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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64화 (64/128)

64화

일방적으로 내외하던 관계가 다시 정리가 되자 공작저는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뭔가 다 풀지 못한 응어리를 하나 남긴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뼈가 다 붙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니까 그녀의 팔의 붕대도 아직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를 옆에 내내 감싸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본인이 입을 통해서 알려 주고 해결해 주고 다 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주…… 두 분 이전보다 더 심해지신 거 같지 않니?”

새라가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위기가 좋은 것은 좋은데…… 그것이 어째 좀 과해진 것 같았다.

“너무너무 보기 좋아요…… 사샤 님 오른쪽으로 아주 딱 붙어 가지고…… 제 가슴이 다 설레던걸요?”

그들의 주인은 변화가 일정한 게 없었다. 어둠 속에 파묻혀 1년 가까이 헤매던 것도 거뜬히 걷고 나왔으니 이번 일도 그렇게 나오리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아마 제국사람들이 본다면 기절할지도 몰라.”

“영애들은 전부 질투하긴 했는데, 아마…… 그분의 반응이 아주 볼만하겠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대번에 알아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니나가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두들 대번에 알아챈 덕에 옆에 있던 이들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거 정말…… 어려운 일이군. 어째서 그분은 아직까지도 놓지 못하고 계신 걸까.”

그걸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힌 적은 없었다. 황후라는 높은 지위가 있어서 걱정이 될 법도 했지만 그거야 그녀를 막아 줄 수 있는 것이 황제이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그 마음을 알고 경계를 지켜 줄 수 있다면…… 지금의 평화 같지 않은 평화가 그냥 없습니다.

“그래도 정말 사샤 님이 계셔 주셔서 너무너무 다행이야.”

“이번에 잠깐 냉전이어서 얼마나 쫄았는지 모르겠어요. 두 분 잘못되시기라도 할까 봐 말이죠.”

“마물 때문이라고 했죠? 휴우…… 정말 이 집안과 마물은 무슨 원수를 기고 쌓이고 그랬었던가? 그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으세요?”

그녀들은 어린 대신 대부분이 부모가 여기서 일하던 이들이라 나고 자란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공작저에 관한 깊은 이야기들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뭔가 할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음만 동동 구르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건 정말 하기 싫은 경험이었다.

오늘은 그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인지 모여 있는 하녀들 사이의 분위기도 조금 화기애애해졌다.

“또 이렇게 모여 있구나.”

“핫, 하녀장님!”

로제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들은 빨래를 걷어다가 개고 있었다. 침대 시트와 드레스와 공작의 예복 등등 예민한 빨랫감들을 세탁하면서 집중하면서도 수다는 피할 수 없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두 분 사이가 풀어질 수 있게 할 일을 찾고 있어요. 뭔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카일러와 사샤의 일로 불타오르고 있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던 로제는 의외로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을 알고도 이렇게 있어 주는 사람들에 대해 아신다면 공작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다. 두 분끼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필요한 거지. 다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건 걱정이 되니까 평소에 두 분을 잘 도와주도록 해. 그럼 방법이 있을 것이다.”

11시간의 사투에 그나마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 되돌아온 것도 다시 확인하며 가는 기단이 되었으면 좋겠네.

“로제 하녀장님도 되게 따뜻하신 분이세요. 항상 두 분 응원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희도 로제 님처럼 멋진 하녀가 될래요.”

코니가 두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다른 하녀 언니들은 멋쩍게 웃었다. 로제가 좋은 하녀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같이 동조하기엔 조금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작 로제는 은은하게 웃을 뿐이었다.

*

“음…….”

사샤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지금 굳이 그걸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사샤의 의문에도 카일러는 물러나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 놓은 그의 시선은 산맥과 우할린 숲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마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서 괜찮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전체적인 토벌전으로 나갈 것이다. 이제는 공존 따위 있을 수 없다. 아예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해. 다시는 덤비는 일 없도록, 이그노트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 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말리지 마라.”

그의 목소리노 눈빛만큼이나 살벌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 제가 말릴 수는 없었겠지만 분명히 급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와아, 그런 게 되는 거군요.”

그를 지켜보고 있던 사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마물의 입장이 되어 보자면 이 남자가 완전히 도깨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급하고 과격할수록 물론 그에게는 위험할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 모른다 해도 그건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었으니까.

그가 실제로 마물을 잡는 것도 보았고, 제가 끼어들어서 더 그럼 것도 있지만 마물 사냥 이후에 어떻게 힘들어하는지를 다 보았었기 때문에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아, 그런데 궁금했던 게 있어요.”

그의 작전을 짜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든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카일러는 제게 질문을 하는 사샤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그녀의 왼팔로 눈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인가.”

카일러는 그녀를 볼 때면 역시나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힘이 나는 걸 그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무엇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응원을 얻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입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마물 사냥하러 가는 거는 주기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누가 마물이 지금 많으니까 잡으러 와 주세요, 하고 의뢰라도 하는 거예요?”

어떨 때는 반란 분자를 잡으러 갔다고 했고, 어떤 때엔 마물을 사냥하러 간다고 했다. 그에게 의뢰를 내리는 이는 대체 누구고, 어떻게 알고 사냥을 나가는 것인가. 그게 가장 궁금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라 사샤는 질문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모두들 냉장고까지 시선을 돌리지만 아무것도 못 했어.

“신기해서요. 어떻게 구분하는 것인지 사냥하러 가는 길은 어떠신지 그럭저럭을요. 듣고 싶었던 건데…….”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다른 곳으로 떠돌고 있던 카일러의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오히려 지금의 그보다 더 지난 그녀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카일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내게는…… 그걸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겨우 꺼내 놓은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카일러는 그 말을 꺼내고는 심각하게 얼굴이 굳어져서는 눈마저도 피한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샤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심각함과 대조되는 그 반응을 카일러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몰라서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예요?”

태연하게 다음 질문을 던지는 사샤 때문에 카일러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는데 그의 눈동자가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 놀라 하는 기색도 없고 너무도 태평하게 물어 왔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 거냐?”

카일러의 질문을 그녀를 단번에 캐치하지 못했다. 이상할 게 뭐가 있나, 다른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려고 해 봐도 그런 것은 없어서 사샤는 다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요. 왜 굳이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카일러의 일에 도움 되는 능력인 거 아니에요?”

마물을 토벌해야 할 때 알람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 것이냔 말이야. 아니면 반란군이 저쪽에 있으니까 확인해 봐야겠다 하고 갈 수도 있는 것이고.

그가 저렇게 반응하는 데에도 물론 이유가 있겠지만 그게 그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라면 아예 그 이유를 없애 주고 싶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만큼 당당하고 무서운 이그노트 공작이 되었으면 했다.

“어째서…… 이건 굉장히 귀찮고 또 무서운 능력이다. 나는…… 제국에 위협이 되는 것이 있으면 소리로 그것을 들을 수 있다. 매일을 소음 속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지.”

“매일을 소음 속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에 사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귀에 언제나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나 놀라운 차지인지 모르는 것이다.

“귀가 어지럽다. 그런 거는 아무 좋은 상태다. 귀가 아플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괴로워서 나쁜 짓도…… 몇 번 했었다.”

입술을 닫았지만 그게 어떤 일인지 그걸 눈치를 못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선에서만 이어졌고, 그것에 대한 불안은 카일러에게로 쌓였다. 더는 그냥 이렇게 만족하기보다 그녀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도 들려요?”

그녀가 닿아 있지 않으니 물론 들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샤는 그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속삭여 주었다.

“사랑해요, 카일러.”

그러고는 귀에서 멀어진 뒤 그의 얼굴 앞에서 물었다.

“이렇게 하면, 소음이 더 크게 들려요? 아니면 제 목소리가 더 크게…… 어?”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가려다 그의 입술에 입술을 빼앗겨 버렸다. 그제야 바로 알 수 있었다. 방금 제가 한 말이 고스란히 그에게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카일러는 미소를 은은하게 지었다. 유행은 돌아온다는 게 옳은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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