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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57화 (57/128)

57화

사실 사샤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걸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야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다.

우선 메뉴판을 찾는데 그게 없었다. 조심히 주변을 살폈지만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그노트 공작을 알아본 직원 하나가 친절히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를 해 주고 가만히 서 있는데도 사샤는 가만히 앉아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앉자마자 직원에게 말을 꺼내려던 그는 멀뚱히 있기만 하는 그녀에게 눈길을 줬다. 그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양새라기보다는…… 어째서일까,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표정을 잘 숨기는 편은 아니긴 한데, 이렇게 잘 보일 일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생각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제일 많이 먹는 메뉴로.”

“예, 알겠습니다.”

직원은 카일러의 주문을 듣고는 바로 물러났다. 두 눈을 살짝 크게 뜬 채로 고개를 잘게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해 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겠군.”

사샤는 뜨끔했다. 그녀가 알 수 없는 결혼 이전의 시간에 대해 그가 물었다.

사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간간이 궁금해지는 만큼 이 시간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이 위기를 넘겨야 할까…….

“그, 그렇죠. 다락방에만 있었어요.”

알게 된 사실만 가지고 빠르게 대답을 해 주었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그가 뭔가 또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게 방금 그 질문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궁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인데, 혹시 그들이 그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알고 있는가.”

역시나 그의 질문은 아직 그때를 향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었고, 다른 이도 아닌 카일러가 궁금해한다면 물어보는 게 맞는 내용임에도…… 사샤로서는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음……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어요.”

무슨 이유가 있었으면 공작저에 초대받아 왔을 때라든지, 흥분해서 제게 카일러를 빼앗았다고 따질 때에 무슨 실마리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놓지도 못할 정도로 못생긴 애가 감히 누구를 뺏냐, 할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을 원망하거나 복수하고 싶었던 적은 없는가.”

지금 기승을 부리는 반란군은 선대의 황제에게서 버림받은 귀족들의 모임이었다. 선대 황제는 황권 강화를 위해서 큰 문제를 일으킨 귀족들에게 가차 없이 대했다.

그렇게 변방으로 쫓겨난 이들은 자신이 잘못했던 것에 대한 생각은 없이 황제가 저들을 돌보지 않고 버렸다면서 원망을 퍼부어 댔다. 그러고는 그 수가 많아지자 저들끼리 모여선 그 후대인 리디안을 황좌로부터 끌어내리겠다면서 반란의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유도 모른 채, 그것도 아무 잘못도 없이, 그것도 뭐 황제도 아닌 자기 부모에게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원망이나 궁금한 것도 없는 것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서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아마 진짜 사샤도 그렇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걸 느낀 적이 있어야 가족 같은 애틋함이 있을 텐데. 사샤는 실제로도 그런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오히려…… 지금 제게는 공작저에 있는 사람들이 가족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만약 카일러가 저를 그렇게 방에다 두고 잊어버린다면…… 그건 많이 슬플 거 같아요.”

그런 마음이 가족인 거라면…… 원망해야 옳다. 원망받아야 할 만큼 끔찍할 일일 테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와 이 식당에서 유명하다는 음식들을 놓고 갔다. 우르르 몰려와 우르르 접시 네 개를 내려놓고 간 그들이 빠지자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어서 먹어요. 그렇게 진지하지 않아도 돼요. 알게 되면 아는 거고, 그걸 굳이 알겠다고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아요.”

엘리나가 그렇게 설치고 다니지만 않았으면 엮일 일도 없고 과거 일을 방패삼지 않아도 될 텐데.

계속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닌다면 아마 그들 가족을 만나는 것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그렇게까지 가지 않는 것을…… 원하고 있지만.

“오? 음식 엄청 맛있어요.”

“음, 그렇군. 입에 맞다니 다행이다.”

사샤는 원래 식성이 좋았다. 그래서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던 때가 매우 힘들었었다. 이곳에서도 힘든 상황이었다면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힘들었겠지.

“카일러를 만난 거는 정말 행운인 거 같아요.”

눈떠 보니 결혼식장이라 혼돈에 빠지긴 했지만 다시 곱씹어 봐도 이곳으로 온 것은 그녀에게 있어 분명 행운이었다.

심지어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도…… 이렇게 제게 잘해 주니까.

음식을 먹는 사이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데이트를 하겠다고 다정하게 나왔는데 하필 제일 처음 나온 이야기가 사샤가 집에서 방치당하고 살 적 이야기라서……. 카일러는 조심스러워하느라 말을 아꼈고, 사샤는 할 이야기가 없어서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소란스럽게 수다를 떠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용한 식사 시간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머! 웬일! 공작님 아니셔?”

그때 저쪽 테이블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며 튀어나온 감탄사에 이어 나온 말에 사샤의 귀가 훅 트였다. 여기서 나올 공작님이라면 그밖에 없을 테니까.

사샤는 벽 쪽을 보고 앉아 있었고, 카일러는 눈을 들면 식당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속삭인다고 한 것 같은데 조용한 식당 내부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사샤에게 전달되었다.

“에이, 설마. 공작님이 이 시간에 왜 식당에 계셔. 마물 잡으러 나가신다면 기사님들도 같이 계실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공작님이시면 저 앞에 여자는 누구야, 설마 공작부인이겠어?”

서로 아니겠지, 아니야, 하면서 깔깔대는 사이 카일러는 귀를 닫은 듯이 음식을 먹으며 사샤를 챙기고 있었고 사샤만이 귀를 쫑긋 세워 그쪽에 귀를 계속 기울이고 있었다.

신경을 거두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마물 이야기가 들리던데, 알아요?”

“마물? 왜?”

“거기 마물 관리하는 자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들었어. 요즘 날뛰고 있어서 통제가 어렵다고.”

“너는 귀도 좋다. 그걸 어떻게 지나가다가 듣고 기억해?”

꺄르르, 하고 가볍게 웃는 그녀들의 대화에서 자신들은 금방 사라진 것 같았다. 새롭게 들린 이야기가 마물이라서 신경을 떼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사샤는 눈을 슬쩍 들어 카일러를 보았다. 누가 언제 마물을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 명령을 주는 건가. 아니면 그가 마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서 움직이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왜 마물을 사이에 두고 그런 얘기가 나오냐고.”

“아차,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활발하게 일상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았던 아가씨들 사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마물 다룬다는 집단 있지? 그거 이베른 후작저의 근처에 있대. 거기 산맥에 마물 많이 출몰한다잖아.”

말하면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떨던 그녀는 나름 목소리를 죽여서 비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달했다. 사샤는 지금 제 귀가 너무 밝아서 듣고 있는 것인지, 말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큰 것인지 합리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음식은 입에 맞는가.”

카일러가 시원찮게 포크를 놀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서 말을 했다. 온통 신경이 왼쪽 뒤 부근에 쏠려 있던 사샤는 어깨를 흠칫 떨며 시선을 카일러와 맞췄다.

“맛있어요.”

그의 얼굴을 보니까 쓸데없이 긴장하고 있던 어깨가 훅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어 주자 그 또한 마주 웃어 주며 다시 음식을 먹었다.

그냥 이렇게 마주 앉아 미소를 주고받으면서 음식 먹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그래서 여기 오니까 마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구나? 수도에선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그 이그노트 공작부인 아팠던 게 마물 관련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실제로 되게 옛날에 거기 드나들던 신관이 있었다던데?”

‘이그노트’에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일까. 새삼스럽게 내가 스스로를 이그노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물 때문에 아팠다고?”

“신관들 특기가 마물한테 상처 입을 거 치료해 주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 얘기 나오나 보던데?”

“사샤.”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뒤쪽에서 자꾸만 들리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사샤는 카일러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듯이 숨을 들이쉬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는 거지?”

카일러에겐 저들의 대화 소리가 안 들린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여인들의 대화 소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소리였기 때문에 웃으면서 그의 질문에 답했다.

“생각은요. 그냥, 음식이 맛있어서요. 이렇게…… 카일러와 같이 밥 먹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밖으로 나와 식당에서 먹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아까 분명 하고 있던 생각이긴 했는데, 지금은 마물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버렸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는 마음이 아직도 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마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사샤는 음식을 또 한입 집어넣으며 뒤쪽으로 귀를 더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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