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재회 (31/38)

31. 재회

형제의 재회는 거의 넉 달 만이었다.

이토록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는 형제간이었다. 허나 이 반가운 순간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놈은 단둘이야! 그러니 지금뿐이야!”

놈들 중 누군가 소리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을 그냥 두고 볼 만운이 아니었다.

“담영, 눈 감아!”

소리를 치는 동시에 만운은 칼을 휘둘렀다.

담영은 반사적으로 눈을 꼭 감았지만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했다.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잘리는 소리, 고통스런 신음 소리, 그리고 이마에 뜨끈한 것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눈 뜨면 안 돼!”

만운이 보지도 않고서 실눈을 뜨려는 담영에게 소리쳤다.

담영은 다시 두 눈을 꾹 감으며 말의 목을 죽어라 붙들었다. 또다시 칼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 무서운 신음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형? 만운 무장님이 말하던 형이 저분일까?’

눈을 꼭 감은 채로 담영은 계속 생각을 굴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만운 무장님이 이기겠지? 하지만 저 사람들이 수가 더 많은데…….’

작은 머릿속에 그렇게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이 떠돌고 있을 때, 여러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만운을 뒤쫓던 수하들이 칼부림 소리를 듣고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앗, 흩어져라!”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암살자들이 즉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적 우위를 점해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려 했지만 일이 완전히 그르친 걸 알게 되자 달아나는 것이다.

“저들이 국경을 넘기 전에 잡아라. 서둘러!”

암살자 열 명 중 살아서 도망치는 이는 넷이었다.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그들을 만운의 수하들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쫓아라!”

“멈춰라, 이놈들!”

만운은 담영에게 아직 눈을 꼭 감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말에서 내렸다.

“형? ……형수?”

만운은 채운의 뒤에 서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 강희인 것을 그제야 알아보았다.

“돌아왔구나, 정말 돌아왔구나! 혀엉!”

만운은 칼도 팽개친 채 채운에게 달려갔다.

“정말 살아 있었어! 그래, 형이 살아 있을 줄 알았어! 알고 있었어!”

“그런 녀석이 왜 그렇게 울고 있냐, 어린애처럼.”

“나 오늘은 어린애가 되어도 좋아. 형, 혀엉…….”

옆에 누가 있는지도 잊은 만운은 채운을 끌어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서로 얼싸안는 두 형제를 보는 강희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형수.”

“도련님.”

“형수도 무사하셨군요.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할 말은 많았지만 또 너무 많기에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서로가 무사히 만날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할 순간이었다.

그때 달아난 암살자들을 추격했던 수하들이 돌아왔다.

“둘은 잡았지만 나머지 둘은 놓쳤습니다. 하지만 두 명은 잡히는 순간 자결했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만운은 생포하지 못한 암살자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헌데 만운에게 보고하고 있는 수하는 아직 채운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지. 시신을 모두 거두고 들어간다. 자, 그렇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임무는 이것으로 끝이다. 윤채운 대감과 부인이 돌아오셨다!”

“네?”

얼떨떨해 하던 수하는 만운이 가리키는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금세 경악했다.

“대감?”

“뭐?”

“누가?”

“저분이 그럼?”

“대감!”

“대감!”

무장들이 채운을 둘러싸며 환호했다. 기적 같은 그의 생환에 그들은 모두 감격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와앙!”

그런데 축하와 감격의 환성도 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 멈춰야 했다. 계속 말에 올라탄 채 눈을 감고 있던 담영이 긴장이 풀리며 오줌이 마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어 버린 것이다.

“앗, 담영 아가씨, 미안!”

만운이 담영에게 달려갔다.

아이에겐 시체가 널린 것을 보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있게 했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있자니 많이 무서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내려 주세요.”

“어? 지금 돌아갈 거야.”

“아, 안 돼요. 저 너무 급해요!”

만운은 너무 당황하고 급한 목소리를 듣고는 담영을 얼른 내려 주었다. 그러자 담영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급히 달려갔다.

담영이 볼일을 보는 동안 만운의 수하들은 급히 시신을 치우고 있었다. 담영이 옷을 다시 입고서 일어서려는데 나무 뒤쪽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응? 저게 뭐지?”

담영이 그리로 가려는 순간,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어? 만운 무장님?”

“함부로 다니지 말랬지?”

“여기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그래요!”

볼일 보는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 민망했던 담영이 빽 소리 질렀다.

“엿보지는 않았으니 걱정 마라.”

“흥, 너무해요!”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담영은 만운에게 소리치고는 방금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만운이 담영 대신 그녀가 보고 있던 곳으로 향했다. 일부만 보이지만 옷자락이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운은 그곳에서 죽어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바로 강희를 알아보고 소리치던 가실이었다.

암살자들과 채운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가실과 함께 숨어서 지켜보던 종성은 만운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을 그르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만운이 오고 곧 다른 말발굽 소리까지 들리자 종성은 그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앗, 군관님!”

종성은 저를 붙드는 가실을 뿌리쳐 버렸다. 다리도 성치 않은 여인을 데리고 무사히 달아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대로 달아나던 종성은 우뚝 멈춰 섰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계집의 말을 들어 그 부인을 찾았는데, 그때 부인도 계집을 알아본 것 같았다.

밖은 많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니 아마 자신은 누군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허나 계집은 서로 모든 걸 알고 있는 처지였다.

허면 자신이 하려던 짓을 숨기기 위해선 입을 막아야 했다.

“군관님!”

되돌아온 종성을 본 가실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혼자 달아나는 걸 본 순간 가만두지 않겠다, 모든 걸 까발리겠다고 속으로 갖은 욕을 해 댔지만 자신을 데려가 주려고 되돌아온 것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종성은 반가이 맞는 가실의 표정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녀의 목을 잡고 꺾어 버렸다.

“모든 게 네 탓이다! 너만 없으면!”

여자의 가녀린 목은 남자의 손에서 쉽게 꺾였다. 그는 가실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달아났다.

가실이 이곳까지 흘러오게 된 것은 그녀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민 현령의 부인이 받아 주어 하녀로 일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제 버릇 못 준다고, 가실은 그런 처지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병사들과 군관들에게 몸을 팔며 강희를 앞세워 누렸던 특권을 누려 왔다.

그러나 그녀의 최후는 이토록 허무했다.

가실은 제가 무슨 일을 당한지도 모른 채 빠르게 생기를 잃어 갔다. 생의 마지막을 담은 그녀의 눈이 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민영회는 아직 담영이 돌아오지 않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내와 함께 나갈 채비를 하다가 윤만운과 함께 말을 타고 돌아오는 딸을 발견했다.

워낙 대차게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딸인지라 그냥 둬서는 탈이 날지도 몰랐다.

이번만은 그냥 두지 않으리라 크게 야단을 칠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만운의 옆에 상거지 꼴로 함께 오고 있는 이를 볼 수 있었다. 그이가 바로 윤채운이라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던지!

민영회는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채운에게 축복과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형제의 해후는 실로 감격스러웠다.

만운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또 한 번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리고 형을 붙잡고 밤을 새워 그동안 있었던 사연들을 듣고자 했다.

궁금한 건 만운뿐만이 아니었다. 형제가 있는 방에 함께 들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사연을 듣느라 밤이 하얘지도록 꼬박 날을 샜다.

딸을 찾으러 나섰다 졸지에 평장사 대감의 부인을 접대하게 된 현령의 부인은 담영을 야단치는 것도 잊고 말았다.

채운은 만운과 그 수하들과 함께 밤을 샜지만 강희는 달랐다. 드디어 안전한 곳에 다다른 데 대한 안도감 때문인지 그녀는 방에 들자마자 거의 기절하듯 잠이 든 것이다.

강희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풀썩 주저앉자 놀란 담영의 어머니가 의원을 부른다며 야단을 쳤다. 강희는 그녀를 겨우 붙잡고 말릴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피곤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러니 괜찮습니다.”

담영의 어머니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강희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밤을 새운 남자들이 늦게까지 잠든 늦은 오전.

강희는 홀로 현청의 뒤뜰로 향했다. 어젯밤 만운의 수하들이 시신을 치우는 사이로 익숙한 얼굴을 하나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신 주변을 지키는 병사가 있었지만 그녀가 뉘인지 알아보고는 차마 말리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강희는 시신들 사이로 홀로 여인의 옷자락이 삐져나온 곳에 멈췄다.

“이 거적을 들춰 주겠소?”

누가 부인을 말려 줬으면 했지만 주위에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병사는 할 수 없이 거적을 들췄다.

시신을 확인한 강희가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가실이, 정녕 네가…….”

어제 언뜻 보았던 그녀가 정말 이곳에 누워 있었다. 파리하고 창백한 안색의 그녀는 전체적으로 깨끗해 보였지만 목에 손자국이 나 있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 마주쳤던 가실의 눈빛이 잊히질 않았다. 원독을 쏟아 내며 강희를 가리키던 그녀의 손가락은 암살자들에게 똑바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녀를 죽이라 소리치고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현청에 도달할 수 있었던 순간에 바로 그녀 때문에 발목이 잡힐 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보게 되다니, 강희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지 마시오. 봐서 좋을 것이 없소.”

어느새 그녀를 찾으러 나온 채운이 병사에게 눈짓으로 거적을 덮으란 명령을 내렸다.

시신은 단 하루 새 퍼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아직 부패한 것은 아니지만 임산부가 봐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정말 맞는지, 맞다면 그녀의 마지막을 봐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여자가 누군데 그러는 것이오?”

채운도 이 여자가 발악하며 강희를 가리키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 때문에 암살자들과 만나 접전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그 순간이 그 오랜 시간 추격을 피해 떠나오던 어느 때보다도 더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 여자 때문에 다 와서 큰일을 겪게 될 뻔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운이 자리를 정리하면서 이 여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정황상 범인은 암살자들이거나 그때 함께 있던 남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암살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 여자의 입은 막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허나 그녀와 같이 있던 이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십 년간 저의 시중을 든 몸종이었습니다. 서방님과 혼인하기 전에 그녀를 내보내었지요. 그녀는 도둑질을 한 것이 들켜 빈 몸으로 내쫓겼고, 나중엔 저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마구 퍼트려 아버지께 크게 혼나고 북방으로 내쳐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여기에 와 있었군요.”

다시 거적에 싸인 시신을 보는 강희의 표정은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채운은 강희의 짧은 설명으로 이 시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이 여자가 그때 그 하녀였군.”

“네, 그렇습니다. 그녀가 바로 그때 그. 저의 많은 잘못은 첫 번째는 제가 원인이었지만 대부분의 일이 가실을 거쳐 커졌지요. 그래서 제가 꿈을 꾸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가실이를 내보내는 것이었어요.”

다시 스멀스멀 죄책감이 이는 듯 강희의 눈은 쓸쓸함을 넘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감정을 알아챈 채운이 그녀의 생각이 그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았다.

“……당신 말이 맞소. 그녀를 통해 커진 일이었지. 결국 우리를 괴롭힌 가장 큰 갈등의 장본인인 그녀가 이렇게 죄과를 지고 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오.”

“하지만 가실에게 모든 탓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그만하시오. 끝까지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던 여자였소. 제 업보 때문에 이리된 것이오. 허니 당신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그럴 가치도 없소. 알겠소?”

“……네, 서방님.”

뒤늦게 일어난 만운은 형을 찾으러 나왔다가 시신 앞에 형수가 있는 것을 보고는 대경하여 쫓아가려 했다. 허나 형이 같이 있는 걸 보고는 돌아서려는데 두 사람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순간 그의 뇌리에 무언가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앗, 그게 있었지!’

만운은 순간 이곳으로 오기 전 발견했던 이혼장이 생각났다. 지금 심각해 보이는 형과 형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것은 왕에게 재가만 받으면 당장 유효해지는 것이었다. 그 안엔 혼인을 하고 일 년이 지남에도 도저히― 어쩌고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은 일 년이 지나면 이혼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동안은 송국에 있어서 하지 못한 이혼을 돌아온 지금엔 추진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작성된 지 꽤 오래된 것이었다.

원정을 떠났다 돌아와서 형수와 밤을 보낸 형을 봤기에 그 이후로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형이 그걸 받아들였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에 나간다고 그토록 걱정하고 애타 하던 형수였다.

그러니 그때도 아니었다. 허면 그 이전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더 이전이라면 혼인 직후이거나 그 이전?

생각해 보면 그 이전 말고는 그런 걸 만들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왜?’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처음 혼사의 배경이야 어떻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형수였다. 형수가 형을 은애하는 건 그냥 보아도 알 수 있고, 형 또한 그러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갖고서도 서로를 애달프게만 바라보던 눈길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 때문일까?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그리고 이혼은 지금도 진행 중인 걸까?

만운의 머릿속엔 숱한 의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물어보기에는 겁이 났다. 정말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누이와 부모를 잃고 처음으로 느낀 평화로운 이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았다.

‘형, 형수, 제발!’

만운은 형의 귀환으로 느끼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그것을 잊고자 고개를 저었다.

* * *

담영은 비록 왈가닥의 말괄량이라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건강하고 힘이 넘쳐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겨우 열 살의 어린아이지만 당차고 똘똘한 아이였다.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와 만운의 앞에서 제가 목격한 것을 조리 있고 가감 없이 설명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가실의 입을 막음으로써 저의 죄가 완전히 가려질 것이라 생각했던 종성의 계획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담영이 어른들에게 사실을 고하자마자 두 가지 죄목으로 잡혔다.

가실을 살해한 것과 암살자를 불러들인 죄였다.

허나 후자의 죄는 민영회를 봐서 덮어졌다. 최사립의 암살자들을 끌어들인 죄는 자칫 반역자들과 연계되었다는 역모죄로 얽힐 가능성이 있었다. 가문의 한 사람, 썩은 감자와 같은 그의 죄가 민영회의 가문과 엮인다면 장차 왕세자가 왕이 된 후 팔다리가 되어 줄 세력 하나만 잃게 되는 것이다.

결국 종성에게는 가실의 살해죄만 묻게 되었다.

종성은 제가 한 짓을 극구 부인했지만 마지막 그 시각까지 가실과 함께 있었던 것을 목격한 이가 있다는 말에 주춤했다.

그 목격자가 담영이란 것을 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암살자들을 불러들인 것을 덮어 주는 대신 살인을 인정하도록 했다. 종성도 어느 죄가 더 큰지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순순히 죄를 자백하고 징역을 살 수밖에 없었다.

만운과 채운은 종성을 민영회에게 맡기고, 드디어 도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로써 송국에서 귀환하기까지의 모든 껄끄러운 일들이 끝난 것이다.

만운과 함께 있는 이상, 채운의 귀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가 귀환했음을 왕세자가 알게 되면서 그를 모시기 위한 병사들이 따로 더 파견되기까지 했다.

그들이 종경을 떠나기 직전, 특이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만운을 오래도록 따라다니며, 귀찮게 할 사건이기도 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담영이었다.

담영은 만운이 도성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 만운과 헤어지는 것이 싫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담영이 끝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자 만운은 그녀의 방 바깥에서 잘 있으란 인사만 남기고 떠나야 했다.

그러다 뒤늦게 만운을 쫓아간 담영은 만운이 마을 경계를 넘어서고 있을 때 그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만운이 보이자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불러 댔다.

“만운 무장님! 만운 무장님!”

“엇, 담영 아가씨? 삐친 것 다 풀렸어? 이제야 얼굴을 보여 주네?”

만운은 돌아가는 길이 바빴지만 말을 세우고 담영과 마주했다.

왕세자가 보낸 병사들까지 백여 명의 사람이 있는데도 담영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무렇지도 않게 작별 인사를 하려는 만운만을 고집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도성에 가시면…… 여기 다시는 안 오실 거죠?”

“응?”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냐고요!”

“사실 다시 이곳에 온다는 약속을 하기는 힘들다만, 넌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네 아버지가 곧 도성으로 오실 것 같거든.”

“정말요?”

순간 담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린아이의 웃음이지만 얼마나 고운지 사람들이 다들 흡족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래.”

“그럼 그때…… 또 만날 수 있는 거예요?”

“네가 날 만나고 싶어 하면 그럴 수 있지?”

“그럼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줘요!”

“응? 그래, 기다리마.”

만운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만운이 그러마 하고 답했지만 담영은 불퉁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그의 의례적인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응, 뭐가?”

“그런 게 아니라……, 에잇!”

제 마음을 어떻게 이해시킬 방법이 없던 담영은 크게 사고를 쳤다.

마지막에 눈을 꾹 감은 담영이 갑자기 만운을 얼싸안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볼에 쪽 입을 맞춘 후 얼이 빠진 만운을 놔둔 채 제 조랑말에 올라타 소리쳤다.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라고요! 알았죠?”

“어? 어.”

말문이 막힌 만운은 달아나는 담영을 지켜볼 뿐이었다.

담영은 그대로 달아났지만 뒤에서는 그의 수하들이 휘파람을 불며 난리도 아니었다. 꼬마가 일을 벌이고 뒷감당은 고스란히 그가 덮어쓰게 된 것이다.

형까지 그에게 한마디 하는 것이다.

“저 아이가 내 제수씨가 되는 거냐? 그런데 너무 어리지 않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만운은 억울해서 소리쳤다.

담영과의 마지막 이별 때문에 만운은 가는 길 내내 평탄하지 못했다. 도성까지 가는 동안 어린 신부를 어찌 맞을 거냐는 놀림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아니란 말이야.”

만운의 애달픈 변명이 다시 울렸지만 다들 웃음으로만 응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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