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공작부인의 생존전략-55화 (55/128)

55화

기다란 소파 한가운데에 나란히 앉아 두 사람은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나니 사과는 당연한 일이고 항상 도움을 주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떠올라, 이거저거 말하면서 웃기에 바빴다.

어디선가 살랑이는 바람이 들어와 불고 있었다. 아무래도 긴 공간이라 공기 회전을 위한 무슨 장치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공기가 선선하게 순환을 하고 있었다.

“카일러……나 나나 그저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네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성급했을 뿐이에요. 그렇죠? 말만 잘 전해 주면 돼요.”

그녀의 말마따나 이건 쉬운 일이자 정말 정말 쉬운 일이었다. 알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게 다 그걸 알기까지가 시간이 걸릴 뿐인 거지.

어느 정도 홀가분해진 마음에 사샤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와 좀 더 깊은 사이가 된 듯한 생각이 들게끔 했다.

선선한 바람과 고요함. 공작저 어디를 가든 고요함은 정해져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먹던 간식을 들고 올라와도 풍경이 아주 훌륭한 양념이 되어 줄 것이었다.

“억지로 잘하겠다 어쩐다 하고 말하는 약속이 아니라…… 정말 옆에 있으면서 잘해 주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해요. 내가 뭘 해 줄 수 있나 생각에 빠지는데…… 그 생각이 너무 오래 걸리나 싶어서요.”

저 아래 잔디밭도 하늘의 푸르름도 모두 보이는 뷰 앞에서 사샤는 청량한 마음이 되어 이야기했다. 천천히 하나하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처음 시간이 그렇게 올바르지는 못했으니까.

“내가 부족한 게 많으니까 걱정이 되는 거지, 사샤는 걱정하지 않아. 그냥…… 좋은 거야.”

카일러의 담담한 목소리에도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뭐 얼마나 깊어요 이 정도로 좋아요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확신하는 것은 그와 내가 더 깊은 사이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사샤는 슬쩍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움직여 그의 팔에 가슴을 살짝 눌리도록 움직여 보았다.

길게 이어진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공작저의 후원이 항상 보던 것보다 훨씬 아담하게 보였다.

“어제부터 생각에만 갇혀 있으니. 좀 뭐랄까 기분 전환이 해 보고 싶달까요.”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나직하게 말하자 카일러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샤는 그렇게 은근하게 목소리로도 몸으로도 그에게 다가가 보았다. 밤이면 언제나 그녀를 탐하던 손이 지금 자신을 만져 주었으면 했다. 왠지 그런 떨림이…… 느끼고 싶었다.

카일러의 손이 뒷덜미부터 시작해 스윽 허리 끝까지 훑고 내려갔다. 그 느낌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서 사샤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켰다.

“처음엔 이런 것도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는, 하, 엄청…… 기분 좋아요.”

그의 커다란 손이 온몸을 쥐어도 모자랄 것처럼 그 시간이 길어졌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다른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가 만져 주는 것도 좋았고, 그와 온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다만 역시 행위 자체로 즐기기엔 너무나도 쑥스러운 부분이 있었기에 지금 이것도 사샤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인지 그의 손은 그녀의 어깨와 등, 허리와 그 아래까지 닿는 모든 부분을 쓸어 주고 적당한 압력으로 살덩이를 쥐어 주기도 하는 것이 짜릿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으음…….”

그러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훑고 힘을 살짝 주어 쥘 때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는 피해 갔지만…… 카일러에겐 그게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 소리를 들은 카일러는 문득 사샤를 보더니 그녀를 번쩍 들어 그의 허벅지 위에다 앉힌다. 그의 위에 앉아 서로 눈을 맞추고 있자니 이거마저도 살짝 흥분이 되는 느낌이었다.

카일러는 그렇게 올려놓기만 하고 잠깐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손으로 문지르고 쥐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으음, 손이…… 참 크고 뜨거워요.”

서로에게 집중하는 감각도 좋지만 너무나 조용한 탓에 사샤가 말을 꺼내 보았다. 몸에 집중하고 있던 그는 그 말을 듣더니 그녀에게 눈을 맞춰 왔다.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군.”

“심장은…… 더 뛰는걸요.”

두 손으로 허리를 붙들고 서서히 어루만져 주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가슴 위로 안착한 그의 귀로 심장의 거센 박동이 전해졌다.

“뛰고 있군.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카일러……도 떨려요?”

처음 알았다. 날 그렇게나 능숙하게 안는 사람인데 안을 때마다 그렇게 떨려 했었다는 말이……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손이 허리를 지나 올라가려다 다시 다리를 훑더니 대번에 치맛자락을 들치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다리에 와닿는 손의 뜨거움에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 떨고 말았다.

“하아. 물론 나도 떨렸다. 생애 처음 하는 일은 무엇이든 떨리는 법이지.”

그 또한 자신이 처음이었다는 말에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 하고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는 처음부터 너무 잘해서……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여자의 목소리를 지금 듣고 계십니다만…….

“으응.”

그의 뜨거운 손은 다리를 훑고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사샤의 목 언저리에서도 미묘한 울림을 자아내는 소리가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새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 카일러는 또 그 소리에 반응하고 말았다.

가슴에 귀를 대고 있던 그는 그대로 그녀의 붉은 입술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갑작스럽게 먹힌 입술 사이로 아까 같은 신음이 계속해서 새었지만 고스란히 그의 입으로 먹혀 들어갔다.

입술을 쭉 빨아 당기고 나면 혀로 감각이 예민한 살을 쓸어 주고 그러고 나면 다시 입술을 모아 살을 꾸욱 눌러 왔다. 이 감질난 감각을 주며 절호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장난꾸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읍!”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뜨거운 입술이 입술을 막았다. 대화를 듯이 침묵을 펼치며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흘렀다.

탐닉하는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조금만 더 하면 여기에서 일을 치를 듯한 손놀림에도 사샤는 녹아 버리고 말았다.

“나와 이렇게 하는 것도…… 좋은가요? 나라서…… 좋은 거예요?”

오늘따라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먼저 시작했던 적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그에게 질문했다. 내가 좋안 건지, 행위 자체가 좋은 건지.

“당연히…… 그대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지.”

이런 대답을 들어도, 물론 당연히 이렇게 대놓고 물으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그의 입술은 이제 그녀의 목덜미로 향했다.

노출이 많지 않은 그녀의 드레스가 아무래도 거슬렸던지 목덜미에서 입술을 지분대던 그가 손을 움직여서 조심스럽게 드레스를 벗기기 시작했다.

우악스럽게 드레스 따위는 간단히 찢어 버릴 것만 같은 커다랗고 악력이 센 손이 섬세하게 움직이며 드레스를 벗기는 느낌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따스한 기분이었다.

“아무렴…… 좋아요.”

온 피부에 와닿는 시원한 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한껏 달아올라 끓어오를 것만 같았던 열기가 한층 식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는 그제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다는 듯 쇄골과 목덜미를 입술로 누르고 살살 자극하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파고드는 것은 하지 않아도 어디를 어떻게 건드리면 흥분하는지 그러한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주저 없이 실행하고 있었다.

맨살은 공기 중으로 드러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환한 공간에서 그의 시선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입으로 물고 손으로 주무르느라 정신없던 그는 문득 몸을 눈에 담더니 입술을 다시 대지 않고 살짝 떨어져 몸을 감상하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읏…… 뭘,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것은 만져지는 것만큼이나 손끝 발끝을 찌릿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가빠진 숨에 들썩이는 가슴이라든가 얕게 경련하는 허리라든지를 스윽 훑어가며 바라보았다.

“예쁘다, 아주. 내가 안고 있는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았는데…… 마치 지금 막 알게 된 것 같아. 아주…… 아름다워서.”

빛 아래 피부가 마치 반짝이는 듯하다. 그것까지는 정말 스스로 만들어낸 효과 같은 거라 할지라도 지금 눈앞의 투명한 피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빛을 보지 못하고 자라서 하얀 것인지, 잘 움직이지 못해서 이렇게 말랑한 것인지.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이 호흡을 따라 일정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반해 버릴 듯한 얼굴이다.

“읏…… 다른 것보다 창피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만 보고……. 흐읍.”

그의 시선 아래 놓이는 것이 오히려 더 손끝 발끝이 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거렸다. 아래가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아, 이게 참을 수 없는 그런 기분인가 하는 생각마저 먼저 들게 했다.

결국 사샤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그를 끌어안아 버려야만 했다. 맨살에 그의 몸이 닿고 눌리는 이 감각들이 너무나도 떨리면서도 안정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