 돼. 그냥 사 먹어.”

은하는 뜨거운 그의 입술에 흠칫 놀라면서도 문득 서운했다.

자신은 그를 위해서 뭐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는 싫었으려나.

“싫으세요? 제가 요리하는 거?”

“응.”

“아…….”

역시 싫은 거구나.

맛있게 잘 먹기에 좋아하는 줄 알았다.

“당신은 그냥 가만히 이렇게 있으면 돼. 아무것도 하지 마.”

“…….”

그렇게 말하면서 도훈의 입술은 계속해서 은하의 목덜미를 빨았다.

그저 몸만 원하는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뜻일까.

그런 생각을 하자 은하는 허탈해지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갑자기 신혼 흉내를 내며 행복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도훈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관계가 되기로 제안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럴게요, 그럼.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도훈은 은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녀의 몸을 탐하기 바빴다.

역시나, 도훈은 은하의 몸을 원하는 듯했다.

그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은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비록 몸만 원하는 관계라도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 행복하니까.

도훈의 손길에 따라 은하의 몸은 착실하게 뜨거워졌다.

금세라도 침대로 가서 그녀를 몰아붙일 줄 알았는데, 도훈은 그러지 않았다.

눈동자에 가득, 이채를 담고서도 그는 어느 순간 은하를 놔주었다.

“떡국이 너무 맛있어서 그만 내가 이성을 잃었네. 요리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나까지 괴롭히면 안 되지.”

혹시나 몸만 원하는 관계에 서운해하는 은하의 생각을 읽은 걸까.

평소답지 않은 도훈의 태도에 은하는 괜히 미안해졌다.

당신의 행동이 싫은 건 전혀 아닌데. 당신을 좋아하는 내 마음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힘든 건데.

은하는 결국 용기 내어 도훈에게 말했다.

“원하시면…… 해요.”

“뭐?”

“저도 하고 싶으니까요.”

“여은하…….”

“저도 당신 품에 안기는 게 좋아요.”

은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훈의 목을 끌어당겨 먼저 입술을 겹쳤다.

도훈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하가 먼저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은하는 당황해 굳은 그를 한껏 더 끌어안았다.

도훈에게 어떻게든 힘이 돼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혼란스러움을 이렇게나마 표현하는 중이었다.

“하아……. 당신은 정말.”

도훈은 결국 이성을 잃고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

너무 격정적으로 안았던가. 은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도록 조절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잘 안 됐다.

특히 오늘은 은하가 먼저 달려드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찔했다.

도훈은 은하가 해준 저녁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안고 싶어 미칠 정도로.

그래서 밥을 다 먹자마자 그녀를 무릎 위에 앉히고 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한 번이면 족했다. 굳이 자신을 위해 요리하며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곁에만 있어도 충분한데, 굳이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그걸 받을 자격도 없었다.

사실 오늘 도훈이 유독 심란했던 것은 바로 세훈의 일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 세훈에게 미행을 붙였는데, 은하의 외삼촌 찬우와 만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아본 바로는 찬우는 질이 나쁜 사람이었다. 세훈이 그런 사람을 이유 없이 만나진 않았을 터.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날 일이 뭐가 있을까.

세훈이 정말로 하늘식품과 관계가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도훈은 은하에게 면목이 없었다.

만에 하나, 은표의 사고까지 개입했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었다.

알고 보면 은하와 자신은 악연이었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은하를 볼수록 마음이 쓰려서 미칠 것 같았다.

도훈은 잠든 은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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