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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123화 (123/128)

외전 3화

“정말 놀라운 발상이군. 일하는 사람을 고려해서 물어보다니 말이야.”

할 말을 다 끝내고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간 카일러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리디안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참 알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다른 듯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가 하면 두 사람 다 보통과는 다른 면이 있어서 알수록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디에나가 연회 이야기를 꺼내면서 내게 했던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리디안은 문득 뭔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 미간을 구겼다.

미디에나는 부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사샤에 대한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이고 있었다. 저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이 이전에 했던 일들에 대해 반성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베른 후작 내외와 그녀의 동생 엘리나의 실체가 드러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로 인하여 사샤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애가 되어 버렸다.

긴장하고 경외해야 할 공작 부인의 위치에 앉기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경 쓰였던 미디에나는 그녀를 도와 공작저에서 연회를 한번 거하게 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럼 나중에 한번 확인해 보시고 저희에게 전달을…….”

“그럴 거 뭐 있나. 부르면 되지.”

리디안은 거리낄 것 없이 바로 시종장을 불렀다.

세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깨진 지는 오래였다. 카일러가 황궁에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가 다니는 길목에서 반드시 마주치고야 말던 미디에나는 카일러의 진심을 담은 말을 들은 이후로 길고 긴 시간을 보냈다.

카일러는 물론이고 리디안마저 당분간 멀리하며 깊은 생각을 거듭하던 그녀는 점차 리디안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고, 카일러와는 완벽하게 거리를 두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일러와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두 달 전쯤? 그녀는 이제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카일러를 응시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사샤를 불편하게 여기고 견제하던 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카일러는 그녀의 변화를 리디안 다음으로 제대로 체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의견을 당연히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폐하, 황후께서 오셨습니다.”

시종장의 안내 후 문이 열리고 미디에나가 등장했다. 그녀는 가만히 카일러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카일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이그노트 공작이 있는데 어쩐 일로 저를 부르셨나요?”

미디에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리디안을 보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카일러의 맞은편에 앉으면서도 전혀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셋이서 모이게 되면 풍기던 긴장감도 사라졌다. 리디안이 눈치를 채든 말든 자꾸만 카일러를 향하던 미디에나의 시선은 리디안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카일러가 아주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데 말이지. 황후도 들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그제야 그녀의 시선이 움직여 카일러에게로 향했다.

미디에나를 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평온한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요?”

“다음 달, 저와 사샤가 결혼식을 올린 지 1년이 됩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사샤가 공작저에서 연회를 열고 싶어 합니다.”

카일러의 말에 미디에나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황제의 말은 진짜였던 모양이다.

미디에나는 리디안 쪽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다시 카일러를 보았다.

“이전에 폐하께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연회를 한 번 열면 좋겠다고요. 역시 공작 부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있으셨군요. 다행이에요.”

그녀의 미소에는 거짓이 없었다. 카일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이 다시 한번 허락을 받듯이 리디안을 바라보았던 미디에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전에 폐하께 연회 이야기를 꺼낼 때 한 가지 말씀드렸던 것이 있었어요. 이그노트가에서 연회를 열면 내 이름으로 선물을 크게 하나 해 주고 싶다고.”

생각도 못 했던 이야기인지라 카일러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다가 미디에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전에 내가 잘못했던 것에 대해 제대로 사과할 기회를 가지질 못해서 좀 신경을 쓰고 있었어요. 기왕이면 연회를 열 때 첫 연회를 축하한다는 구실로 황실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하면 주변에서 공작 부인에 대해 내리는 평가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고요.”

그녀가 말하는 ‘의미 있는 선물’은 앞서 나왔던 ‘큰 선물’과 일맥상통하는 것일 터였다.

벌써부터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카일러는 안심했다. 셋 사이의 관계는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지만 사샤와 미디에나의 사이는 카일러로서는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인 미디에나에게 사샤가 아직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카일러가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황제에게 요청해서 황후가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도록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와 황후의 참석을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바로 사샤였다. 그래서 우선 큰 걱정은 던 상태였고, 황후를 만나니 더 이상 그들 사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크고 의미 있는 선물이라…….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감사히 받을 겁니다. 그런 의미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카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허락하에 꽤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가야지. 누가 하는 연회인데. 사샤가 여는 연회라……. 기대하지.”

리디안은 그녀를 친근하게 이름으로 불렀다. 몇 번 황궁에 오면서 그와 대화를 나눌 때 워낙 당돌한 면을 많이 보았던 리디안은 거의 카일러와 그녀를 비슷하게 대했다.

별생각 없이 그녀를 부르는 이름을 듣던 카일러와 다르게 미디에나가 슬쩍 그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살짝 곱지 않다는 것을 카일러도 느낄 수 있었다.

“어? 아…….”

그리고 동시에 그 눈길을 읽은 리디안은 아, 하더니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먼저 나가 볼게요.”

리디안이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 들자 미디에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일러에게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중 한 미디에나는 얼른 집무실을 나섰다.

“내가 공작 부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질투를 하더군.”

“아…….”

카일러는 의외의 말에 입을 살짝 벌렸다. 질투라니, 대상에 따라서는 재미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가 황제를 위해 질투를 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대가 사샤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사샤를 질투하던 건 그때야 당연한 일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사샤를 향해 웃어 주는 것을 보고는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더군. 아니 오히려 기분이 더 더러웠다고 했었지.”

거침없는 언사로 전해 주는 지난날의 이야기에 카일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변함없이 바라봐 주는 마음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꾸준히 바라봐 온 황제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카일러와 대화한 뒤로 생각이 바뀌어서 지금 이렇게 될 수 있었지만…… 역시 공작 부인을 다정하게 대하는 것 같다고 이름 부르는 것은 싫어했었다.”

자신과의 대화……? 아, 그날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을 향한 마음을 부디 거두고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라고 일장연설을 했던 그때 말이다.

그러고 바로 미디에나의 안내를 따라 사샤를 찾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느라고 그때의 기억은 거의 다 날아가고 말았다.

그게 계기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겪었던 리디안에게 느낀 질투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그거 다행이네요. 그때 이후로 이렇게 사이가 좋아지신 겁니까?”

카일러의 말에 리디안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사실은 너보다도 내가 더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군. 네가 나서 준 덕에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어.”

까딱했으면 미디에나가 정말 어떻게 됐을지 리디안도 장담할 수 없었다. 본인만 모르는 화차에 올라 절벽으로 내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일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카일러는 가슴 언저리가 조금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사샤가 좋아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무리해서 공작저에 물길을 만들고 정자를 만들어 놓은 것은 제가 그녀에게 받은 것에 비해 해 주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샤는 우선 대충 결혼할 뻔했던 자신에게 와서 스스로 선택한 결혼을 하게 해 주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녀를 사랑해서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날의 마주침은 거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행색이 이상한 영애와 마주쳤다고 얼른 지나가려던 자신을 붙들어 준 것이 그녀였으니. 그 기회를 잡아 준 것도 사샤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공작저에 데려다 놓고 제대로 챙겨 주지는 못하면서 며칠에 한 번씩 몸만 취하는 제게 추궁하지 않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공작저의 고용인들 사이에 활기를 주었다.

아마 그때는 스스로도 자신을 버텨 내는 것이 한계였을 것이다. 두 사람 다 방황을 마치고 이 자리에 돌아왔다. 둘 다 잘 버티어 내었고 결국 서로를 축으로 삼아서 제자리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미디에나에게 말을 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리디안과 친하게 지내 놓은 그녀 덕에 미디에나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말로만 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자신이 그걸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사샤를 다정하게 대하는 리디안의 모습을 보며 화를 냈던 그 마음이 질투라는 것을 알아차린 미디에나는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 그것이 제일 감사한 일입니다.”

안정을 찾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두 친우는 서로를 보며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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