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강희』는 저의 새로운 도전이자 제 새로운 시작과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정말 끝이 나고, 퇴고를 하고, 막상 책으로 나오게 되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후기라는 지면을 빌려 제가 본문에 미처 쓸 수 없었던 설명 몇 가지를 곁들이고 싶어 몇 자 더 적습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 시대입니다.
고려 시대와 송나라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요. 여기서 고려는 려국, 송나라는 송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 역사가 아니지만 고려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리고 상상해 주세요.
소설의 배경은 남자 주인공 윤채운이 모시는 왕세자와 그의 동생 간의 왕위 계승 다툼과 왜 해적들의 장기간 대규모의 소요, 그리고 송국과의 미묘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적 판타지는 강희가 꾼 꿈입니다. 과거의 일인지 미래에 일어난 일인지 꿈을 꾸며 제 정체성에 의문을 품은 강희가 저를 인식하게 되면서 현재가 시작됩니다.
강희는 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저의 미래를 다시 맞지 않기 위해 달라진 삶을 살기로 다짐하지요.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은 바꿀 수 없을뿐더러 현재는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인 채운과의 혼인을 막을 방법이 없는 시점입니다.
자,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지요.
온라인상에 한 달 넘게 올리면서 많은 분들의 응원과 의문, 비평, 질책을 받았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처음에 저는 후기에다 연재 시 썼던 소소한 후기들을 엮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양이 꽤 되더군요.
그래서 그중 다시 알려 드리고 싶은 몇 가지를 골라서 이 지면에 또 남겨 봅니다.
처음 제가 비누를 만들어 군에 보급하겠다고 한 이유는요, 60년대 라면이 처음 생산되면서 실생활에 빠르게 전파된 이유가 라면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곳이 군대부터였답니다. 그래서 전 그것을 비누에 대입하자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연재 중 소제목을 ‘그들의 삽질’이라 하고 싶었던 때가 있습니다. 많이 공감하셨죠?
참, 그리고 제가 애용한 소재인 국수 얘기를 보시고, 그날 메뉴가 국수가 되셨다는 분들도 종종 뵀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국수는 잔치국수에 김치 국물, 설탕 조금, 참기름 조금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환상!
혹시 이 소설 덮으시고 국수 드시러 가시는 건 아닌지요, 호호?
실제 고려 시대엔 제가 그린 것처럼 계곡에서 여인네들끼리 몰래 목욕하는 게 아니라 개방적이었다고 합니다.
강희의 목욕탕을 지으려고 조금 조사하다가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고려인들은 하루에도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에서는 냇가에서 혼욕을 하는 걸 보고 송나라 사신이 놀라 황제에게 보고한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또 상류사회에서는 아이의 피부를 희게 하기 위해 복숭아 꽃물에 목욕시켰고, 어른들은 난초탕에 목욕했으며, 향 목욕과 온천탕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는 조선 시대와 달리 참으로 개방적이며, 남녀관계도 평등했고, 일처일첩을 주장했던 박유라는 학자는 여자들에게 손가락질당했다는 기록도 있대요.
자유연애 결혼이 성행했고, 여인의 이혼과 재혼도 제한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들도 똑같은 상속권을 갖고 있었고, 아들을 못 낳는다 하여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 시대에 우째 그렇게 변한 건지, 원!
하지만 비누의 등장은 작가적 상상력인 거 아시죠?
실제 비누는 1800년대 프랑스 선교사가 들여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들여온 곳은 법국프랑스이라 표현해 주었고요. 또한 송나라는 고려와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많아 고려와의 대외무역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어린 독자님들, 역사 시험에 혹시라도 이런 거 나오면 틀리지 마시길 바라요.
등장인물 중 제가 가장 아끼고 정이 갔던 인물은 만운이입니다. 만운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랍니다. 제 형이 세상에서 제일이고, 가장 행복하길 바라지요. 그래서 결국 만운이도 행복해 보이지요?
반면에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재영입니다.
재영은 시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불운한 인물입니다. 재영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욕먹는 인물이었습니다.
고려가 남녀가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다지만 조선 시대에 비교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혼의 주체는 거의 남자였고요. 34대에 걸친 고려의 왕은 거의가 다처였습니다. 그중 왕건은 부인이 29명이고, 너무 어려서 혼인하지 못했던 왕이 네 분, 부인 한 명이라는 왕이 여섯 분입니다. 하지만 기록에만 부인이 한 명이지, 실제로는 알 수 없지요.
재영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랬다는 것을 설명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실제로 재영 같은 여자가 내 남자 곁에 있으면 어떤 여자가 울분을 참겠습니까, 하하하.
살랑살랑 따가워지는 봄에 적기 시작한 소설이 뜨거운 폭염을 지나며 완성되었습니다.
그사이 밤낮이 바뀌며 올림픽 시청을 하기도 했고요, 덕분에 장미란 선수의 눈물에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금메달 따서 기뻐하던 선수들보다 장미란 선수의 좌절하던 표정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강희가 처음 채운에게 갖는 가장 큰 마음은 ‘속죄’였습니다. 헌데 그것이 어느 순간 ‘사랑’이 된 것이지요.
채운도 미움에서 연모의 감정으로 넘어가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는지를 여러분들이 충분히 즐기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연재 중에 두 주인공이 달달해지면 끝난다고 했었는데, 혹시 시치미를 뚝 뗀 채운이가 충분히 달달해 보이진 않으셨나요?
모니터를 ‘뽀솨 버리고 싶다’며 강희 대신 화를 내 주신 분들, 그리고 제가 진행하려는 내용을 속속 골라내어 예측해 주시던 분들, 또 새로이 달리면서 또 한 번 응원을 해 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부디 책을 덮으시며 흐뭇한 미소 지으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0월
가을을 맞으며. 전은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