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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125화 (125/128)

외전 5화

공작저는 매일매일이 바빴다. 원래 오랜 시간 동안 카일러 하나만을 위해 맞춰져 있던 고용인의 숫자였기 때문에 큰 연회의 준비를 위해 모두 열심히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그 이전에는 융성했던 가문이었던 덕에 연회에 필요한 가구나 물품들은 대부분 보관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작저에는 아주 커다란 연회 홀이 있었다는 것이다.

잘 가지 않았던 방향으로는 기사들의 공간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깊이 있는 기사들의 연무장 전에 아주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먼지가 좀 많이 있을 겁니다. 환기를 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로제가 먼저 움직였다. 커다란 문에 걸려 있던 자물쇠를 풀고 오랫동안 닫힌 채로 방치되었던 문을 열심히 잡아당기자 큰 건물의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생활하는 건물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에 연회 홀이 있었다. 부유하는 먼지로 뿌옇게 보이기는 했지만 한눈에 그 규모가 가늠되었다.

코와 입을 천으로 가린 하녀들이 열린 문으로 일사불란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창문부터 열기 시작했다.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다 열고 나온 이들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기다린다고 될까요? 안에 막 휘젓고 나와야 할 거 같은데…….”

옆에서 미니가 조심스레 한마디 덧붙였다. 그냥 창문만 열어 둔다고 저게 다 환기가 될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음. 여기가 설계가 잘되어 있어서 환기가 엄청 잘된단다. 이 넓은 공간을 관리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 있어야지.”

오오, 하며 어린 하녀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먼지도 잘 내려앉지 않게 되어 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 먼지들을 다 닦아 내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각자 자루걸레와 손걸레 등을 챙겨 온 하녀들은 비장한 얼굴을 했다. 며칠은 청소에 매달려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무를 하러 간 하인들이 돌아오면 청소에 합류할 거라고 했다.

“오래 안 쓴 공간을 다시 쓰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나도 도울 테니까 아무도 말리지 마.”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사샤도 의지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녀들은 단순히 건물을 구경하러 온 줄 알았던 사샤가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니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로제를 바라보았지만 로제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로제라고 안 말려 봤겠냐마는 사샤가 그런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사샤는 지금 진회색의 장식 없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먼지에 대비한 색상인 데다, 페티코트도 없어 움직이기 아주 편해 보이는 사샤의 복장에 다들 말릴 의지를 잃고 말았다.

“연회 주인께서 몸살 나시면 큰일입니다.”

“지금 몸살 나면 사흘 정도면 낫겠지. 연회 날엔 말짱할 거야.”

마지막으로 로제가 한마디를 꺼내 보았으나 보기 좋게 걷어차이고 말았다.

“자, 봐 봐. 안에 확 달라졌지?”

몇 분이나 흘렀을까, 로제가 안을 들여다보며 말하자 모두들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로제의 말대로 내부가 뿌옇게 보이던 것이 확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는 안 보이던 제일 안쪽의 단상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와아, 신기해요!”

“자,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들어가자.”

코니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감탄하자 새라가 앞장서서 들어갔다.

사샤는 그중에서도 자루걸레를 손에 잡았다. 걸레를 직접 손으로 만지게 할 수 없었던 로제가 어쩔 수 없이 쥐여 준 것이었다.

“아시겠죠? 손에 굳은살이 생기면 안 되니까 힘줘 잡으시면 안 됩니다. 차라리 살살 여러 번 문지르면서 닦으세요.”

원래 거칠었던 사샤의 손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만 반년 넘게 걸렸던 터라 로제는 사샤의 손이 망가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사샤로서는 그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본래도 거친 손이었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알겠어, 로제. 걱정 말고 어서 일하자. 응?”

가볍게 미소 지어 주면서 사샤는 연회장 옆에 딸려 있다는 수도 시설로 달려갔다. 연회장의 양 사이드에는 직접 냄새 안 나는 간단한 요리나 빨래 정도는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정말 연회를 위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귀족들을 위한 연회장이지만 하인들이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설계된 공간인 것 같아서 사샤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녀 다섯과 공작 부인 하나는 그렇게 오래된 유물처럼 잠들어 있던 거대한 연회장의 잠을 깨웠다.

물걸레로 한 번 민 정도로는 완벽하게 깨끗해지지 않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더니 반짝이는 바닥이 온전히 드러났다.

이 커다란 제국에서 첫 번째 가는 가문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위용이 넘치는 곳이었을까. 저 뒤쪽에서 물줄기를 끌어와 시내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짐작했지만 오늘 이 연화장을 보니까 더 와닿는 것 같았다.

그것을 조금씩 제 손으로 돌려놓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함이 차올랐다.

이 넓은 연회장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들이 차근차근 들어와 넓은 연회장을 채우고…… 모두가 한담을 나누면서 이그노트의 연회장을 칭찬하고 연회가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가 상상하는 연회란 그런 것이었다.

상상을 하다 보니 그녀의 뒤로 어느새 반짝이는 길이 하나 생겼다.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는 하녀들의 주위로 점점 연회장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놀라웠다.

내 손으로 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는 곳이라서 더 좋았다. 그런 모습은 공작 부인의 체면을 깎는 거라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몰랐을 즐거움이었다.

물론 땀이 좀 나고 있긴 했지만. 꾸준히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병약할 지경이었던 ‘사샤’의 몸도 어느새 건강해져 있었다.

*

“으으으…….”

그리고 이틀 뒤, 기어이 사샤는 잠자리에 들려고 올라온 침대에서 앓는 소리를 내 버렸다.

옆으로 올라오던 카일러는 자신이 뭐라도 건드린 줄 알고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러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와도 참았을 것이다. 카일러가 말을 끝맺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사샤가 피식피식 웃었다. 제대로 웃음소리를 내면 등이 울려서 참아야 했다.

“그 말 참아 줘서 너무 고마워요. 아까까지는 정말 재밌었단 말이에요.”

“청소가 재밌다니. 정말 그대 같은 귀족은 다신 없을 것이다.”

카일러는 웃음기 띤 얼굴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손으로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려 정리해 주고 이불도 더 끌어 올려 턱 바로 아래까지 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그 연회장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아, 그러고 보니 카일러는 본 적 있어요? 그 연회장?”

설명을 하려고 보니 이 사람은 이곳의 주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살던 곳의 장소를 그는 이미 알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그곳에서 자주 연회가 열렸다. 특히 어렸을 때 본 기억 때문에 더더욱 큰 곳으로 기억하고 있지. 정말 크고 화려한 곳이었다.”

그는 사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잠시 연회장을 떠올리는 듯 보였다. 그의 눈길을 따라 연회장을 상상해 보던 사샤는 아이고오 하고 소리를 냈다. 잠깐 몸을 비튼다는 게 근육통이 심한 허리를 건드려 버린 것이다.

“안 되겠다. 이리 엎드려 봐.”

카일러는 애써 삼킨 신음을 들었는지 이불을 들추고는 그녀를 엎드리게 했다. 사샤는 군소리 없이 엎드렸다. 그를 자꾸 걱정만 시키기보다는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카일러는 커다란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운동하는 근육과 일하는 근육은 다른데, 운동해서 늘어난 체력을 가지고 자신 있게 덤빌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힘을 풀어라. 내 손에 몸을 맡겨 둬.”

“그거라면 자신있어요오…….”

목소리에서부터 힘을 쭉 빼는 사샤의 귀여운 대답에 카일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어깨부터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몸살기가 있어 강하게 힘을 주어 뭉친 것을 풀어 줄 수는 없었지만 어깨부터 팔, 등, 그리고 허리까지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었다.

“우와아아…… 카일러, 몸이 녹을 거 같아요…….”

정말 녹아내리는 듯한 목소리로 사샤가 중얼거렸다. 얼굴을 베개에 푹 파묻고 있는 탓에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으응…… 이거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울래요.”

한참 마사지를 잘 받고 있던 사샤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마사지를 배워? 이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혼자 하려면 손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한 것으로 배워야 할 텐데…….

“이걸…… 왜 배우지?”

순간 살벌해진 그의 목소리를 사샤가 못 알아챌 리 없었다. 키득키득 웃다가 아직 덜 풀린 근육이 자극됐는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카일러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그 부분을 주물러 주었다.

“카일러는 몸을 자주 쓰니까 분명 저랑 비슷하게 아픈 부분이 있을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 말고 내가 주물러 주고 싶어요. 이 느낌 너무 좋으니까아아…….”

또 꺼지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덜미에 조용히 입술을 내렸다.

제게 마사지를 해 주기 위해 배우겠다니, 카일러는 그 말에 벌써부터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프니까 마음껏 만지지도 못하고…… 음? 아프지 말아라. 그게 먼저야.”

“뭐야아……. 아프지 말라는 게 그래서예요?”

사샤는 여전히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아아아, 하는 소리가 났지만 웃음소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음.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도 있다.”

솔직한 그의 대답이 사샤는 마음에 들었다. 그가 저를 안아 주는 건 언제나 애정이 느껴져서 그녀도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타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샤는 고개를 돌려 빼꼼히 나온 한쪽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일 하루 종일 열심히 나을게요. 내일 밤에…… 꼭 안아 줘요.”

카일러는 그녀를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너무 사랑스러워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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