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사샤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쯤 걸어 들어가 음침한 기운이 잔뜩 느껴진다 싶었을 그때 앞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기척의 주인이 나타났다. 커다란 몸체의 등부터 보였던 그 마물도 사샤의 기척을 느꼈는지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 오래 기다리셨나요? 시간을 말해 주지 않으셔서 최대한 일찍 와 봤습니다.”
마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소통이 되겠지?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고 거 걱정하던 것의 반이 해결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진행은 어떻게 되었는가.」
“와, 다행이다! 저는 그때 이후로 말이 또 안 들릴까 봐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간 별일 없이 지냈나요?”
그녀의 안부를 묻는 인사에 왠지 모르게 갸웃하더니 고개를 또 끄덕여 주었다.
「다른 일은 없었다. 그러니 일의 진행이 어떻게 됐는지를 설명하라.」
“아, 네, 그렇죠. 일이 어떻게 됐냐면요. 구멍이 물리적으로 막힐 수 있는 거면 폭포를 부수고, 혹시 가능하다면 물줄기를 막아 구멍이 드러나게 하는 방법들이 나왔어요.”
그녀의 설명에 담담하게 듣고 있던 마물도 멈춰 있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서 그런데요, 저희가 제대로 관찰을 하고 싶어서요. 저만 가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 일을 해 줄 분들이 산맥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사샤가 하는 제안은 그들에게 있어서 틀린 이야기, 혹은 쉽게 동조해 줄 수 없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두들 한발 물러나서 있는 것이었다.
마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자기들을 보기만 하면 칼을 휘둘러 대며 주인장인 척 무시하는 것이다.
진짜 도움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걸 믿어 주는 것이 우선적인 그의 몫이었다.
「그곳에…… 대단한 힘을 가진 인간 헌터가 있다. 그거, 우리 죽이려 할 거다.」
누가 봐도 카일러를 말하는 것 같지? 사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내 남편이에요, 저랑 따로 얘기해 두었고 이번 일을 다 얘기한 사람이에요. 믿어 줘도 좋아요.”
마물은 약간 못마땅한 것 같았지만 의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순간적으로 사샤의 얼굴이 화악 웃음꽃이 번졌다.
「힘들었나 보군. 뭔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게 있다면 우리도 가차 없을 것이다.」
“예, 그럼요. 저도 알고 있어요. 우리도 그 부분을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선 지킬 겁니다.”
사샤는 서둘러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가면서도 급한 마음에 발이 빨라지며 카일러를 목청껏 불렀다.
“카일러! 오세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그녀가 두 번 정도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저편에서 걸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왠지 심장이 설레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잘 됐는가.”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어서 가서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도 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두에 섰을 카일러의 얼굴이 보였다. 그에게 손을 뻗으며 뒤를 살피자 딜런과 마법사가 툭툭 튀어나왔다.
사샤는 그들을 이끌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마물 앞에 섰다.
양쪽에서 오가는 팽팽한 기 싸움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게 갑자기 울리기 시작하자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마물도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을 관찰하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우선은 나를 태우고 산맥으로 올라가 주세요. 그러면 거기서 이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마물들이 같이 내려와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내가 마물들과 떨어지지도 않고, 저 사람들과 마물만 남는 일도 없을 테고요.”
마물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흔쾌히 그녀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플랜을 위해 직접 관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도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니 믿어 보도록 하겠다. 그대가 먼저 올라단다고 했던가.」
마물이 소리를 내가 모두들 놀라는 눈이 되어 버렸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다들 상황 다 잘 이해하고 있고, 마물 분들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큰일 벌어지지 않도록 여러모로 고민해 줄 거예요.”
사샤는 얼른 돌아서서 내미는 마물의 등에 덥석 올라탔다. 경험이 있는 것과 이것은 좀 달랐다.
“다녀올게요!”
사샤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마물이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카일러와 잠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옆에서 바로바로 이야기를 통역해 주는 것은 이따가 모두 모였을 때 하기로 하고, 사샤는 그렇게 먼저 산맥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해서 말도 못 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 지금…… 공작부인께서 마물과 말을 하신 것인가?”
“그렇다. 얼마 전에 확인했는데, 꽤 잘 통하는 듯하였어. 그래서 이번 일에 중점이 그녀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녀 없이 마물을 만나선 안 된다. 그녀도 공격할 것이고 우리도 그냥 싸우는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 일을 만들지 않게 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카일러는 당황한 이들을 다독여 주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쪽은 산맥에 가까운 숲의 끝이라 그런지 나무가 꽤 많이 우거져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묵직해졌다. 시간이 흩트려 줘도, 비교당할 수 있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장함이 감돌았다.
“설명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 꽤 차이가 있군요.”
딜런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미 그녀가 마물에게 멈추자 소리 질렀던 것을 목격도 해 놓고서 오늘의 장면이 또 놀라웠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것은 나도 정확히 모른다. 우리는 마물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온 것이라서.”
“뭐, 내가 잘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쪽에서 한껏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물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마물을 적대적으로 생각했다.
카일러는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싱글싱글 태평한 눈을 바라보다가 빠득 이를 갈 듯이 말을 꺼냈다.
“분명하게 말했다. 마물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이고 마물이 넘어온다는 구멍을 막는 데에 끝까지 도움을 줄 것. 만약 이를 어길 시에…… 카일러 이그노트, 내가 목숨을 걸고 마탑을 무너뜨려 주겠어.”
“아니, 그렇게 쉬운 일일 줄 몰랐습니다. 마탑을, 제국의 공작이요?”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시험을 해 봐도 좋을 것이다. 지금 마탑이 수용한 거의 절반에 가까운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카일러의 두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시리게 빛났다. 그것을 보고 몸이 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마법사는 깨갱하면서 물러나 조용하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사히 산맥으로 올라가 폭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규모가 크게 보인다는 것이 나던 그 순간, 이거는 바로 실행을 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니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사샤가 나서 준 만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카일러로서도 강했다. 무사히 돌아와, 그리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할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하늘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
키이이익-!
역시 불편했던 게 바로 나아질 리가 없었다. 사샤는 귀를 막지 못해 마물의 포효를 제 귀로 다 들어야 했고, 귀를 막지 못한 손으로는 아프도록 마물의 날개뼈를 꽉 붙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것이 그렇듯 좋은 것도 똑같았다. 높이가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또 역시나 멋있었기 때문이다.
산맥이 이루는 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이 솟았다 가라앉았다는 반복하는 게 너무 멋있게만 보였다.
아마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혹은 계절별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공중에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는 다 봤을까, 이 산맥의 4계절을?
「나는 이곳에 온 지 불과 반년쯤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창공에서도 편안하게 울렸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려다보니 제 마음도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꼭대기가 하얀 것을 보자 그 높이가 가늠이 되었다. 생전 볼 수 없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잠깐 그 높이와 제 몸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까지도 처음 느꼈던 때와 같이 잊을 수 있었다.
키이이이-!
분명 처음 우할린 숲에서 들었던 마물의 울음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드넓은 창공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가 마치 자유를 누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자연 그 자체처럼 느껴져서 멋있게 느껴졌다.
꽉 잡고 있는 손등이 하얗게 불거진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매달려 공포에 떨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이 너무 기분 좋았다.
활강은 어느 정도 더 이어졌고, 어린 마물보다 확실히 안정적으로 착륙했다. 그녀를 만나러 간 이 마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우두머리 마물 등 그때 보았던 마물들이 전부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는가? 어째서 여기에 다시…….」
우두머리 마물이 겅중겅중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숨을 고르는 마물을 바라보았던 그녀는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말이든 얼른 해 주길 바라는 것을 보니 그 이후 사흘 동안 그들도 엄청 이 날을 기다려 왔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에요. 다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온 거예요.”
사샤가 그렇게 말하자 저쪽에서 바닥에 뒹굴고 있던 어린 마물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그리고 우두머리는 다급하지 않게, 호흡을 가라앉히고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