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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59화 (59/128)

59화

마차가 달려 도착한 곳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사샤는 감탄을 했다.

숲의 입구를 보는 것이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공원 같은 크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와…… 이곳이 우할린 숲이군요.”

입구로 봐서는 딱히 데이트 코스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해 보였지만 하녀들이 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숨을 들이쉬자 진한 나무와 흙의 향기가 숨을 타고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걱정은 잠시 만에 사라지고 좋은 향기를 맡자 기분이 새로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그에게 아까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 엄청나게 큰 검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어째서 이런 곳을 추천한 것인가, 정말…….

걱정이 되는 마음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자 그가 시선을 느꼈는지 사샤를 돌아보았다. 사샤가 그와 눈을 맞춘 뒤 그 시선을 허리춤으로 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바로 그 눈빛이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만약과 혹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위험이 있든 없든 숲이나 산은 위험한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괜찮은 거죠, 그럼?”

카일러는 그녀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숲의 입구엔 작은 마을이 있어서 화려한 마차의 등장에 기웃기웃 이쪽을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샤는 물론 기꺼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숲속은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무섭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와는 다르게 나무 사이사이에 보이던 엄청 검은 어둠 때문에 숲에 들어오기 전에는 조금 주춤하는 게 있었다. 그러나 막상 숲속으로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이 숲은 산맥에서 이어져 보통의 숲과는 나무 종이 많이 달라. 산맥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들인데, 환경이 척박하지 않으니 크게 자라나지. 나무가 단단하고 좋아 가구 만드는 데에 쓰인다.”

“아, 그럼 여기 근처에 가구 만드는 마을이 있겠네요.”

“정확하게 알고 있군. 아까 보고 온 그 마을이 가구를 만드는 마을이다. 단순히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장인이 많아서 공작저에도 이 마을에서 만든 가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와……. 저택으로 돌아가면 어떤 건지 알려 주세요. 궁금해요.”

“아예 돌아가는 길에 공방에 들러 좋은 거 하나 사 가는 것은 어떤가.”

조곤조곤 숲속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던 차에 카일러가 공방 이야기를 하자 사샤는 순간 심장이 설레었다.

선물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무언가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어렸을 때엔 모두들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자랄 테고 하다못해 고아들이 사는 보육원에서도 생일 파티를 해 줄 텐데, 그녀는 고모의 집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생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우와, 선물……. 그 뒤로 이동하는 내낸 사샤의 눈에는 숲의 전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선물을 받는다는 것에 설레서 잠시 동안은 그의 손을 꼭 잡고 걷기만 했다.

“생각보다…… 꽤 걷네요.”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던 것도 잠시 한참을 걸어도 아직 멈출 기미가 없자 사샤는 다시 숲으로 정신을 돌렸다. 그는 그렇군, 하고 대답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둘러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이럴 줄 알았던 것인지 하녀들이 신발을 편한 것으로 챙겨 주어 다리만 살짝 뻐근할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아직 시냇물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

“어? 어?”

사샤의 귀로 갑자기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귀를 기울이자 정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다갈색 눈동자가 숲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였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던 카일러는 귀를 기울이느라 발을 멈춘 그녀를 이끌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왠지 시냇물의 풍경을 보며 놀랄 그녀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졌다.

걸음을 옮길수록 물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더 걸어가자 그 풍경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

시냇물이라고 해서 사실 그냥 졸졸 흐르는 얇은 물줄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에 나무가 있고 그걸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눈치로군.”

“와…… 물 색깔이 너무 예뻐요…….”

이곳에서 말하는 시냇물은 제가 생각하던 것과 좀 다른 듯했다. 푸른색과 하늘색이 미묘하게 섞여 흐르는 물은 작은 강과 같았다. 고요하게 흐르는 물은 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투명해서 물 아래에 있는 돌과 나뭇가지가 비치고 그 위로 강 위쪽에 곧게 뻗어 올라간 나무들을 그대로 수면에 비추고 있었다.

주변 나무들은 나뭇잎이 울창한 것보다는 침엽수에 가까워서 여름의 상쾌한 느낌보다는 어딘가 가을과 겨울 사이 어딘가의 느낌이 가득했다.

계절감을 잊은 듯한 묘한 풍경에 사샤는 그대로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우와아…….”

아직도 감탄사만 내뱉고 있는 그녀를 카일러는 다시 한번 부드럽게 당겨 이끌어 주었다. 아직 감탄하기엔 일렀다.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새하얀 정자가 하나 있었다. 여러 개의 기둥과 그 위에 올라간 지붕까지 전부 하얀색이었는데 최근에 빗물에 깨끗이 씻기기라도 한 듯 정말 새하얬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의외로 편안하게 앉아 그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자.”

카일러는 의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바깥과 다르게 의자가 모래와 나뭇가지로 조금 지저분한 상태였다. 사샤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그것을 쳐 내려고 손을 뻗으려는데 훅 무언가가 의자 위로 왔다 갔다.

“응?”

“자.”

두 눈을 깜빡이며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것이 무엇인가 봤더니 카일러가 손을 툭툭 털고는 사샤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런 걸 챙겨 주실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우와. 카일러 굉장히 매너 있는 남자였네요.”

“……큼.”

카일러는 목을 가다듬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있는 것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이런 곳을 좋아하는 거로군.”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앉아 정자의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려고 하는데 문득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샤는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지었다.

“이런 풍경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그냥 방 안에 있는 게 전부였었으니까요. 움직이는 것도 제 손해고…….”

너무 풍경에 빠진 나머지 있는 그대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말해 놓고도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얼어붙어서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사실 사샤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도 다락방에 있으면서 그 작은 방 안이 자신의 세계 전부이지 않았을까.

가족들 눈에 안 띄려고 밤에 조심히 내려오고, 그나마도 들키지 않으려고 눈치도 봤을 것이고……. 방에 방치하는 딸에게 식사를 제대로 올려 줬을 리도 없다.

나랑 비슷한 점이 많구나……. 그녀의 삶이 어땠을지 돌아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동변상련의 마음이 확 일어났다.

“제국에는 예쁜 곳이 많다. 기사단 중에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는 걸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함께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아내와 보고 싶다고 말하거나 부모님과 함께 보러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꽤 자주 한다.”

“음, 예쁘고 좋은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대요.”

그래서 이런 곳이 데이트 코스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경치를 혼자 보고 있다거나 화가 나는 사람과 함께 본다고 생각해 보니까 이 감동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곁에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혼자 왔어도 많이 감동했겠지, 하지만 분명…… 카일러가 떠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동 하나, 상황 하나에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 오길 잘했군. 혼자 왔다면 아마 나는 사샤가 떠올랐을 것 같다.”

손을 잡고 있지 않은데도 사샤의 손에 살짝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짜릿함이 느껴졌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깊은 유대를 갖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니자만 어딘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극한 외로움 속에 살아온 자신과 그가 어떻게 비슷한지 몰라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부정하고는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또한 그다지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게 그녀의 짐작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뭔가 통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녀들이 정해 준 데인데 너무 좋아서 고맙다고 해 줘야겠어요. 그리고…… 좋아하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카일러도 함께 좋아해 줘서 너무너무 다행이고요.”

사샤는 이 평화로운 한때가 평생 갈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언젠가 힘들거나 아픈 일이 와도……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왼다고 해도…… 여기서의 기억과 추억으로 한동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자꾸 생각이 부정적인 과거를 돌아보는 것으로 가는 게 못마땅해 사샤는 그의 손을 가져다가 꼭 잡고는 그가 보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았다.

“예뻐요. 이따가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 가져다주고 싶어요.”

카일러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이들에게 고맙다고 해 주고 싶었다. 머리 맞대고 이걸 써 넣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까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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