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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송국에서 (15/38)

15. 송국에서

채운이 배를 몰고 간 후, 강희는 그가 덮어 준 천 위로 모진 비바람이 내리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소리와 함께 채운이 오길 기다리던 강희는 이 꿈결 같은 상황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강희가 참지정사의 부인을 먼저 보내고 선원들의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는 그녀를 도울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이 배에 혼자 오른 것 자체가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당시는 배의 흔들림이 크게 심하진 않았지만 여염집 아녀자가 사다리처럼 얽힌 밧줄을 혼자 붙들고 내려와 조각배에 탄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성장한 옷자락이 자꾸 밟혀서 미끄러지지 않은 것만도 용했다. 더구나 강희는 수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칫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익사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무사히 배에 탄 강희는 배의 가장 안쪽에 웅크리고 있다가 해적선이 새 배와 충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충격에 작은 배는 출렁거리며 금방이라도 전복될 듯 요동을 쳤다.

쾅, 콰쾅.

다행히 배가 뒤집히지는 않아 무사할 수 있었지만 여기저기 부딪힌 충격에 그녀는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큰 배와 연결된 밧줄을 풀어 줄 이도 없는 배에서 강희는 꼼짝없이 갇혀 있는 상태였다.

그때 길석이 달려왔다.

그는 어디를 다친 것인지 다리를 절고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살필 새도 없이 다급한 상황이었다.

길석은 곧바로 연결된 밧줄을 풀고는 바다로 뛰어내려 배에 올랐다. 그리고 서둘러 노를 저어 최대한 새 배에서 멀어졌을 때 천둥소리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쿠콰콰쾅.

사방을 뒤덮는 먼지와 굉음이 있은 뒤로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강희는 끔찍한 참상에 절로 눈을 감고 싶었다.

“꺄악!”

강희는 자신의 비명에 뒤를 돌아보는 길석을 보며 크게 나오려던 비명을 도중에 겨우 삼켜 버렸다. 이 와중에 길석의 주의를 흩뜨릴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아닌 다른 이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암습자들의 습격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였다.

폭발이 끝났는데도 비명 소리가 들리자 길석이 주위를 경계하며 소리쳤다.

“마님, 고개를 더 숙이고 계십시오!”

강희는 길석의 말대로 눈을 꾹 감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길석이 채운을 부르는 소리에야 다시 눈을 떴다.

그 순간이었다. 채운과 길석에게 칼을 던지려는 자가 보였다. 그녀가 비명을 질러 채운은 칼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칼은 그대로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걸 길석이 몸으로 막아 준 것이다.

‘길석아, 길석아!’

강희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길석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죽은 것이다. 강희는 죄책감과 슬픔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배가 자꾸 움직이는 느낌에 주변을 살피려 해도 너무 세게 요동치고 있어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뱃전을 잡는 것이 보였다.

“서방님!”

“강희! 부인, 무사하오?”

“네, 네, 전 무사해요!”

허나 채운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낮이라 믿을 수 없을 만치 어두웠지만 그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와 창백해진 얼굴은 잘 보였다.

“서방님!”

“그대로 있으시오!”

강희의 비명 같은 외침에 채운은 그녀를 움직이지 말라 명하고 노 대신 들고 온 나뭇조각으로 배를 움직이려 했다. 허나 그 순간 무언가가 그들의 배를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앗!”

강희는 웅크리고 있어 넘어지지 않았지만 채운은 갑자기 튀어 오르듯 흔들린 배 안에 엎어지고 말았다.

“서방님!”

“움직이지…… 마시오. 무엇이든 배에 몸을 묶어서 고정시키시오.”

채운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힘겹게 말하고 있었다.

비바람 소리에 그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강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그녀는 급히 천 아래 있던 밧줄을 제 허리에 묶은 후 다른 끝을 배의 중심에 묶었다. 그리고 뒤집히려고 난동을 피우는 배 위를 엉금엉금 기어 채운을 붙잡았다.

그녀가 채운을 잡는 순간, 또 한 번 배가 세게 휘청했다.

“아악!”

강희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붙드는 힘이 대단치 않긴 했지만 그를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채운은 그대로 배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채운은 배에 넘어지며 아까 파편에 맞은 머리를 다시 부딪쳤다. 그 탓에 그는 거의 정신을 잃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돌풍은 그들이 탄 배를 무섭게 바다 한가운데로 밀고 있었다.

“강희…….”

채운의 입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강희의 이름만이 힘겹게 흘러나왔다.

그가 아무리 무예가 강한 인물이라고 해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 암습자와 접전을 벌이고, 오랫동안 차가운 바다에서 헤엄치고 다닌 일로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배 위에서 넘어지며 더욱 큰 부상을 입게 되어 그는 움직일 힘도 없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 강희가 제 몸을 묶었던 밧줄의 끝을 풀어 그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이었다.

‘안 돼, 그러면 당신은…….’

채운은 미처 그 말까지 할 힘도 나지 않아 눈이 감기고 있었다. 그리고 강희가 그를 감싸 안은 채 자신이 덮었던 천을 그의 몸 위로 덮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는 강희가 사나운 배 안에서 목숨을 걸고 움직이면서 그를 더욱 단단히 붙들고, 빗물을 받아 입에 머금어 자신의 입에 덜어 주면서 이틀을 꼬박 더 그렇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 * *

강희가 눈을 떴을 때는 어떤 장년의 부인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드디어 깨어났군요!]

“아…….”

[이제 살았어요! 벌써 이틀째 깨어나지 않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여긴…….”

말하다가 목이 칼칼하게 막힌 강희에게 장년의 부인이 얼른 물을 가져다주었다.

받아 마시는 물이 얼마나 달게 느껴지던지 강희는 물 한 대접을 숨도 쉬지 않고 다 들이켰다. 그리고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주위를 돌아볼 엄두를 낼 수 있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그리고 살았다는 안도감?

“헛, 서방님은, 서방님은요?”

그제야 채운이 곁에 없는 걸 발견한 강희는 놀란 나머지 려국말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이 물었다.

[역시 려국의 귀족이시죠? 옷차림을 보니……. 저는 려국말을 몰라요. 하지만 지금 함께 계시던 남자분을 찾는 것 맞으시죠?]

송국의 언어였다. 부인이 계속 송국말로 묻고 있었는데 그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럼 여기가 송국이란 말이에요?]

이제야 정신이 든 강희가 말을 건 부인에게 송국의 언어로 되물었다. 그녀가 송국말을 할 줄 알자 부인은 당장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아, 다행이네요. 부인께선 송국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네, 그런데 저의 서방님은, 저와 함께 계시던 분은요?]

[역시 같이 계시던 분이 남편분이셨군요. 헌데 그분은…….]

[네? 서방님은요?]

말을 흐리는 장년의 부인의 어조에 불길한 생각이 든 강희가 침상에서 일어나려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앗!”

강희가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한 걸 부인이 붙들어 주었다.

[부인,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분은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하지만 그분은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으셔서 그런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어요.]

[보여 주세요! 어디 계세요?]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일어서려는 강희를 부인도 더는 말리지 않고 부축하여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엔 채운이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서방님!”

강희는 부인의 손도 뿌리치고 채운에게 다가가 엎드렸다. 자는 듯 누워 있는 모습이 길석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 보여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곧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이고, 작은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안도의 마음이 든 강희는 왈칵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서방님.”

그의 얄팍한 입술이 바다의 짠 기에 마르고 터져 하얗게 떠 있었다. 그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얼굴을 매만지던 강희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흐느꼈다.

그때 옆에서 한 남자가 죄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강희는 채운만 보느라 한 장년 남자가 채운의 옆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마침 이웃 마을에 떠돌아다니는 의원님이 계셔서 모셔 왔었습니다. 의원이 남편분의 상세를 보시더니 이렇게 치료해 주고 가셨어요. 앞으로도 치료를 더 받아야 할 거라 하시더군요. 헌데 저희는 가진 게 없어 의원님께 약값과 처방비로 부인의 귀걸이를 드렸습니다.]

남자는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것이 미안했던지 무척 죄스러워 하고 있었다. 부인도 강희의 눈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보통 순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목숨을 구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인데 죄스러움이라니. 게다가 의원을 불러 준 것이라면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상관없었다.

[은인들께 경황이 없어 목숨을 구해 주신 인사도 드리지 못했군요. 감사합니다.]

강희는 허리를 숙여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아니, 저…….]

장년의 부부는 비록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귀족이 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에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더 올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서방님의 상세가 궁금하여. 의원이 뭐라 얘기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부부는 정직한 사람들이라 딱 보기에도 지체 높은 귀부인인 강희가 자신의 귀걸이에 손댄 걸 탓하지 않는 것에 정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강희는 그런 그들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만약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그만인 것이 아닌가. 바다에서 떠밀려 온 남녀를 누가 찾는다고 목숨을 구해 주고 의원까지 불러 깨어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겠는가.

강희와 채운은 운 좋게도 이 부부를 만나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부는 강희의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얼굴에 마음을 놓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송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태수가 사는 곳까지 가려면 꼬박 며칠을 걸어가야 할 만큼 관청도 도시도 먼 아주 외진 곳이었다.

폭풍에 떠밀린 배는 바다를 건너 송국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천운이 돕지 않고서야 두 사람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의원이 다녀간 것은 이틀 전 오후라고 했다. 부부가 폭풍으로 바닷가에 떠밀려 온 강희와 채운을 발견한 바로 그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외진 바닷가 마을에 의원이 있다는 것도 그들에겐 천행이었다.

의원의 실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채운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채운은 지금 정신을 잃은 상태지만 다행히도 가끔씩 정신이 들어 미음을 먹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의원이 내일 다시 한 번 들르겠다고 했다니, 그에게는 그때 자세히 물어보면 된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아득해지는 게 이 부부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눈앞이 깜깜할 따름이었다.

[살라는 목숨이니 사신 게지요. 가끔 태풍에 이것저것 떠밀려 오긴 하지만 봄에 이토록 세게 부는 폭풍에 배가 떠밀려 오고, 그 안에 사람이 탄 것은 처음 봤습니다.]

[맞습니다. 다 살라는 운명을 타고나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잘 가지 않던 곳을 둘러보려다 부인과 남편분을 볼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차례로 하는 말에 강희는 정말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그들이 살아났음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아니오. 은인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저흰 살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보답할 것입니다.]

[어휴, 저흰 부인이 무사히 일어나신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장년의 부부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강희는 무조건 보답을 하고 싶었다.

당장 집 안을 둘러봐도 이들은 정말 가난한 어민들이었다. 목숨 값에는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강희는 몸에 지녔던 것을 모두 다 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반드시 보답할게요.’

허나 지금은 어떻게 보답할지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채운을 회복시키는 게 먼저였다.

부부에게 다시 머리 숙여 인사를 한 강희는 그때부터 채운의 옆에 붙어 앉아 몸을 닦아 주고, 주인 남자가 빌려 준 옷으로 갈아입히고, 미음을 입에 넣어 주며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부인이 강희를 부르며 말했다.

[부인, 의원이 오셨어요!]

채운이 누운 방으로 들어서는 의원은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꽤 젊은 남자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며 강희를 흘끗 보더니 눈썹을 한번 치켜뜨고는 피식 웃었다. 초면에 무례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강희가 깨어난 걸 보고 안도하는 그만의 표현인 것 같았다.

낯선 이의 감정까지는 살필 겨를이 없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강희였지만 일단 채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의 무례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의원의 눈이 더욱 흥미롭게 빛났다.

척 봐도 이 고운 부인은 대갓 댁 여인으로 보였다. 헌데 저의 버릇대로 보인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지금 누운 이 남자가 저 여인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이분의 상세를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강희는 우선 제가 가장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송국인일 테니 송국말로 물었던 것이다.

헌데 의원은 강희의 질문에 려국말로 답하는 것이다.

“저도 려국 사람이니, 그냥 우리나라 말로 하셔도 됩니다. 려국분이 맞으시지요?”

“네?”

이 사람이 무엇으로 자신의 출신을 안 것인지 몰라 강희는 그를 일단 경계할 인물로 보았다.

의원은 강희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관계없이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시작했다.

“입으신 옷차림을 보고 안 것입니다. 아, 우선 이 환자분의 상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상처를 보니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이차적인 충격을 받아 부상이 커진 것입니다. 왼쪽 팔에는 칼로 그은 듯한 깊은 상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덧나며 열이 올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어깨뼈에 금이 가고,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입니다. 아무튼 제가 머리의 상처에 좋은 것으로 약을 쓰고, 화농을 일으키던 왼쪽 팔의 부상도 돌봤으니 수삼 일 내에 깨어나실 겁니다.”

채운의 상세를 들으며 강희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렇게 중한 상처를 입은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천운이 아닙니까? 부인은 탈진한 것이라 제 도움이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이분은 제가 없었더라면 정말 큰일 치를 뻔했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의원님.”

“저야 본업이 이런 일을 하는 처지 아닙니까? 그리고 공짜로 해 드린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하.”

의원의 계속된 너스레에도 강희는 채운에게만 집중한 상태였다. 의원이 다 웃자 강희는 채운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상의했다.

“약은 계속 먹어야 하는 겁니까? 얼마나 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머리의 상처도 상처지만 팔에 입은 상처에 화농이 깊어 오래도록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뼈가 상한 곳이 한 군데가 아니라 최소 두 달은 요양을 해야 합니다.”

“두 달이나요?”

두 달이라니. 그 기간에 강희는 얼굴이 파래졌다.

“두 달이라도 완전히 회복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의원의 말이 맞았다. 낫기만 한다면 그 기간이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하, 그렇지만 약값과 치료비는 걱정 마십시오.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 제가 그동안 정성 들여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네?”

“그 귀걸이 한 쌍. 그거 보통 물건이 아니더이다. 여긴 알아볼 이가 없어 보이진 못했지만 그거 세간에 드문 홍옥인 것 같던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강희는 마음속에서 경계심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채운이 나을 때까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의원은 아주 희색이 만연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전 횡재한 것 아닙니까? 여기서 두 달을 놀아도 앞으로 몇 년은 걱정 없이 살 수가 있는데, 그 정도도 못해 드리겠습니까?”

“그리해 주신다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의원은 강희의 인사에 웃어 보이고는 다시 자신이 머무는 옆 마을로 돌아갔다. 그가 몇 달은 머물며 채운의 상처를 봐 줄 것이라 했지만 이 집은 너무 비좁아 그가 머물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웃 마을이라 해도 거리는 꽤 가까워 하루 새 몇 번은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강희는 의원에 대한 판단은 우선 보류했다.

일단은 채운이 무사히 깨어나고 볼 일이었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다른 의원을 불러와야겠지만 위급 지경을 벗어나게 해 준 그의 실력을 믿어 보고 싶었다.

* * *

사흘 뒤 이른 새벽.

채운이 눈을 뜨며 강희와 눈을 맞췄다.

“깨어나셨군요! 정말 얼마나 걱정했던지!”

“물 좀…….”

그르륵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하고 있었다.

강희는 그에게 얼른 물을 갖다 주었다. 채운도 강희가 그랬던 것처럼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몸은 어떠세요?”

“머리가 많이 아프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여긴 어딘지……. 그리고 아가씨는…… 뉘시오?”

강희는 채운이 머리가 아프다는 말에 걱정스런 얼굴을 하다 그의 마지막 물음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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