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 마탑의 그림자 (2) (18/20)

검을 든 기사는 오늘도 웃는다

4

진주하 장편소설

목차

15. 마탑의 그림자 (2)

16. 대미궁

외전

15. 마탑의 그림자 (2)

연구실로 돌아온 5장로는 데리고 온 리즈와 라이카를 바닥에 널브러뜨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두 사람의 목에 바늘 자국이 나 있었다.

5장로는 재빨리 마법으로 두 사람의 몸 상태를 스캔했다.

“쯧, 마비 독에 당했군.”

두 사람을 마물화시키는 데 성공은 했지만, 독에 대한 내성은 약했다.

5장로는 연구실 한편에 놓인 장식장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유리병에는 검은색의 환이 들어 있었다. 마비를 풀어주는 해독환이었다.

두 개의 환을 꺼낸 5장로는 두 사람의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마비가 풀릴 것이다.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5장로는 연구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그만의 비밀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 마법진이 있었다.

이동 마법진을 통해 비밀방으로 들어간 그는 그곳에 놓인 통신구를 켰다.

잠시 후, 통신구가 빛을 발하며 한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다. 하얀 가면을 쓴 여인이었다. 통신구 속 여인이 말했다.

[내게 통신을 한 것을 보면,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줄 모양이군요.]

“클클클, 물론이지요.”

5장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영상구 하나를 꺼내 재생시켰다.

영상구에 재생된 장면은 레오나와 시엘이 흙 속에 파묻히는 장면이었다.

[역시 그녀는 제가 생각했던 인물이 맞았던 모양이군요.]

“제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처리했습니다.”

[확실히 처리한 것이겠지요?]

“물론입니다. 저 마법을 발동시키면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클클클.”

5장로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두 눈 속에 감춰진 욕망이 드러난 것이다.

예상대로 그는 원하는 보상을 받게 되었다.

[수고했어요. 보상으로 마정을 드리죠.]

“클클클, 고맙게 받겠습니다.”

마정을 받을 생각에 5장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통신이 끝나고 5장로는 즐거운 얼굴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사이 마비가 풀렸는지 리즈와 라이카가 기립한 채 서 있었다.

“마비가 풀린 모양이군.”

5장로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만 가봐라.”

두 사람은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연구실을 나갔다.

* * *

메리벨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 눈으로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리벨은 리즈와 라이카가 레오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도 메리벨은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세 사람이 마탑 밖에 있는 수련의 숲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불길한 예감에 메리벨은 기척을 죽인 채 세 사람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다행히 세 사람은 자신이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숨을 죽인 채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

5장로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레오나를 죽이려 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순간 이동 마법을 이용해 도망쳤다.

그게 신의 한 수였는지, 그녀가 도망친 뒤 수련의 숲이 뒤집혔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리즈와 라이카는 5장로의 제자다. 5장로가 레오나를 공격했다는 것은 리즈와 라이카도 레오나를 적으로 간주했다고 봐도 좋다.

‘셋이 친구가 된 게 아니었어?’

리즈와 라이카가 레오나와 친하게 지내려는 모습이 처음부터 이상했다.

리즈와 라이카를 만나봤을 때도 그냥 단순히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그런 감정인 줄 알았다.

‘그게 정말 아니었단 말이야?’

대체 왜?

‘설마, 5장로가?’

5장로가 레오나를 눈엣가시로 여겨서 리즈와 라이카를 이용한 것이라면 말이 된다.

메리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련의 숲을 바라보았다.

‘리즈, 라이카…….’

미운 맘이 강하게 들긴 했지만, 레오나가 마법의 여파에 휩싸여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도와주어야 하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자신의 모습이 메리벨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시 가봐?’

메리벨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을 거야.’

이미 마법은 발동된 상태였고, 숲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마탑 근처에서 이러한 큰일이 발생하였는데 탑주는 물론 다른 장로들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리즈와 라이카가 5장로에게 이용당해 레오나를 해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메리벨은 적잖이 놀랐다.

‘그렇게 착했던 얘들이 그런 일을…….’

그런 아이들을 5장로가 망쳐놓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 봤자, 이미 5장로에게 물들어 버린 두 사람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이미 늦은 걸지도…….’

메리벨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친구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으면…….’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 *

망가진 숲을 바라보며 아델라는 혀를 찼다.

“쯧쯧, 요란하게도 했군.”

손을 뻗은 아델라는 마력을 방출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방대한 마력이 파훼된 마법진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망가진 마법진이 복구되며 숲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숲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손을 내린 아델라는 기다리고 있을 제자에게 향했다. 예상대로 레오나는 위기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가 레오나를 도와준 모양이었다.

아델라는 기감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채고 탑주의 방에서 나와 레오나와 5장로가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장로가 레오나를 공격했고, 아델라는 5장로가 흑마법사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와줄 수도 있었지만, 지켜보았다. 레오나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아델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레오나라면 충분히 위기에서 벗어나고도 남을 것이라 믿었다.

예상대로 레오나는 훌륭하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뒷수습은 늘 스승의 몫이지.”

빙그레 미소를 지은 아델라는 레오나에게 다가갔다.

레오나는 아델라의 기척을 느끼고 시엘을 보았다.

시엘은 피식 웃더니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다.

술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라는 말이었다.

“정말 귀신같은 자로구나.”

“귀신보다 더한 자죠.”

레오나가 진지한 얼굴로 아델라를 보았다.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도와주지 않아서 서운한 것이냐?”

레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널 믿었다.”

레오나는 아델라가 믿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네가 보기에 5장로가 확실한 것 같으냐?”

“아마도요. 리즈와 라이카에게서 미세하게나마 흑마법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리즈와 라이카라면 탑의 수습 마법사들이로군.”

아델라는 탑에 상주하는 모든 마법사의 신상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들은 탑을 이끌어가는 자들, 탑주로서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델라는 그들 모두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모르는 척하거라.”

“조금 더 지켜보실 생각이십니까?”

아델라의 시선이 높게 솟아오른 탑으로 향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이라면 기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탑 안의 마법사분들은 괜찮은 건가요?”

아델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 게다. 위기일수록 강한 것이 마탑의 마법사들이니까.”

레오나는 착잡한 시선으로 마탑을 바라보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 마탑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레오나.”

“예, 스승님.”

“돌아가면 메리벨과 이야기를 해보거라.”

“메리벨은 왜?”

레오나가 의아한 얼굴로 아델라를 보았다.

“메리벨이 다 지켜보았더구나.”

레오나의 금빛 눈이 커졌다.

“메리벨이 현장에 있었단 말입니까?”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누군가 있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아이는 다 본 것 같더구나. 충격이 클 게야.”

정말 그랬다면, 5장로와 리즈, 라이카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아델라의 얼굴이 처음으로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렴.”

“정말로 메리벨이 신분이 미천해서 장로들이 제자로 받지 않은 것입니까?”

아델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게 말해줘도 되겠지.”

레오나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아델라를 보았다.

“그 아이의 부친 때문이다.”

뜻밖이라는 얼굴로 레오나가 아델라를 응시했다.

“그 아이의 부친은 마탑의 마법사였다. 3장로의 제자였지. 그리고 배신자였다. 3장로의 연구를 타국에 빼돌렸거든.”

이야기는 이렇게 되었다.

배신에 치를 떤 3장로는 배신자를 추적했고, 배신자가 타국에 망명해 가정을 꾸려 살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배신자는 결국 타국에서 누명을 쓰고 죽었다. 3장로가 제자를 통해 찾아냈을 땐 이미 죽은 후였던 것.

해서 3장로가 보낸 마법사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던 그의 딸을 마탑에 데리고 왔다.

죽어서도 그자가 자신의 딸의 불행을 보길 바라서는 마음에서.

부모 간의 원한으로 인해 메리벨은 마탑에서 불행을 겪게 된 것이다. 메리벨이 조금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주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시면서, 묵인하신 건가요?”

“그자가 3장로에게서 훔쳐간 연구는 마탑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3장로의 분노를 비롯해 마탑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그렇기에 3장로의 분노는 정당했고, 탑주인 아델라는 묵인했다.

“그럼, 계속 메리벨은 수습으로 남아 있게 되는 건가요?”

“그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대성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즉, 그녀가 스스로 딛고 일어서서 훌륭한 마법사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면 마탑에서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일단, 메리벨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자리로 돌아가야겠구나.”

두 사람은 다시 마탑으로 돌아갔다.

* * *

레오나와 만남을 뒤로하고 시엘은 곧바로 아스텔을 찾아갔다.

아스텔을 만나기로 한 곳은 함께 술을 마셨던 주점이었다.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아스텔이 바 앞에 앉아 시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간 시엘은 아스텔의 옆에 앉더니, 그가 들고 있던 잔을 빼앗아 벌컥 마셨다.

“기분 좋게 돌아온 걸 보면, 그녀는 무사한 모양이군.”

“제때 도착해서 무사했지.”

지금 생각도 아찔한 기분이었다.

“대체 데미안 그 양반은 무슨 생각으로 레오나를 거기로 보낸 건지 모르겠네.”

“믿고 신뢰하는 수하라서?”

“그렇다고 그런 사지로 혼자 밀어 넣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그건 수하를 아끼는 게 아니라 굴리는 거다.

“어쩔 생각이야?”

“뭘?”

“레오나를 저대로 둘 거냐고.”

“네가 좀 지켜봐.”

“쳇, 그럴 줄 알았다.”

아스텔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파편 찾는 건 어떻게 되어 가냐?”

대수롭지 않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심각했다.

“흔적을 찾았어.”

“잘 됐군.”

잘 된 사람치고는 아스텔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표정이 왜 그래. 기뻐야 하는 거 아닌가?”

“대미궁이야.”

“뭐?”

이번엔 시엘도 깜짝 놀랐다.

아스텔이 말을 이었다.

“흔적이 대미궁으로 이어졌어.”

순간 시엘은 할 말을 잃었다.

대미궁은 대륙에서 3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으로,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다는 전설적인 미궁이다.

“어쩔 생각이야.”

“그쪽은 잠시 놔두고 일단은 나머지 파편을 찾고 있어.”

“잘 생각했어. 내가 생각해도 대미궁은 너무 위험해.”

그 말에 아스텔이 피식 웃었다.

“네가 몸을 사릴 정도면 정말 위험한 곳이긴 하지.”

“그걸 알면 그쪽은 접어둬. 저쪽에서도 대미궁에 대해 알게 되지 않겠어?”

“그래, 알게 되겠지.”

“일단은 저쪽에서 대미궁을 어떻게 할지 지켜보자고.”

아스텔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시엘을 보았다.

“네 입에서 그런 신중한 말이 나올 줄은 예상 밖이군.”

“날 대체 뭐로 보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 되게 신중한 사람이야.”

아스텔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인정하지.”

“네놈의 인정 따윈 필요 없어.”

시엘은 앞에 놓인 술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난 간다.”

시엘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주점에서 사라졌다.

아스텔은 빈 술잔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스텔의 예상대로 2황녀 비비안은 수하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하 궁전에 나타난 수하는 파편에 대해 보고했다.

“파편의 흔적이 대미궁으로 향했다고?”

“예, 주인님.”

대미궁.

세계의 3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미스터리한 곳이다.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다는 미궁.

그곳에 엄청난 보물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 수많은 모험가가 대미궁으로 향했지만,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미궁에 대한 정보는 극히 드물다. 언제, 어떻게, 왜 생겼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비밀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세계를 침공한 마왕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설, 드래곤이 만들어 놓은 레어라는 등, 별의별 이야기가 다 떠돌고 있다.

정확히 그곳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필이면, 대미궁이라니. 다른 단서는 없어?”

수하가 고개를 저었다.

비비안은 미간을 좁혔다.

“결국,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미궁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고, 무사히 파편을 찾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인력만 손해 볼 수도 있다.

“골치 아프게 되었어.”

2황녀 비비안은 부복한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너는 다른 파편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해. 대미궁에 대해선 내가 생각 좀 해볼 테니까.”

“예, 주인님.”

“가봐.”

수하가 모습을 감추자, 비비안은 왕좌로 걸어갔다.

이곳에 파편들이 모이면 마왕 벨지안이 부활한다.

비비안은 마왕 벨지안이 앉게 될 의자를 손으로 쓸었다.

“당신을 만나는 게 참으로 어렵군요. 부디, 제가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머지않았다.

하지만 대미궁 때문에 발목이 잡히게 생겼다.

“할 수 없지.”

왕좌에서 내려온 비비안은 이동 마법진을 통해 지하 궁전을 빠져나와 대악마를 소환했던 장소로 향했다.

계약한 대악마와 긴히 대화해야 할 것 같았다.

제단에 올라선 비비안은 손끝에 피를 내어 제단에 흘렸다.

잠시 후 제단에 붉은빛이 돌며 허공에 블랙홀이 나타났다.

블랙홀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대 악마 밸리알이었다.

[계약자여, 무슨 일로 나를 불렀지?]

“마왕 벨지안 님의 부활에 문제가 생겨 그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하라.]

“마왕 벨지안 님의 파편 중 하나가 대미궁에 있습니다. 대미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대악마라면 분명히 알 것이다.

[네가 말하는 대미궁이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밸리알이 손가락을 튕겨 이미지를 보여주자, 비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곳입니다.”

[대미궁은 수천 년 천마 전쟁에 참전했다 죽은 천족 라미아스의 무덤이다. 그녀가 만든 마족의 무덤인 셈이지.]

비비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라미아스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마족들을 몰살하고 죽었다. 그리고 그곳은 그의 사념이 만들어낸 미궁이 되었지. 그게 바로 대미궁의 정체다.]

“그곳에 무사히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곳은 신성한 힘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너를 비롯한 마기를 지닌 자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지.]

그렇게 말하는 밸리알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곳은 라미아스가 만든 마족의 무덤이다. 사특한 마음을 품고 들어간 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지.]

비비안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럼, 마왕 벨지안 님의 추종자는 왜 그곳으로 간 것입니까. 그곳에 있는 파편이 무사할지 의문이 드는군요.”

그 말에 밸리알이 입꼬리를 찢으며 웃었다

[그자는 천족이었기 때문이지. 멍청한 놈들, 천계에 배신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클클클.]

비비안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분이 천족이시란 말입니까?”

[그래, 그자는 천족의 배신자다.]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그자가 대미궁을 선택한 것은 보다 안전하게 파편을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마기를 가진 자들은 대미궁에 들어가면 죽게 될 거라는 점이다.

[계약자여. 대미궁에 들어갈 방법을 찾는 것이라면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비비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천족의 후손을 찾으면 된다.]

“천족이 후손이라고요?”

[이 세상에는 금기를 어기고 천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있지. 그들은 극히 드무나 존재한다.]

“지금 세상에도 있습니까?”

[그러하다. 너희가 그토록 숭배하는 마탑의 탑주가 그 존재 중 하나지.]

비비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탑의 탑주가 천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란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다.]

밸리알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정보는 다 준 것 같군. 대가는 준비가 되었겠지?]

기다렸다는 듯이 비비안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대가를 드리겠습니다.”

비비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항아리가 나타났다.

“최상의 순혈입니다.”

항아리 안에 가득한 것은 붉은 피였다.

수십 명의 처녀에게서 얻은 순혈이었다.

[좋구나.]

혈향을 만끽한 밸리알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대가는 잘 받겠다.]

항아리가 허공에 떠오르더니, 밸리알이 있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동시에 밸리알도 모습을 감추었다. 밸리알과의 연결이 끊어지자, 비비안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제단에서 내려왔다.

밸리알과의 대화는 많은 심력을 소모한다. 덕분에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탑주가 천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라니.’

그렇다면 탑주가 대미궁으로 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히려 잘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탑주가 가진 파편들도 모두 회수하면 일석이조가 될 것 같았다.

‘일단 좀 쉬어야겠어.’

조금 휴식을 취한 후에 마탑에 있는 드미트리를 만나야겠다.

드미트리를 이용하면, 탑주를 대미궁과 연결시킬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 * *

무사히 마탑으로 복귀한 레오나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메리벨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레오나를 보았다.

“……너.”

“내가 살아서 돌아온 게 놀라운 모양이네.”

메리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레오나는 메리벨에게 다가갔다.

“너 다 봤지?”

“뭐, 뭘?”

메리벨이 말을 더듬었다.

“나와 5장로, 그리고 리즈와 라이카.”

메리벨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면 다 본 모양이네.”

“5장로 대체 뭐야, 뭔데 너한테…….”

레오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리즈와 라이카…… 마기에 물들었어.”

리즈와 라이카에게서 느꼈던 위화감, 그리고 5장로와의 만남에서 보았던 그 공격.

마기를 바탕으로 한 흑마법이었다. 하지만 메리벨은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도 안 돼. 리즈와 라이카가 왜?”

레오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5장로가 그렇게 만들었겠지. 리즈와 라이카뿐만이 아닐 거야.”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너는 리즈와 라이카의 친구니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그럼, 네가 두 눈으로 본 건 뭘로 설명할래?”

“그건…….”

5장로를 도와 리즈와 라이카가 레오나를 공격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믿을 수 없게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너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야?”

메리벨은 레오나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리즈와 라이카가 자신의 친구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그런데 레오나는 멀쩡했다.

“난 그렇게 쉽게 죽지 않거든.”

5장로가 작정하고 펼친 마법이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빠져나오질 못할 그럴 상황이었다.

그런데 레오나는 살아서 돌아와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옷이 엉망이긴 했지만, 상처는 없어 보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리즈와 라이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 애들은 그럴 애들이 아니야.”

“그 애들 대신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

메리벨은 고개를 숙였다.

“5장로 때문이야. 그 애들은 5장로의 제자가 된 순간 이상해졌어. 그 애들은 5장로 때문에…….”

“나도 알아. 5장로가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는 거.”

고개를 든 메리벨이 물기 가득한 얼굴로 레오나를 보았다.

메리벨의 이런 약한 모습을 처음 본 레오나는 살짝 당황했다.

“리즈와 라이카가 마기에 물들었다고 했지?”

“그래.”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그건…….”

레오나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메리벨이 재촉했다.

“말해줘.”

“최악의 상황이라면 흑마법사가 되었을 수도 있어.”

“……흑마법사?”

흑마법사는 세상이 배척하는 배덕의 무리다. 악마를 숭배하고, 끔찍한 일을 서슴지 않는 최악의 마법사.

늘 그들이 불러온 재앙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였다.

리즈와 라이카가 그런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메리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했지? 그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희망이 있는 거야?”

레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장담할 수 없어. 나도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니니까.”

레오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여기 돌아온 걸 아마 5장로도 지금쯤 알게 되었을 거야. 또 무슨 짓을 벌이려 할지도 몰라. 네가 수련의 숲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네 목숨도 장담 못 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무얼 보았던 잊어. 넌 아무것도 못 한 거야.”

“나더러 모른 척하란 소리야?”

“그게 네가 사는 길이야.”

메리벨은 대답하지 못했다.

비겁하게 못 본 척 숨어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돕고 싶어. 리즈와 라이카를 구하고 싶어.”

진심이었다.

리즈와 라이카를 구하고 싶었다. 그 아이들은 외로웠던 마탑에서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이들이었다.

힘들 때면 위로를 해주었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네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어.”

“왜, 내가 약해서?”

“그래.”

그 한마디가 메리벨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혔다. 그래서 반발심이 들었다.

“약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레오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메리벨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너만큼 강해.”

벌떡 일어선 메리벨이 손수건을 꺼내 레오나에게 던졌다.

“지금 당장 나와 겨뤄. 내가 강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레오나는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들었다.

“후회하지나 마.”

“안 해.”

단호한 대답에 레오나는 메리벨의 결투를 받아주었다.

두 사람은 방을 나와 결투를 벌일 수련장으로 향했다.

* * *

리즈와 라이카가 5장로의 연구실을 급하게 찾았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자, 간이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5장로는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냐?”

“탑주의 제자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동시에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5장로가 깜짝 놀랐다.

“뭐라고? 살아 돌아와?”

5장로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리즈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레, 레오나가 살아서 돌아왔어요.”

“그럴 리가…….”

레오나는 자신이 펼친 완벽한 마법에 걸려 죽었다.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일이었다.

“너희가 잘 못 본 것은 아니고?”

라이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지금 수련장에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짜증이 치밀어 오른 5장로는 두 사람을 제치고 수습 마법사들의 수련장으로 향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리즈와 라이카의 말대로 레오나는 멀쩡한 모습으로 수련장에 서 있었다.

옷차림에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그건 자신과 싸웠던 흔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럴 수가…… 거기서 살아나왔단 말인가.’

완벽한 마법이었다.

결계도 완벽했고, 모든 게 완벽한 함정이었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마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주인에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고 보상까지 받았는데, 레오나가 살아 돌아왔다.

5장로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끈질긴 인내심으로 참아 넘겼다. 그리고 상황을 주시하며 왜 레오나가 수련장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수습 마법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레오나랑 메리벨 결투한다며?”

“평소에 그렇게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더니, 결투까지 하네.”

“누가 이길까?”

“그래도 수습 마법사 짬밥이 있는데 메리벨이 이기지 않을까?”

“그런가? 하지만 레오나는 탑주님의 제자잖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대충 대화를 들어보니, 레오나와 메리벨이 결투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레오나는 옷차림이 왜 저러냐.”

“그러게, 바깥에서 신나게 싸우다 온 모습이네.”

레오나의 로브는 군데군데 찢어진 흔적이 가득했다.

‘정말로 살아 돌아올 줄이야.’

5장로의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그의 시선이 메리벨에게 향했다.

‘사이가 좋지 않다 이 말이지.’

레오나와 사이가 좋지 않다면, 이용할 구석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잘만하면 자신의 손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레오나를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메리벨을 바라보는 5장로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5장로는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은 5장로뿐만이 아니었다. 탑주인 아델라도 있었다.

아델라의 시선이 5장로에게 꽂혔다. 레오나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거하려던 사람이 무사한 것을 보았으니, 또다시 제거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때 아델라의 옆으로 회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다가왔다.

“5장로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세요. 1장로.”

갑작스러운 아델라의 명령에도 1장로는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얼굴 그 어디에도 당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5장로가 배신자입니까?”

“증거는 없지만, 의심이 되니 직접 확인을 해야겠지요.”

“알겠습니다.”

아델라가 1장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대가 내 곁에 있어 든든합니다.”

“저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제 임무는 당신을 지키는 것이니까요.”

1장로가 아델라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유일하게 그녀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오래된 친구 사이기도 했다.

적어도 아델라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이다.

* * *

레오나와 메리벨은 수련장에 마주 보고 섰다. 레오나는 검을 들었고, 메리벨은 짧은 숏 스태프를 들었다.

메리벨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럼, 간다.”

“얼마든지.”

메리벨은 제일 자신 있는 마법부터 시작했다.

“에어 블래스트!”

레오나 주위의 공기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압축된 공기는 곧 팽팽해졌고 폭발을 일으켰다.

레오나는 그 자리에서 프로텍션을 펼쳤다. 공기의 폭발과 프로텍션이 부딪쳐 굉음을 쏟아냈다.

콰앙!

수련장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었다. 소리가 멎고, 흩날린 먼지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레오나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이를 악문 메리벨은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슬로우!”

상대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마법은 적중했다.

레오나의 걸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메리벨은 연이어 마법을 펼쳤다.

“일렉트릭 스파크!”

매서운 전기 공격이 레오나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레오나가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다.

메리벨이 두 눈을 부릅떴다.

슬로우 마법의 지속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데 레오나가 움직인 것이다.

메리벨에게 쇄도한 레오나가 신성 마법을 펼쳤다.

“포스.”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메리벨을 등을 가격했다.

“윽!”

충격을 받은 메리벨이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숏 스태프를 놓칠 뻔하였다. 그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이트 운즈.”

성스러운 칼날이 메리벨의 전신을 할퀴었다. 다행히 실드를 펼친 덕분에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메리벨이 레오나를 두 눈으로 좇았다. 하지만 레오나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두 눈으로 좇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라고?’

도저히 두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한눈팔아도 돼?”

메리벨이 두 눈을 부릅떴다.

레오나가 등 뒤에 서서 메리벨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아직 블링크 마법을 배우지 못한 메리벨은 순간 가속 마법을 펼쳐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급하게 피하는 바람에 다리가 꼬여 넘어졌지만, 금방 다시 일어서서 레오나를 경계했다.

레오나는 순발력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한 메리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네.”

메리벨은 레오나가 이 정도로 강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터라 당황했다.

레오나는 온전한 신체 능력과 간단한 신성 마법으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레오나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왠지 자신과 노는 수준이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진지하게 임해줬으면 좋겠어.”

메리벨의 말에 레오나가 피식 웃었다.

“네가 진지하게 임하게 만들어 봐.”

메리벨이 숏 스태프를 강하게 잡았다.

‘한 방에 다 쏟아붓는 거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공기 계열과 화염 계열 마법이다.

그리고 저레벨 수준이다. 서클이 3레벨밖에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레오나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신성 마법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오나는 탑주의 제자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너무 자만했어.’

레오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 레오나가 정말로 실력을 갖추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걸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강해.’

레오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 정도였다.

‘정신 바짝 차리자.’

자신의 뺨을 찰싹 내려친 메리벨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레오나를 응시했다.

이번이 마지막 공격이 될지도 몰랐다. 가진 마력을 모두 쏟아부을 생각이니까.

메리벨와 레오나의 결투를 지켜보던 수습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이냐?”

“아니, 전혀 안 보여.”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도 있는 거였어?”

“그러게, 나도 처음 봐. 게다가 봤어?”

“응, 봤어. 분명 신성 마법이었어.”

황금빛의 마력과 레오나를 보호하던 황금빛의 방패는 신성력으로 발현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신성 마법은 오래전에 사라진 마법이었는데, 레오나가 신성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그걸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게다가 메리벨을 꼼짝도 못 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메리벨은 독학으로 3서클이 된 수습 마법사였다. 대련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수습 마법사 중에서도 대련에서 메리벨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그만큼 메리벨은 대련에 익숙했고, 순발력과 응용력이 대단했다.

그런 메리벨을 레오나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메리벨의 공격을 모두 무효화시키는 것은 물론, 두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메리벨을 공격했다.

메리벨은 레오나의 흔적을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오나한테 덤비지 말아야겠다.”

“나도.”

수습 마법들이 공통으로 생각했다.

메리벨의 두 눈이 활활 타올랐다. 그녀는 가진 마력을 모두 동원했다.

“인센디어리 클라우드!”

레오나의 주위로 하얀 구름이 생겨났다. 피하려고 움직이자, 구름들이 레오나를 따라다녔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메리벨이 숏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플레임 애로우.”

불꽃의 화살이 레오나가 아닌 구름을 향했다.

구름이 불꽃의 화살을 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르르르르륵!

구름에서 쏟아진 불이 레오나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레오나가 불기둥에 갇혔다. 아니, 그러는 듯 보였다.

레오나가 검을 휘둘렀다. 검에는 황금빛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구름을 비롯해 불기둥이 반으로 갈라졌다.

레오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종으로 횡으로 사선으로 휘두르자, 집어삼킬 듯한 불기둥이 조각났다.

무언가 쩡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구름이 산산히 흩어졌다.

메리벨인 두 눈을 부릅뜨고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마법이 파훼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조금이라도 레오나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레오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메리벨에게 다가온 레오나가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메리벨은 검신에 흐르는 황금빛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서걱!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리벨이 들고 있든 숏 스태프가 두 동강 났다.

메리벨은 바닥에 떨어진 숏 스태프를 바라보며 체념했다.

레오나의 검 끝이 메리벨의 턱 끝에 닿았다.

“더 할래?”

메리벨이 두 손을 들었다.

“내가 졌어.”

검을 거둔 레오나가 뒤돌아섰다.

멀어지는 레오나의 뒷모습을 보며 메리벨은 자책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저 레오나가 탑주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아니, 질투라고 해도 옳았다.

레오나가 얼마나 강한지, 자격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정말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리즈와 라이카를 구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메리벨은 급히 레오나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에 수련장에서 사라지자, 지켜보던 수습 마법사들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그들은 두 눈으로 본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마법을 검으로 갈랐어.”

“검으로 마법을 파훼한 거 맞지?”

“나 봤어, 레오나의 검에 황금빛이 일렁이는 거.”

“나, 나도 봤어.”

그들은 앞으로 레오나에게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를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 * *

다급한 걸음으로 레오나를 쫓은 메리벨이 간신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레오나!”

“아직도 할 말이 있어?”

메리벨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부었다.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리즈와 라이카를 구할 거라고. 그러니 강해질 거야. 도와줘.”

레오나는 메리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메리벨은 간절하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레오나를 보았다.

“나와 계속 대련해줘.”

“뭐?”

“내 한계를 넘고 싶어. 너라면 가능할 것 같아.”

레오나와 대련에서 느꼈던 숨 막히는 긴장감과 가슴의 두근거림은 잊을 수가 없었다.

레오나라면 한계를 돌파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레오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하는 메리벨의 진지한 마음을 느꼈다.

메리벨은 진심으로 리즈와 라이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좋아. 하지만 나와의 대련은 많이 힘들 거야.”

“각오하고 있어.”

“그럼, 내일 아침 7시에 수련장으로 나와.”

메리벨의 두 눈이 커졌다.

“고마워. 정말, 열심히 할게.”

메리벨은 정말 기뻐하는 표정으로 레오나를 보았다.

언제나 경계하는 듯한 태도가 변하자 레오나는 어색했다.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강해지고 싶은 자에게 나타난 강자와의 대련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니까.

레오나도 겪어봐서 잘 알았다. 강자와의 대련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것을 계기로 메리벨이 강해진다면,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다.

* * *

메리벨과의 대련을 마치고 레오나는 탑주 아델라를 만났다.

아델라가 불렀기 때문이다.

“대련은 잘 보았단다.”

“보셨습니까?”

“쉽게 끝낼 수 있었을 같은데 의외로 시간을 오래 끌더구나.”

“그래 보였습니까?”

아델라가 빙그레 웃으며 검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내 눈은 정확하지. 넌 피할 수 있었음에도 공격을 맞아주었고, 적당한 힘과 속도 조절로 그 아이를 상대하며 상대에게 공격할 타이밍을 주었지.”

레오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탑주님은 못 속이겠네요.”

“날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단다.”

“맞아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어요.”

단숨에 끝낼 수도 있는 대련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건 메리벨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공격도 못 해보고 끝내버리면 기껏 결투를 신청한 메리벨에겐 너무 허무한 일일 테니까.

리즈와 라이카를 구하고 싶어 하는 메리벨의 마음을 허무하게 짓밟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녀의 진심이 너무 강했으니까. 메리벨은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은 본인이 가진 아집과 불신이 자존감을 낮추게 만들었다.

리즈와 라이카를 구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진심에 조금의 불씨를 심어주면, 그녀는 강해질 수 있다.

목표를 만나면 강해지고 싶은 열망이 불꽃을 피워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레오나는 그 계기를 조금 마련해 준 것뿐이었다.

“너를 보면 네 나이가 몇 살인지 의심이 드는구나.”

뜨끔한 레오나는 헛기침을 했다.

“제가 탑주님처럼 겉모습과 나이가 다를 것 같다는 겁니까?”

“모르는 일이지?”

“아닙니다.”

아델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레오나를 보았다.

“정말?”

“정말입니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구나. 모처럼 동지를 만났나 싶었는데, 아니라니.”

그 말에 레오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그렇고 5장로에게 감시는 붙이셨습니까?”

아델라가 눈꼬리를 휘었다.

“그건 걱정 말거라. 아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했으니까.”

“제가 살아 돌아온 것을 안 이상 5장로가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있단다. 우린 그것을 기다리고 있지.”

5장로가 움직이는 때를 말이다. 순간 아델라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 * *

5장로는 초조했다. 주인에게 레오나를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보상도 두둑하게 받았는데 레오나가 살아 돌아왔다.

“난감하게 됐어.”

5장로는 연구실을 서성거리며, 고민했다.

“너무 서둘렀어.”

그때 너무 조급하게 행동한 것 같았다.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처리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을 준비하고, 살아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야. 설마, 그때 그놈이?”

레오나를 살리겠다고 나타난 의문의 남자. 실력은 대단해 보였다.

그 남자의 등장은 예상 밖의 변수였다. 그런 변수를 생각했어야 했다.

“내 실수다.”

그런 것 하나 예상하지 못하다니, 하지만 이미 늦었다. 레오나는 살아 돌아왔고, 자신의 입장이 아주 곤란해졌다.

“주인이 알게 된다면, 나는 큰 벌을 받게 될 거야.”

상과 벌이 엄격한 주인이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된다면, 그냥 넘기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레오나를 처리해야 한다. 그 방법만이 자신이 살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레오나를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었다. 밖으로 꾀어내는 것은 글러 먹었다.

한 번 당했는데, 두 번 당하겠는가.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

5장로의 시선이 리즈와 라이카에게 향했다. 아쉽지만 저 둘을 이용해야 할 것 같았다.

나중에 마왕이 부활하면 자신도 한자리를 차지가 될 것이다. 그때 저 둘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인형은 다시 만들면 되니까.’

마음을 굳힌 5장로가 리즈와 라이카에게 다가갔다.

“리즈, 라이카. 이리 오거라.”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하며 5장로에게 다가갔다.

“너희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말씀하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5장로는 아공간에서 보라색 빛이 감도는 보석을 꺼냈다.

손톱만 한 보석이었는데, 그 안에 사이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5장로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보석을 가슴에 박았다. 보석은 두 사람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빛이 일순간 붉은빛에서 보랏빛으로 일렁였다 사라졌다.

“가서 레오나 그년을 죽여라. 그리고 너희의 형제들을 깨워라.”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마탑 안에 씨앗을 뿌려둔 참이었다. 그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두 사람에게 공을 들였던 것이다.

“가거라.”

“예.”

“예, 스승님.”

두 사람은 기계처럼 움직이며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목적지는 한 곳이었다.

바로 레오나가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5장로가 야차처럼 웃었다.

이번엔 반드시 죽일 것이다.

* * *

이른 아침, 레오나는 메리벨과 대련을 하였다.

메리벨이 공격을 하면, 레오나가 방어를 하는 방식의 대련이었다.

벌써 수차례 공방이 오갔다.

레오나는 단 한 방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 반면 메리벨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가?”

“마법을 어떻게 그렇게 파훼를 잘할 수 있는 거냐고.”

메리벨이 마법 공격을 퍼부으면, 레오나는 귀신같이 마법을 파훼했다.

메리벨의 입장에서 미칠 노릇이었다.

“네가 가진 공격 마법은 이제 없는 거야?”

메리벨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없어. 완전 바닥이라고.”

가지고 있는 모든 공격 마법을 레오나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파훼당했다.

마력도 쥐꼬리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레오나가 메리벨에게 다가왔다.

“네 문제점이 뭔지 알아?”

“뭔데?”

“공격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는 거야.”

메리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하다고?”

“뻔히 예상되는 공격이라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변화가 없어.”

“모르겠어.”

레오나가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몸으로 체험해 봐야지. 그만 쉬고 일어나.”

미간을 찌푸린 메리벨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공격은 내가 할 테니, 넌 막기만 해.”

메리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검술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레오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검술이 아닌 마법으로 공격할 거야. 나도 마법을 조금 배웠거든.”

아델라에게 마나 심법을 전수받으면서, 틈틈이 운용방식에 대해서 익혔다.

아직 1서클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아예,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메리벨은 긴장된 얼굴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레오나는 윈드 애로우를 생성했다. 동시에 라이트닝 애로우도 만들었다.

마법 수식이 레오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두 개의 마법 수식을 분석하여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자 윈드 애로우와 라이트닝 애로우가 둘이 아닌 하나로 합쳐졌다.

윈드 애로우에 라이트닝의 더해져, 속도와 파괴력이 올라갔다.

그렇게 세 개를 만들어낸 레오나는 메리벨에게 쏘았다.

순식간이었다.

눈 한 번 감았을 뿐인데, 눈앞에서 퍼엉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실드를 펼치지 않았다면, 터지는 건 실드가 아니라 메리벨 자신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메리벨은 놀란 얼굴로 레오나를 보았다.

‘마법을 합쳤어.’

두 개의 마법이 합쳐져 하나의 마법으로 탄생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각의 마법 속성은 개성이 강해 하나로 뭉쳐질 수가 없었다.

물과 불이 함께 일수 없는 것처럼. 메리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방금 그건 뭐야?”

레오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1서클 마법을 응용을 좀 해봤어.”

“그게 가능해?”

레오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되던데?”

메리벨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레오나와 메리벨은 동시에 수련장을 나왔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수습 마법사들이 보였다.

레오나는 그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괴, 괴물이 나타났어.”

“뭐?”

“이거 놔. 도망쳐야 돼.”

수습 마법사는 레오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눈살을 찌푸린 레오나는 수습 마법사들이 도망쳐 나온 방향으로 향했다.

메리벨도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수습 마법사들이 식사하는 식당이었다.

“피, 피야.”

“피뿐만이 아니야. 저길 봐.”

뒤집어진 식탁 테이블 뒤에 수습 마법사의 시체들이 보였다.

메리벨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레오나는 메리벨을 뒤로 보내고, 정면을 주시했다.

수습 마법사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괴이한 존재들이 레오나를 향해 다가왔다.

모습은 인간이었지만, 쭉 찢어진 입과 긴 송곳니, 새카만 눈동자와 창백한 피부를 지닌 괴인은 마기를 뿜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찾았다, 죽여라.

다섯의 괴인은 레오나를 발견하자마자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메리벨 피해.”

“도울게.”

레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노리는 건 나야. 넌 저기 살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피해.”

레오나가 가리킨 방향에 상처 입은 수습 마법사 둘이 보였다.

이를 악문 메리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벨을 보낸 레오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레오나의 검이 금빛 궤적을 그리며 괴인들을 베어냈다. 일검이었다.

일검에 한 명이 쓰러졌고, 또 일검에 한 명이 목이 베였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괴인이 목숨을 잃었다. 괴인들의 시체로 다가간 레오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사라져라.”

신성력에 닿은 시체들이 새카만 재가 되어 소멸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손톱만 한 보라색 보석이었다. 다섯 명의 괴인이 남기고 간 것이었다.

레오나는 보석을 주웠다.

보석은 레오나의 손에 닿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레오나는 식당을 벗어났다.

메리벨이 상처 입은 수습 마법사 둘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메리벨에 다가간 레오나는 수습 마법사들을 보았다. 한 명은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고, 다른 한 명은 허벅지를 베였다.

목숨엔 지장이 없지만, 중상이었다. 레오나는 신성력으로 두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상황을 전해 들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배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돌변하여, 식당 안에 있던 수습 마법사들을 공격하며, 레오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를 찾았단 말인가요?”

“맞아요, 레오나가 어디 있냐며, 빨리 말하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두 분은 안전한 곳으로 가십시오. 메리벨 같이 가.”

메리벨은 레오나와 함께 하고 싶은 눈치였으니, 레오나의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연락해.”

메리벨은 자신의 통신 구슬 번호를 레오나에게 알려주었다.

“알았어. 필요하면 연락할게.”

세 사람을 보낸 레오나는 자신을 찾고 있을 자들을 생각하며 탐지 마법을 펼쳤다.

그들은 숙소와 수련장에 포진해 있었다. 이상한 건, 아래층에 난리가 났는데도 위층에 있는 마법사들이 잠잠하다는 것이다.

레오나의 시선이 자연적으로 위로 향했다.

“아래층에 일어난 일을 위층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잠잠한 걸 보면.”

누군가 개입하여 모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장로인가…….”

5장로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웃음이 나왔다.

위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에 자신을 위해 화려한 파티를 마련해 주었다.

“기껏 마련한 파티이니, 즐겨주는 수밖에 없나…….”

레오나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자들에게 걸어갔다.

그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대형 수련장이었다.

빼곡하게 들어찬 괴인들을 바라보며 레오나는 피식 웃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

그들을 바라보는 레오나의 금빛 눈에 조금 더 다른 기운을 가진 자 두 명을 발견했다.

“리즈, 라이카…….”

괴인들의 중심에 리즈와 라이카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선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레오나를 발견한 라이카가 말했다.

“레오나, 우릴 너무 원망하지 마.”

리즈가 말을 이었다.

“스승님을 거슬리게 한 네 잘못이 커.”

“그래?”

“얌전히 죽어줘.”

나직한 리즈의 말에 괴인들이 일제히 레오나에게 덤벼들었다.

그 수가 족히 오십은 넘어 보였다. 벌 떼처럼 몰려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레오나는 5장로의 수완에 감탄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마물화시키다니, 준비를 상당히 많이 했네.’

하지만 여기서 얌전히 죽어줄 마음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인연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하나하나 얼굴이 떠올랐다.

무뚝뚝한 단장 데미안부터 부단장 란젤로, 기사단 동료들.

자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 저택의 사람들.

끈질기게 자신의 옆에 붙어 있겠다고 쫓아온 시엘.

“그래, 여기서 내가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아직 못 해본 것이 많다.

그것들 다할 때까진 절대 죽을 수 없다.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너희가 죽어줘야겠다.”

아공간이 열었다.

손을 뻗어 신검 에키온을 손에 쥐었다. 아공간을 비집고 나온 신검 에키온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을 머금었다.

괴인들을 향해 신검 에키온을 뻗었다. 레오나의 금빛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 * *

5장로는 흐뭇한 얼굴로 레오나가 싸우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지켜보았다.

위층의 마법사들은 절대 아래층에서 벌어진 일을 모른다.

아래층에 연결된 영상 회로를 그가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회로의 손상으로 위층의 마법사들은 복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복구될 양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은 오래 걸리리라.

혹시나 몰라, 아래층에서 비상시에 울릴 수 있는 마법 알람도 손봐 놓은 상태였다.

아래층에서 아무리 비상 알람을 작동시켜도 위층엔 울리지 않는다.

모두 레오나 하나를 잡기 위해 그가 준비한 일이었다.

레오나를 죽이고 나면, 모든 죄를 리즈와 라이카에게 덮어씌울 생각이었다.

강해지고 싶은 욕심에 흑마법에 손을 대었고,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어버린 것으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짠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번엔 반드시 죽여주마.”

저번에 죽었으면 좋았을 걸, 왜 살아 돌아와 사람 애를 먹이는지 모르겠다.

“얌전히 먹이가 되어 사라지거라.”

때마침 탑주는 외출 중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와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본 탑주의 표정이 어떠할지 기대가 되었다.

“이제 탑주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만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클클클.”

탑주는 참으로 오랫동안 마탑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내려올 때가 되었다.

마탑에도 새 바람이 필요하다. 충분한 힘이 있음에도 탑 안에 갇혀 웅크려야만 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 마탑의 위대함을 떨치는 게 옳지 않겠는가.

마왕이 부활하면, 자신은 마왕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테고, 마탑은 세상 밖으로 나가 그 위대함을 떨치게 될 것이다.

자신을 견제하는 다른 장로들 역시 마왕이 부활하면 굴복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 * *

“영상 회로가 손상됐습니다.”

1장로의 보고에 아델라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마법 알람도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렇군요.”

비상사태가 벌어졌는데 아델라는 평온했다.

“론펠은 뭐 하고 있죠?”

“탑주님의 지시대로 수습 마법사들을 대피시켰습니다. 하지만 몇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장로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신 겁니까?”

“1장로는 그동안 내게 5장로의 행보를 보고했어요. 그 정도 예상은 가능하죠.”

1장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림자 사역마를 이용해 5장로를 감시했다.

그림자 사역마는 감시자의 주변 인물의 그림자 속에 숨어 상대를 감시할 수 있다.

1장로는 5장로와 가장 가까운 마법사의 그림자에 사역마를 심었다. 사역마는 충실하게 5장로의 행보를 영상에 담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고스란히 탑주 아델라도 보았다.

수습 마법사 리즈와 라이카에게 수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델라는 레오나가 위험해질 거라는 걸 예상했다.

예상대로 5장로는 영상 회로와 마법 알람 시스템을 손상시켰다.

아델라는 내버려 두었다.

섣불리 손을 썼다간 5장로가 도주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 회로와 마법 알람은 언제쯤 복구가 가능하죠?”

“며칠은 걸릴 것 같습니다.”

한숨을 내쉰 1장로가 말했다.

“나서지 않으실 겁니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아델라가 손바닥에 놓인 영상구를 1장로에게 보여주었다.

영상구를 본 1장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건…….”

아델라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제자 하나는 참 잘 두었어요.”

1장로는 대답할 수 없었다.

* * *

황금빛이 사위를 밝혔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은 어둠을 가차 없이 밀어냈다.

후두두두둑!

황금빛이 지나갈 때마다 새카만 잿가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만든 사람은 레오나였다.

황금빛의 검을 든 레오나는 천상에서 악을 벌하기 위해 내려온 천신 같았다.

순식간에 괴인들이 소멸되었다.

그들은 레오나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괴인들을 거느리고 있던 리즈와 라이카뿐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죽여 버리겠어!”

라이카가 분노에 치를 떨었고, 리즈의 두 눈동자가 광기에 물들었다. 광기 물든 두 사람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솟구쳤다.

더 이상 두 사람은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등 뒤엔 한 쌍의 피막 날개가 돋아났고, 이마엔 뿔이 자라났다.

피부 또한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두 눈에선 흰자위가 사라졌다.

마물을 벗어나 완전히 악마화가 되어버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양팔을 뻗었다. 거대한 화염구가 양손에 하나씩 생성되었다.

생성된 화염구는 레오나를 태워버리기 위해 쏘아졌다.

증오에 싸인 리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엇!”

화르르르륵!

용암처럼 뜨거움을 품은 화염구는 금방이라도 레오나를 녹일 듯했다.

하지만.

서걱.

레오나의 검에 갈라진 화염구가 허무하게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자 악에 바친 두 사람이 화염구를 연속해서 쏘아냈다.

그럴 때마다 레오나는 검을 휘둘렀고, 화염구는 소멸되었다.

레오나가 두 사람에게 검을 겨눴다.

“욕망에 눈이 멀어 완전히 악마가 되어버렸구나.”

“닥쳐라!”

라이카의 양손에 기다란 삼지창이 들렸다. 삼지창 끝에는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라이카는 허공을 날아 레오나에게 삼지창을 휘둘렀다.

리즈도 가세했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 불꽃이 일렁이는 채찍이 들려 있었다.

휘리리리릭!

리즈가 휘두른 채찍이 레오나의 검을 휘감았다.

리즈가 희열에 찬 얼굴로 웃었다.

“크크크, 그 검과 함께 부숴주마.”

채찍은 검을 부러뜨릴 듯 강하게 옥죄었다.

하지만.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한 빛이 채찍을 타고 리즈를 공격했다.

그러자 채찍을 쥔 리즈의 손에 화상을 입은 듯 새빨개졌다.

“악!”

비명을 지른 리즈는 채찍을 손에서 놓았다. 채찍을 타고 흘러온 신성력이 리즈의 손에 화상을 입혔다.

가볍게 리즈의 채찍을 털어낸 레오나는 라이카의 삼지창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았다.

“무슨…….”

놀람도 잠시, 레오나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삼지창을 감쌌다.

레오나가 손에 힘을 주자, 삼지창이 부러지고 말았다.

기겁한 라이카가 급히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손을 털어낸 레오나가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공격은 그게 다야?”

리즈와 라이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리즈는 다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레오나에게 악을 썼다.

“어떻게 우리보다 강할 수 있지?! 그 빛은 대체 뭐야!”

레오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무리 강력한 힘에도 말이야, 항상 상극이 있게 마련이야.”

리즈가 도리질을 쳤다.

“그럴 리 없어! 마기에 대항할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스승님이 그랬어!”

레오나가 싱긋 웃었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어.”

리즈가 미간을 찌푸렸다.

“적어도 내가 없었을 땐 그랬을 테니까.”

“뭐라고?”

레오나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제 내가 이 세상에 있으니, 마기는 최강이 될 수 없다 이 말이지.”

“괴변이야!”

이번에 소리친 사람은 리즈를 부축하고 있던 라이카였다.

5장로가 그랬다.

마법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그래서 자신은 더 강한 것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5장로는 자신의 연구 일부를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스승님을 욕보이지 마!”

레오나는 짐짓 안타깝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그래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야?”

리즈와 라이카가 비릿하게 웃었다.

“너만 없어지면 돼, 너만 없어지면 천적 따윈 없어.”

리즈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카가 리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즈. 준비됐어?”

“언제든지.”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마기를 폭발시켰다. 두 사람의 몸에서 나온 마기는 곧 하나로 뭉쳐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팔을 뻗었다.

“죽어버려!”

“사라져!”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고, 거대한 마기가 괴물의 형상으로 변해 레오나를 집어삼켰다.

마기에 집어삼켜진 레오나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어.”

“해냈어.”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과 연결된 마기의 덩어리가 레오나를 집어삼켰던 그 자리에서 균열을 일으켰다.

거미줄처럼 갈라진 균열은 마기의 덩어리를 부숴버렸다.

산산조각 난 마기의 덩어리는 눈부신 빛에 의해 소멸하여 두 사람에게 타격을 입혔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핏물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떨리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곳에 레오나가 황금빛 찬란한 검을 들고 오연하게 서 있었다.

레오나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이,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돼…….”

방금 공격은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무서운 공격이었다. 이 공격에 맞은 마물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자신 있는 최후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레오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었다.

허공을 날고 있던 두 사람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레오나의 발 앞에 떨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레오나를 올려다보았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은 강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었으니까.

후회하지 않았다.

“우리가 죽어도 끝이 아니야.”

“스승님은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

“그렇겠지.”

레오나의 검끝이 두 사람을 겨눴다.

“그러니 나도 너희를 봐주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이 레오나를 향해 얼마든지 그래 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레오나가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궤적이 두 사람을 향해 떨어지려는 순간!

“안 돼!”

갑자기 나타난 메리벨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레오나의 검끝이 정확히 메리벨의 심장 부근에서 멈췄다.

“죽이지 마. 부탁이야.”

“비켜.”

메리벨이 무릎을 꿇었다.

“리즈와 라이카를 살려줘.”

레오나가 차갑게 말했다.

“저들은 이미 네가 알던 그 애들이 아니야.”

“그래도 리즈와 라이카인 전 변하지 않아. 어떤 모습이든!”

메리벨은 굳건하게 버티며 레오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리즈가 메리벨을 공격했다. 길게 늘어난 리즈의 손톱이 메리벨의 등을 벤 것이다.

신음을 내뱉은 메리벨이 고개를 돌려 리즈를 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리즈가 사납게 웃었다.

“네가 뭔데 나서, 하찮은 날파리 같은 존재 주제에.”

“뭐?”

리즈가 있는 힘껏 메리벨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꺼져. 너 같은 거한테 신세 지긴 싫으니까.”

메리벨이 안간힘을 다해 리즈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라이카가 메리벨의 멱살을 잡아 목에 손톱을 겨눴다.

라이카가 레오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검을 버려. 안 그러면 목을 그어버릴 테니까.”

라이카의 손톱이 메리벨의 목에 상처를 내었다.

라이카가 리즈를 보았다.

“리즈, 도망쳐.”

“뭐?”

“스승님께 가.”

“하지만…….”

메리벨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라이카가 말했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라이카…….”

“가, 어서.”

이를 악문 리즈가 몸을 돌렸다.

“구하러 올게.”

커다란 피막 날개를 펼친 리즈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갔다. 날아가는 리즈를 확인한 라이카는 메리벨을 붙잡은 팔에 힘을 주며 뒤로 물러났다.

목이 졸린 와중에도 메리벨은 라이카를 설득하려 했다.

“라이카, 이러지 마.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닥쳐! 네가 뭘 알아.”

“큭.”

라이카의 손톱이 메리벨의 목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검을 버려.”

가만히 메리벨과 라이카를 바라본 레오나가 손에서 검을 놓았다.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라이카가 메리벨을 붙잡고 씩 웃었다.

“스승님의 명령대로 레오나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라이카가 메리벨을 확 밀치며,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레오나를 향해 쇄도했다.

길게 뻗은 손톱이 레오나의 가슴을 찔러왔다.

그 순간.

퍼엉!

라이카의 등이 터져나갔다.

메리벨이 레오나에게 달려드는 라이카에게 화염구를 날린 것이다.

라이카의 손톱은 레오나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를 악문 라이카가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레오나가 손을 뻗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신검 에키온이 레오나의 손에 빨려들 듯 날아왔다.

신검 에키온은 가차 없이 라이카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을 뚫은 신검 에키온을 바라본 라이카가 떨리는 두 손으로 검신을 잡았다.

“크윽.”

라이카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울컥 넘어오는 핏물을 삼킨 라이카가 씩 웃었다.

“같이 가자.”

라이카의 가슴을 타고 마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마기는 라이카의 전신을 휘어 감더니 폭주하며, 레오나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레오나를 삼켜버린 마기가 폭발했다.

“안 돼!”

메리벨이 창백한 얼굴로 폭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라이카도 레오나도 모두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둘 다 잃고 말았다.

“라이카, 레오나…….”

메리벨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메리벨은 눈물을 닦지 않았다.

라이카와 레오나를 집어삼킨 마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순간, 마기를 뚫고 찬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한 줄기에서 두 줄기, 세 줄기, 네 줄기로 갈라졌다.

급기야 마기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로 커졌다. 그 빛을 뚫고 레오나가 걸어 나왔다.

“레오나!”

메리벨은 레오나가 살아 있자 안도했다.

레오나의 손에는 주먹만 한 새카만 흑수정이 들려 있었다.

흑수정을 바라본 레오나의 눈빛이 너무나 차가웠다.

레오나는 흑수정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스스스스.

흑수정이 깨지며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메리벨은 그 흑수정이 라이카가 남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라이카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

‘바보…….’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 * *

5장로의 연구실로 날아온 리즈는 눈물을 흘리며 스승을 보았다.

“스승님! 라이카가…….”

5장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리즈를 노려보았다.

“멍청한 것.”

리즈의 눈이 커졌다.

5장로가 손을 뻗어 리즈의 목을 움켜쥐었다.

“기껏 힘을 나누어 주었더니, 이 꼴로 도망쳐 오다니,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리즈는 할 말이 없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레오나를 죽였어야지.”

영상으로 레오나가 죽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라이카와 리즈는 실망만 안겨주었다.

“네가 도망치는 바람에 라이카가 죽었다.”

리즈는 입을 틀어막았다.

“게다가 중요한 핵 하나도 부서졌어.”

자신의 연구 결과물이 할 수 있는 마기의 핵이 레오나의 손에 산산조각 났다.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화풀이 대상은 당연히 리즈였다.

“악!”

5장로의 손에서 나온 독이 리즈의 전신을 물들였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리즈가 악을 썼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곱게 자랐다. 이런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끅, 스, 스승님. 제, 제발 요, 용서해 주세요.”

바닥에 기는 듯한 목소리로 애원하자 5장로가 냉소를 터뜨렸다.

“그거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 날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다니.”

라이카가 죽은 마당에 리즈까지 죽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뼛속까지 빼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5장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리즈의 뒷덜미를 잡았다.

손을 뻗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이 나타났다. 기괴한 괴물이 잔뜩 새겨진 끔찍한 문이었다.

문을 연 5장로는 그곳으로 리즈를 던져 넣었다. 마지막으로 리즈에게 주는 기회였다.

* * *

레오나와 메리벨은 마주 보고 섰다.

“미안해…….”

메리벨이 고개를 숙이며 레오나에게 사과했다.

자신이 나서는 바람에 레오나가 곤란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리벨은 레오나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의 손에 라이카와 리즈가 죽는 건 보기 싫었으니까.

“나는 네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거야.”

메리벨의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죽을 뻔했다. 물론,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메리벨의 행동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친구를 위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마기의 강함에 매료되어, 악마가 되어버렸다. 악마가 되면 끊임없는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악마는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니까. 그들의 욕망은 다른 이들을 해친다.

이미 두 사람의 손에 마탑의 마법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리즈와 라이카가 직접 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 두 사람이 마물화시켜 버린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마물들을 조종한 것은 리즈와 라이카였다.

“네가 막는 바람에 리즈가 도망쳤다. 또 나는 너로 인해 약해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리즈를 놓아주고 말았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친구를 구하고 싶어 하는 메리벨의 진심 어린 눈빛에 일순간이지만 레오나는 흔들렸다.

그래서 도망치는 리즈를 잡지 못했다.

“리즈는 내가 반드시 찾아내서 막을 거야.”

라이카는 허무하게 보내버리고 말았지만, 리즈만은 자신의 손으로 막고 싶었다.

“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어?”

“…….”

메리벨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전 보았던 리즈와 라이카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할 거야.”

레오나의 금빛 눈이 메리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메리벨의 두 눈이 흔들림 없이 레오나를 향했다.

레오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대답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메리벨은 멀어지는 레오나를 바라보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미안해, 레오나.’

진심으로 미안했다. 리즈와 라이카로 인해 다른 마법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내가 리즈를 막을게. 믿어줘.’

레오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메리벨은 그 자체가 긍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레오나는 다친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친 마법사들은 론펠이 마탑 내에 있는 의료시설로 옮겼다.

론펠을 찾아간 레오나는 상황을 물었다.

“어떻습니까?”

“죽은 사람이 다섯에 부상이 일곱 명이다. 나머진 제때 도망쳐서 무사하다.”

레오나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는 바로 탄트였다.

탄트는 동기들이 도망치는 것을 돕다가 마물들에게 공격당해 다리를 뜯겼다.

상처 부위가 깊어 절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탄트.”

탄트는 이를 악물고 레오나를 보았다.

“그 괴물들…… 너를 찾았어. 나한테 네가 어디 있냐고 물었어.”

레오나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의 표적은 나였어.”

“…….”

탄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넌 다친 곳 없이 무사한 모양이네.”

레오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상처를 치료해 줄게.”

“뭐?”

탄트의 다리에 감긴 붕대를 푼 레오나는 그 처참한 상처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는 상처의 느낌에 마음이 아팠다.

“리스토레이션.”

화악!

눈부신 빛이 손바닥을 타고 번졌다. 빛은 탄트의 상처 부위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거짓말같이 탄트의 상처가 수복되었다.

탄트는 말끔해진 다리를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대체?!”

손을 거둔 레오나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부터는 다치지 마.”

탄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레오나의 기적은 병실 곳곳에서 일어났다.

불구가 될 뻔한 마법사들은 레오나의 기적 같은 신성 마법에 되살아났다.

레오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여신을 보는 듯했다.

“여, 여신이 강림한 게 분명해.”

누군가 무의식으로 던진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때 론펠이 레오나에게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알겠습니다.”

론펠은 레오나를 데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아델라에게서 레오나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레오나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고.

“탑주님께서 자세히 말씀은 안 해주셨지만, 네가 사용한 그거 신성력이 맞나?”

“맞습니다.”

론펠의 미간에 주름 잡혔다.

“신성력은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럴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그걸…….”

“그건 신이 허락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론펠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 사태, 5장로가 널 죽이기 위해 벌인 일이라 하시더군.”

“맞아요. 5장로가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5장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론펠은 착잡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도망쳤다더군.”

그동안 1장로가 5장로에 대해 조사를 하였고, 그의 만행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그 사실을 근거로 1장로는 다른 장로들에게 5장로의 만행을 알렸고, 탑주와 장로들의 회의를 통해 5장로를 처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5장로는 그 틈을 타 도망을 쳤다.

“그렇군요.”

“5장로의 연구실을 수색한 결과 이걸 발견했다.”

론펠이 내민 것은 검은색의 구슬이었다.

“급히 도망치느라 이걸 흘리고 간 모양이더군. 탑주님께서 네게 보여주면 이게 뭔지 알 거라 하셨다.”

고개를 끄덕인 레오나는 단번에 대답했다.

“그건 마정입니다.”

“마정?”

“마기를 모아 만든 일종의 씨앗 같은 거죠. 이걸 사람 몸에 심으면 마물로 변합니다.”

그 말에 론펠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마법사들을 공격한 것들이…….”

“맞습니다. 마정을 삼킨 자들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강한 힘을 원했을 테니까요.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욕망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이런 것을…….”

“간절했을 겁니다. 그러니 5장로의 유혹에 넘어간 거겠죠.”

론펠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마음 본인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해지고 싶은 욕망.

그도 가지고 있는 마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얻고 싶지는 않았다.

“이거 제가 없애도 될까요?”

레오나가 손에 든 마정을 가리키며 묻자, 론펠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주님께서 네가 처리하도록 지시하셨다.”

“그럼, 처리하겠습니다.”

레오나는 신성력으로 마정을 정화했다. 정화된 마정은 하얀빛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론펠은 레오나가 정말로 강림한 여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황량한 황무지에 빛무리와 함께 5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레오나를 죽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하였건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라이카는 죽고, 리즈는 도망쳐 왔다. 완전 실패였다.

“왜 주인이 그년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났는지 알겠어.”

쉽게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가진 신성력이란 무기는 꽤나 강력했다.

“주인이 내가 그년을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큰 벌을 내릴 거야.”

레오나를 죽였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어쩐다.”

도망쳐서 숨어 있어야 하나,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고 벌을 받아야 하나.

일단 마탑에서 도망치는 데는 성공했다.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으니, 자신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자.”

5장로는 조금 걸어간 뒤에 다시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마탑에서 아주 멀리멀리 달아나야 한다.

5장로가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는 순간, 마법이 무효화되었다.

“이게 무슨…….”

놀람도 잠시.

“우리 5장로께선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시려고 그러나?”

5장로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타, 탑주가 어떻게.”

“글쎄, 어떻게 찾아냈을까?”

믿을 수 없게도 탑주 아델라가 5장로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을 따돌렸다고 꽤 방심한 모양이야.”

5장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쳐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아델라가 싱그럽게 웃었다.

“성스러운 나의 마탑에서 아주 깜찍한 짓을 하였어. 각오는 하고 저지른 거겠지요, 5장로.”

그 말에 5장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탑주, 강한 힘을 가진 우리가 왜 세상의 눈치를 보며 웅크려야 합니까? 마탑은 충분히 세상을 지배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그 힘을 펼치려고 했을 뿐이오.”

“5장로는 세상에 군림하고 싶었나 보군.”

“당연한 것 아니겠소.”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의 약속은 그새 잊은 모양이야.”

5장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 마탑에 들어오면 맹세를 한다.

그 어떤 경위로도 마법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마탑은 그 어떤 분쟁에도 중립을 지키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마법사들에게 시킨다.

5장로도 그 맹세에 응하고 마탑에 들어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했던 맹세는 욕망에 퇴색되고 말았다.

5장로가 외쳤다.

“마탑은 변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폐쇄적일 순 없습니다.”

“그 변화가 흑마법에 손을 대는 것이었나?”

“난 탑주를 능가할 강한 힘을 원했을 뿐이오. 언제까지 탑주가 정상에 있을 거라 보장하지 마시오!”

아델라가 씩 웃었다.

“그렇다면 그대의 강함을 직접 경험해 보지.”

5장로는 이를 악물었다.

탑주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도망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 한다.’

5장로가 스태프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움직여 독연을 생성했다.

녹색의 연기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아델라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독연을 싹 몰아냈다.

그사이 5장로는 스태프를 치켜들고 마법을 시전했다.

“포이즌 월!”

독성으로 이루어진 액체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아델라를 덮쳤다.

한 번이 아니었다.

세 번의 파도가 아델라를 향했다.

그 틈에 5장로는 도주를 시도했다. 그 순간 아델라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순식간의 독성 액체를 정화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도주하던 5장로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크악!”

순식간에 빛에 휩싸인 5장로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흑마법을 익혔기에 신성한 빛에는 취약했다.

“고작 한다는 것이 도망이라니, 한심하군.”

눈부신 빛을 몸에 두른 아델라가 바닥에 널브러진 5장로를 오연하게 내려다보았다.

“무, 무슨…….”

5장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되면 최선을 다해 아델라를 공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5장로가 마기를 방출시켰다. 5장로의 전신이 마기로 물들었다.

강대한 힘이 몸에서 용솟음치는 게 느껴졌다. 5장로는 희열에 찬 얼굴로 아델라를 보았다.

5장로를 바라보며 아델라는 혀를 찼다.

“완전히 욕망에 물들었구나.”

“크크크, 당신은 이해 못 해.”

스태프를 버린 5장로가 양손에 마기를 그러 모았다.

“다크 블레이드.”

마기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칼날이 아델라를 노리고 날아갔다.

아델라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생성된 빛의 칼날이 다크 블레이드와 충돌했다.

5장로는 마기를 모두 방출했다. 다크 블레이드의 개수가 수백 개로 늘어났다.

칼의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에 반격하듯 아델라도 빛의 칼을 만들어 내 다크 블레이드와 상쇄시켰다.

“이익!”

5장로가 양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

“다크 토네이도!”

마기의 회오리가 거세게 몰아치며 아델라를 날려버릴 듯 덮쳤다.

비상 마법으로 하늘 위로 솟구친 아델라가 다크 토네이도의 중심에 빛의 화살을 꽂았다.

다크 토네이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핵이 빛의 화살에 맞아 산산조각 났다.

그러자 다크 토네이도가 소멸했다. 그럼에도 5장로는 발악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이 너무 아까웠다.

영광된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죽어야 한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5장로가 모든 마기를 끌어모았다. 그동안 축적해 온 마기가 모두 방출되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빛의 창이 5장로의 등을 공격했다.

“컥!”

순식간에 당한 터라 방어할 틈이 없었다. 두 눈을 부릅뜬 5장로가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델라가 말했다.

“늦었구나.”

“제가 늦은 겁니까?”

“내가 아주 곤란하던 참이었단다.”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요?”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사람은 레오나였다. 레오나가 싱긋 웃으며 아델라를 보았다.

“어떻게, 제가 뒤로 물러날까요?”

그 말에 아델라가 답지 않게 엄살을 부렸다.

“무슨 소리, 스승이 물러나야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도 예전 같지 않구나.”

아델라가 선뜻 뒤로 물러나 주었다.

“네가 상대해 주렴. 난 좀 쉬어야겠구나. 저놈을 추적하느라 힘을 좀 많이 썼거든.”

“엄살 부리지 마세요.”

레오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아델라가 미소를 지었다.

“엄살이 아니란다. 팔다리가 쑤시는 것이 안 아픈 데가 없어.”

팔과 다리를 두드리며 아픈 시늉을 하는 아델라를 보며 레오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맡아야겠군요.”

“그러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5장로가 발끈했다.

‘이놈들이!’

아주 쌍으로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레오나까지 나타난 이상 도망은 글렀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죽더라도 두 사람만은 죽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죽어버리겠어.”

설사 여기서 자신의 모든 생명력이 사라진다 해도 저 둘을 저승길 동무로 삼을 것이다.

“다크 디스트럭션 윈드!”

5장로의 마기와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생명력을 느끼며 5장로는 강력한 흑마법을 펼쳤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검은 폭풍우가 몰려왔다.

레오나도 아델라도 심상치 않은 마법임을 직감했다.

“크하하하, 모두 사라져라!”

양팔을 벌려 크게 웃은 5장로가 검은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다.

아델라와 레오나는 급히 앱솔루트 배리어를 펼쳐 자신을 보호했다. 검은 푹풍우는 너무 강했다.

마법을 파훼해야 했다.

레오나가 아델라를 보았다. 한숨을 푹 내쉰 아델라가 차가워진 얼굴로 검은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싱 오브 썬.”

아델라의 양손에서 터진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며 노래가 들려왔다.

맑고 깨끗한 노래였다.

하늘에 울려 퍼진 노래는 검은 폭풍우를 잠재우기 시작했다.

거세가 몰아치던 검은 폭풍우는 노랫소리에 점점 크기를 줄이더니 이내 먹구름마저 흩어지게 하였다.

잠시 후, 검은 폭풍우 속에 갇혀 있던 5장로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명까지 소진한 그의 몸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5장로의 입에서 나직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제, 젠장…….”

그가 두 팔을 늘어뜨리며 눈을 감으려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뇌리를 때렸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되지요.

거짓말처럼 감기려던 5장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앞에 검은 블랙홀이 나타났다. 블랙홀 속에서 하얗고 기다란 손이 그의 다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5장로는 순식간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반항할 틈도 없었다.

레오나와 아델라는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는 5장로를 바라보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곧이어, 블랙홀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지않아 다시 보게 될 겁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를 겁니다. 후후후.

웃음소리와 함께 블랙홀이 사라졌다.

레오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놓쳤군요.”

“그러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마탑으로 돌아왔다.

아델라는 장로들 모두를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마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으니,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5장로를 놓친 경위에 대해서 아델라는 설명을 하였다.

아델라의 설명을 들은 장로들은 심각한 얼굴을 하였다.

5장로가 흑마법사에게 현혹되어 타락했고, 5장로는 마탑안의 마법사 수십 명을 상대로 흑마법 연구 실험을 하였다.

그로 인해 마탑의 마법사 수십 명이 끔찍한 마물이 되었고, 마법사들을 공격하였다.

5장로가 그러한 일을 벌이는 동안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신성한 마탑에서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이로 인해 애꿎은 마법평이 피해를 보았다. 생명을 잃은 마법사들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이 힘들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델라가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들이 머지않아 이 세상에 재앙을 일으킬 겁니다. 우리는 그 대비를 해야 합니다.”

아델라의 말에 장로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1장로.”

“예, 탑주님.”

“그대는 파견 나가 있는 모든 마법사를 불러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아델라의 시선이 3장로와 6장로에게 향했다.

“3장로와 6장로는 전투 가능한 마법사들을 모아 흑마법사 대응 훈련을 시작하세요.”

“맡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델라는 다른 장로들에게도 별도의 임무를 주었다.

“2장로와 4장로는 마탑의 비상 결계를 담당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7장로는 동요하고 있을 수습 마법사들을 부탁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모두에게 역할을 분담한 아델라는 회의를 파하고, 레오나와 독대하였다.

레오나가 청한 것이다.

“스승님, 저는 기사단으로 복귀할까 합니다.”

“그래야겠지.”

레오나가 마탑에서의 할 일은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레오나, 기사단에 복귀하더라도 내가 알려준 마나 심법은 꾸준히 익혀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아델라 덕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초급 수준에 불과하지만, 수련하다 보면 늘 것이다.

아델라는 그녀대로 마탑에서 재앙에 준비할 것이다.

레오나도 기사단으로 복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 * *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촛불 하나가 놓였다. 촛불은 어두운 공간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밝혔다.

“크으…….”

바닥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녹색의 로브 자락은 피로 물들었고, 로브의 주인은 보기 힘들 정도로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 있었다.

미라의 주인은 5장로였다.

5장로는 블랙홀 속으로 잡혀 들어온 직후, 끔찍한 벌을 받았다.

가지고 있던 마기는 모두 빼앗겼고, 남은 것이라곤 한 줌의 생명력뿐이었다.

그래도 죽긴 싫은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 그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여인은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하얀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긴 힘들지만, 그녀는 엄청난 양의 마기를 품고 있었다.

“제, 제발…….”

5장로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는 간절했다.

무척이나 살고 싶었다.

그녀가 다리를 꼬더니, 5장로를 가소로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경멸이 서려 있었다.

“감히, 나를 기만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요?”

그녀가 허공에 손짓하자, 검은 번개가 나타나 5장로를 강타했다.

“끄아아아-”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5장로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살 수 있을 정도로만 괴롭혔다.

“당신은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이 정도로 해두죠.”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뒤에 손짓했다. 그러자 뒤에 시립해 있던 검은 로브의 여인이 다가왔다.

“5장로를 대미궁으로 보내. 그리고 마탑 쪽에 미끼를 뿌려.”

“알겠습니다.”

마탑은 5장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5장로를 대미궁에 밀어 넣으면, 자연스럽게 탑주 아델라가 대미궁에 발을 들일 것이다.

탑주 아델라를 이용해 파편을 차지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침 아델라의 손에 나머지 파편이 있을 터이니, 일석이조였다.

그녀는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검은 로브의 여인이 5장로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벌레처럼 기는 5장로를 바라보며 비웃었더니, 5장로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그러게, 적당히 좀 까불지 그랬어. 이 꼴이 됐잖아.”

“끄으…….”

“마스터가 네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가셨어. 아주 특별한 거야.”

그녀가 소매 속에서 검은 구슬을 꺼냈다. 검은색 구슬엔 붉은색의 마법진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구슬을 본 5장로의 눈이 커졌다.

“그…….”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뭔지 아는 모양이네?”

5장로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절대로 싫다는 거부 의사였다.

그러자 그녀가 5장로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넌 거부할 의사가 없어. 마지막으로 마스터께서 베푸신 은혜니까, 받아들이라고.”

다시 5장로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 그녀는 검은 구슬을 5장로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5장로는 있는 힘을 다해 뱉으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구슬은 그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5장로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5장로의 뒷덜미를 잡아 이동 마법진을 펼쳤다.

그렇게 5장로의 운명은 정해졌다.

* * *

마탑을 떠나기 전, 레오나는 메리벨을 만났다.

메리벨은 무척 괴로운 얼굴이었지만, 강해지겠단 의지로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오나는 왔는지도 모른 채.

레오나는 메리벨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지켜봤다.

온몸이 땀으로 적실 정도로 수련에 매진하던 메리벨은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레오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멈칫한 메리벨은 레오나에게 곧장 다가왔다.

“……언제부터 있었어?”

“수련을 방해한 거라면 사과할게.”

메리벨이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괜찮아.”

레오나는 벤치에 놓인 수통을 메리벨에 건넸다.

“마셔. 목이 마른 것 같은데.”

“고마워.”

수통을 받아 든 메리벨은 마개를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함에 정신이 맑아졌다.

수통을 벤치에 내려놓은 메리벨이 레오나를 보았다.

레오나가 말했다.

“나, 기사단으로 복귀하게 되었어.”

메리벨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래? 그럼, 이제 안 돌아오는 거야?”

레오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탑주님의 제자가 되었어. 마탑과의 인연은 계속될 거야.”

“그렇구나.”

레오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넌, 어떻게 할 거야. 아직도 리즈를 구할 생각이야?”

메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싶어. 라이카는 그렇게 되었지만, 리즈는 내 손으로 구하고 싶어.”

“쉽지 않을 거야.”

“알아.”

“너도 봤겠지만, 상대는 강한 흑마법사야. 네가 죽을 수도 있어.”

메리벨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각오하고 있어.”

레오나는 착잡한 얼굴로 메리벨을 보았다. 그녀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나서는 바람에 리즈를 놓치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리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게 메리벨에게는 더 끔찍한 상황일 수도 있다.

“후회하지 마.”

“안 해.”

단호한 메리벨의 대답에 레오나는 그녀의 의지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또 보자.”

몸을 돌린 레오나는 그대로 걸어갔다. 메리벨은 멀어지는 레오나를 보며 눈가가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은 메리벨은 굳은 의지로 대답했다.

“그래, 또 보자. 레오나.”

레오나를 다시 보게 되는 날 자신은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절대 누구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메리벨은 다짐했다.

* * *

다음 날, 레오나는 백기사단으로 복귀하기 위해 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특별히 아델라가 이동시켜 주기로 하였다. 레오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레오나가 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아델라가 웃으며 물었다.

“준비는 다 된 거냐?”

“네.”

“가서도 마나 심법 훈련 꾸준히 해야 하는 거 잊진 않았겠지?”

“물론이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당부하셨잖아요.”

피식 웃은 아델라가 손을 움직였다.

“나중에 또 보자, 내 제자.”

그에 레오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화악!

아델라가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레오나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레오나가 도착한 곳은 제도 입구였다. 제도 입구에 도착하자 레오나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레오나의 부름에 그가 그녀를 보았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레오나를 꽉 끌어안았다.

레오나의 표정이 석상이 된 것은 당연했다. 레오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단단한 단장의 품에 안기게 되다니.

“무사해서 다행이다.”

귓가에 들려오는 데미안의 걱정 어린 말에 레오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걱정하셨습니까?”

레오나를 품에서 놓아준 데미안은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다친 데는…….”

“없어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나, 왜 내게 연락을 안 했지?”

“그건…….”

“너 혼자 충분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순간, 뜨끔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고, 익숙했다.

데미안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레오나, 앞으론 혼자 모든 걸 결정하지 마라.”

레오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네겐 나와 동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레오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의 걱정이 진심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널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내 실수다.”

아델라에게서 레오나에게 일어난 일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 큰일을 겪었는데도 레오나는 자신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참 서운했다.

레오나는 뭐든지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짙었다.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의지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고군분투하며 해결하려 들었다.

데미안은 레오나가 자신과 동료들에게 의지해 주기를 바랐다.

물론, 기사단의 성향상 개개인의 실력이 월등해야 하긴 하지만, 동료애도 필요하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레오나는 그 모든 걸 통달한 사람 같았다.

“탑주님께 연락을 받고 오신 겁니까?”

“그래. 네가 여기로 올 거라고 연락을 받았다.”

“그랬군요.”

“아델라의 진짜 제자가 된 소감은 어떻지?”

원래는 아델라의 가짜 제자로 마탑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올 때는 진짜 제자가 되어 있었다.

“레오나.”

“네?”

“기사단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겠지?”

레오나가 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반응이 보고 싶다고 할까?

“제가 마탑에 가겠다고 하면 보내주실 건가요?”

데미안의 푸른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아니.”

“제가 원하는데도요?”

데미안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넌 기사가 되고 싶어 백기사단에 입단한 게 아니었나?”

“…….”

“어렵게 입단했는데 이렇게 쉽게 그만두겠다고 하는 건가?”

장난으로 한 말인데 데미안은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다. 눈빛이 장난 아니라고 할까?

“단장님?”

“마탑에 돌아가고 싶나?”

“예?”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보내주는 수밖에.”

“저기.”

“언제 갈 생각이지? 이쪽에서도 나름대로 절차가 필요해서 말이야.”

이대로 가다간 땅끝까지 갈 기세라 레오나는 두 손을 들었다.

“농담이었어요.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순간 데미안의 어깨가 흠칫하는 게 보였다.

“농담이었군. 나도 농담이었다. 서둘러 복귀하도록 하지.”

데미안의 걸음이 빨라졌다. 레오나는 급히 그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데미안의 귀가 살짝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레오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단장님, 귀가 빨개졌어요.”

“이건, 날씨가 추워서 그렇다.”

레오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나도 안 추운데요?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잖아요.”

그 말에 데미안이 헛기침을 했다.

“저기에 말이 있다. 말을 타고 가도록 하지.”

“같이 가요.”

레오나는 데미안과 함께 말을 타고 이동했다. 말을 타고 이동하며, 보고 싶었던 제도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았다.

제도의 풍경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 모습 그대로 활기찼다.

이런 제도의 모습만 보면 곧 다가올 재앙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평화로운 세상에 갑자기 드리워질 암운을 생각하면, 착잡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비명이 들리게 될까 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백기사단에 도착해 있었다.

레오나가 나타나자, 선배 기사들이 거하게 반겼다. 부단장 란젤로는 레오나를 보자마자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부단장님!”

레오나가 볼멘소리를 내자, 란젤라고 크게 웃었다.

“목소리 큰 거 보니, 무사하네.”

“지금 그거 확인하려고 제 머리를 이렇게 만드신 겁니까?”

란젤로가 씩 웃으며 레오나의 머리를 한 번 더 헝클었다.

레오나는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이게 나름대로 그의 걱정을 청산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다행이다. 너 혼자 임무 맡아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를 거다.”

레오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부단장과 선배 기사들을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경례했다.

“무사히 임무 마치고 복귀하였음을 신고합니다.”

레오나의 무사 신고에 란젤라와 선배 기사들이 웃으며 무사 복귀를 축하해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