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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결혼-22화 (22/72)

22화.

로비를 가로지르던 은하는 도훈을 바로 알아보았다.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은하가 걸어가던 중 도훈이 고개를 들어 시선이 마주쳤다. 은하는 머쓱해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꾸몄다고 하면 어쩌지…….’

그동안 잘 꾸미고 다니지 않은 데다 상견례라고 너무 과하게 꾸몄나 싶어 갑자기 자신감이 훅 떨어졌다.

그사이 도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은하를 맞이했다.

“도훈 씨…….”

마침내 그의 앞에 도착한 은하가 작게 그를 불렀다.

도훈은 그때까지도 은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은하가 민망함에 얼굴이 발그레해질 무렵 도훈이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일단 차로 가지.”

“아, 네.”

예쁘다는 말까진 아니어도 뭔가 다른 말이라도 기대했는데.

도훈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그와 자신은 계약관계일 뿐인데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잘못인지도 몰랐다.

은하는 실망감을 애써 누르며 그를 따라 자동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서도 도훈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긴 침묵이 어색하기도 하고, 그가 골라 준 옷에 대한 품평이 전혀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설마, 안 어울리는 건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을 구기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럴지도…….

은하가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해하고 있는데 도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옷이 잘 맞는군.”

또다시 멋대로 생겨난 기대감 때문일까, 은하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

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이즈가 잘 맞더라고요.”

“그렇겠지.”

도훈이 작게 맞장구를 쳤다. 몇 번이나 안은 그녀의 몸이니까 대충 어림잡아도 맞았을 터였다.

“감사해요. 바쁘신데 챙겨주시고.”

“앞으로는 옷을 고를 때 조금 더 신중하도록 하지.”

“네? 아, 네…….”

설마 했는데, 도훈은 정말로 옷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도훈의 눈에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터라,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도훈의 말이 이어졌다.

“짜증 나더라고.”

“……네?”

“사람들이 당신을 쳐다보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도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은하가 눈을 깜빡였다.

“당신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다음부터는 반드시 감안해서 고르도록 하지.”

사실 도훈은 로비에서 은하를 봤을 때 꽤 충격을 받았다.

은하가 예상보다 너무 예뻐서.

그래서 잠시 넋을 놓고 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은하를 쳐다볼 때마다 왜 이렇게 싫은 건지, 저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서 일단 차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은하의 외모를 눈에 띄게 만드는 옷은 선물하지 않겠다고.

도훈은 그렇게 심기가 불편한 반면, 은하는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도 도훈의 말에 은하의 심장이 속절없이 쿵 하고 떨어졌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은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예쁘다’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으니까.

은하는 도훈의 눈에도 자신이 예뻐 보인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고 좋았다.

***

찬숙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꾸민 채로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찬우에게 들은 말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평소 성격대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찬우가 잘된 거라고 했잖아. 쫄리는 거야 제일그룹일 테지.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기만 하면 돼.’

찬숙은 사교모임에서 본 선주를 떠올렸다. 아무리 후처여도 현재 제일그룹 안주인이니 모임 안에서도 핵심 인물이었다. 찬숙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그렇다고 선주는 먼저 다가오는 사람도 아니었다. 얼마나 새침하고 도도한지. 재벌가 사모님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선주가 뒤로는 아들과 함께 그런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니 정말로 이 결혼으로 가슴 졸일 사람은 선주와 세훈이었다.

앞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물론 은하는 상견례 날까지 재수 없게 굴고 있지만.

“도대체가, 어른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찬숙은 운전기사가 듣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구시렁거렸다.

은하는 찬숙이 집을 나서기 한 시간 전, 전화를 걸어와 도훈의 본가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은하랑 같이 다니는 건 찬숙도 싫었기에 상관없긴 했지만, 오늘 상견례에 찬숙이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무심한 태도가 짜증이 났다.

‘제일그룹만 아니었어도, 그냥 확 병태에게 시집보내는 건데.’

사돈이 제일그룹이라서 받아먹을 게 많은 건 좋으면서도, 은하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결혼을 취소하고 싶은 게 찬숙이었다.

조건이야 병태가 도훈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시집을 잘 가면 은하의 콧대가 더 세지는 게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나름 지방에서 영향력이 크다는 병태와도 사이가 완전 틀어져 곤란한 상황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사모님.”

찬숙은 은하의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을 되새기다가 운전기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시간 맞춰 도훈이 차를 보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화가 더 머리끝까지 났을 터였다.

“여긴가요?”

“네, 사모님. 내리시죠.”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찬숙은 최대한 교양을 갖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만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높다란 담벼락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밖에서만 봐도 집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고급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집은 대체 얼마나 할까.’

돈을 밝히는 찬숙은 커다란 저택의 위용에 감탄하면서 집 가격부터 가늠해 보았다.

이런 집은 10억은커녕, 100억이 있어도 못 살 것 같았다.

찬숙이 그렇게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뒤에서 또 다른 자동차가 다가왔다. 딱 봐도 찬숙이 타고 온 차보다 좋은 차였다.

혹시나 제일그룹 사람들인가 싶어서 긴장하며 자동차를 보는데, 잠시 후 차에서 은하가 내렸다.

“오셨어요?”

찬숙은 집을 볼 때보다 더 놀란 눈으로 은하를 보았다.

당장 제일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게 찬숙의 심기를 건드렸다.

달라진 메이크업과 헤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옷이며 가방이며, 심지어 구두까지 죄다 명품이었다. 그것도 최상위 브랜드. 다 합치면 자동차 한 대 값은 족히 나올 것 같았다.

찬숙도 명품을 들긴 했지만 은하가 들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찬숙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은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이게 도대체……?”

“네?”

은하는 찬숙이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라 이마에 가늘게 주름을 새겼다.

“너 이러려고 따로 오겠다고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 혼자만 싹 꾸미고 나타나니까 좋냐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오늘 좀 늦어서 도훈 씨가…….”

“아무리 부잣집 남자를 꼬셔서 결혼한대도 그렇지. 결혼도 하기 전에 남자한테 명품이나 받아 챙기고. 이 집에서 뭐라고 하겠니? 우리 형편에 너 이렇게 명품으로 치장한 거 보면, 말이 좋아 연애지. 돈 보고 달려든다 안 하겠어?”

찬숙이 짜증을 부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자신을 태워 온 운전기사와 은하를 데리고 온 영태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하의 잘못을 꾸짖음으로서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찬숙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녀는 옷에도 관심 없고 명품도 잘 모르기에,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떤 브랜드인지도 알지 못했다.

도훈이 박 실장을 통해 선물해준 옷을 입었을 뿐이니까.

메이크업과 헤어 손질도 전문가를 직접 호텔로 보내줘서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그런데 마치 꽃뱀 취급하듯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고 도훈의 본가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울 수도 없는 일.

은하는 뭐라고 대꾸해야 억울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조용히 넘어갈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은하가 내렸던 자동차에서 도훈이 내렸다.

찬숙이 아차 싶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본부장님이 왜 거기서……?”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급하게 통화할 일이 있어서 은하 씨가 먼저 내렸습니다.”

도훈이 차분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가 막 도착한 뒤 도훈에게 업무 전화가 걸려왔고, 은하가 찬숙을 보고 먼저 내린 것이다.

“그런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 상견례 때문에 제가 따로 준비하게 한 건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찬숙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은하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렇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뒤늦게 은하가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할 새도 없이 저를 몰아붙이신 건 어머니세요.”

“그거야…… 니 꼴이 기가 막혀서잖니.”

찬숙은 기분이 팍 상했지만, 도훈까지 있는 마당에 더 큰 소리를 낼 순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읊조리고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타 도훈이 천천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여자 제가 꾸민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이 정도 가격은 고가도 아니고요.”

도훈의 말에 찬숙은 속으로 배가 아파 부글부글 끓었다.

“다들 예쁘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도 오늘 은하 씨가 너무 예뻐서 눈을 못 떼겠거든요.”

도훈이 은하의 허리를 끌어당겨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은하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만 보면 정말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 같았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도훈이 은하의 허리를 감싼 채로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찬숙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별다른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겁도 없이 결혼]

출판등록|2021년 5월 27일 (제2021-000014호)

주소|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36 B동 710호 (신내동)

전화|02)906-7768 / 팩스|02)906-7769

값 100원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와이엠북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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