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그것은 벌써 무리지 않겠습니까, 공작님.”
“어째서지, 이제까지는 목표한 만큼은 모두 해치우고 돌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국 그게 끝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말에서 내려 공작저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카일러와 딜런은 보기 드물게 언성을 높여 가며 싸우고 있었다. 그 소란에 놀라서 나온 로제와 파반은 그들이 토론 중이라는 것을 알고 일정 거리에서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언성 높은 토론도 멈추지 않은 채로 성큼성큼 카일러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그러니 이제는 진짜로 끝을 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이어 갈 수는 없지 않나!”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면 왜 이제까지 이어져 왔겠습니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공작님!”
“로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사이에 계단 위에서는 사샤가 나타났다. 마침 1층으로 내려오기 위해 방문을 열던 참이라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던 것이다.
“아, 사샤 님. 카일러 님께서 돌아오셨는데…… 딜런 님과 의견 차이가 좀 있으신 모양입니다.”
로제마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샤는 더욱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가 이렇게 격렬하게 화를 내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저런 크기의 목소리를 내며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괜찮……은 거야?”
“아마도요.”
두 여인은 홀에 서서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까지는 그저 내 귀만 괜찮은 정도면 됐다. 그 이상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뿐…… 아으!”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관자놀이를 짚으며 포효하듯 비명을 질렀다.
살포시 조금씩 그에게로 걸음을 옮기고 있던 사샤는 그의 예민한 모습에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번엔 또…… 어딥니까.”
그에 딜런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에게로 달려가려 하는 사샤는 로제가 뒤에서 살포시 잡아 주었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에는 당황하던 그녀도 귀를 감싸며 신경질적인 신음을 지르는 그를 보고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냔 말이다.”
“…….”
같이 언성을 높여 가며 그의 의견에 반대하던 딜런도 이번만큼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귀를 감싸던 손을 내리고 똑바로 서서 딜런을 바라보는 그의 푸른 눈에 시린 살기가 어렸다. 그런 게 살기인지도 모르는 사샤마저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카…… 카일러…….”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벌컥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를 주저 없이 따라 들어간 딜런의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사샤는 숨이 턱 풀림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고 말았다.
“사샤 님!”
“하아…….”
조였던 숨통이 트이는 듯 숨을 내쉰 사샤는 자신을 붙잡고 버텨 주는 로제의 손을 덮어 꼭 쥐었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어.”
“사샤 님…….”
그가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것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냥 못 보던 모습이고, 그만큼 화가 나거나 날 만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사람인 이상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의견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무실에 들어가기 직전 그가 보인 행동에 사샤는 얼어붙어 버린 것이었다.
귀를 감싸고 괴로워했던 것은 분명이 그녀가 들었던 그 소음 때문이 분명한데……. 그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자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냥…… 소음 정도가 아니었구나. 아픈 게…… 그냥 아픈 게 아니었구나.”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리는 그녀를 로제가 걱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통증을 느꼈을 때 그의 표정에서 사샤는 너무 많은 걸 느껴 버렸다. 그런데 눈을 들어 본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카일러가 아닌 듯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것은……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지만 진짜 살기였다.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이 번뜩이던 그 눈동자가 자다가도 생각나 벌벌 떨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무서웠다.
“사샤 님, 이쪽으로…… 따뜻한 차를 드릴게요.”
로제는 굳어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잘 다독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무실과는 반대편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 사샤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로제를 따라 천천히 발을 움직이자 1층 저 끝의 작은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잘 온 적 없는지 관리가 덜 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포슬한 햇볕을 받고 있는 잔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것을 알아챘다.
흡, 숨을 한 줌 들이쉬자 살짝 느껴졌던 그 냄새가 조금 넘어갔다. 이제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숨을 좀 쉬고 나니 갑자기 창피함이 몰려왔다. 이게 뭐라고…… 혼자 이렇게 반응을 하느냔 말이다. 내가 아픈 것도 아니고, 나를 죽이겠다고 살기 띤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유난이었네.”
편안히 숨을 쉬기 시작하자 본인의 반응이 너무 어이가 없어졌다. 아프고 괴로워서 힘든 것은 카일러인데 그런 그를 보고 대체 왜 이렇게 무서워했던 것일까.
“사샤 님, 차 한 모금 드셔 보세요. 편안해지실 거예요.”
로제는 급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차를 가져왔다. 은은하고 향긋한 향이 어딘지 익숙했다. 캐모마일…… 진정을 위한 차를 마시며 사샤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나 너무 꼴 보기 싫었다. 아픈 건 카일러인데 내가 왜 이렇게 놀라고 있는지.”
자책이 조금 섞인 그녀의 말을 들으며 로제는 약간 안쓰러운 빛을 담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사샤 님처럼 생각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로제가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의 한숨 소리에 사샤는 차향을 들이쉬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던 눈을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중년의 여인의 고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래 이 공작저에서 일하며 그 이전의 일도 모두 알고 있었을 그녀는 많은 것을 보고 지내왔겠지.
방금 그녀가 보고 놀랐던 모습도…… 이번에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데?”
아파하는 그를 보며 놀라고, 걱정하고,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는 말일까? 사샤는 입가에 찻잔을 댄 채 따뜻한 훈기와 향기를 코끝으로 마시며 로제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저 정도는 지금 많이 얌전해진 편이에요. 이전에는 더욱 더 심하셨죠.”
로제의 목소리가 드물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전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는 듯이 얼굴에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사샤는 앞의 의자를 스윽 빼 주었다. 그녀의 그런 배려에 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어 보이곤 그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에요. 시도 때도 없고, 가라앉힐 수도 없고, 떨쳐 낼 수도 없는 거거든요.”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알고 있던 것과 조합하자면…… 그의 귀에 울린다는 그 소음에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래, 그게 작은 소리든 큰 소리든…… 얼마나 거슬릴 것인가. 심지어 아프다고 까지 하니 그건 정말 상상도 못 할 고통일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신경 쇠약에 걸려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주인님들께서는 그런 공작님을 감싸 주셨어요. 이그노트 공작가에 아주 가끔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현상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에게만 특별히 나타난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 시대에는 그가 유일할 그 능력……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임에 반해 그가 온전히 얻는 것은 크지 않은 능력이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노이즈 정도의 소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전 주인님들께서 돌아가지고 나서였어요.”
상실의 여파였던 것일까. 그의 그 능력은 전 공작 내외가 죽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저렇게 반응하시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프면 소리 지르는 게 당연하고…… 귀에 계속 저런 소리가 들리면 신경질적이 되는 게 정상이고…… 그러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로제의 목소리가 토로하는 듯이 쏟아져 나왔다. 사샤는 그 감정에 가슴을 손으로 붙들었다. 자신마저 이 막힌 숨이 토해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린 공작님을 비난했고 다른 사람인 양, 아니 다른 존재인 양 배척하기 시작했어요. 이상한 걸 듣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저렇게 예민해지다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했죠.”
“몹쓸 사람들……!”
사샤는 이를 갈았다. 얼마나 아플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비난부터 했을 이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조금 속이 풀리네요. 저도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릅니다.”
로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까 그 장면에서 무서워 주저앉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끼고는 그렇게 공격적인 말을 퍼부어 대곤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도 그런 살기에도, 놀라긴 했지만 그다음 그녀가 한 것은 이해였고, 포용이었다. 그 고통을 단번에 이해해 주고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로제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많이 아팠을 거 같아요.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독특하고, 특이한 것은 언제나 외로운 법이거든요. 남들이 가진 거 하나만 없어도…… 남들에게 없는 거 하나만 더 내게 있어도…….”
사샤는 그런 로제의 모습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눌렀다.
지금 집무실 안에 있을 그에게 달려가 포옥 안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