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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벼락출세 (7/20)

6. 벼락출세

며칠 후, 레오나는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황명은 데미안이 직접 가지고 왔다.

레오나는 데미안과 함께 황제의 궁으로 향했다.

황제의 궁으로 향하며, 데미안은 황제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미리 언질을 주었다.

“네게 상을 내리실 모양이다.”

“상이요?”

“그래.”

막상 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기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레오나로서는 첫 보상을 받는 일이니까.

어느새 알현실 앞에 도착했다.

알현실로 들어가니, 황제 내외와 황태자, 다이앤 황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레오나와 데미안은 황실 일가를 향해 예를 올렸다.

“일어나시게.”

황제의 명에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은 황제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레오나 경, 짐이 그대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지난번에 하지 못한 것을 하기 위함이네.”

황제가 온화한 미소로 레오나를 보았다.

“그대 같은 인재가 제국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이야.”

“황공하옵니다.”

“짐은 그대에게 작위를 하사하고자 하네.”

“작위라니, 너무 과합니다.”

“이 일은 황후와 황태자, 황녀와 함께 상의한 일이니 사양하지 말게나.”

작위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 황태자가 언급하긴 했지만, 진짜로 주려는 모양이었다.

레오나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황제 일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이앤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오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받아줘요, 레오나 경.”

“황녀 전하.”

“어마마마도, 오라버니도 모두 경이 우리의 성의를 받아주길 바라요.”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해 레오나는 마지못해 받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레오나의 대답에 황제가 흐뭇하게 웃었다.

“짐은 레오나 경에게 남작 위를 내리겠다.”

남작 위는 기사가 첫 공을 세웠을 때 받을 수 있는 작위였다.

“또한 짐은 그대에게 새로운 성을 하사하고자 하네.”

“서, 성이요?”

가문을 나온 탓에 레오나는 칼리반이란 성을 버렸다. 성이 없는 평범한 신분이 된 것이다.

그런데 황제가 성을 하사하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황제는 레오나가 왜 성이 없는지 데미안에게 들었다.

레오나는 놀랍게도 칼리반 백작가의 장녀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칼리반 백작가에 못난이 딸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게 저 아이일 줄이야.’

그런 레오나가 신성력을 가진 마검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칼리반 백작 또한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레오나를 호적에서 파내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제부터 그대는 레오나 아제르티아 남작이다.”

레오나는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황제가 웃으며 황태자에게 눈빛을 주었다.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예?”

레오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황태자를 보았다. 설마, 황태자도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레오나 경,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황태자가 내민 것은 부동산 서류였다.

“지금 기사단 숙소에 머물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건 레오나 경이 제도에서 지낼 때 사용하라고 드리는 겁니다.”

황태자가 선물한 것은 제도 센터폴 중심가 노블레스 타운에 있는 저택이었다.

노블레스 타운은 귀족들이 제도에 머물 때 사용하는 저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땅값이 어마어마해서 웬만큼 돈이 많지 않은 가문은 엄두도 못 내는 그러한 곳이었다.

데미안의 저택과 라파엘의 가문인 바스티안 공작가 저택도 그곳에 있었다.

그런 곳을 황태자가 내어 준 것이다.

황태자가 웃으며 말했다.

“깨끗하게 관리하라고 했으니, 몸만 가면 됩니다. 필요한 고용인들도 대부분 고용했습니다. 아, 집사는 경이 직접 고용해야 할 겁니다.”

집사는 저택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다. 그리고 주인의 최측근이 될 사람이기도 해서, 레오나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레오나를 보필해야 하는 사람이니, 레오나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고용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세심한 배려 감사합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과하다 생각합니까?”

“예.”

“과하지 않습니다. 제 동생을 구해 준 것에 비하면, 이깟 것으론 어림도 없죠. 그러니 받아주세요. 제가 레오나 경한테 선물한다고 며칠을 고민하며 마련한 겁니다. 제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황태자가 그렇게 나오니, 더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나 경, 이건 제 선물입니다.”

이번엔 황후였다. 황후가 건넨 선물은 광산 서류였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를 골라봤어요.”

“이런 귀한 것을…….”

광산이라니, 그것도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다. 완전 대박이 아닐 수 없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너무 과분해서…….”

“받아주세요.”

황제와 황태자에게 너무 과한 선물을 받았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이앤 황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 선물, 제가 어마마마와 함께 고심하여 고른 거예요, 받아주세요.”

“황녀 전하…….”

“과하다 생각지 말아요. 그동안 경이 절 지켜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다이앤 황녀의 다이아몬드 빛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그 해맑음에 레오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잘 받겠습니다.”

“고마워요, 레오나 경.”

레오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작위에 대저택도 모자라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니, 잭폿이 제대로 터졌다.

그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작위 수여식은…….”

“간소하게 치러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주목받는 걸 싫어해서.”

“그런가?”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오나가 간절하게 부탁하자, 황제가 황후와 황태자, 다이앤 황녀를 보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경이 원하는 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하여 작위 수여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약식으로 황태자의 검으로 세례를 내리고 인장을 내어주었다.

“레오나 아제르티아 남작, 제국을 위해 그대의 충성을 바치겠나?”

“물론입니다, 폐하. 기사된 도리로 최선을 다해 제국을 수호하겠습니다.”

“믿겠네.”

레오나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인장을 받았다.

새롭게 제작된 인장엔 아제르티아의 성과 유니콘 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마음에 듭니다.”

그렇게 레오나는 제국에 새로운 남작이 되었다. 신입 기사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황제 일가의 선물 증정식이 끝나자, 레오나는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단장실에서 데미안과 대화를 나누었다.

“남작위와 성을 받았다지?”

“네, 과분하게도 폐하께서 제게 작위와 성을 내려주셨습니다.”

“다른 것도 받은 것 같은데?”

레오나는 쑥스럽게 웃었다.

“제도에 있는 저택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받았는데 너무 과하단 생각이 들긴 하였다.

“부담스럽나?”

“조금요.”

너무 과하게 받은 느낌이 강했다. 작위와 성도 받았는데 저택과 광산까지. 받아도 되는지 얼떨떨했다.

“넌 황녀를 살렸다. 황녀의 목숨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지.”

“그렇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도록. 너는 폐하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닥쳐올 슬픔을 막아준 것이다.”

다이앤 황녀는 황제 일가의 사랑뿐만 아니라, 제국민의 사랑도 받고 있었다.

비록 얼굴을 내비치지 않지만, 황가의 적통 황녀는 모든 여인의 우상이기 때문이다.

“단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너는 당연한 보상을 받은 거다. 그러니 즐겨라.”

그제야 레오나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를 여기로 부른 까닭은 백기사단의 단장으로서 네게 상을 내리기 위함이다.”

“상이요?”

“그렇다. 황제 폐하께서 상을 내리셨는데 백기사단에서도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레오나는 다음에 이어질 데미안의 말을 기다렸다.

“네게 언제든지 정예 기사가 될 수 있는 승급 시험을 치를 자격을 주겠다. 네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시험을 치를 수 있다. 황제 폐하께서 내리는 상에 비해서는 약소하지만, 받아주겠나?”

“정예 기사 승급 시험 자격을 주신다고요?”

“그래, 원래는 절차에 따라야 하지만, 준기사로서 이례적인 공을 세웠고,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는 것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예 기사가 되려면 3년을 준기사로 굴러야 하는데 그걸 한 방에 해결해 주니 말이다.

언제든지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자격. 레오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었다.

“그래도 됩니까?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라.”

“란젤로와 충분히 상의해 내린 결론이다. 네 실력으로 준기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깝지.”

레오나는 이미 정예 기사가 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데미안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상대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의 레오나와 앞으로 더욱 성장해갈 레오나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시는 상.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가 최초다.”

“네?”

“3년의 경력 없이 정예 기사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된 사람이 네가 최초란 이야기다.”

레오나가 더없이 맑게 웃었다.

“그렇습니까? 무척 기쁩니다.”

“앞으로 기대가 크다. 실망시키지 말도록.”

레오나가 환하게 웃으며 경례했다.

“그럴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생했을 테니 이만 가서 쉬도록.”

“예, 단장님.”

레오나는 기쁜 얼굴로 단장실을 나왔다.

오늘은 상복이 터진 날이었다.

‘내가 남작이라니…….’

황녀를 살린 것치고 너무 많은 상을 받았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레오나는 황후에게서 받은 탄광 서류를 보았다.

서류엔 레오나의 이름이 탄광의 소유자로 찍혀 있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니, 대박, 완전 대박이야.”

황후가 말하길, 탄광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탄광으로 매일 같이 인부들이 다이아몬드를 캐낸다고 하였다.

황후는 그 인부들과 다이아몬드 유통업체까지 레오나에게 명의를 이전해 주었다.

황후의 말론 자신은 다이아몬드 광산 말고 다른 광산도 몇 개 가지고 있어서, 부담 갖지 말라고 하였다.

‘가만, 황후마마의 가문이 듀로이드 공작가였나?’

듀로이드 공작가는 제국의 4대 공작가 중 한 곳으로 황금의 공작가라 불리고 있었다.

‘광산을 몇 개나 가지고 있을 법하네.’

돈이 많은 공작가니까.

‘다이아몬드 광산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완전 땡잡았다. 그야말로 벼락출세였다.

* * *

다음 날, 레오나는 기사단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이른 저녁, 말을 타고 황궁을 나왔다.

황태자에게서 받은 부동산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내 거라니…….”

황녀를 도와주고 보상을 얻었다.

남작의 지위와 부동산, 성수알까지 역시 인생은 한 방인 것일까.

레오나는 서류에 적힌 주소를 찾았다.

주소는 제도 센터폴의 중심가에 있는 노블레스 타운. 돈 있는 가문들이 모여 사는 곳. 로열패밀리 구역이다.

칼리반 백작가의 수도 저택도 이곳에 있었다.

다행히 레오나가 받은 저택은 노블레스 타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노른자 구역이었다.

레오나는 높은 담벼락을 바라보며 말을 몰았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장미 넝쿨이 덮인 높은 담벼락 너머 보이는 새하얀 저택은 무척 고급스러웠다.

“이게 이제 내 집이라고?”

정말 벼락출세했다.

레오나는 대문을 향해 다가갔다.

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워진 기둥 중 오른쪽에 푸른색의 동그란 버튼 같은 것이 보였다. 그건 일종에 마도 장치였다.

버튼을 누르면, 저택 내에 방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안쪽에서 허락이 떨어지면, 문을 열어주는 방식의 마도 장치였다.

노블레스 타운의 모든 저택엔 이러한 마도 장치가 붙어 있었다.

칼리반 백작가에서 종종 사용을 해봤던 터라 잘 알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레오나는 버튼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삑 소리가 나더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시죠?]

“레오나 아제르티아라고 합니다.”

[아, 주인님이셨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레오나는 말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나왔다. 장미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으, 진한 꽃향기.”

꽃향기를 맡으며 정원을 가로지르자, 대저택의 현관이 보였다.

현관에는 메이드 복을 입은 하녀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하녀장이 서 있었다.

레오나가 도착하자, 중년의 여인이 공손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제르티아 남작님. 저는 이 저택의 하녀장을 맡고 있는 엠마라고 합니다.”

레오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하녀장과 자신을 마중 나온 하녀들과 하인들을 보았다.

“이 사람들이 전부 이 저택에서 일하시는 분들인가요?”

“예, 맞습니다.”

레오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에게 월급을 주려면, 대체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엠마가 온화하게 웃었다.

“저희 월급은 황실에서 나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아셨어요?”

“표정에 뭘 걱정하시는지 눈에 보였습니다.”

눈썰미가 정말 노련해 보였다.

“월급을 황실에서 준다고요?”

“예, 저희는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고용하셨거든요. 그분께서 월급을 주십니다.”

“그래도 되나 싶네요.”

고용인들은 저택의 주인에게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황태자가 직접 이들의 월급을 주다니.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주인님께서 저희의 월급을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전하께서 월급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오나는 이제 갓 남작이 된 햇병아리다.

돈이 조금 있긴 하지만, 대저택을 장기간 꾸려가기엔 모자란 감이있었다.

그 부분을 황태자가 편의를 봐준 것이다.

저택 관리는 물론 고용인들까지 책임져 주시다니, 참으로 고맙지 않은가.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엠마.”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레오나는 다른 고용인들에게도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들도 자신을 소개하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럼, 저택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다가와 레오나의 말을 받았다.

“말은 제가 마구간에 데려다 놓겠습니다. 주인님.”

“고마워요, 존.”

존에게 말을 맡기고 레오나는 엠마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X자형의 계단이 있었다.

“1층에는 식당과 응접실이 있습니다. 어디부터 보시겠습니까?”

“응접실부터 보죠.”

“예.”

레오나는 엠마를 따라 저택의 오른쪽으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문을 열자, 넓은 응접실이 나타났다.

한쪽 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햇빛이 잘 들었다. 통창 바로 옆에 티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군데군데 화분을 놓아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응접실의 중앙엔 기다란 소파와 낮은 소파 테이블이 있었다.

차를 마시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어요.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요?”

“주인님의 취향을 몰라, 인테리어 책자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잘하셨어요. 저도 사실 그쪽으로는 문외한이거든요.”

레오나는 응접실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요리사와 보조 요리사들이 줄을 서서 레오나를 맞이했다.

“벤자민입니다. 벤자민은 제도 센터폴에 있는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앞으로 벤자민이 주인님의 식사를 담당할 겁니다.”

레오나는 요리사 벤자민을 보며 웃었다.

“반가워요, 벤자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최선을 다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기대되네요.”

식당에서의 인사를 마치고 레오나는 X형 계단에서 왼쪽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레오나의 서재와 집무실이 있었다.

“책은 어떤 걸 구비해야 될지 몰라 책장은 비워 두었습니다. 말씀을 해주시면, 채워 두겠습니다.”

“그럴게요.”

레오나는 서재와 집무실이 있는 공간을 나와 X자형 계단의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레오나의 침실과 손님용 방이 있는 곳이었다.

침실로 들어가니, 커다란 창 옆에 화이트톤의 큰 침대가 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잠이 솔솔 쏟아질 것 같은 푹신함이었다.

독립했더니, 전에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된 것 같이 가슴이 설레었다.

‘열심히 해야지’

삶의 의욕이 팍팍 샘솟았다.

저택을 둘러본 레오나는 바깥을 둘러보았다.

바깥엔 레오나만을 위한 전용 연무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수련용 무기도 다수 구비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로 세심하게 배려를 해준 것이다.

“좋네.”

칼리반 백작가에 있을 때는 리리엘과 기사들의 텃세를 받으며 수련을 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연무장이었다.

‘여기선 마음껏 수련할 수 있겠어.’

황궁에선 기사단에서, 황궁 밖에선 자신의 집에서.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황태자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큰 선물을 주시다니. 그야말로 복 터졌다.

* * *

기사단으로 복귀해 숙소로 돌아온 레오나는 꿈만 같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저택에 남작위라니.

“그게 정말 내 거라고.”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 정도 보상을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크게 받을 줄이야.

“이게 바로 벼락출세지. 나도 이제 남작이다!”

좋아서 너무 웃음이 나왔다. 레오나는 다시 한번 손에 들린 인장을 바라보았다.

“아제르티아 남작.”

성수 유니콘의 상징을 가진 가문.

인상을 끌어안은 채 레오나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기사단 숙소로 돌아온 레오나는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로 편지를 보낼 사람은 그레타 부인에게 해고당한 전 집사 휴버트였다.

그는 전 백작 부인이었던 어머니와 레오나를 잘 살펴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레타 부인이 안주인이 되면서, 어머니를 따랐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부당 해고였지만, 항변할 수 없었다. 칼리반 백작이 묵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레오나는 자신의 편이었던 사람들을 하나씩 잃었다.

“휴버트가 와주면 좋지.”

레오나는 휴버트에게 편지를 보내고,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하녀 로라를 떠올렸다.

로라는 휴버트의 딸이었다. 휴버트와 함께 로라도 와주면 좋을 것 같았다.

레오나는 휴버트에게 로라도 함께 와달라고 적었다.

휴버트는 떠날 때 레오나에게 주소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백작가에서 레오나를 쫓아내면, 찾아오라며 알려준 것이다.

레오나는 휴버트가 알려준 주소를 외웠었다. 혹시라도 쫓겨나면 갈 곳은 거기뿐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레오나는 다음 날, 오후에 제도에 있는 우편 배달 업체를 찾아가 편지를 부쳤다.

휴버트가 편지를 받고 반가워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완벽한 레오나가 된 건가.’

레오나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율리아나라는 사람보다는 레오나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을 느꼈다.

‘진짜 레오나가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버린 영혼은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그녀가 기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추위가 가시고 봄이 왔던 계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점점 얇아졌다. 그건 기사단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제복도 여름용으로 새로 받았다. 긴팔이 아닌 반팔에, 소재도 통풍이 잘되는 재질로 만들어진 여름 제복이었다.

바지의 두께도 얇아졌고, 전체적으로 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레오나는 처음으로 여름용 제복이란 걸 입어 보았다.

어깨에 술 장식은 그대로고 소매가 짧아졌고, 옷의 두께도 얇았다. 제복의 전체 색상은 하얀색 바탕에 간간이 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이었다.

“여름용 수련복도 새로 장만했고, 여름은 이걸로 나면 충분해.”

제도 센터폴에 나갔을 때 여름용 수련복을 사 왔다.

레오나는 옷장 정리를 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오늘은 휴버트가 오는 날이야.”

지난번 편지를 부쳤을 때, 휴버트에게서 답신이 왔다. 있던 곳을 정리하고 로라와 함께 제도로 올라오겠다고 말이다.

휴버트가 긍정적인 답을 주어서 레오나는 기뻤다.

“휴버트가 오면 저택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를 맡기고, 로라가 오면 엠마랑 살림을 맡아서 하면 돼.”

이렇게 자신의 사람이 하나씩 늘어나자, 레오나는 기분이 좋았다.

“저택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준비하고 얼른 나갔다 와야겠다.”

오늘은 오전에 훈련하면서 단장에게 미리 오후 훈련을 빼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상태였다.

하사받은 저택에 관한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니, 허락을 해주었다.

라파엘도 본가에 일이 있어 나간 덕분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레오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사단을 나섰다.

말을 타고 황궁을 빠져나와 곧장 노블레스 타운에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하니, 하녀장 엠마가 하녀들과 마중을 나왔다.

“나왔어, 엠마.”

“오셨습니까, 주인님.”

레오나는 말을 존에게 맡기며, 엠마를 보았다.

엠마랑은 몇 번 왕래를 한 덕에 편해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엠마는 사려가 깊었다. 그래서 레오나는 엠마가 마음에 들었다.

“손님은 오셨어?”

“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

레오나는 기쁜 마음으로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레오나의 기억 속에 있던 중년인과 여인이 레오나를 보며 기쁘게 웃었다.

“아가씨.”

로라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양 갈래 머리의 주근깨가 있던 소녀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로라, 그동안 잘 지냈어?”

로라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아가씨는요? 아니지, 이제 남작님이 되셨다면서요.”

“응, 나 이제 남작이야.”

레오나가 자신 있게 말하자, 로라가 뛸 듯이 기뻐했다.

“잘 됐어요, 저는 아가씨가 잘되실 줄 알았어요.”

“거짓말, 너도 알고 있었잖아. 내 재능이 어떠한지.”

“그래도 노력하신 거 저는 다 알아요. 얼마나 피나게 노력하셨는데요.”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레오나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노력하면 나아지리라 믿으면서.

그런 레오나의 곁을 로라가 지켜주었다. 때론 위로해 주기도 하고, 웃어주며, 울어주기도 하였다.

레오나는 로라가 있어서 덜 외로웠었다.

“아가씨, 저는 잊으신 겁니까?”

휴버트가 인자하게 웃으며 레오나를 보았다.

“휴버트!”

레오나는 휴버트의 두 손을 잡았다.

“와줘서 고마워.”

휴버트와 로라는 자신 때문에 가문에서 해고되었기 때문에 레오나는 두 사람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집사장.”

레오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휴버트가 허허하고 웃었다.

“오자마자 일을 시키시는 겁니까?”

휴버트의 너스레에 레오나도 로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일하러 왔잖아, 아니야?”

농담조로 섞어서 말하자, 휴버트가 피식 웃었다. 그는 레오나의 밝은 모습을 보며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백작가에서 레오나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곁에서 지켜봐 와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셨어.’

기뻤다. 작위까지 받고, 대저택의 주인이 된 그녀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가씨, 아니, 남작님. 남작님을 다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나도 휴버트가 와줘서 정말 기뻐.”

레오나는 휴버트에게 엠마를 소개시켜 주었다.

“휴버트, 여기는 하녀장인 엠마야. 엠마가 전반적인 것을 해왔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엠마랑 상의하면 돼.”

엠마가 공손히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휴버트 집사장님.”

레오나는 엠마에게 로라도 소개시켜 주었다.

“엠마, 여기는 로라. 로라는 내 전담 시녀가 될 거야.”

“잘 부탁드립니다, 엠마 님.”

“그럼, 나는 다시 가볼게. 잠깐 얼굴 보러 나온 거라서.”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남작님.”

레오나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 남작님 소리가 입에 찰싹 붙어 있는데?”

로라가 수줍게 웃었다.

“익숙해져야죠.”

“로라, 잘 지내보자.”

“네, 남작님.”

레오나는 엠마와 휴버트, 로라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왔다.

* * *

리리엘은 기분이 안 좋았다. 가전 검술을 사사하고 있는데 진전이 더뎠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전환을 할 겸 쇼핑을 나가던 참이었다.

“아가씨, 브뤼느 마담이 오늘 신상을 많이 들여왔데요. 여기 팸플릿 좀 보세요.”

그녀의 전담 하녀인 달리아가 팸플릿을 건네자, 리리엘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차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갔다.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니, 하늘빛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리리엘은 안력을 돋워 그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레오나?”

하늘빛 머리카락이 흔한 것도 아니, 저 실루엣이 낯익었다.

“레오나가 여긴 또 왜…….”

평민이 된 레오나가 노블레스 타운에 올 일이 뭐가 있나?

“설마, 아버지를 만나러 왔나? 이제라도 받아달라고 하려고?”

리리엘은 전담 하녀 달리아를 보았다.

“당장 마차 돌려.”

“네?”

“백작가로 돌아갈 거야. 얼른.”

“예, 예.”

달리아가 마부에게 마차를 돌리라고 말을 하자, 마차가 방향을 바꾸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백작가 저택으로 돌아온 리리엘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칼리반 백작을 찾았다.

집무실에 노크하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칼리반 백작이 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리리엘을 보았다.

“무슨 일이니, 리리엘?”

“아버지, 혹시 레오나 만나셨어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얼굴로 칼리반 백작이 리리엘을 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레오나가 여길 왜 와?”

“안 왔어요?”

“그럴 리가 있니.”

독립하겠다고 나간 아이다. 이제 와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찾아온다 해도 받아줄 생각도 없었다. 마음은 좀 약해지겠지만.

“방금 밖에 나갔다가 말을 타고 가는 레오나를 봤어요.”

“레오나가 말을 타고 갔다고?”

“예, 분명히 봤어요.”

“네가 잘못 본 것일 게다. 그 아이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단 말이냐.”

노블레스 타운은 평민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귀족들의 공간이다.

그런데 가문에서 축출되어 평민이 된 레오나가 노블레스 타운에 올 이유가 없었다.

“아닌데, 분명히 봤는데.”

“착각한 거겠지.”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뭐 소식 들은 거 없으세요?”

“없다. 들을 생각도 없고.”

“그럼 되었어요. 바쁘신데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네요.”

리리엘이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칼리반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리리엘, 이 백작가의 영애는 이제 너 하나뿐이다. 내가 너에게 거는 기대가 커.”

“알고 있어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널 믿으마.”

“염려 마세요. 저는 그만 일어나 볼게요.”

“그러렴.”

리리엘은 칼리반 백작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무실을 나와 어머니인 그레타 부인을 찾아갔다.

그레타 부인은 정원을 새로 가꾸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정원은 전 백작 부인이 꾸며놓은 정원 그대로여서, 이참에 새로 바꾸려는 것이다.

“어머니, 여기 계셨군요.”

“오, 리리엘.”

그레타 부인은 리리엘을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벤치로 이끌었다.

“쇼핑을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벌써 온 거니?”

“가다가 되돌아왔어요.”

“왜?”

그레타 부인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리리엘은 레오나를 본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 사실 마차 타고 가다가 레오나를 봤어요. 어머니.”

“레오나를 봤다고?”

“네, 말을 타고 가더라고요.”

“레오나가 노블레스 타운에 왔었단 말이니?”

“그래서 혹시나 아버지를 만나러 온 게 아닐까 싶어 확인하러 왔는데 아버진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레타 부인이 리리엘의 손을 잡고 손등을 쓸었다.

“리리엘, 레오나는 이제 이 가문 사람이 아니란다. 그 애가 여길 어떻게 다시 오겠니.”

“그렇겠죠?”

“그래, 왔다 치더라도 내가 네 아버지와 만나게 둘 것 같으니?”

“그건 아니죠.”

레오나가 정말 찾아왔다면, 그레타 부인이 나서서 그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니 염려 말렴. 넌 너만 신경 쓰면 된단다. 걸림돌은 이 어미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그러니 아무것도 신경 쓸 것 없단다.”

“고마워요, 어머니.”

리리엘은 자신이 괜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웃고 말았다.

‘레오나가 여기 올 리가 없지.’

자신이 잘못 본 게 틀림없었다.

리리엘은 그렇게 믿기로 하였다.

* * *

레오나는 휴버트와 로라가 엠마를 도와 저택을 꾸려나가게 된 것에 대해 다행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다행이야.’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이 조금이나마 지워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건.

‘머지않아 마주치게 될지도 몰라.’

오늘 말을 타고 기사단으로 복귀하며 칼리반 백작가의 인장이 찍힌 마차를 보았다.

그 마차는 주로 리리엘이 타고 다녔던 터라, 눈에 익었다.

최대한 말을 빨리 몰아 지나치긴 했지만, 리리엘이 보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의 저택은 노블레스 타운의 중심에 있었다.

그곳에는 고위 귀족들의 저택만 모여 있는데, 바스티안 공작가, 라이오닉 공작가와 나머지 다른 두 공작가의 저택과 몇몇 저명한 후작가의 저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 중심에 레오나가 하사받은 저택이 있는 것이다.

다른 공작가나 후작가 저택에 비해 규모는 조금 작지만, 고급스러운 자재로 공들여 만든 저택은 다른 저택들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칼리반 백작가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정말 다행이야.’

칼리반 백작가는 노블레스 타운으로 들어서는 입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주로 백작가의 저택이 많은 곳이었다. 위치가 입구와 가깝다 보니,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작위를 받은 사실은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 황태자 전하, 황녀 전하, 그리고 백기사단만이 알고 있어.’

작위 수여식을 간소하게 치른 이유도 그러한 이유가 컸다.

최대한 소문이 많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는 눈이 적으면 소문도 덜 나게 마련이다.

‘언젠간 알려지겠지만, 조금 늦출 필요는 있지.’

자신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적어도 나를 함부로 건들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해.’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고 간섭이 들어오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니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날파리들 때문에 작은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니까.’

벼락출세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보상을 바라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 * *

그레타 부인은 노블레스 타운 정기 티모임에 참석했다.

티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노블레스 타운에 사는 백작 부인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모임이었다.

칼리반 백작가의 안주인인 그녀도 이 모임에 참가 자격이 있었다.

그레타 부인은 다른 백작 부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신 유행하는 드레스와 장신구를 착용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어머, 그레타 부인. 어서 오세요.”

푸근한 인상의 백작 부인이 그녀를 맞이했다.

“늘 반겨주셔서 고마워요. 마거릿 부인.”

“이리 와요.”

그레타 부인은 마거릿 부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레타 부인은 자신에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백작 부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소문 들었어요?”

한 백작 부인이 물꼬를 틀자, 다른 백작 부인들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또 무슨 새로운 소문이라도 접하셨나요?”

그레타 부인의 물음에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노블레스 타운 중심부에 있는 장미 저택아시나요?”

“알지요, 저도 거기를 엄청 눈독 들이고 있거든요. 설마 글로리아 부인도 거길 노리는 거예요?”

장미 저택은 노블레스 타운의 노른자라 불리는 위치에 있는, 몇 년간 비어 있는 저택이었다.

그래서 백작 부인들은 돈만 된다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 저택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 저택 주위에 살고 있는 귀족들이 대단한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녀들이 사는 저택은 노블레스 타운의 입구 근처 위치하다 보니, 중심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다 같은 곳에 살아도 같은 곳이 아니란 뜻이다.

글로리아 백작 부인이 손사래를 쳤다.

“제가 그럴 자격이나 되나요, 그곳에 살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시면서.”

“그런데 거기 얘기는 왜 하는 거예요?”

글로리아 백작 부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거기에 새 주인이 나타났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어머나.”

“그런 일이.”

“누구예요?”

백작 부인들이 저마다 궁금증을 품고 글로리아 백작 부인을 보았다.

“정말로 주인이 생긴 거예요?”

“그렇다나 봐요. 얼마 전에 제 지인이 셀마의 가구공방엘 갔는데 거기서 장미 저택에 들어갈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새 가구면…….”

“누군가 거기에 살게 되었다는 거죠.”

“어머나, 세상에 누굴까요?”

글로리아 백작 부인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마저 말했다.

“저도 무척 궁금해 죽겠어요.”

그레타 부인은 백작 부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손에 쥔 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장미 저택에 새 주인이 생겼다고?’

장미 저택은 그녀도 눈독 들이고 있는 저택이었다.

노블레스 타운의 중심가에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귀족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그랬는데 누군가 그 저택을 홀랑 채간 것이다.

마거릿 백작 부인이 그레타 부인을 위로했다.

“부인도 그 저택을 탐냈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레타 부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차만 홀짝였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이 너무 쓰렸다.

‘대체 누가 그 저택을…….’

당장 가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레오나는 다이앤 황녀의 부름을 받고 황녀 궁으로 향했다.

“레오나 경.”

다이앤 황녀가 황녀 궁을 나와 레오나를 맞이했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레오나가 예를 올리자, 다이앤 황녀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일으켰다.

“일어나요.”

“예, 전하. 그런데 무슨 일로…….”

“저랑 차 한잔해요.”

“네?”

레오나는 뜻밖의 제안에 반문했고, 다이앤 황녀가 레오나의 손을 잡고 끌었다.

다이앤 황녀는 레오나를 데리고 황녀 궁 정원에 있는 가제보로 향했다.

“오늘은 경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 불렀어요.”

“저를요?”

“어서 앉아요.”

레오나는 다이앤 황녀의 재촉에 의자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까, 경은 늘 저를 지켜주었는데 저는 경한테 차 한 잔도 대접한 적이 없더라고요.”

레오나는 손사래를 쳤다.

“저는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그건 핑계고, 사실은 경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친구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다이앤 황녀가 환하게 웃으며 레오나의 손을 잡았다.

“가당치도 않다니요. 제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건 모두 경 덕분인걸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경과 친해지고 싶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친구가 없거든요.”

저주로 인해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다이앤 황녀는 외롭게 지내야 했다. 가족들이 있었지만, 또래의 친구들은 없었다.

“앞으로 사교계에 나가시면 친구는 얼마든지 사귀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전에 경이 제 첫 번째 친구가 되어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레오나는 멋쩍게 웃었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황녀 전하의 첫 번째 친구는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다이앤 황녀는 기쁘게 웃으며 레오나에게 차를 권했다.

“마셔요. 경을 초대하려고 제가 직접 끓인 차예요.”

“황녀 전하께서요?”

“네, 부끄러운 솜씨지만.”

레오나는 다이앤 황녀가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윽한 향이 일품이었다.

“무슨 차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루이보스티예요.”

“맛이 좋습니다. 황녀 전하께서도 드십시오.”

“다행이네요.”

레오나는 다이앤 황녀와 함께 오랜만에 차를 마셨다.

다이앤 황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레오나 앞에서 재잘거렸다.

레오나는 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레오나는 외로웠을 그녀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레오나 자신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었으니까.

* * *

계속 숙소에서만 지내던 레오나는 오랜만에 저택으로 향했다.

말을 타고 황궁을 나가려는데 라파엘과 마주쳤다.

“라파엘?”

“레오나군. 어딜 가지?”

“저택에.”

“이번에 하사받았다는 그곳인가?”

“응, 너는 본가에 가는 거야?”

라파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을 비롯한 백기사단원들은 레오나가 황녀를 구해 작위를 받고 보상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오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굳이 숨기지 않았다.

대신 백기사단원들은 레오나가 원하지 않기에 다른 곳에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잘 됐다, 같이 가자.”

레오나가 같이 가자고 하자, 라파엘은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본가도 노블레스 타운에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나란히 말을 타고 질주했다. 이번에도 라파엘은 승부를 하자면서 속도를 내었고, 레오나도 못 말리겠다면서 받아주었다.

빠르게 달린 결과 두 사람은 금세 노블레스 타운에 들어섰다.

“뭐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네?”

라파엘의 본가는 레오나의 저택에서 한 블록 건너에 위치해 있었다.

“저기가 바스티안가의 저택이었구나.”

장미 향기가 가득한 레오나의 저택과 달리 바스티안가의 저택은 짙은 회색빛을 띠는 저택으로 웅장함이 있었다.

“여기가 네 저택이로군.”

라파엘은 레오나가 멈춰 선 장미 넝쿨 저택을 보았다.

“너랑 잘 어울린다.”

“나랑?”

레오나는 닭살 돋는다는 얼굴을 하였다.

“나는 장미랑 거리가 멀어.”

“그런가?”

“그래.”

레이디는 장미에 어울리는 사람은 사교계의 레이디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레오나는 레이디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오라버니?”

낭랑한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정말 라파엘 오라버니잖아.”

지나가던 마차가 멈추어 서더니, 마차 창문 밖으로 은발 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라파엘과 똑같은 라일락빛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메리엘. 외출 나가는 중인가?”

“응. 새로운 디저트 가게가 생겼다고 하길래 가는 길이야.”

메리엘의 두 눈이 라파엘의 옆에 말을 타고 서 있는 레오나에게 향했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오라버니,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내 동료다.”

메리엘이 레오나의 제복 차림을 보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 이분이 그분이시구나. 신성 마법을 사용하신다는 새로운 마검사.”

레오나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라파엘을 보았다.

“절 아십니까?”

“헤헤, 오라버니가 얘기해 줬어요.”

레오나가 의문 어린 시선으로 라파엘을 보았다.

라파엘이 당황스러워했다.

“그게 아니라…….”

“반가워요, 레오나 경. 저는 저기 있는 라파엘 오라버니의 여동생 메리엘 드 바스티안이라고 해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녀님.”

레오나를 보며 메리엘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사실은 전부터 레오나 경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레오나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를요?”

“네.”

“기회가 되신다면 저와 검을 한 번 겨뤄주시겠어요?”

메리엘이 두 손을 모으고 라일락빛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냈다.

“제발요.”

“대련이라면…….”

“꺄아! 그럼, 허락하신 거예요!”

레오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디저트 먹으러 간다며, 얼른 가라.”

메리엘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라파엘을 보았다.

“뭐야, 지금 나 쫓아내는 거야?”

“그만 가라는 거다. 우리도 가봐야 한다.”

“아, 그랬구나. 레오나 경 다음에 봐요!”

메리엘이 두 손을 흔들자, 레오나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메리엘이 탄 마차가 멀어지자, 라파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응? 뭐가?”

“저 녀석은 사람을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다. 사과하지. 대련은 없던 걸로 해도 된다.”

“공녀님을 보니까, 네가 승부욕에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아.”

라파엘이 떨떠름한 눈빛으로 레오나를 보았다.

“그게 집안 내력이었어. 역시 혈통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아.”

“그만 들어가라.”

“그래, 너도 얼른 가라.”

레오나가 손을 내젓자,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몰아 사라졌다.

레오나는 저택으로 들어가 휴버트와 로라를 만났다.

휴버트와 로라는 저택의 분위기에 맞게 옷을 차려입고 마중을 나왔다.

말에서 내려 휴버트와 로라의 의복을 본 레오나는 빙그레 웃었다.

“새로 맞춘 옷이 잘 어울리네.”

레오나의 칭찬에 로라도 하녀복이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적응은 잘하고 있어?”

로라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엠마 님이 많이 도와주셔요. 그리고 저택 꾸미는 재미가 쏠쏠해요.”

“로라 너는 어릴 적부터 방 꾸미는 걸 좋아했잖아. 네 마음껏 꾸며봐.”

“감사합니다, 주인님.”

호칭이 남작님에서 주인님으로 바뀌었다.

“이젠 주인님이야?”

“아버지랑 호칭 정리를 좀 해봤는데 주인님이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레오나도 수긍했다.

“확실히 남작님보다는 듣기 좋아.”

“그렇죠?”

“응. 휴버트는 할 만해?”

“할 만합니다.”

“책 가게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일을 하려니 많이 힘들 거야.”

답신으로 받은 편지에서 휴버트는 고향에서 작은 책방을 열었다고 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책도 팔고 하였다고 말이다.

휴버트는 그것을 접고, 레오나의 부탁에 제도로 올라온 것이다.

“여기 온 걸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주인님을 다시 모실 수 있게 되어 기쁠 뿐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출근할 거야.”

로라가 의욕으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얼른 준비할게요. 목욕하실 건가요?”

“그것도 좋지. 오랜만에 로라의 시중을 받아볼까.”

“헤헤, 얼른 준비할게요.”

“응, 부탁할게.”

레오나는 로라를 보내고 엠마에게 저녁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

엠마는 요리장 벤자민에게 전달하겠다며 나갔다. 휴버트는 레오나가 갈아입을 의복을 준비하겠다며 나갔다.

숙소에 있을 때는 간단한 샤워만 했었어서, 모처럼 편안하게 목욕다운 목욕을 하였다.

오랜만에 로라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하니 긴장으로 이완되었던 근육이 풀어지며, 기분이 좋았다.

목욕을 마치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요리장 벤자민이 솜씨를 발휘하여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해 주었다.

“이걸 누가 다 먹어.”

평생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잔칫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거 나 혼자는 다 못 먹겠다. 우리 같이 나눠 먹자.”

레오나의 제안이 고용인들이 고개를 저었다. 주인이 먹고 나서 식사를 하는 게 맞다며 거절한 것이다.

“그럼, 오늘만 같이 먹자.”

오늘만이라고 말하자, 머뭇거리던 고용인이 엠마와 휴버트의 눈치를 살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만입니다.”

“그래, 오늘만이야.”

레오나는 고용인들과 맛있게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역시 혼자 먹는 음식보다는 여럿이 나누어 먹는 게 더욱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맛있게 먹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엠마가 가구 장인에게 특별 주문 제작하여 만들었다는 침대는 숙소에 있는 침대보다 두 배는 더 크고 넓었다.

“침실이 백작가에서 지냈던 곳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것 같아.”

레오나가 누워 있는 침실은 리리엘이 백작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보다 더 넓었다.

무엇보다 다른 방들과 연결이 잘 되어 있었다. 욕실, 드레스룸, 서재, 티룸이 침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침실이 가운데 있고, 침실 양옆에 각각 두 개의 방이 딸려 있었다.

오른쪽엔 욕실과 드레스룸. 왼쪽인 서재와 티룸이 있었다.

개인 공간치고는 지나치게 넓었다.

방 꾸미기를 좋아하는 로라의 취향 덕분에 방 안 곳곳에 꽃향기가 가득했다.

로라가 군데군데 화병을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로라는 정말 꽃을 좋아한다니까.”

침실의 분위기도 아기자기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침대 위에 달린 캐노피였다.

“완전 공주님 침대야.”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느낀 결론이었다.

레오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화려한 방을 가져본 것이다.

백작가에 있을 땐 늘 삭막한 방에서 지내야 했다.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가구를 쓴다는 건 레오나에겐 사치였다.

칼리반 백작은 가문의 수치라 여기는 레오나에게 들어가는 돈을 무척 아까워했었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이 돈만 가져다 쓴다고 하였다.

음식을 가지고 차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용인들 앞에선 체면상 화를 내었지만, 레오나는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묵인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백작가를 나올 때 그 사실을 인지시켜 주며, 깽판을 친 덕분에 속은 후련했다.

‘이제 더는 엮일 일 없으니까. 나만 잘살면 돼.’

가장 최고의 복수는 자신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만큼 최고의 복수는 없다고 말이다.

자신이 버린 존재가 잘사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건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분이었다.

칼리반 백작가에 미련은 없지만, 응어리진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칼리반 백작가는 후회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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