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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70화 (70/128)

70화

오늘은 저녁에 유리 온실을 찾았다. 온갖 군데에 켜져 있는 초 덕분에 아름다운 조명이 갖춰진 곳은 촛불이 밝히고 그 촛불이 유리벽에 반사되어 금빛 은하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이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고 있었다.

미디에나는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해선 식탁 앞에 앉아서도 음식이나 앞에 앉은 황제 대신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먹으면서 봐도 된다.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런 그녀를 보고 입꼬리를 올린 리디안은 전채를 비우고는 입 안의 음식을 꼭꼭 씹었다. 주위를 바라보느라 정신없던 그녀는 그제야 겨우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이걸 보여 주시려고 저녁 식사로 변경한 건가요?”

두 사람은 좋지 않은 사이의 개선을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로 합치해 점심을 먹기로 약속해서 대부분의 날에 제대로 이행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점심 대신 리디안이 저녁 식사로의 변경을 요청해 왔다.

“점심때 카일러가 들렀었다. 오랜만에 왔는데…… 썩 좋지는 않아 보이더군.”

“그렇……군요.”

그의 점심시간 언저리에 찾아온 카일러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미디에나에게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음, 아주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 무슨 일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싶었는데, 역시나야. 마물을 토벌을 하겠다더군. 정말 무모하기도 하지.”

카일러가 와서 무엇을 하고 갔는지…… 그것 일거수일투족 전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 네……. 그러시군요.”

리디안 메데르……. 메데르 제국의 황제인 이 사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남자였다. 그녀가 제국에서 가장 그가 신뢰하고 있는 공작에게 마음이 빼앗겼다는데도 그는 자신을 내쫓지 않았다.

그렇다고 폭군이 되어 황후를 홀렸다며 공작을 벌주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을 챙기고 공작에게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작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었다.

유약한 것은 아니었다. 궁 안에서 그가…… 무척 예민하고 거칠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도 세상 잔인해지기도 하는 이가 바로 황제였다. 적이 되면 귀찮을 수밖에 없는 남자.

손해라고는 하나도 보지 않고 유유자적 손해는 피해 다닐 것만 같이 생긴 니 남자에게……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일까.

빙글빙글 웃고 있느라 항상 접혀 있는 눈꺼풀 아래 그 날카로운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제게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미디에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공작부인이 마물에게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어. 그곳에서 처치를 하고 돌아왔다는데……. 왼쪽 팔에 뼈가 금이 갔다더군. 아휴, 화가 날 만도 했지.”

리디안이 주저리주저리 전해 주는 카일러의 소식에 처음에는 혼돈스러워 하던 그녀가 놀라운 소식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카일러의 이야기만 들으면 좋겠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저 듣고 반응까지 해 버렸다.

“마물에게 공격을요?”

리디안은 그녀가 반응을 보이니, 왠지 얼굴에 화색이 도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다음 식사로 넘어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함께 우할린 숲으로 데이트를 나갔는데 말이지, 산맥 쪽으로 다가갔을 때 갑자기 마물이 덮쳤다는군. 한 마리를 상대했고, 물론 제대로 물리쳤는데…… 새로운 한 마리가 나타나 순식간에 공작부인의 앞을 가로막았다고…….”

“맙소사…….”

상황 자체를 떠올리고 있던 미디에나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제 눈앞을 갑자기 나타난 마물이 막고 있다고 생각하니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마물이 바로 그녀를 공격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마주 보고 잠깐 서 있더라는 거지. 다행히도 말이야.”

마물이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하면서 마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가 입술을 올려 비싯 지었던 미소를 싹 지웠다.

“그래도, 그 마물을 공격하는 와중에 그것의 몸부림 때문에 날개에 맞아 날아가 버렸다고 하더군. 팔에 금이 갔다네.”

“다행……이네요.”

계속되는 그녀의 이야기에 충격은 금세 가셨다. 미디에나는 아무 대답이나 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쳤다는 것 그리고 금만 갔다는 것에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다행? 별로 다행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음식을 곱씹으면서 뭔가 자꾸 켕기는 게 있었다. 마물…… 뭘까. 도대체 그게 뭘까.

“다치지 않은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것이지 그 마물이 이제…… 우할린 숲까지 내려왔다는 것.”

리디안이 항상 카일러의 이야기를 할 때엔 그저 그렇게 끝나 버려서 식사 후에도 언제나 생각이 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건실한 제국 걱정이 들려왔다.

미디에나는 그 주제에 있어선 정신을 차렸다.

데이트를 하다가 마물을…… 만났다고 했나.

“그렇군요…… 우할린 숲의 깊은 곳에 있는 시냇물과 정자가 그렇게 절경이라면서 데이트를 많이 간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곳에 갔던 사람이 공격을 받았다니…… 좌시할 수 없는 일이네요.”

그녀가 갑자기 그의 말에 제대로 건실한 답을 내놓자 리디안은 그녀를 문득 지그시 바라보았다.

황제의 그 눈은 웃음기를 잃어버리면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만다. 유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 것이 굉장히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멋지다는 게 포인트인데…… 아마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

“그렇다. 거기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출입하는 곳인데 거기에까지 마물이 내려오면…… 위험한 일이지. 카일러는 그래서 달려온 것이다. 물론 자기 부인이 공격당했다는 곳에 가장 크게 분노하고 있었지만.”

다시 나온 카일러의 이야기에 이번에는 미디에나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알고 있으면서…… 다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자신을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신경이 곤두섰다.

“그래서…… 이그노트 공작은 어떻게 마물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합니까?”

미디에나는 의미 없는 짓은 관두고 그에게 물었다. 그 일은 다른 걸 떠나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의 아내이고, 얼마 전에…… 아버지에게 거의 버림받은 듯한 반응을 보고 나서 절망에 빠져 있든…….

메딜란 공작은 그녀를 결국 보듬어 주지 않고 떠나 버렸다. 자신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는 아마 평생…… 모르겠지.

“지금 당장은 마물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다. 없애기 위해선 생성의 비밀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네.”

리디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마물을 베고, 마물이 내려오지는 않나 지키고, 그렇게 지키다 내려오면 또 처치하고, 모두에게 대피 명령을 내려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이뤄지고 있었다.

“그렇군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그 문제는 온 제국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제 힘 닿는 일이라면 다 도울게요.”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하려 했던 듯,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래. 부탁할 일이 있으면 꼭 그대에게 부탁하겠다. 그대도…… 내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해도 좋아.”

그의 말이…… 어쩐지 위험하게 들렸다. 제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인 걸까.

미디에나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어 대답을 못 하고 시선을 비껴놓기만 했다.

그냥 일상적인 부탁을 말하는 것일 거다. 미디에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제 마음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메딜란 공작이 왔던 날이 떠올라 버렸다.

그날 그가 황궁에 온 것은 순전히 리디안의 부탁이었다. 그저 영지에서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결정은 급한 일이었지만 그게 지금 당장에 촌각을 다투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방법은 많았다. 굳이 나이 있는 메딜란 공작이 수도까지 올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가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을 리디안이었고, 그 이유는…… 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제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부녀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고 좋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녀의 만남의 장이 되어 자신과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메딜란 공작이 자신의 추문을 너무나도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것. 그건 리디안도 몰랐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자신과 시간을 보내라는 말에 무시해 버리는 메딜란 공작을 보고 당황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부탁을 드려도 되나요? 부탁…… 드려도 괜찮으신가요?”

미디에나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를 보며 리디안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아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어느 정도 진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자나 드레스, 아니면…… 보석 중에서 고를래요. 얼마까지 되나요?”

일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돌려 버렸다.

이렇게 또 리디안과의 사이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틈을 두고 틀어져 버렸다.

식사는 그렇게 조금 더 이어졌다. 금빛 은하수의 아름다움도 이제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좋은 시간도, 그렇게 나쁜 시간도 아닌 것이 고요히 흘러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도 쭉 이 상태에서 틀어졌다 맞춰지기를 반복할 것만 같았다.

“자, 이제 가서 주무실 건가요?”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 온실을 나섰다. 그곳은 아직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음. 아니 부탁받은 일도 있고 하니 좀 더 일하다가. 그대는 어서 가서 쉬었다가 푹 자도록 해.”

리디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 안에 미디에나가 고스란히 비쳤다.

그게 아름다웠다는 것은……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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