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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79화 (79/128)

79화

마차는 멈춤 없이 달려 공작저로 도착했다. 그 마차는 아침에 사샤가 타고 나갔던 것으로, 하녀들은 일을 시키고 파반 또한 저택을 돌아보는 일을 시킨 다음에 로제 혼자 그 마차를 맞이했다.

“정말 괜찮으니 돌아보고 와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기 싫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겠어요.”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하던 파반의 등을 떠밀면서 로제가 말했다. 그녀가 예시로 든 것이 어떤 상황일이 대충 머릿속에 떠올려 본 파반은 끄응, 하면서 어느 정도 수긍한 듯 보였다.

“필요하면 빨리 불러 주게.”

“어련히 부를까 봐. 어서 가세요.”

그렇게 당부를 남기고는 파반이 뒤를 돌아 저택 뒤편으로 사라졌다.

귀족 부인들 중에는 온 고용인들이 자신을 예우해 주고 뭘 하든 모든 이들이 자신을 위해 움직여 주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로제도 전 공작부인을 따라 다른 귀족가에 다녀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출타를 할 때, 그리고 돌아올 때 많은 고용인들이 나와 자신을 배웅하고 맞이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집 안에서 움직일 때도 마주치면 마주칠 때마다 예를 다해 인사하길 바랐다. 심지어 식사를 할 땐 몇 명 이상, 목욕을 할 때면 몇 명 이상 자신의 시중을 들길 바랐다.

물론 그게 대부분은 아닐지언정 대부분의 귀족 부인들이 자신의 남편만큼이나 떠받들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사샤는 전혀 달랐다. 기본적인 생활에 관해서는 무조건 혼자서 하기를 바랐다. 식사할 때도 씻을 때도 다른 사람의 손을 타길 바라지 않았다.

심지어는 청소도 혼자 하겠다고 걸레를 들었던 사람이니까.

밖에 나갔다 오는 데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배웅하고 맞이를 한다 하면, 그게 부담스러워 외출을 꺼릴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별일 없으셨어야 하는데.”

게다가 아까 파반에게 얘기했던 예시는 억지로 끌어온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미디에나의 부름을 듣고 황실로 향한 거였다. 아직도 제 주인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이상한 황후의 호출로 간 거였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 제 주인과 그녀의 관계가 미묘하게 어긋났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기에 황후가 이상한 것을 건드려 놓았을까 싶은 걱정까지 더해져서 그녀가 떠나 있던 시간 동안 내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저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번뜩 고개를 드는 사이 마차의 모습이 보이고 라크가 팔을 들어 인사를 건네 왔다.

그의 반응을 보아 적어도 문제가 인지될 만큼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마차는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의 앞에서 멈추었다. 마부가 내리지 않고 로제가 직접 마차의 문을 열었다.

이제 그녀의 기색을 살피면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준 뒤 함께 안으로 들어가며 잘 다녀오셨냐, 별일은 없으셨냐 물을 것이었다.

기왕이면 함께 걸으며 황후가 무슨 이유로 불렀는지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것까지 물어보는 것은 살짝 도를 넘는 것인가. 아니야, 이 부분은 공작님께도 전달을 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넌지시, 기분 안 나쁘실 만큼만 확인을…….

“비켜라.”

생각들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마차 문을 열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정수리가 싸해지는 기분에 로제는 삐걱대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공작님이 왜 거기서 나……오시는……?

마차 문을 열면 안에서 사샤가 나와야 하는데, 그래서 그 문 앞에 선 채로 손을 내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그녀의 주인 카일러였다.

서늘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리기 전에 로제가 얼른 한발 뒤로 물러섰다. 어제부터 거의 행방불명되다시피 했던 제 주인이 어째서 그녀와 함께 돌아왔는지 어리둥절했다.

마차를 착각했던가. 뒤에 사샤가 탄 마차가 따로 도착하려는 것인가.

마차에서 먼저 내린 카일러는 마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로제의 생각과 달리 안에서 그의 손을 잡고 내리는 것든 그녀가 기다리던 사샤였다.

“도, 돌아오셨습니까, 공작님, 사샤 님.”

로제가 당황하는 것을 처음 본 카일러는 당황한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사샤의 두 발을 땅을 딛는 것을 본 그가 한마디만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방으로 사샤가 먹을 간식을 올려 줘.”

“사…… 간, 식, 예. 알겠습니다. 공작님.”

로제가 조용히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사이 카일러의 손을 잡은 그녀는 살짝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허어, 두 분…… 화해는 제대로 하신 건가.”

그가 지나가고 나자 편안히 심호흡을 한 로제가 중얼거렸다. 당황한 나머지 그들의 표정을 살피지 못한 로제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간식을 준비하라 전하고 파반에게 카일러가 돌아왔단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한편 카일러의 손에 이끌려 그의 방으로 바로 들어가게 된 사샤는 살짝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카일러는 차마 쉽게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느냐 묻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사샤는 기어이 앉아 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바라보기는 하는데 왜 그러는지 묻지 못하는 얼굴이 보였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게 분명한데, 심지어는 굉장히 차갑게 느껴지는 분위기인데도 이상하게 그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단번에, 들었다.

이상하네……. 이상하게 기분이 좋으려고 해.

“저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황궁 간다고 그래도 좀 차려입고 간 거라서.”

“아……. 그래.”

그리고 지금은 눈에 띄게 안심하는 것이 보였다.

사샤는 그의 방을 다시 나와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벗어 뒀던 것 대신에 파티션 위에 새로운 실내복이 걸려 있었다.

그녀가 씻거나 옷을 입거나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것을 알아챈 로제는 항상 씻을 물과 갈아입을 옷을 이렇게 미리 준비해 두곤 했다.

이곳 사람들은 여기의 생활을 강요하는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빠르게 눈치채고 거기에 맞춰 주려 많은 노력을 해 주고는 했다.

그리고 다행히 저도 그렇게 둔하진 않아서, 그들의 배려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왔군.”

간단히 손과 발만 씻고 다시 카일러의 방으로 돌아가자 그가 어색하게 자신을 맞았다.

그런데 그사이 그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아 있었다. 옷을 굉장히 빠르게 갈아입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쿠키와 스콘, 그리고 차를 발견했다.

“점심,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은데…… 간식이라고 했더니 이런 걸 가져왔군. 샌드위치를 가져오라 할까?”

카일러는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맞이했다. 이런 설명까지 해 주는 그를 보면서 처음 그를 봤을 때를 생각하면 참 다른 사람 같다. 사샤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그의 옆으로 가 앉았다.

카일러는 바짝 가까이 오는 그녀를 움찔하며 내려다보고는 슬쩍 어깨에 팔을 둘러 주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두 사람의 사이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마물을 만나고부터…… 아니, 자신을 구하고 말을 고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굉장히 다정했고, 자신만을 생각해 주었었다 확 느꼈던 것은 역시 그의 귀가 한껏 예민해져서 딜런과 소리를 질러 가며 회의를 하던 때였다. 마물을 토벌하겠다고 외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방어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괜찮지…… 않다. 아니, 괜찮다.”

카일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한 것인지 이상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짝 찌푸려진 눈썹, 깊은 눈동자와 진중한 입술까지.

바라보고 있다 보니 생각이나 고민들은 다 제치고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좀 심하게 잘생긴 것이 아닌가, 문득문득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외모였다.

그녀가 잠시 넋을 놓고 있자 카일러는 미간을 한층 더 찌푸렸다.

“후…… 귀는 괜찮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전혀 괜찮을 수가 없다.”

“그날 제일 안 괜찮아 보였던 건 귀였는데…… 이상하네요. 귀가 안 아픈 건 다행이에요. 되게 괴로워 보였거든요. 소리 지르고 그러는 게…….”

한 번은 밤중에 귀를 감싼 채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의 괴로움이 전해졌었지만 오히려 버럭버럭 소리치는 그날이 사샤는 더 가슴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카일러는 어깨를 감싼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말끄러미 내려다보던 그는 스륵 어깨를 쥐었던 손을 놓고, 가까이 붙어 있던 몸도 떨어뜨렸다.

사샤는 그저 붙었던 몸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 볼 뿐이다.

하지만 카일러는 그녀에게 닿았던 부분들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끼잉-하고 아주 불쾌한 소리가 귀를 찌르고 지나갔다.

오전에 황궁에서만 해도 비교적 잠잠했던 것들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는데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반란 분자들에겐 현재 미행이 붙어 있던 터라 크게 일을 일으킬 만한 사람이 아직 없다고 했다 남은 것은…… 게라넬. 그곳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 실행에 옮길 때다.

그리고 자신은 사샤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로 이걸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음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이전에 대하던 듯이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처럼 밀고나갈 것이 아니라 중간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유약해 보이거나 줏대 없어 보일 가능성을 생각해 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려고 맘먹었다. 그녀를 두고 혼자 갈 것이 아니라……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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