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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결혼-1화 (1/72)

1화.

딸깍.

제일호텔 스위트룸의 침실 문이 뒤에서 닫히자마자 도훈이 은하를 세게 밀어붙였다.

포개진 입술 사이로 들어온 뜨겁고 말랑한 살덩이가 은하의 입 안을 헤집고 희롱했다.

“하아.”

은하의 입에서 절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넓은 침대를 앞에 둔 채 문에 기대서서 하는 키스는 너무나 색정적이고, 말도 안 되게 황홀했다.

키스뿐이던가.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잊고 있었던 5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에게 매달렸던 황홀한 밤.

두근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앞으로 그와의 결혼생활을 버틸 수 없다.

은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제게 바짝 붙어 있는 도훈을 겨우 밀어냈다.

“자, 잠깐만요.”

“왜, 이제 와 돌이키고 싶은 건가?”

도훈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입매가 무척이나 섹시했다.

하지만 은하는 이내 고개를 털어 그런 생각 따위 집어치워 버렸다.

임신을 전제로 하는 이 계약결혼에 마음을 뒀다가는 자신만 상처 입을 테니까.

“아뇨.”

“그러면 뭐가 문제지?”

“조금만, 천천히 해요. 어차피 밤도 긴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그가 너무 치명적이라서.

이대로 몸을 섞어버리면 감정이 묻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는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말이야.”

하지만 도훈은 단박에 거절했다. 마치 은하의 속을 들여다보듯.

그러고는 은하가 입은 가운을 순식간에 열어젖히고, 그녀의 뽀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흣.”

불시에 들이닥친 감각이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혀가 그녀의 정점을 희롱할 때마다 자꾸만 호흡이 거칠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치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머리는 아니라고 하는데 몸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긴장 풀어. 처음도 아니잖아.”

“아…….”

도훈의 느릿한 음성이 은하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와 동시에 은하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의 입바람이 귀에 닿자마자 생소한 감각에 절로 입술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은하의 몸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어디를 만져주면 좋아하고, 어디에 반응하는지.

한층 깊어지고 섬세한 손길로 그녀를 어루만졌다.

“흣, 이봐요.”

“이봐요가 아니고 최도훈.”

“그래요……. 도훈, 으읏.”

끝내 이름조차 다 뱉지 못하고 신음을 삼켰다.

은하는 곤욕스러웠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이 잘게 떨렸다.

심지어 그의 손가락이 연약한 속살을 파고들 때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에,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기대어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5년 전 딱 한 번 그의 품에 안겼을 뿐인데, 그의 손길에 이렇게나 반응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하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훈은 그런 은하를 놀리듯 더 아래로 입술을 놀렸다. 가슴에 빨갛게 자국을 남긴 입술은 명치를 지나 배꼽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침, 침대로 가요.”

은하가 이제 한참이나 아래에 있는 도훈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애원했다. 이대로는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싫어.”

“도훈 씨, 제발.”

하지만 이번에도 은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도훈의 입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또다시 입술이 삼켜졌다. 이번에는 먼저보다 더 강렬하고 센 자극이었다.

***

은하가 도훈을 다시 만난 건 불과 두 시간 전의 일이었다.

두 시간 전, 몸매를 드러내는 베이지색 원피스에, 웨이브를 넣은 풍성한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은하는 제일호텔 앞에 서 있었다.

최도훈.

이름도 모른 채 뜨거웠던 하룻밤으로 기억하던 남자. 그동안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를 제 발로 다시 찾아오다니. 은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뻔뻔하고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옷차림으로.

은하는 쇼윈도에 비친 제 옷차림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래봤자 목과 가슴이 조금 파인 넥라인에 몸에 붙는 무난한 디자인의 원피스일 뿐이었다.

남들이 봤을 땐 무난할지라도, 은하는 이런 옷차림마저 늘 거부하며 살았다. 남자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남자들의 야릇한 시선을 많이 받았던 은하는 자연스레 몸매를 가리는 옷을 많이 입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마음에 들고 싶었기에 제 손으로 골라 입은 옷이었다.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도 살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날 기억 못 할지도 몰라.”

은하는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하룻밤 인연이었다. 잘생기고 몸도 좋은데, 집안까지 좋다면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을 터.

스쳐 지나간 자신을 기억한다는 게 큰 착각일지도 몰랐다.

만약 기억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고.

“그래. 할 수 있어, 여은하!”

은하는 당당하게 굴기 위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색하긴 했지만 영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몇 번 더 웃는 얼굴을 연습한 뒤, 은하는 문을 열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도훈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를 몰랐다고 해도 큰 키와 남다른 체격, 화려한 이목구비가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다.

쌍꺼풀 없는 큰 눈, 오뚝한 코. 그리고 갸름한 얼굴을 더욱 잘 살려주는 분명한 턱선과 선홍빛 입술.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분위기까지 갖췄던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적수가 없는 그의 외모가 은하를 숨 막히게 했다. 마치 5년 전처럼.

“최도훈 씨.”

마침내 도훈 앞에 선 은하가 그를 나직이 불렀다.

도훈이 돌아보자 은하는 연습한 것처럼 입꼬리를 당겨 웃고는 앞자리에 앉았다.

“진성우 씨 소개로, 오늘 만나기로 한 여은하예요.”

“…….”

잠시 넋이 빠져 보고 있던 도훈은 그녀의 소개에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은하를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하지만 은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훈을 빤히 보며 웃었다. 마치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처럼.

도훈이 오른쪽으로 꼬았던 다리를 왼쪽에 갖다 얹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랑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는 사람이…… 당신?”

“네, 맞아요.”

도훈은 자꾸만 웃음이 났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이렇게까지 속을 모르겠는 여자도 처음이고.

결국 도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차피 돌려 말하는 자체를 못 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이유가 뭡니까?”

“네?”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나를 만나고 싶어 한 이유.”

오늘 자리에 나오기까지 친구 성우가 며칠을 졸랐다. 널 보고 싶어 하는 여자가 있는데 한 번만 만나보라고.

나이 서른둘에 소개팅을 할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여자를 만나야 할 만큼 매력이 없지도, 여자에 몸이 달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결혼문제 때문에 안 그래도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계속 거절했지만, 성우가 회사까지 찾아와 안달을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응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5년 전 그 여자를 만날 줄이야.

‘나랑 자고 싶어요?’

‘난 그쪽이랑 자고 싶어요.’

천연덕스럽게 자신에게 자고 싶다고 말하던 여자.

‘나를 보고 침 안 흘리는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거든요.’

‘겉만 보고는 모르지. 참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그러면 안 참으면 되겠네.’

결국 잠자고 있던 제 안의 욕망을 끄집어내 활활 태워버린 여자.

그러고는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

그런데 그 여자가 이렇게 다시 눈앞에 나타나 말간 얼굴로 자신을 만나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찾아다닐 땐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더니.

“좋아요.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은하가 당황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표정을 평온한 척 꾸미고는 대답했다.

딱 봐도 감정을 속이는 데 능숙한 여자였다.

타고난 건지, 훈련된 건지.

그럼, 그날의 황홀한 신음 소리도 거짓이었으려나.

하긴 하룻밤 관계에 진심이 어디 있으랴. 오히려 그렇게 떠날 줄 몰랐던 자신이 순진했던 걸지도.

그렇게 조소하면서도, 몸은 어김없이 반응했다.

벌써 5년이나 지났건만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이랬다.

제 아래서 쾌락에 젖어가던 눈빛, 저를 유혹하던 유려한 몸짓이 여전히 생생하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미쳤지, 최도훈.’

도훈이 정신을 차리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미 하체로 몰린 피는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때였다.

“최도훈 씨,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는 그녀는 정말로 브레이크 없이 훅 들어와 버렸다. 말해놓고는 진심이라는 듯 입술을 꾹 다문 모습도 어이가 없었다.

“하하.”

은하의 도발에 도훈이 낮게 웃었다.

결혼이라니? 이 여자가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시험하는 건가? 그날 밤 몹시 흥분했던 내 모습을 볼 때, 5년이나 지났어도 결혼하자고 하면 덥석 달려들 거라는 마음으로?

얼마나 나를 만만히 봤으면 이럴까.

불쾌함에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도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전자든 후자든 그녀와 다시 마주하는 지금을 왠지 즐기고도 싶었다.

그래서 황당한 표정으로 빤히 보고 있자니, 은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아예 선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운 거 알아요. 절 언제 봤다고 결혼이냐 싶기도 하겠죠.”

“그건 아니고.”

“네?”

“우리 봤잖아요. 라스베이거스에서.”

“…….”

“그것도 밤이 새도록 침대에서 서로 좋다고 물고 빨고 했는데, 기억 안 나요?”

도훈의 능글맞은 대답에 은하는 입을 다물었다.

[겁도 없이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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