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겁도 없이 결혼-30화 (30/72)

30화.

은하는 순간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도훈 씨……?”

“푹 자고 일어났나?”

“분명…… 아까 나가지 않았어요?”

“나갔다가 중요한 미팅만 진행하고 오후 일정은 취소하고 일찍 들어왔어.”

“아니, 왜…….”

무엇보다 일이 먼저인 그인데, 갑자기 일정을 취소했다고 하니 은하가 놀라서 되물었다.

혹시나 어젯밤에 무리해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 싶어서 더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너무 일만 하는 것도 아닌 듯해서.”

“아…….”

평소의 은하라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내일까지는 일정 뺐으니까 그렇게 알아.”

갑자기 은하의 가슴에 먹먹함이 밀려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 일을 포기하고 시간을 냈다는 것이 좋은 건지, 남은 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은 건지.

어쨌든 내일까지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은하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정도로 좋았다.

“네. 알겠어요.”

은하가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참, 캐리어도 찾았어. 확인해봐.”

“……캐리어를요?”

은하는 도훈이 고갯짓을 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정말로 제 캐리어가 돌아와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마침 그쪽에서도 연락을 준 것 같더라고. 아침에 비행기로 받았어.”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못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은하가 캐리어를 열어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었으면, 오늘은 쇼핑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겠지. 어제 같은 옷을 또 입게 할 순 없으니까.”

도훈의 말이 사뭇 날카로워서 은하는 어젯밤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앞으로는 입지 마,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그냥 하는 말일 텐데, 이런 것에 자꾸 신경 쓰면 안 되는데…….

“그럼 천천히 준비해. 오늘은 당신이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할까 하니까.”

“네…….”

은하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낸 뒤 대답했다.

도훈은 일할 때 못지않게 노는 것도 완벽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은하는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이 도훈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유명한 쇼를 여러 가지 보고, 외곽으로 나가 관광도 하고, 나중에는 카지노와 쇼핑센터도 들렀다.

그는 그렇게 낮시간을 보낸 뒤, 밤에는 또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은하를 안았다.

이제 결혼도 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오히려 임신을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도훈의 말에 은하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의 아침은 하루도 빠짐없이 후끈하게 시작했다.

“읏…… 읍.”

은하는 아차 싶어서 손으로 입술을 가려 겨우 소리를 막았다.

“그냥 뱉어.”

그때까지 은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껏 침을 묻히고 있던 도훈이 마치 그녀의 행동을 본 듯이 말했다.

은하는 여전히 터져 나올 듯한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어요. 아주머니 밖에 계시잖아요.”

은하가 최대한 숨죽이며 대답했다.

도훈은 제 입으로 한 말은 정말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고용인 아주머니는 아침밥을 일찍 차리기 위해 오전 5시면 집으로 오는데, 도훈 역시 그때부터 은하를 탐하는 중이었다.

그의 말대로 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도 보여주고, 시도 때도 없이 할 정도로 뜨거운 신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의 기상 시간은 6시였지만 이런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을 한 시간이나 당기기까지 했다.

결혼 전에 같이 지낼 때는 그래도 조심하더니, 결혼을 하고 합법적인 부부가 되자 눈치 보지 않고 매일 아침 그녀를 탐하는 중이었다. 고용인은 이 이야기를 선주에게 빠짐없이 전할 테니까.

도훈은 그렇게 오전 5시면 정확하게 일어나 은하의 몸 위로 타고 올라왔고, 그렇게 두 사람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보여주기식이라도 너무 대놓고 소리가 흘러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운 은하는 밖에 사람이 있다는 자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잠깐이었다. 그럴 때마다 도훈은 그녀의 가장 연약한 부위를 골라 공략하며, 결국 두 손 두 발 들게 만들었다.

“들으라고 하는 거라니까?”

“하지만 저는…… 읏…….”

“그러면 할 수 없지.”

도훈의 의기양양한 목소리에 은하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도훈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도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씩 웃으면서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얼굴을 내렸다.

“도훈 씨, 거기는 제발…….”

섹스를 할 때마다 도훈이 빠지지 않고 해주는 행위인데도 은하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너무 생경한 감각이라 흥분됐고, 아래가 꽉 조여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으으윽. 하윽.”

역시 이번에도 항복이었다. 은하의 뜨거운 신음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지자, 그제야 도훈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

“아침 밥 다 됐습니다.”

몇 번이나 절정에 올랐다가 씻고 나오니 고용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도 무뚝뚝하고 은하를 무시하는 듯 살갑게 대하지 않는 아주머니였기에, 은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도 불편했다.

오늘따라 하필 평소보다 심하게 소리를 질러서 더 민망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끄러워할 순 없었다. 그래도 이 집의 주인은 도훈과 자신이고, 민망하긴 해도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건 아니기에.

그래서 부끄러움은 감추고 여유롭게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나저나 내일은 아침 일찍 못 올 것 같네요.”

“네? 왜요?”

“본가 사모님께는 미리 말씀드렸는데, 또 말씀드려야 해요?”

아주머니는 은하가 묻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은하가 황당해서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저희 집에 오시는 분이신데, 어머님이 아니라 제가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저는 그분 말만 들어서요. 듣고 싶으면 그분에게 직접 말씀하세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용인은 선주만 믿고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결혼 전에 같이 살 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은하가 이 집 안주인이 되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출근 시간을 오전 5시로 당긴 대신 한두 시간만 일하고, 오전 7시 정도면 퇴근해 버렸다. 그러고는 오후에 불쑥 오는데 사소한 것부터 모든 게 제멋대로였다.

이르게 출근하는 도훈의 아침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오지만, 나머지는 다 선주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정작 은하가 필요할 때는 도움 받질 못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또 불쑥불쑥 나타나는 불상사가 생기곤 했다.

아마 선주는 그런 불편함으로 생기는 불화를 노리는 걸 테지만, 은하는 더 이상 참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시간제한 없이 수시로 집안을 드나들며, 사용인의 물건을 만져대는 고용인이라니.

안 그래도 도훈과 은하의 일상을 시시콜콜 보고한다 생각하면 소름 끼치게 싫은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을 것 같았다.

고용인이 나가고 나자 허탈해진 은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출근하는 도훈의 시중을 들었다.

“아침 밥 다 준비됐어요. 식사하세요.”

“생각 없어. 당신은 잘 챙겨 먹어.”

“오늘도 식사 안 하시게요?”

“응.”

도훈은 고용인 아주머니가 차리는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은하도 그런 도훈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작은 약점이라도 찾아서 갖다 바치려고 혈안이 돼 있는 고용인이 해주는 음식이 맛있을 리 없을 테니까.

이내 결심이 선 은하가 도훈에게 말했다.

“저, 도훈 씨.”

“응?”

“고용인 아주머니 말인데요. 오는 날짜를 줄이거나 아예 들이지 않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셔츠의 단추를 채우던 손이 멈칫하더니 도훈이 은하와 눈을 맞춰왔다.

“많이 불편했나 보군.”

도훈은 그녀의 고충을 이해했다. 자신은 오래된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은하에게까지 양해해달라고 강요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아침마다 울렸으니, 더 싫었을 테고.”

“네? 아니에요. 그건 하나도 안 싫었어요. 정말이에요.”

말하고 나니 아차 싶은 은하가 얼굴을 구겼다. 양 볼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솔직히 그에게 안길 때마다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더 걱정이었다. 이렇게 그에게 젖어 들까봐.

그런데 제 입으로 대놓고 싫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도훈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군. 고용인 문제는 내가 말해 보지.”

“아뇨. 제가 얘기해볼게요.”

“당신이?”

도훈의 눈썹이 위로 들렸다. 무모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도훈 씨는 핑계가 없었지만, 이제 제가 있잖아요. 제가 바깥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살림을 배워보겠다고 하면 얼굴 붉히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리 무난히 해결되는 건 은하의 바람이었지만 아예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야.”

“일단 해볼게요. 이제 정식으로 당신의 아내가 됐으니 이 정도 요구쯤은 해도 될 것 같아서요.”

도훈이 나서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훈의 말대로 선주의 감시가 더 커질 수도 있고.

그러니 은하가 좋게 말해 보는 게 최선일 수도. 선주가 그 말을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만.

은하의 제법 강단 있는 태도에 도훈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무리하지 않도록 해.”

“네.”

은하가 미소로 대답했다. 도훈이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그와 부부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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