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113화 (113/128)

113화

그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여전히 그의 위에 앉은 채 몸을 떼어 내 카일러와 눈을 맞췄다. 생각을 많이 했는지 살짝 두통이 오는 것 같은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뭔가 얘기가 잘 안 됐어요?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얼굴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면서 표정과 피부, 이목구비를 조심스럽게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잘생긴 것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피부가 살짝 까칠해진 것이 보였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많아서…… 사샤는 속상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살짝 거칠어진 그의 볼을 마구 문질렀다.

“사샤가 말해 준 상황을 최대한 상세히 전하고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입구를 막을 방법에 대해 의논했다. 하지만 역시 폭포의 규모도 있고, 정확하게 그곳의 지형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 정확하게 결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곳을 본 사람이 있고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번에 해야 할 것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함부로 결정짓고 올라갔다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폭포를 아예 부수어서 그 바위로 막는 것도 생각했고, 아니면 돌을 쌓아 물길을 바꾸어 입구부터 찾아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음, 그래요? 둘 다 가능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 문이라는 게 여기 구멍 난 땅에 흙 메우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건가요?”

“……그것도 사샤가 정확히 확인하고 온 것이 아니라 알 수가 없군.”

“마법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껴 가는 중이다.”

진지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왠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같은 문제를 놓고 그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까.

아, 그러는 사이에 사샤에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낼모레 우할린 숲에서 마물과 만나기로 했는데, 꼭 필요한 인원만 데리고 마물들한테 태워다 달라고 하는 것은 어때요?”

그건 카일러는 생각 못 한 모양인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말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뭣도 모르는 제가 던진 말에도 이렇게 심사숙고를 해 주다니. 그의 부하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게 차오르는 뿌듯함이 자꾸 다음을 만들게 하는 거 같으니까.

“그게…… 가능하겠는가.”

“음…… 마물이 이제 말이 통하니까 사전에 먼저 이야기를 해 놓으면 될 거 같아요. 먼저 가서 제가 그 마물을 타고 위로 올라가서, 필요한 마물만큼 데리고 다시 내려와 한 사람씩 탄 뒤에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이죠.”

역시 사샤가 생각하기에도 사람들과 마물만 저 없이 두는 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이고 다 사샤의 말을 알아듣고 그녀가 해 주는 충고나 부탁이 충분히 전달이 될 존재들이었지만, 아직 그녀가 없을 때 다들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었다.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면 되었다.

“그리고…… 사샤 말마따나 조심해야 할 것들은 조심하고. 마법사를 부르려고 한다. 마탑의 수장인 주제에 마물 관리에 관심 없다고 태만히 구는 것을 좀 고쳐 줄 때가 되었지.”

그리고 고민을 끝냈는지 깔끔하게 대답하는 카일러를 보자 사샤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넘기는 말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당일에 모두 함께 우할린 숲으로 가도록 해요. 그때 봐서 마물과 이야기를 해 보고 제 생각이 가능한 일이라면 그대로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좋은 기분만큼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옆에서 카일러도 비싯 웃음을 흘렸다.

“오늘따라 아주 예쁘군…….”

그리고 문득 그가 그런 뜬금없는 말을 꺼내더니 허리 부근을 손바닥으로 끈적하게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그 야릇한 손길의 의미를 알았고, 사샤도 농밀한 신음을 흘릴 뻔했지만 간신히 참고 오히려 그의 목에 매달리며 똑바로 말하려 애썼다.

“안 돼요, 카일러. 하, 지금 얼굴 얼마나 까칠한지 알아요? 요즘 계속 잘 못 자는 데다가 더 보탤 수는 없는 거잖아요.”

까칠한 얼굴과 피곤해 보이는 눈이 너무 신경 쓰여서 이제는 정말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쉬워하는 카일러를 일으켜 세워서 손을 꽉 잡고 행복하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두 손을 꼭 붙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카일러가 이겼는지, 그녀의 이름은 약속하겠다. 한 적이 있었다.

*

사샤의 의견은 적극 반영되었다.

카일러는 이번 일에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 상관 없다 하는 말들이 후에 가장 먼저 문제가 되곤 하니까 제대로 해야 했다.

마물을 타고 산맥 위로 올라가 직접 보고 계획을 세우겠다는 사샤의 의견을 실행하기 위해서 카일러는 마법사를 다시금 황궁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전령을 보냈다.

사샤에게 사샤와 함께 우할린 숲으로 갈지, 누구누구와 갈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설명을 했다.

카일러의 우려대로 데려가고자 하는 마법사가 성격상 복종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서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마법사는 그럼 통제를 아예 못 해요?”

“그들은 쉽게 통제를 할 수는 없지만, 사실 힘으로 통제를 하고 있지. 대신 만약 상황에 따라서는 그들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들을 데려가는 대신 쓸지 말지는 위에서 결정이 날 것이다.”

사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만 있으면 준비는 모두 끝이 난다. 마물을 생성시킨다는 그 구멍을 누구의 힘을 쓰든 막을 수만 있다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두 사람을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을 채로 저택을 나섰다. 마법사만 도착하면 그를 데리고 바로 저택을 나설 생각이었다.

“아이고~ 제가 혹시 늦었습니까?”

함께 가는 카일러와 사샤가 어이없는 눈을 하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붙이는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얌전히 있다가 얌전히 돌아갈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마차에 모여 앉아서 이동하기로 했다. 숲 바깥에서 기다려 줄 사람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

함께하는 인원은 카일러와 사샤, 그리고 딜런과, 못마땅한 건지 신이 나는 건지 잘 모르는 마법사.

전달해 주는 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샤는 긴장한 얼굴들을 둘러보며 자신이 가서 해야 할 말과 마물의 반응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그걸 그냥 없애면 되지. 뭘 자꾸 그렇게 도와주네 마네 한다고…….”

“마탑에서 마물 토벌에 힘을 보태 준다면 그 의견 아주 소중히 받도록 하지.”

마법사가 긴장이 풀렸는지 어쨌는지 또 가볍게 입을 놀리기 시작하기에 카일러가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어머, 마물 처치하러 가실 때 마법사님들이 한 번도 안 도와주신 거예요?”

그런데 그때 한술 더 뜨듯이 사샤가 말을 보탰다. 카일러의 말에 못마땅한 듯한 얼굴을 보이던 마법사는 미간을 확 구긴 채 사샤를 돌아보았다.

“그래.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었지. 그렇기에 빠른 수습을 위해 리할, 그대를 이렇게 부른 것이기는 한데…… 이런 때에조차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공작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다면 몰라도,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 것치고는 매우 태도가 불손해 보이는군. 이런 때에 의심받지 말고 좀 똑바로 처신해라.”

“이번에는 문제 일으키면…… 어쩌면 목숨에도 지장이 있을 거 같아서 올리는 말씀입니다. 집중 부탁드립니다.”

사샤는 이번에는 장난 식으로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주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마법사는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그녀의 딱 부러지는 언행에 순간 말을 잊고 그녀를 보았다. 마치 여자 카일러를 보는 듯한 단호함에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다.

기분이 더 나빠지려 하는 것을 보고 아주 잠깐 침묵하는 사이 마차는 고르게 달리고 달려 우할린 숲 입구에 도착을 했다.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비장했다. 지금 이곳에 왜 왔는지는 사샤를 통해 세세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여기로도 숲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주변을 훑어보는 딜런도 놀라고 있었다. 이곳에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보니 보이는 것이지, 아니었으면 입구라는 것도 모를 뻔했다.

“입구에서 살짝만 들어와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는 건 저 혼자만 할 거예요. 제가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절대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

마차에서 내려 숲의 입구에 슬쩍 들어와서 꺼내는 사샤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다들 어느 정도의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샤는 안으로 더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향해 박수를 짝-소리가 나게 쳤다.

각자의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집중하세요! 지금부터는 집중해야 해요!”

그녀가 낸 소리에 남은 이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중 가장 평온해 보이는 것이 바로 사샤였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해요. 먼저 마물을 공격하지 말아요. 당황한 상태에서 툭 건들면 바로 공격으로 나와 버리기도 하니까요. 어떤 건지 아시겠죠? 절대로. 절대로, 마물을 건드리지 마세요.”

사샤는 온 힘을 다해 강조했다.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그는 여전히 모자라게만 느껴졌다.

“그래. 명심하지 평온하게.”

“다녀오십시오, 사샤 님.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카일러와 딜런의 걱정이 가득 담긴 응원을 받으며 발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