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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124화 (124/128)

외전 4화

이그노트 공작저에서 연회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우선 그 이그노트의 공작저에서 연회를 연다는 것 자체로 사람들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홀로 남은 카일러 공작은 연회를 열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였고, 한다고 해도 남자 홀로 남은 공작저에서는 연회를 열 이유마저 딱히 찾기 어려웠다.

그런 곳에 공작 부인이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누구든 연회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베른 후작저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이나 교육도 없이 방치된 채 자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은연중에 쫙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문에 선행을 잘하는, 착한 차람이라고 알려져 왔던 이베른의 후작과 아름다운 데다 성정까지 고와 인기가 많았던 엘리나 영애에 대한 평판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안 좋은 영향이 있었으니 바로 이그노트 공작 부인, 사샤에 대한 기대치까지 훅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가 안주인이라며 공작가의 살림을 걱정하는 오지랖쟁이가 있는가 하면 연회를 열 수 있으려면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한 지 1년 만에 날아온 연회 초대장에 모두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심지어는 그런 그녀를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일러가 친한 이라면 황제뿐인데, 황후가 그녀를 도울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걸 받게 되다니……! 거의 대부분의 귀족가에서 초대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감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어.”

라다는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집으로 날아온 이그노트 공작가의 연회 초대장을 자랑스럽게 내밀어 보였다.

라다의 저택으로 모인 로즈힐, 아이시, 피콜라는 모두 시선을 한곳으로 모았다.

다들 부모님을 통해 한 번씩 구경했지만 다시 한번 그녀가 내미는 초대장을 들여다보았다. 부모님도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초대장을 고이 챙겨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져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라다의 집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는데, 마침 라다는 부모님께서 내어 주신 초대장을 들고 와 그들의 앞에 내밀었다.

“와, 초대장부터 너무 고급이네. 종이 질 좀 봐. 광택이…….”

“어른들이 공작 부인께서 제대로 연회를 열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한다고 그럴 때마다 혀를 내밀어 주고 싶었는데, 정말이었어! 이렇게 멋진 초대장이라니!”

“초대장 받고 꺅꺅대는 거 너무 어린아이 같아 보일까 봐 안 하고 싶었는데,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네.”

발송한 초대장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의 차이가 좀 있었지만 거의 모든 귀족들이 초대장을 받았다.

초대장을 만져 보고 열어 보고 읽어 보며 신이 난 세 명의 영애들과 다르게 피콜라는 어쩐 일인지 조금 시무룩해 보였다.

다들 들떠서 한마디씩 하는데도 유독 피콜라만 조용했다.

“전부 다 초대장 받았냐는 말로 인사를 한대. 대부분 받았다는데 중간중간 못 받은 가문이 있다는 거야. 발송된 초대장이 도착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그게 늦는 건지 안 오는 건지 모르니까 다들 조마조마한 거지.”

로즈힐이 다른 영식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건네자 아가씨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그분들에게 진작 잘했어야 말이지. 카일러 공작님 무섭다고 뭐라고 하고, 공작부인을 두고 그렇게 무시하더니만 꼴좋네.”

“그런데 말이야…… 이베른 후작가에는 초대장 안…… 갔겠지?”

아이시가 그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한 이름을 꺼냈다. 이베른이라니, 사샤 영애를 어렸을 때부터 다락방에 방치한 채 고용인들보다도 못한 대접을 하며 키웠다고 했다.

마치 창고에 사는 쥐처럼 말이다. 굳이 나서서 죽이거나 쫓아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먹이를 챙기거나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도와주지도 않는 그런 것 말이다.

누군가 이런 비유를 했을 때 다들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마 이베른을 초대하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가족이기도 하고…….”

“에이, 그럼 절대 안 되지. 만약 초대했다고 한다면 나는 정말 목숨 걸고 공작 부인에게 갈 거야. 그들을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그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이베른 가족들은 현재 자신들의 저택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영지로 나오는 것까지는 허용이 되었으나 아마 그 밖으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를 감금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베른 가족을 지지해 주지 않았다.

영애들 또한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가족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시에게 빈말로라도 그들이 올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 그보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 들었어?”

라다가 다시 대화의 주 노선을 다른 방향으로 잡았다. 다른 영애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선물? 선물이라니? 누가?”

“뭐, 특정 누구라고 하기보다는…… 전부 다 그러고 있다네? 우리 부모님도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어.”

“우리 집도 부모님이 하시겠지?”

로즈힐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얼굴을 보자 라다는 쯧쯧쯧, 하고 비장하게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거기서 만족하면 안 돼. 우리는 따로 선물을 하나 모으는 거야. 알겠니?”

라다는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곁에서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로즈힐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 보였다.

“공작 부인께서 우리는 따로 초대도 해 주셨으니까! 꼭 비싼 거 아니어도 마음을 담은 거면 좋아해 주실 거야.”

라다의 넘치는 의욕이 전염되듯이 영애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다들 어떤 것이 그녀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건 너무 싸지 않아? 그래도 명색이 공작 부인이 여는 연회에 가서 드리는 건데.”

로즈힐이 공감하던 것을 떠나 현실적으로 물었다. 그들은 아무리 그래도 영애일 뿐이니 간단하게 하자는 라다와 다르게 손 크게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하는 부모님을 둔 로즈힐에게는 택도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 모이는 거 아니겠어? 공작부인께선 비싼 게 아니어도 마음을 담은 거면 뭐든 좋아해 주실 거야.”

라다는 쓸데없이 긍정적인 얼굴로 씨익 웃어 보였다. 로즈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찬가지로 씨익 웃으면서 본격적으로 선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드는 영애들 사이에서 피콜라만 계속 조용했다.

피콜라의 집에는 아직 초대장이 도착하지 않았다. 받은 게 없으니 소식도 늦어져서 오늘 아침에서나 그러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눈앞의 영애들이 방금 떠들어 준 덕에 지금 귀족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소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 것만 안 온 것일까.

황후의 부름으로 이 멤버가 함께 황궁에 갔을 때 그녀는 사샤라는 사람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때 영애들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의문 때문이었을까? 나 때문에 우리 가문에는 초대장이 오지 않은 것일까.

피콜라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이베른을 초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는데…… 나는 어떨까?

그녀는 자신을 의심했던 사람들까지 인정해 주는 사람인 것일까?

엄마와 아빠가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공작 부인이 초대한 최초의 모임에 네 명의 백작 영애가 초대받았는데, 거기에 피콜라가 포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은 그녀를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자리에도 참여해 놓고 어째서 그렇게 흔들렸던 것일까…….

“피콜라?”

그제야 세 영애는 피콜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다들 시선을 주고받았으나 피콜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까부터 한마디도 안 하고 앉아만 있잖아.”

피콜라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쩌면 누군가 자신에게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혼자만 끙끙 앓기엔 너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끝내 울상이 된 피콜라는 친구들을 울먹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흑, 우리 집에는 초대장이 안 왔어. 흑, 내가 전에 궁에서…… 흑, 공작 부인을 의심해서 우리 집은 빠진 건 아니겠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얼굴로 심각하게 말하는 피콜라의 말 때문에 영애들은 순간적으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집에 초대장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그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아하하! 피콜라, 그게 무슨 걱정이야.”

라다는 또 호쾌하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피콜라는 기어이 오른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려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때 자꾸 헛소리해서 우리끼리 뭐라고 해 주기는 했지만 공작 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을 거야. 그렇게 의심하게 만든 건 엘리나 영애였는걸!”

라다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마디를 꺼내자 옆에서 로즈힐도 거들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그때 그 자리는 그런 의심을 키우기 위해서 만든 자리였던 것 같아. 그러니까 보기 좋게 걸려 버린 거지. 엘리나 영애,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엄청 교활한 거 봐.”

“그, 그러네…… 새삼 그들이 오지 않아서 더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이시까지 그렇게 말하고는 괜찮다는 시선을 보내 준 덕에 피콜라는 울음을 그쳤다.

“정말…… 괜찮을까?”

“안 되겠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얼른 집으로 가 봐. 가 보면, 오늘은 분명 초대장이 와 있을 거야.”

라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장 행동력 있는 그녀를 따라 다른 영애들도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기 무서워하던 피콜라도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작저에서 온 초대장을 들고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는 백작 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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