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저 마법사는, 괜찮을까.」
한창 활강을 하고 있던 가운데, 사샤가 올라탄 우두머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샤는 봐도 봐도 멋있는 발아래 풍경에 정신이 팔려서 그녀의 말에도 산맥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마법을 순식간에 쓰면 바로 막기는 어렵겠지만, 그래서 카일러가 있는 대로 협박해 놓은 상태라 좀 많이 위축이 돼 있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말을 끊고도 뒷말을 흐리자 사샤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모두를 앞세우고 가장 뒤에서 날아가고 있던 사샤였기 때문에 마법사의 뒤꽁무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이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다.
“뭐…… 딴짓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는데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을 좀 놔도 되겠는데요.”
마물과 남으면 싹 다 정리해 버릴 것처럼 굴더니 높이 올라오는 것은 쥐약이었던 모양이다. 사샤와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함께 하늘을 즐겼다.
하늘을 신나게 날아 도착한 곳은 문제의 폭포였다. 그녀가 타고 올라갔던 산등성이 외에도 착지하기 전 그 주변을 배회하며 폭포의 장관을 감상했다.
물론 감상의 목적 외에도 폭포의 구조를 보기도 했고 폭포의 정면 그들이 날아왔던 것보다 살짝 고도를 낮추었을 때 얼핏 보이는 ‘구멍’의 위치를 보는 것도 있었다.
「인간~」
딱히 통성명을 하지 않았더니 사샤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어린 마물이 펄쩍펄쩍 날 것처럼 달려왔다. 네 마리가 폭포 바로 옆으로 착지하자 네 명이 그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리할만이 후들거리는 다리가 얼어붙은 땅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내렸다.
“사흘 만에 보는 건데 뭐가 그렇게 반가워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샤도 활짝 웃는 얼굴로 머리를 들이미는 어린 마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몇 번 보지도 않았을 텐데 친근하게 구는 인간과 마물의 모습에 카일러는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많은 혼돈을 겪고 있었다.
본래는 이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을…… 단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백 년 동안의 전쟁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고 하기엔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폭포가 내 기억보다는 작은 것 같군.”
카일러는 복잡한 생각에만 몰두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살폈다. 태워준 마물의 등을 두드려 마치 친우에게 감사를 표하는 듯한 제스처를 한 뒤 바로 폭포 물이 흘러오는 곳으로 향했다.
“현재 이 강 양옆이 얼음으로 얼어서 물의 폭이 좁아진 듯합니다.”
바로 그의 옆으로 따라붙은 딜런이 분석에 들어갔다. 하지만 좁아지긴 했어도 그 위협적인 물줄기는 그대로였다.
아까 하늘을 날면서 슬쩍 볼 수 있었던 그 ‘구멍’이란 것이 좀 컸다면, 좁아진 물줄기에 드러나는 부분이 많아졌을 텐데, 그것도 아닌 걸 보니 조금 작은 듯했다.
“리할.”
카일러가 나직하게 마법사를 불렀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폭포 소리가 아무리 요란하더라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닌데.
카일러와 딜런이 뒤를 돌아보자 아직도 숨을 고르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마법사가 보였다.
“기세가 등등하더니, 공격은 무슨. 정신 차려라.”
딜런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중한 기사들은 웃음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법사를 확 눈썹을 구기며 얼른 다가왔다.
“어떻게 이렇게 날아 다녔는데 멀쩡할 수가 있는 겁니까. 정말 지금 속이 좋지가 않은…….”
“이 강을 봐라. 혹시 이걸 얼릴 수 있는가.”
카일러는 그의 투덜거림을 들어줄 만큼 친절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그런 걸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샤밖에 없을 것이었다.
어느새 그녀도 같이 다가와 카일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으…… 제 힘으로 이 부분을 얼릴 수는 있지만 뒤에 서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물들까지 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거 다 얼리려면 이 근처에서 계속 날면서 한 100m 벽을 쌓아 올려야 할 겁니다.”
“아니면 물이 흘러오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면서 얼려 가는 것은…….”
사샤가 마법사의 말에 이어서 그렇게 말하자 마법사가 어느새 기운을 찾았는지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일시적이죠, 그것도.”
“음, 힘들겠죠.”
하지만 사샤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비아냥거리는 것을 그대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좀 더 훑어보았다.
“그거면 된다.”
그런데 카일러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거면 된다니…… 100m 벽? 계속 옮기면서 힘 빠질 때까지 강을 얼리는 것?
“여기에 얼음을 얼려라. 마치 커다란 바위로 가운데만 막는 것처럼.”
당장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이들은 점차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딜런과 사샤의 눈동자가 마주쳤다가 마지막으로는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뭐, 해 보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 피신해야겠네요.”
마법사가 바로 자세를 취하려고 하자 사샤가 다급하게 말했다. 물의 진로를 방해하면 옆으로 샐 테니까. 물줄기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던 카일러마저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다시 뒤돌아 마물들에게로 걸어갔다.
“나더러 지금 저걸 타라고요?”
“그럼 거기서 마법 쓰다가 물길에 같이 휩쓸려 가든가. 그대가 없어도 물줄기 바꾸는 건 딜런과 할 수 있다.”
불만에 이어 칭얼거림만 더해 가는 리할에게 환멸을 느끼는 딜런의 마음을 대변해 주듯 카일러가 시원하게 꾸짖어 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또 싫은지 입술을 비죽이 내민 그는 마물에게로 걸어가는 그들의 뒤꽁무니를 또 졸졸 쫓아왔다.
“우리가 저 폭포 한가운데에 방해물을 세울 것이다. 폭포의 물줄기를 바꾼다면, 그 사이에 있던 구멍이 보일지도 모른다.”
카일러는 바로 우두머리 마물 앞으로 가 설명을 했다. 이곳에 와 많은 마물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도 그녀가 우두머리라는 것을 바로 눈치챈 것이었다.
사샤는 지체 없이 그의 말을 다시 한번 제 목소리로 말했고, 마물은 사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된다는 것이지?」
마물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종족은 아니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굉장히 인간과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사고할 수 있는 부분이 깊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 저 아래 구멍이 있는 걸 알았으면 수백 년 사이에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구멍으로 들어가는 데에 물줄기가 방해라면 그것을 치우면 되지.”
「그럼 그 구멍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 부분은 정확하게 해결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카일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마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수백 년 동안 해내지 못했다면, 저걸 닫는 데에 앞으로도 그대들의 힘이 필요할 일은 없겠지.”
카일러의 말은 자칫 무례할 수 있었겠지만 마물들은 그것이 어떻게 나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꼬아서 생각할 수 없는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오롯이 그 말 그대로로 알아들은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물줄기가 구멍을 덮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구멍을 닫는 방법이 있는지는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다.”
“아……! 저 구멍으로 이 세계에 온다고 한 들, 저게 막히지 않으면 다시 저기로 가면 되겠네요.”
사샤가 드디어 카일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눈치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하, 하는 소리를 연신 냈다.
“지금은 마법으로 얼음을 만들지만, 꾸준히 돌을 쌓거나 해서 물줄기를 아예 바꿔 놓으면…… 여기로 넘어 오게 되더라도 되돌아갈 수 있게 되겠네요.”
“그, 그러다가 마물이 마구 넘어오면!”
마법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뒤에서 전해 듣고 있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 혼자 다급하게 외쳐 보았으나 그 말에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문제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여기 넘어와 우리를 통제하는 그들도 싫고, 그들을 피해 가다가 기사들을 만나 죽임을 당하는 것도 싫다.」
우두머리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마물들의 전부 그 말에 동의하듯이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보였다.
지금 당장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것이었다. 아예 막을 수도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그건 내려가서 사람들을 동원해 올라온다 할지라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구멍’이라는 개념이 진짜 땅에 난 홀이 아니라 마치 공간에 구멍이 난 듯 새까맣게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가 도울 일은 없는 것인가.」
우두머리 마물은 이제 아예 카일러를 보면서 말했다. 말이 전해지지 않고, 표정조차 전해지지 않아 카일러는 뜻을 바로 전해 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을 믿어 주고 있는 이 존재에 대해서 이상하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감정 같은 것이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우리를 옮겨다 준 것만으로도 시간과 많은 것을 아낄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제국의 평화를 위해 하는 일이니 나머지는 그대들의 도움 없이 우리가 해결하겠다.”
이미 생겨 버린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이 구멍 탓에 깊어진 골이었다. 어느 한쪽만 고통받는 것도 아니었고, 어느 한쪽이 유리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똑같은 아픔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대들도 생각지 못한 세계에 떨어져, 고통받고 돌아가지고 못하고 끝에는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이 무시무시한 일을 견뎌 내느라 긴 시간 동안 힘들었겠지.”
카일러는 표정 없이 그 마물을 바라보았다. 제가 마물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듯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도 사샤를 거쳐서 전해지겠지만 결국 이해를 하면 중요한 것은 전해지게 마련이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용서라기보다는 이해라고 볼 수 있었다.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닌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구나, 사샤는 카일러와 마물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