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매혹의 흑수정 목걸이
다음 날 저녁.
데미안은 기사단을 이끌고 경매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데미안을 비롯한 몇몇 기사는 손님으로 위장하였고, 나머지는 바깥에서 출입구를 봉쇄하고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레오나는 데미안과 함께 내부에 라파엘은 데미안의 지시에 따라 바깥 임무에 배정되었다.
바깥은 부단장 란젤로가 통솔하고, 안은 데미안이 통솔하는 것으로 하였다.
데미안은 무사히 기사들과 경매장 내부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곳에 모인 귀족들처럼 가면을 얼굴에 썼다.
그리고 기사들을 흩어지게 배치하였다.
데미안은 경매장 중앙에 앉았고, 나머지 기사들은 경매장 왼쪽 오른쪽에 나누어서 앉았다.
모든 귀족이 착석하자, 진행자가 단상 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올라오는 물건들은 다양했다.
그림부터 도자기, 장신구, 아티팩트 등이었고, 모두 고가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혹의 흑수정 목걸이가 경매에 올라왔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자,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경매품입니다.”
물건을 가린 천이 거두어지자 유리관 안에 흑색의 보석 목걸이가 자태를 뽐내었다.
진행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매혹의 흑수정 목걸이입니다. 시작가는 1,000골드부터 가겠습니다.”
진행자의 외침과 동시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야말로 치열한 가격 경쟁이었다.
“최종가 1억 골드가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낙찰되기 직전, 데미안이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기사들이 가면을 벗어 던지고 일어나 검을 들었다.
“모두 잡아들여라!”
데미안의 외침과 동시에 놀란 귀족들이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런 귀족들을 기사들이 제압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자리에서 뛰어내려 진행자 앞에 서더니 그에게 검을 겨눴다.
“목걸이는 우리가 회수하겠다.”
순식간에 백기사단이 경매장 안을 장악했다.
그사이 시엘이 조용히 나타나 목걸이를 회수했다.
시엘이 데미안에게 신호를 보내자, 데미안은 진행자를 제압했다.
뒷목을 맞고 쓰러진 진행자는 기사들에게 연행되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겨났다.
단상 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법입니다!”
레오나의 외침에 데미안은 단상에서 몸을 날렸고, 시엘도 목걸이를 든 채 피했다.
그러자 단상 한가운데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세 명이었다.
“목걸이를 내놔라.”
흑마법사 중 하나가 그렇게 외치며 시엘에게 마법 공격을 하였다.
“다크 애로우!”
하지만 그 마법을 파훼한 것은 시엘의 앞을 막아선 레오나였다.
“시엘, 목걸이를 가지고 먼저 나가.”
시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오나를 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내가 이 정도 놈들을 상대로 다치기라도 할 거 같아?”
“그건 아니죠.”
시엘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레오나가 재촉했다.
“우리의 임무는 목걸이를 회수하는 거야. 여긴 나와 단장님, 그리고 백기사단이 있어.”
레오나의 말뜻을 알아들은 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는 먼저 나가죠. 조심하십시오.”
“걱정 마.”
싱긋 웃은 시엘은 그림자 이동술을 이용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시엘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레오나는 흑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데미안을 보았다.
“다크 볼!”
“다크 애로우!”
검은 구체 열 개와 검은 화살 스무 개가 데미안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으로 흑마법을 소멸시켰다.
흑마법사는 연이어 마법을 시전했다.
“다크 필드!”
“다크 쉐도우!”
데미안이 딛고 서 있는 바닥이 검게 물들며 끈적끈적한 늪지대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을 띠며 솟아올라 데미안을 공격했다.
데미안은 그대로 바닥에 검을 내리꽂고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다크 필드가 산산이 조각났다. 검은 형상 역시 조각났다.
레오나가 나설 틈도 없었다.
레오나는 새삼 데미안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보게 되었다.
무지막지하게 강한 데미안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광분했다.
“다 죽여버리겠다!”
흑마법사들이 마력을 방출했다.
곧 그들 전신이 검게 물들며 몸이 변했다. 이마에 산양 뿔이 돋아나고,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등 뒤에 검은 피접 날개가 돋아났다.
악마화가 된 것이다.
악마화가 된 흑마법사 셋이 피접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들의 양손엔 커다란 구체가 생겨나고 있었다.
“통째로 날려주마.”
커다란 구체가 각각 데미안과 시엘에게 날아들었다.
데미안은 검을 휘둘러 구체를 반으로 갈랐다. 갈라진 구체는 양옆으로 쪼개지며 데미안을 비껴갔다.
그 옆에 레오나가 섰다.
“저도 돕겠습니다.”
“조심하도록.”
고개를 끄덕인 레오나가 검을 겨눴다.
* * *
시엘은 바깥 출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하지만 나가기도 전에 눈앞에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상대는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시엘을 보자마자 공격했다.
여러 개의 단검이 시엘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크.”
가볍게 단검들을 피해낸 시엘이 히죽 웃으며 남자를 보았다.
“이거, 조용히 나가긴 힘들겠는데?”
“목걸이만 내놓는다면 편히 보내주마.”
“그게 뭐야, 이러나저러나 죽이겠다는 거잖아.”
“내놔라.”
남자가 손바닥을 내밀자, 시엘은 코웃음 쳤다.
“가져가 보시든가.”
“거절이로군. 곱게 죽이진 않겠다.”
남자가 휘두른 단검이 매섭게 시엘을 노렸다. 하지만 시엘은 너무나 가볍게 단검을 튕겨냈다.
시엘이 남자를 도발했다.
“공격은 이게 다야? 그럼, 너무 시시한데 말이지.”
“죽어라!”
남자가 양손에 단검을 쥐었다. 그의 단검에 검은 마력이 넘실거렸다. 그걸 본 시엘이 눈을 빛냈다.
“너도 흑마법사구나.”
“다크 애로우!”
마법으로 검은 화살을 쏜 남자는 그대로 시엘에게 돌진해 양손에 든 단검을 엑스로 휘둘렀다.
시엘은 그림자 이동술로 피하고, 남자의 뒤를 점하고는 검으로 그의 등을 그었다.
“컥!”
죽지 않을 만큼만 살짝 베었다.
화끈한 통증에 남자가 시엘을 노려봤다. 남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시엘이 품에서 꺼낸 목걸이를 손가락에 걸어 빙글 돌리며 약 올렸다.
“이거 가지러 왔다며, 그럼 얼른 뺏어야지, 안 그래?”
두 눈에 핏발이 선 남자가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시엘은 악동처럼 신이 난 얼굴로 남자를 가지고 놀았다.
남자는 순식간에 팔과 다리를 베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이제 지루하다. 그만 끝내자.”
시엘이 검을 고쳐 잡았다.
장난은 이제 끝이었다.
큰 낭패감에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시엘을 상대로 목걸이를 빼앗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두고 보자!”
품에서 이동 스크롤을 찢은 남자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뭐야, 도망가?”
싱겁게 끝나버린 싸움에 짜증이 난 시엘은 목걸이를 도로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 * *
쿠웅!
데미안의 검에 맞은 악마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어서 레오나의 검에 맞은 악마도 신성력에 의해 소멸했다.
이제 남은 악마는 하나였다.
악마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몸을 떨었다.
악마화가 되면 무적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레오나와 데미안이 동시에 악마에게 검을 겨눴다.
“이제 너 하나 남았네?”
레오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악마가 이를 갈았다.
“네놈들은 그분께서 벌하여 주실 것이다!”
악마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지, 그의 전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가자!”
두 눈을 부릅뜬 레오나가 신성 마법을 펼쳤다.
“프로텍션!”
투명한 방패가 레오나와 데미안을 감쌌다.
레오나는 프로텍션을 중첩시켰다. 곧이어 악마가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로 레오나와 데미안은 인상을 썼다.
중첩시킨 프로텍션 두 개가 깨지며,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 폭발이 멎었다.
그리고 두 사람 주위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천장이 주저앉았고, 바닥도 가라앉았다.
레오나와 데미안은 그 잔해 속에서도 프로텍션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레오나는 프로텍션을 펼친 상태에서 재빨리 데미안부터 살폈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데미안은 먼지를 조금 뒤집어썼을 뿐 멀쩡했다.
“레오나. 마법을 거둬라.”
“예?”
“여길 벗어난다.”
레오나가 펼친 프로텍션 덕분에 두 사람은 잔해에 깔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오나가 프로텍션을 거둔다면 순식간에 잔해에 묻힐 것이다.
레오나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 데미안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날 믿어라.”
어느새 레오나의 곁으로 다가온 데미안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레오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프로텍션을 거두었다.
그러자 데미안이 마법을 시전했다. 두 사람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잔해들이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경매장 밖으로 이동되었다.
두 눈을 감고 있었던 레오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데미안이 이동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라서 놀랐다.
“괜찮나?”
“아, 예. 괜찮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곁으로 란젤로가 다가왔다.
“무사하셨군요, 단장님.”
“바깥 상황은 어떻게 되었지?”
“출입구를 봉쇄하고 불법 경매에 참여한 귀족들을 제압하여 압송했습니다. 경매장을 운영했던 놈들 또한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수고했다. 그만 돌아간다.”
“예, 단장님.”
데미안이 앞장을 서자, 레오나와 란젤로가 뒤를 따랐다.
숙소로 복귀한 데미안은 시엘이 회수해 온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정말 사이하군. 레오나,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나?”
“잠시 만져봐도 될까요?”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오나는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굉장히 섬뜩하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목걸이게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레오나는 목걸이를 다시 내려놓았다.
“마기군요.”
“마기?”
“예, 이 흑수정 안에 고밀도의 마기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아요.”
“확실한가?”
“네, 느껴졌어요.”
“이건 봉인해 두는 것이 낫겠군.”
데미안은 목걸이를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가져온 시엘을 보았다.
“이 목걸이는 마탑에서 봉인시키기로 하지.”
“마탑이라……. 믿을 만합니까? 그곳도 예전과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
“마탑주 아델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좋습니다. 그리하시지요, 대신 조심하십시오. 마탑 내에도 흑마법사들이 숨어 있다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알고 있다.”
마탑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데미안도 알고 있었다.
그는 마탑주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고, 마탑에 관한 정보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마탑주 아델라라면 목걸이를 봉인시킬 것이다.
그녀는 제국을 수호하는 위대한 대 마법사니까.
* * *
방으로 돌아온 레오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지쳤다.”
피곤했다.
이런 저런일을 겪다보니 몸이 많이 지쳐버렸다. 그리고 후련했다.
드디어 임무가 끝났으니까.
단장과 함께 흑마법사들도 처치하고 목걸이도 회수했다.
그런데.
‘그 목걸이, 마치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단 말이지.’
실제로 말을 건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아무튼 엄청 위험한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데미안이 마탑주를 통해 봉인시킨다고 하였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다.
만약, 그 물건이 다시 세상에 나와 재앙을 일으킨다면 정말 끔찍한 알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자자.’
피곤함에 눈을 비비며 자려는데,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홱 소리 나게 돌려 창문을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시엘…….”
레오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뭐 하는 짓이야?”
“몰래 방문? 들어가도 됩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들어올 거잖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레오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몸을 돌려 침대에 걸터앉았다.
“용건이 뭐야?”
“보고 싶어서요.”
“우리 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든?”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얼마 안 되었다니요. 저는 일분일초라도 더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닭살 돋아.”
“전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겁니다. 절대 당신을 다치거나 죽게 두지 않을 겁니다.”
시엘의 진청색 눈이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고 진지했다.
레오나는 시엘이 왜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는 율리아나의 죽음을 슬퍼했으니까, 후회가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레오나가 된 그녀를 찾아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시엘, 후회한다는 듯한 눈으로 날 보지 마. 네가 후회해야 할 일은 없어.”
시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전 후회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당신의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넌 내 죽음을 막을 수 없었을 거야. 아스텔이 그러했듯이.”
“전 달랐을 겁니다.”
자신은 다를 거라고. 그리하여 그녀의 죽음을 막았을 거라고 말이다.
“시엘, 내게서 원하는 게 뭐야?”
“제가 원하는 건 하나뿐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시엘이 레오나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제가 당신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레오나는 고집스러운 그를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무엇이 시엘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이 시엘에게 그런 존재였던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엘은 적이자 전우였을 뿐이었으니까.
시엘이 자신에게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밀어내고 싶지만, 절절한 시엘의 눈빛이 예전 아스텔의 눈빛과 겹쳐 보여 그러지 못했다.
“당신이 하지 말라고 해도 나는 당신을 지킬 겁니다.”
고집스러운 진청색 눈이 레오나를 담았다.
시엘의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 레오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와는 많은 싸움터를 함께 했다.
때론 적으로, 때론 아군으로 만났다. 공통된 적이 생겼을 때 시엘만큼 든든한 아군은 없었다.
그는 그녀가 등을 맞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시엘, 난 널 막을 생각 없어. 다만 내 마음까진 강요하지 마.”
“강요하지 않습니다. 전 살아 있는 당신을 곁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좋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제게 향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고요.”
“기다리기만 하다가 늙어 죽으려고?”
시엘이 빙그레 웃었다.
“아시잖습니까, 전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것을. 그러니 그 마음을 당신께 모두 드리고 죽을 겁니다.”
시엘의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레오나는 침음을 삼켰다.
‘원래 미친놈이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다 내 죄구나.’
레오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 끝났으면 그만 가, 난 좀 잘 거니까.”
“눈 붙이십시오.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레오나가 도끼 눈을 떴다.
“안 나가?”
시엘이 시무룩한 얼굴을 하였다.
“한 대 맞고 나갈래?”
시엘이 마지못해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물러가죠.”
창문으로 몸을 날린 시엘을 바라보며 레오나는 혀를 찼다.
그러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시엘은 레오나가 있는 숙소 건물 지붕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밤하늘이 유독 시렸다.
그래도 레오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서 좋았다.
* * *
다음 날 아침, 백기사단은 제도로 향했다.
많은 죄인을 압송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경매장에 참여한 죄인들과 경매장을 운영하는 자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친 여정 끝에 백기사들은 무사히 제도로 복귀했다.
죄인들은 모두 집행부에 인계하였고, 데미안은 황제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동안 기사단으로 복귀한 기사단은 휴식을 취했다.
레오나는 기사단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며칠간의 강행군 탓에 제대로 씻지도 못해 몸에서 냄새가 났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의자에 앉은 레오나는 개운함에 날아갈 것 같았다.
“아, 정말 개운하다.”
똑똑.
그때 레오나의 방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레오나, 나다, 제임스. 문 열어도 되냐?”
“어, 열어도 돼.”
제임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레오나, 씻었냐?”
“좀 찝찝해서.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다이앤 황녀 전하께서 네게 이걸 전해 주라셨다.”
레오나는 제임스가 내민 쪽지를 받아 펼쳤다.
쪽지엔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쪽지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은 레오나는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그럼, 나는 이만 쉬러 간다.”
“어, 푹 쉬어.”
“오냐.”
피식 웃은 레오나는 재킷을 걸쳐 입고 라일락 궁으로 향했다.
라일락 궁에 도착하니 다이앤 황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레오나 경!”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에요.”
레오나를 바라보는 다이앤 황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보고 싶었어요, 레오나 경.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구운 쿠키, 맛보아 주실래요?”
레오나가 빙그레 웃었다.
“영광입니다, 황녀 전하.”
레오나의 미소에 다이앤 황녀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우리 저기로 가요.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서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했거든요.”
레오나는 다이앤 황녀의 이끌림에 정원에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한가로운 오후였다.
* * *
황제에게 보고를 마친 데미안은 쉴 틈도 없이 곧장 마탑주 아델라를 만났다.
그녀를 만난 곳은 제도와 마탑 사이에 있는 한적한 오두막집이었다.
온갖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안전 가옥이었다. 데미안은 아델라를 늘 이곳에서 만났다.
마탑은 보는 눈이 많고, 마탑주가 있는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데 절차가 까다로워 마탑주인 그녀가 직접 제안한 것이었다.
오두막 안에서 데미안과 그녀는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마탑주 아델라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구나, 데미안.”
“스승님도 여전하시군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꼬꼬마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다 자라서 단장씩이나 되다니.”
그녀는 데미안에게 마법을 가르친 장본인이었다.
“여기, 부탁드릴 물건입니다.”
“매정하긴, 오랜만에 보는 스승에게 용건을 먼저 꺼내다니, 섭섭하구나.”
“안부는 전했고, 남은 건 용건뿐이지 않습니다.”
아델라는 혀를 찼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기는 하지만 데미안은 정말 건조했다.
일정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지나치게 딱딱한 구석이 있었다.
“너 그렇게 딱딱하게 굴다간 평생 연애 한 번 못해 보고 늙어 죽을걸?”
그 말에 순간 데미안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걸 놓칠 아델라가 아니었다.
“뭐야, 너 정말 여태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본 것이냐?”
“바빴습니다.”
그 모습에 아델라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 아델라를 보며 데미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 웃으셨습니까?”
“쿡쿡, 미안.”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 아델라가 표정을 고쳤다.
“가져온 물건이나 내놔보렴.”
기다렸다는 듯이 데미안이 품 안에서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상자를 연 아델라는 목걸이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게 매혹의 흑수정 목걸이로군.”
목걸이의 보석을 두 눈 가까이 다가간 아델라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요물이긴 하네.”
“세상에 나와선 안 될 물건입니다. 봉인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 내가 확실하게 봉인시킬 테니까.”
목걸이를 도로 상자에 집어넣은 아델라는 아공간을 열어 상자를 집어넣었다.
“이제 용건은 끝났으니,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보렴.”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데미안을 바라본 아델라가 활짝 웃었다.
이야기가 기대된다는 듯이.
“레오나라고 했던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그 아이, 네 밑에 있지 않니?”
“그렇습니다만.”
데미안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아델라를 보았다.
“너무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 내가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궁금해서 그래, 어떤 아인지 얘기 좀 해줘.”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아델라가 데미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개인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쳇. 시시하게 굴기는.”
아델라는 김이 팍 샜다는 듯,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데미안을 보았다.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데미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델라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 없기는…….”
작게 투덜거려 보았지만, 데미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휴, 저 건방진 자식.”
예전부터 저 모양이었지만, 커서까지 저럴 줄이야.
아델라는 고개를 저었다.
* * *
“목걸이를 빼앗겼다고?”
거울을 움켜쥔 2황녀 비비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면목 없습니다. 악마화된 녀석들까지 잃었습니다.]
“우리의 전력이 백기사단 하나 못 이길 정도였다는 건가?”
[백기사단의 단장은 그렇다 쳐도 레오나라는 여자의 신성력이 골치였습니다.]
“결국, 그 여자의 방해가 컸다는 얘기로군.”
레오나 그 여자는 정말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사건건 자신의 일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거슬려.”
입술을 질끈 깨문 2황녀 비비안은 거울 속에 비친 남자 베논을 바라보았다.
“일단 목걸이의 행방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내, 목걸이는 반드시 필요하니까. 레오나, 그 여자는 내가 처리하지.”
[예, 주인님.]
대답을 들은 2황녀 비비안은 통신을 끊었다.
“그 여자, 정말 안 되겠어.”
거울을 내려놓은 2황녀 비비안은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2황녀 비비안의 얼굴이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를 이용하면 쉽겠어.”
원래 가까이 있는 적이 더 유용한 법이다. 현재 레오나에게 있어 가장 가까이 있는 적.
“칼리반 백작가지.”
빙그레 웃은 2황녀 비비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엘을 만나봐야겠어.”
리리엘 칼리반.
레오나에게 있어 가장 껄끄러운 존재.
허영심 많고, 질투 심한 리리엘이 레오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