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꿈을 뒤틀다 (3/38)

3. 꿈을 뒤틀다

“부르셨어요, 아버지?”

“그래, 오냐, 강희야.”

강희가 사뿐사뿐 방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녀의 아버지가 반갑게 맞았다.

성도종 대감은 가진 부가 대단한 만큼이나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위로 두 딸을 권력자들에게 시집보내면서 꿰찬 예부 시랑 자리로 더한 부를 긁어모았으면서 그도 부족하여 앞으로 왕이 될 왕세자 쪽에 남은 자신의 딸을 엮어 새 끈을 만들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자면 왕세자의 오른팔인 평민 출신의 장군을 끌어들이는 일이 꼭 성사되어야 했다.

성도종 대감은 원래 귀족인 제 핏줄에 대한 강한 우월감을 갖고 있는 이였다. 꿈속의 그녀가 핏줄의 우월성을 누구에게 배웠는지 여기서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성 대감은 이전엔 평민과 제 가문을 엮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강희를 윤채운 장군과 혼인시키려 작정하고 있었다. 왕세자와 그의 군부 세력과 관계를 잇는 가장 좋은 방법이 혼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채운 장군은 평민 출신이라고 무시하기엔 너무 거물로 자라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왕세자의 오른팔이며, 가장 강한 무력을 갖춘 무장이면서 왕세자의 목숨을 구한 인연으로 다져진 끈끈한 인연이 있었다. 왕세자는 공공연하게 윤 장군을 자신의 진정한 벗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윤채운이 세운 공적은 과연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이 나라를 오랜 세월 괴롭혀 온 해적 세력을 흩어 버리는 데 세운 큰 공은 아무도 그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해적들은 단순히 노략질에 그친 것만이 아니라 흩어진 무리를 모아 거의 왕국 수준으로 자란 세력이었다. 그 정도로 크나큰 세력인데다 우두머리는 막부의 쇼군들도 고개를 조아릴 정도였다. 오죽하면 해적의 왕을 왜왕이라 부를까.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해적들이 뱃길을 막아 려국의 대외무역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려국의 왕실은 적극적인 대외무역을 통해 금력과 무력으로 문무계 귀족들의 충성을 얻었는데, 해적들 때문에 그 기반부터 흔들릴 지경이었다. 노략질을 일삼는 북방 오랑캐 때문에 어려웠던 북방 육로 무역은 그렇다 치고, 송국 너머의 대륙국들과 왜국, 천축국, 멀리서 오던 대식국중국 당·송대에 사라센 제국, 즉, 아라비아를 가리키던 말 상인들의 발길이 끊기고 말았다.

이처럼 대륙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서 다른 나라와의 문물 교류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고, 그 기간이 십여 년 이상 계속되자 나라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송국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송국에 기대려는 무리가 려국 왕궁에 득세하면서 점점 국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그러니 자칭 왜왕이라는 해적들의 우두머리가 골칫거리를 넘어 나라와 백성들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십여 년 이상 죽이려고 애를 쓰던 해적들의 우두머리, 왜왕을 윤채운이 단신으로 잠입해 죽이고 살아 돌아온 것이다.

강력한 장악력으로 해적들을 움직이던 두목이 죽자 그들의 세력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말았다. 그 해적 두목이란 이가 왕이라 불릴 정도로 워낙 특출 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사라지자 해적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세력을 와해시킨 크나큰 공을 세운 인물이니, 어떤 이가 감히 윤채운의 신분을 가지고 그를 헐뜯을 수가 있겠는가.

이 나라에서 윤채운은 정말 대단한 영웅이었다.

그러니 출신으로 그를 무시하기엔 너무 큰 먹잇감, 아니 절대 놓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꿈속의 그녀는 그가 현재 어떤 사람이든 출신만으로 깔아뭉개고 말았지만 그를 노리며 혼사를 추진하는 유력 가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성도종 대감이 그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성 대감이 가진 부는 지금의 왕세자에게 탄탄한 받침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만큼 성 대감이 지참금으로 내민 자금이 막대한 양이었다.

성 대감은 정말 온갖 공작 끝에 강희와 윤채운 장군의 혼사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사실 성 대감이 강희를 윤채운과 혼인으로 잇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혼사를 추진하던 최근 들어 강희에 대한 소문이 더욱 악랄하게 퍼진 것이다.

가실의 악의에 의해 퍼진 악소문이다.

장안에 그런 소문이 파다한 터라 왕세자가 강희를 윤채운의 짝으로 맞는 일에 정말 난색을 표했다.

이 혼사는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 아가씨를 넘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종 대감이 더 많은 지참금을 약속하고 매달려서야 성사될 일이었다. 그 때문에 성 대감이 그런 소문을 퍼뜨린 가실을 붙잡아 더욱 세게 주리를 틀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희에 대해 이미 알려진 악명과 오명은 씻어 내기 힘들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성정에 관한 소문이었지만 귀족 출신 거부의 딸에 미혼인데다 예쁘긴 하지만 그만큼 더할 나위 없이 악독하다는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소재였다.

그래도 성 대감이 왕세자 측에 약속한 돈은 왕세자의 후계 위를 위협하는 둘째 가흔 왕자 때문에라도 왕세자 측에 더더욱 필요한 돈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혼사는 성 대감이 돈으로 윤채운 장군을 사들이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혼사는 성사되었다.

성 대감은 딸의 성정을 알기에 강희가 길길이 날뛰며 거부하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으리란 것도 계산하고 있었다. 딸의 저만 아는 못된 성정은 둘째치고, 제 허영을 채워 주는 사치스러움을 누릴 수 없다면 그것을 더 참지 못할 터였기 때문이다.

성대감이 오늘 딸을 부른 것은 지난달 가실 때문에 도성 안에 남부끄러운 소문이 퍼진 것을 나무라기 위해 본 이후 처음이었다. 요즘은 얌전히 지내는 것 같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랴.

이제 혼사를 알리면 무슨 소란이 일지 지레 머리가 아파 왔다.

“하문하시어요.”

강희는 저를 불러 놓고 차만 들이켜며 연유를 말하지 않는 아버지께 공손하게 말했다.

강희가 꿈을 꾸고 난 이후 아버지를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가실을 내쫓으며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인 강희는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은 자신으로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인식하긴 했어도 아버지와의 만남이 경직되고, 겨우 두 번째라 낯선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성 대감은 성 대감대로 오늘따라 유난히 고분고분한 강희에게 놀랐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딸의 변덕스러움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네 혼처를 알아봤다.”

“네?”

강희는 아직 현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닥친 혼사란 말에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아직도 머릿속은 흙탕물이 덜 가라앉은 것처럼 흐리고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혼사라니?’

강희의 반응이 어떻든 성 대감은 딸에게 혼사에 대해 통보만 하면 그만이었다. 원래 대족들의 딸들은 더 어린 나이에 가문의 어른들이 정략적으로 맺어 준 남자와 성혼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만큼 강희를 홀로 놔둔 것도 많이 봐준 것이다.

다만 제 혼사 상대를 알게 되었을 때 딸이 난리를 피우며 저항할 것이 예상되어 그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어쨌든 딸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는 있으니, 성 대감은 모쪼록 조용히 넘어갈 수 있길 바라며 상대가 누구인지를 밝혔다.

“그는 올해 스물여섯 살의 무장이다. 왕세자의 오른팔로, 그 젊은 나이에 상장군의 반열에 오를 만큼 무예가 출중하고 출세 가도에 오른 인물이다. 너에게 그보다 적합한 반려는 찾기 힘들 것이다.”

성 대감은 그렇게 간단히 제 할 말만 마치고 차를 마시며 지그시 딸을 바라보았다.

‘내 딸이지만 저 예쁜 얼굴에 버금가는 마음씨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혼인시킬 때 지참금도 조금은 줄어들었을 터인데.’

사실 도성에 소문난 그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유력한 가문에서는 성강희에게 매파도 보내지 않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성 대감이 더욱 윤채운을 잡으려 하는 까닭이기도 했다.

강희는 뿌옇게 흐려진 먼지가 일순간 가라앉은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서야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 지금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같다.’

혼인에 대해 통보를 하고는 지그시 그녀를 쳐다보는 아버지.

가실이를 쫓아내고 나서 야단을 치느라 한 번 더 얼굴을 비춘 것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것이 그 이전부터 아버지가 추진하는 혼사에 지장을 주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때 꿈속의 나는 어떻게 했더라?’

아버지가 혼사에 대해 통보하던 그날, 꿈속의 그녀는 그 상대가 누구인지 따져 묻고선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방 안에 있는 온갖 집기를 다 부쉈다.

그리고 이후로 눈에 보이는 하녀나 하인 누구든 갖은 시비를 걸어 매질을 하고 패악을 떨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가실 때문에 키워진 지금 강희의 악소문보다 더한 소문을 만들어 냈다.

그 때문에 그녀는 혼례식장에서 경멸을 억지로 참고 있는 신랑을 만나야 했다. 아니, 그 경멸보다 더한 증오가 그의 가슴속에 숨어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녀라는 사람 자체만으로도 윤채운은 순수하게 싫어하고 경멸했다.

멍하니 꿈에서 본 일을 다시 떠올리던 강희의 앞에는 아직도 답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찻잔을 들고 있었다.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강희는 그렇게밖에 답할 말이 없었다.

하녀가 두 부녀 앞에 내온 차에서는 향긋한 내가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 대감은 차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입에 머금으며 딸이 더 질문하기를 기다렸다.

이만큼만 말해도 신랑 될 이가 누군지 벌써 아는 것인가?

그러면 출신 때문에 더 유명한 그의 신분도 알 텐데…….

그러나 강희는 수긍하는 대답 한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이런 강희에게 성 대감이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아무튼 그가 혼사에 관해 얘기를 꺼냈을 때 예상했던 딸의 행동과는 모두 달랐던 것이다. 보기 좋게 빗나가서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딸이 아직 혼사의 상대가 누군지 몰라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혼인을 진짜 한다는 자각이 없어 저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가만히 앉아 있는 강희에게 혼사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려 주기로 했다.

“너도 그에 대해 들어 봐서 알게다. 왜에서 왕 노릇을 하던 해적 두목을 해치운 우리 려국의 영웅, 윤채운 장군. 바로 그가 네 신랑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런데 제 혼인 상대가 누군지 확실히 알고서도 놀라지도 않고 그냥 수긍한다.

“……네, 그렇군요. 대단한 분이시죠.”

그런 강희의 무딘 반응은 정말 이상했다.

성도종 대감으로서는 강희가 속으로 ‘제게 너무 과분한 분은 아니신가요?’라는 말을 삼키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또 저가 무어라 한다 해도 성사될 혼인인 것을 알고 있는 마당에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저러고 있다는 것도.

“그래, 그렇지. 이제 몸을 단장하고 기다리거라. 내 곧 혼인날을 잡을 생각이다. 여름이 되기 전에 혼사를 치르고 싶은데, 벌써 내일모레가 오월이라 유월 중순경으로 날을 잡으려 한다.”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나가도 좋다.”

강희는 멍한 표정으로 아버지께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성 대감은 생각과는 너무 다른 딸의 반응에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있었지만 어찌 됐든 아직은 강희가 전과는 정말 다르다, 혹은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딸이 달라진 것이 어쩌면 몸종이었던 가실을 쫓아내고서 난 소문에 불러다 야단친 것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때 딸은 무척 조신한 모습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속지는 않았다.

지난해 어사대부 딸의 팔을 부러뜨리고 저렇게 얌전한 척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정말 반성했구나 했다가 팔만 부러뜨린 게 안타깝다며 가실이란 년과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 오랜 몸종을 쫓아낸 정도로 딸이 달라졌다고 믿을 순 없었다. 자신의 딸이지만 강희의 그 못된 성정은 타고나길 그런 것처럼 골수에 박혀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 악화되는 쪽으로만 발전해 왔던 것이다.

남들이 쉬쉬하며 하는 말이었지만 강희에 대해선 얼굴만 예쁜 못된 망종이란 소리까지 들은 적 있었다.

“저 아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강희가 예상과는 다르게 조용하게 반응하자 성 대감은 다 식은 차가 입에 무척 쓰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리 못된 망종일지라도 그의 딸이었다.

그러니 혼사에 쓸 수 있는 유용한 패라도 돼 주어야 했다. 이 혼사는 강희가 아무리 거세게 저항을 해도 해치웠을 일이기에 성 대감은 그런 귀찮은 일을 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만 했다.

통보로 이루어진 강희의 혼사 얘기를 끝으로 부녀는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어쩌면 혼삿날까지 못 만날 수도 있었다.

성 대감은 이미 다 식어 쓰디쓴 차를 마저 마셨다.

강희는 아버지께 혼인하라는 말을 듣고서 이것이 정말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방에 돌아온 그녀는 무언가를 준비한 후 애심을 불러 명했다.

“애심아, 윤채운 장군의 숙소를 알아보고 그에게 만날 청을 하고 오너라.”

“네, 아씨.”

그들의 주인인 성 대감은 아직 모르지만 집안에 있는 시중꾼들은 강희가 완전히 달라진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중 제일이 바로 가장 먼저 그녀의 충복이 된 애심이었다.

애심은 저를 괴롭히는 가실에게서 구출되고 파격적인 인사까지 이루어진 후 정말 살맛이 났다. 이젠 강희가 원하는 무엇이든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하는 눈치까지 보였다.

애심은 강희의 말에 그날로 눈치껏 비밀리에 윤채운이 머무는 곳을 알아 왔고, 강희가 그와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받아 왔다.

* * *

강희가 윤채운이 머무는 곳을 숙소라 말한 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었다.

윤채운 장군은 해적 두목을 죽여 그 세력의 와해를 불러와 막힌 뱃길을 연 엄청난 업적을 이룬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멀끔한 집에서 살고 있지도 않았다. 물론 국가에서 내린 금은보화와 집과 하인이 있긴 했으나 그가 현재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으로 내려진 그의 집도 고관대작들에게 유행하는 호화로운 삼 층 누각은커녕 이 층 누각도 없는 평범한 단층 구조의 집이었다.

그는 불안정하고 뒤숭숭한 나라 안팎의 분위기에 왕세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호위하며 항상 병사들과 같이 숙식을 하였기 때문에 집에 머문 적이 별로 없었다.

꿈에서 그녀가 저지른 패악 중에는 그를 찾아가 집도 하나 없는 비루하고 미천한 네까짓 놈과 혼인할 수 없다고 난동을 부린 일도 있었다. 꿈속의, 그리고 미래의 일이었지만 강희는 그때 한 행동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일은 이미 저질러져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아닌데도 그에게 저지른 모든 행동이 가시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콕콕 박혀 있었다.

꿈속의 그는 그녀보다도 이 혼인을 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충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수모와 모멸까지도 참아 넘기고 혼인에 동의했다. 싫은 여자와 평생을 엮이는 일도 참아야 했을 만큼 성도종 대감과의 연계는 중요한 일이었다.

어차피 그와 혼인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에게 속죄하고, 그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희는 꿈속의 일들을 보면서 기가 막히고 답답하며 부끄럽고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 혼인을 통보받게 되자 그녀가 보았던 미래의 일들을 적어 보관한 책자를 꺼내 그의 주위에 일어난 일을 좀 더 세심하게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필시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어떤 예감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혹은 도울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희가 꿈속에서 본 그의 모습은 성강희를 보지 않을 때만 생각하자면 서글서글하고 굳센 기상을 가진 멋진 사내였다.

그 꿈을 꾸던 중 강희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저의 부끄러운 행동들을 자책하는 것도 있었고, 아들 때문에 그러기도 했지만 대부분 윤채운, 그를 보며 흘린 눈물이 더 많았다. 그에게 했던 모진 행동들과 저주로 돌아오는 그의 눈빛에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꿈의 마지막 순간은 아들을 떠올리며 한스러워 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꿈이 끝났다는 걸 인식하며 떠오른 이는 바로 윤채운, 그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마지막 순간의 그 감정이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아프기도 하고, 지끈거리기도 한, 참으로 묘한 통증을 동반한 것이었던 터였다.

‘꿈은 못된 나의 행동과 기억을 보여 주었을 뿐, 감정까지 함께 느끼게 하진 못했는데……. 어찌 이럴까?’

그녀가 그 꿈을 남의 삶 보듯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헌데 그와 관련된 감정만은 따로이 느끼고 있었다. 허면 이것은 아마도 꿈속의 그녀와 별개인 온전한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다.

‘설마 꿈에서만 본 그에게 내가 다른 마음을 품었단 말인가?’

이런 것을 보면 그녀는 아직 꿈속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느낌이고 생각일 뿐이었다. 앞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꿈에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일뿐.’

이제부터 진짜 달라진 시작이 될 것이다.

* * *

애심은 마침 그가 도성 가까운 곳에서 군사들과 훈련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아 가지고 왔다. 왕세자의 곁을 멀리 떠날 수 없는 그가 도성 근처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강희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하긴 꿈에서 그녀가 채운을 찾아갔을 때도 도성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쉽게 행차를 했었다.

“애심아, 그럼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도 확실히 알아 두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를 만날 방법은 어찌 찾았느냐?”

“마침 그곳에 삼덕이라는 저의 사촌 오라버니가 계셨습니다. 삼덕 오라버니는 윤 장군님의 휘하에서 훈련받는 병사입니다. 그래서 오라버니께 아씨께서 장군님을 만나 뵙기를 청하신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네, 그래서 덕분에 쉽게 명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심의 말처럼 일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사실 삼덕은 처음엔 어려서 같이 자란 사촌이 찾아온 걸 반겼지만 곧 애심이 어디에서 하녀 일을 하는지 상기해 냈고, 그 독하고 못된 여자의 수발을 든다는 걸 알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아직 다른 이들에겐 혼사에 대해 알려진 것이 아니라 그 사실까지 말할 순 없었지만 애심은 장군에게 아씨의 말씀을 전해 달라 간곡히 청했고, 내키지 않아 하던 삼덕이 억지로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의외지만 수락을 받아 낸 것이다.

처음에는 윤채운도 강희의 전갈을 듣고 혼사를 무르자는 등의 말을 들을 게 뻔해 만나지 않으려 했었다.

그렇지만 사람을 보내 정중하게 청하기까지 했으니 일단 무슨 소리를 하려나 들어나 볼 생각으로 허락한 것뿐이었다. 사람이 많을 때 당치도 않게 쳐들어와 소란을 떠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 눈치껏 알아 오라고 했더니 참 잘했구나. 고맙다.”

강희의 인사에 애심은 이제 처음처럼 놀라지는 않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처음 아씨의 ‘고맙다’라는 인사에는 제대로 들은 것인지 심장이 두근거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아씨의 수발을 들게 된 이후 애심은 부엌일보다 훨씬 몸이 편해졌다. 게다가 주인의 다정한 말투나 이런 특별한 명에 수고비로 주어지는 재화들까지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물론 몸도 편하고, 재물도 생겨서 좋지만 아씨를 가까이서 모시지 않았더라면 아씨가 이렇게 좋은 분이라는 것도 몰랐을 거야.’

요즘 애심은 이런 재화뿐 아니라 아씨를 모시는 자체가 기쁨이었다.

애심은 윤채운 장군이 누구인지도 알고, 그리고 그분이 아씨와 혼인할 상대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인이 왜 그를 만나려 하는지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아씨가 원하니 그분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애심의 도움 덕분에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저녁, 강희는 예전에 성강희가 쳐들어갔던 것과는 다르게 조용히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강희가 채운을 찾아간 것은 사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가 머무는 도성 밖의 벌판에 지어진 훈련 막사는 병사들의 임시 숙소였기 때문에 허름하고 먼지와 떼가 낀데다 여기저기 지린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아이, 아씨, 머리쓰개로 코랑 입 가리시는 게 좋겠어요.”

“괜찮다. 그나저나 여기도 여자들이 있어서 우리들이 들어가도 눈에 띄지는 않겠구나.”

“네, 그렇네요. 삼덕 오라버니, 얼마나 더 가면 장군을 뵐 수 있나요?”

“뭐,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따라오시죠.”

엄격하고 곧은 성정의 윤채운이 유녀가 오가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여 그런 무리의 여자들은 들어올 수 없었지만 병영 안에 여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수발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밥 짓는 아낙들과 옷을 고치거나 기타 뒷수발을 하는 여인들이 간간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허름한 옷을 차려입은 강희와 애심이 삼덕의 안내를 받아 막사들 사이로 들어서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강희는 옷도 허름하게 입고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어스름해질 때를 골랐지만 낮에 왔다면 외려 그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꿈속의 그녀처럼 난동을 부렸다면 그걸 제지하기 위해서라도 나왔다가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 그게 아닌 이상 이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채운은 그만큼 군사들의 훈련에 엄격하고,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속의 그녀는 그런 그를 보고 천하다고 비웃기만 했다.

그녀가 그러지 않았어도 채운에겐 충분히 증오스러웠던 여자였지만 그녀는 항상 그를 깎아내리고 모욕을 주기 위해 갈고닦은 독설을 한껏 퍼붓곤 했다.

아무리 모자라고 바보 같은 소리라도 일부러 자신에게 흠집을 내려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는 충분히 짜증스러울 만했을 것이다.

강희는 지금도 그가 한 번도 그녀의 목을 꺾어 버리려 한 적이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딱 한 번……. 목을 꺾는 대신 그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건 평생 그의 발목을 죄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피눈물을 쏟아 내던 가련한 아이가 그 희생양이 되었다.

이제 강희는 그 성강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다. 그것만은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그 안타까운 아이를 위해서라도.’

오늘 강희가 그를 찾아온 것은 그를 향한 모든 사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았기에 그것을 알리고자 용기를 내어 두려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삼덕은 그녀가 정말 소문의 그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은 아씨가 맞는지 몇 번을 돌아보며 막사까지 강희와 애심을 안내했다. 그리고 여느 막사와 다르지 않은 크기의 한 막사 앞에 멈춰 서서 안에 알렸다.

“장군님, 손님을 모셨습니다.”

“드시게 해라.”

막사 안에선 굵고 나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꿈속에서 몇 번이나 들은 목소리였지만 직접 듣는 그의 목소리에 강희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넌 여기 있어라.”

강희는 애심을 밖에 있게 하고 안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크게 숨을 들이쉬며 떨리는 마음을 다시 다잡아야 했다.

그녀가 들어서자 채운이 막사 안의 탁자에 촛불을 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강희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 선 채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강희는 아무 반응 없는 그를 가만히 보다가 저가 실례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의 첫 만남에 마음을 졸이느라 이 어색한 순간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강희라고 합니다.”

“알고 있소. 윤채운이라고 하오.”

채운은 생각지도 못한 여자의 공손한 인사에 반사적으로 대꾸하듯 마주 인사했다.

무슨 꿍꿍이로 온 것일까?

그녀가 한 인사에 순간 놀라긴 했지만 그녀의 본성을 알고 있는 그로선 의심부터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불빛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는 눈에서 경멸의 빛을 감추려 애쓰며 간신히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여자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래도 말이나 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제법 무표정을 가장한다고 했지만, 강희는 채운이 불빛 가까이 서 있었던 덕에 그의 눈 뒤에 미처 감추지 못한 경멸을 읽을 수 있었다.

예상한 것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강희는 제 속마음을 엿보고 저를 질책했다.

여기에 온 이유가 뭐간대, 겨우 이 정도로 씁쓸하단 생각을 하다니.

마음이란 어찌 이리 간사하단 말인가.

그가 한 행동은 자신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을.

강희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꿈속의 그녀가 그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소리치던 그 첫마디가 자꾸만 생각났다. 아무리 지금의 자신은 하지 않을 일이고, 그는 들은 적이 없는 말이라지만 이 순간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깟 천한 평민과 내가 혼인하다니. 설사 그런다 해도 감히 내 몸에 손이나 까닥하게 둘 것 같으냐!”

아마 왕세자가 그런 패악을 떠는 그녀를 보았더라면 혼사가 이미 다 성사된 마당이라도 뒤엎었을 것이다. 그만큼 왕세자는 채운을 아끼고 신뢰하는 진정한 친우로 여기고 있었다.

왕세자는 왕이 된 후로 채운을 성강희와 혼인하도록 만든 자신을 여러 번 탓했다. 그만큼 그녀의 패악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두고두고 채운의 명예를 더럽히며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이 순간 되돌리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을, 그보다 더 끔찍한 자신의 말 한마디가 그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보다 더한 비극을 안겨 주었다.

‘무심코 내뱉은 심술궂은 말 때문에…… 그 화가 그의 가족에게 미쳤다. 그 죄를 무슨 수로 갚겠는가.’

그랬다.

그녀의 어린 시절 몹쓸 행실로 인해 그는 가족을 잃었다. 그때는 그것을 몰랐지만 꿈속의 여러 사건을 겪은 강희는 그 일을 알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그를 위해 온 것이긴 하지만 자신은 이후로도 평생 그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원래 꿈속의 그녀는 혼인을 하고 내쫓기는 그 순간까지 남편, 채운이 다시 상기하는 것조차 아파했던 ‘그 일’을 아예 기억조차 못했다.

그 일이, 채운과 강희의 가장 최악의 악연의 끈이 이어진 것을.

강희는 자신이 꿈에서 깨어난 때가 왜 하필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 아닌 바로 지금 그와 혼인하기 직전인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만일 그 당시라면 그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지금보다 일이 년 전만 됐더라도 자신은 다른 혼처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평판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이미 혼인했더라면 아버지는 다른 식으로 그와 손을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다시 혼인할 수밖에 없는 이때로 되돌아와 있는 상태였고, 강희는 이 상황을 바꿀 힘이 없었다.

채운은 왜 온 거냐는 말도 없이 벌써부터 차가운 경멸의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어 강희는 그의 눈을 피해 목 아래를 보고 있었다. 막상 그와 마주치자 두려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해야 했다.

혼인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줄 그 일을 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그를 찾아온 것이다.

강희는 자신을 향한 경멸의 눈길이 따갑다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채운은 짐작과는 너무나 다른 예상외의 모습을 보며 의구심과 함께 경계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찾아오겠다며 청을 넣은 여자가 막사로 들어온 순간, 우선 소문과는 다른 인상에 채운은 무척 놀랐다. 기억 속의 그 소녀와 또 너무나 달라 전혀 다른 여자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얼굴만 예쁜 못된 망종이라더니…….’

기억 속의 그 계집이라면 자신의 귀에까지 들어온 악소문의 그 못된 여자로 자란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만난 이 여자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처음 만났던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하긴 그때가 채운과 그의 가족들에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시기였지만 이 여자는 기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분명 제가 성강희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손히 인사한 자체부터 이렇게 찾아온 것까지 무슨 꿍꿍이를 가진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여자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혼사는 치러질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채운은 그녀가 무슨 소릴 한 것인지 의심에 의혹을 더해 노려보았다.

‘이해해 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 여자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 자신과는 절대 혼인하기 싫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는 것인가?

평민을 함부로 깔보고 무시하며 짐승 취급도 않고 제멋대로 괴롭히는 그녀의 행태는 이미 그가 몸소 겪은 바 있었다. 그는 순간 황당한 기분이 들어 그녀에게 무슨 장난을 하러 온 것이냐 소리를 칠 뻔했다.

채운은 그렇게 소리치는 걸 억지로 삼킬 수 있었다. 그러나 목구멍까지 찬 빈정거리는 말을 참지 못하고 기어코 흘리고 말았다.

“이 천한 몸과 그대가 섞여야 한다는 걸 그리 말하는 것이오? 걱정할 것 같아 하는 말인데, 그대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일 없을 것이오. 그리고 그 혼인, 결코 평생 가는 일도 없을 것이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끝장낼 테니.”

강희가 채운의 저 말을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꿈속의 혼인식 날, 채운이 성강희에게 한 말이었으니.

지금은 그 말을 당시보다 조금 일찍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강희는 그의 싸늘한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그런 오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시작도 하기 전에 되풀이되는 그와의 불화에 씁쓸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그의 말에 이전의 성강희는 감히 고귀한 이름에 먹칠할 수는 없다며 이혼은 생각조차 못할 거라 쏘아붙였다.

하지만 강희는 윤채운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과 엮이기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이나마 편하게 해 주려던 것이지 결코 또 다른 불화를 조장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제가 온 것은 결코 당신을 모욕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다만 당신에게 제안이, 아니, 부탁이……. 아무튼 당신에게 나쁘지 않을 일을 말하러 온 거예요.”

그를 만나기 위해 크나큰 결심을 하고 온 것이지만 막상 그를 만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냉대를 받자 강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희는 이제야 겨우 꿈속의 성강희를 자신이라 자각했을 뿐이다. 헌데 그의 분노와 경계를 실제로 받자니 차가운 현실이 더욱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그 상태로 멀찍이 선 채 그녀를 바라보는 채운의 시선이 점점 더 따갑다고 느끼고 있었다.

“제안? 그리고 부탁이라 했소?”

채운은 그녀가 당황하여 더듬거린 말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 물었다.

“네, 그래요.”

강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뚫어질 듯한 싸늘한 눈을 말간 눈으로 응시했다.

채운은 딱딱한 표정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왠지 위축되어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마음이 쓰이면서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치기 어린 심술로 그들 가족을 망쳤던 어렸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여자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도도하고 언제나 사람을 내려다보며 무시하던 인상을 가진 그 소녀는 어딜 가고,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는 여자는 그저 여린 여인네로만 보일 뿐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마음이 들자 채운은 이것도 저 여자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수작을 부리려는 것은 아닌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지?’

채운도 혼사가 이루어지자 이 여자에 대해 많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알아본 바와 이 여자가 동일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눈앞의 이 여자와 소문 속의 성강희는 다른 인상이었다.

이 여자가 정말 소문의 그 여자가 맞다면 정말이지 요물과도 같은 여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여자에게 결코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강희를 보는 그의 눈에 경계심이 더욱 짙어졌다.

강희는 지체할수록 말하기만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제가 준비한 말을 서둘러 꺼냈다.

“당신은 이 혼인이 탐탁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강희의 말에 채운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찌푸렸다.

‘당신은’이라니! ‘당신도’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었던가?

감히 어디 천한 손을 대어 더럽히려 하느냐 쨍쨍하게 소리치던 그 소녀가 정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수가 틀려 저를 십 년 가까이 모신 제 몸종을 내친 데다 그 주인에 그 하녀라고, 그 몸종이 제 주인에 대한 악소문을 장안에 파다하게 흘린 일이 있었다. 덕분에 저잣거리 소문에 관심이 없던 그도 이 여자에 관해서만큼은 쉽게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채운은 자신의 찌푸린 눈살에 강희가 말을 멈추자 표정을 풀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마저 말이나 들어 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는 원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 여자에 대해서만큼은 싫은 내색이 잘 감춰지지 않았다.

강희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용기를 내어 그에게 온 이유를 말했다.

“이 혼사는 치러져야 하지만 이후에 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온 것입니다.”

“대체 당신이 무슨 수로 그러겠다는 거요!”

그는 어이가 없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럼 이혼이라도 해 주겠다는 말인가?

그런데 정말 강희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혼사 후 바로는 안 되지만 일 년만 시간이 지나면 제가 이혼을 청구하겠어요. 지금은 당신과 혼인하는 걸 막을 수 없지만 그때엔 당신을 반드시 자유롭게 해 드리겠습니다.”

채운의 눈이 당장에 불신으로 찌푸려졌다.

이혼이라니?

성도종 대감이 절대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바라더라도 현재로선 이혼을 청할 명분 또한 없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그가 이혼하고자 한다면 그 지탄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성 대감은 물론 호시탐탐 그를 노리고 있는 최사립 측에서도 단물만 빼먹고 부인을 쫓아낸 사내라고 여론을 호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욕을 먹더라도 자신만 욕을 먹고 말 일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할 것이다. 허나 그 화살은 자신의 주인인 왕세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저들은 처첩을 수 명씩 두고 쫓아내고 다시 들이더라도 새삼 흠될 것이 없지만 자신은 달랐다. 저들은 그 사실을 빌미로 채운, 그뿐만이 아니라 왕세자까지도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허니 혼인한 이상 이 여자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

헌데 이 여자가 직접 이혼을 청한다면 사정이 달랐다.

신분이 높을수록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여자들도 이혼을 청할 수 있었다. 이 여자처럼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할 시 왕에게 직접 재가를 얻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 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허나 그가 가장 바라 마지않는 방법이긴 하나 이 여자가 진실로 이 방법을 택할지는 의심스러웠다. 이것은 그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기에 더 믿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동의도 없이 이혼을 청구한다면 성 대감의 성정으로 미루어 보아 딸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도 여자 쪽에서 청하는 이혼은 엄청난 불명예였다.

불명예를 감수하는 건 그렇다 치고 저의 영화의 근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도 살 수 있다고? 이 여자가 정녕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

채운은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정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가 사납게 한 발짝 다가와 다그치듯 묻는 데도 강희는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대신, 부탁이 있어요.”

아, 그렇지. 제안과 부탁.

일 년 후에 이혼해 준다는 것이 제안이고, 반대급부로 내미는 저것이 진짜 이 여자가 원하는 것이리라. 부탁이라 말하지만 그것이 제가 바라는 진짜 조건이겠지.

사실 그런 큰일에 조건이 달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말해 보시오.”

그는 이제 냉소를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혼사가 정해진 사이라 하나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무례였다. 다른 이도 아닌 이 여자와 평상심으로 마주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인내심을 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그것이…….”

그의 싸늘한 응대에 강희는 저절로 위축되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다시 쏙 들어가고 말았다.

‘쉽지가 않구나.’

그렇게 그 부탁이란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강희는 결국 말하는 것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이혼해 준다는 말을 덥석 믿기도 힘들 것이다.

허니 덧붙일 말은 더욱 필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채운의 생각처럼 그녀가 이혼을 청구한다면 그녀가 아버지께 버림받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왜 그 많은 지참금을 들여 혼사라는 걸 추진하는 것인데.

혼인이란 구속력은 그만큼 큰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깨 버린 딸을 그녀의 아버지가 받아 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는 강희가 그런 걸 감수하고 있다는 걸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강희는 다시 속으로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용기가 가시기 전에 한꺼번에 말을 쏟아 냈다. 그와 눈이 마주치거나 도중에 멈추면 다시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제가 바라는 건 그 대신 일 년간만, 저와 혼인한 그 기간만큼만 저를 아내로서 존중해 달라는 거예요. 아껴 달라거나 보듬어 달라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다만 그동안만 다른 여인을 취하지 말고 참아 주겠어요? 어차피 일 년 뒤에 당신이 원하는 여인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정실 자식이 되는 것이니 당신에게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그것은 꿈속에서 본 자신의 불쌍한 아들을 위한 부탁이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현실에서 행여나 다시는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이복동생의 괄시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다른 것은 다 주어도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강희의 부탁을 들은 그의 표정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었다.

재빨리 말을 마친 강희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처음보다 더 푹 숙였다. 그의 무섭게 변한 표정을 보면서 강희는 자신의 조건이 생각보다 도를 넘어선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에게 가당치도 않은 부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니, 전……. 전 다만 그동안만 당신이 다른 자식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그, 그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강희는 수습하려고 꺼낸 말에 더 딱딱하게 굳는 그의 얼굴을 보고 절로 뒷말을 흐리고 말았다.

“당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네?”

채운은 이제 경멸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공손함을 가장하고 찾아와 제안이니 뭐니 늘어놓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이토록 멀쩡히 모욕할 수 있는 것도 천생 타고난 재능이라 해야 했다.

채운은 그녀의 저질스런 모욕에 나를 이토록 형편없이 깔아뭉개는 이유가 무엇이냐 따져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 입만 쓸 뿐이었다.

‘아니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이 여자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었다. 여태 생각도 않고 있었지만 앞으로도 저 여자에게 손댈 생각은 없었고, 그녀에게 평생 정절이란 걸 지킬 생각도 없었다.

“허, 그럼 당신 말은 일 년만 참고 내 정인 대신 당신을 품어 달라, 이 말이오?”

“네? 아, 아니,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그의 얼굴엔 싸구려 여자를 보는 듯한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당황한 강희는 자신의 말이 그렇게 오해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변명할 말이 없어 그저 입술만 깨물고 말았다. 제가 한 말을 한 번 더 주워 담으려 애썼지만 할 말이 없었다.

숨결이 섞이는 것조차 싫어 화가 치솟을 때도 달려들듯 하다 금방 물러서서 떨어지던 그에게 자신을 품어 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채운은 ‘널 품어 주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부인하는 그녀의 모습 또한 마뜩잖아 노려보았다. 일 년간 저만 쳐다보고 있으면 이혼해 주겠다니, 정말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강희는 엉뚱하게도 그가 한 말 중 맘에 걸리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그녀를 잊고 있었을까? 그의 정인. 그래, 그녀가 있었지.’

너무 한 가지만 생각하다 중요한 것을 잊고 만 것이다.

강희는 자신이 꿈에서 아들을 낳고 얼마 뒤에 그의 둘째 아들을 낳은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아한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던 한재영이라는 여인.

그녀의 오라비도 나중에 군부에서 한가락 하는 장수로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했다. 채운의 수하였던 그녀의 오라비는 그녀가 채운의 정부인이 되었기에 더욱 쉽게 출세 가도를 달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강희는 자신이 미래를 보고 돌아왔다 생각했지만 현재를 모두 아는 건 아니었다. 현재 채운은 한재영을 만나기 전이었고, 그러니 그에게 정인이란 없었다.

그렇지만 강희는 현재 그의 곁에 한재영, 그녀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그에게 한 부탁이란 제 부인을 두고 딴 여자에게 오입질하지 말라고 미리부터 모욕을 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 모욕에 ‘대신 너를 품어 주랴!’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답일 수도 있었다.

허나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한 강희는 그의 무시무시한 표정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강희가 이전의 삶을 반복하지 않고 그와의 악연을 더 쌓지 않기 위해 애쓰던 것이 이런 식으로 악화되어 돌아온 것이다.

채운은 이제 이 여자가 찾아온 이유는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러려고 날 만나자고 한 거군.’

혼인을 할 수밖에 없으니 치르긴 하되, 저에게는 결코 손대지 말라. 굳이 말로 평민 운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출신을 깔보고 무시하려고, 독한 모욕 한마디를 더 얹어 주러 온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일 년 뒤에 이혼해 주겠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만약 그 말이 진정에서 나온 거라면 그녀의 말대로 자신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당신을 뭘 믿고? 대체 어떻게 믿고 그러지?”

“네?”

강희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일 년간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당신도 약속을 지킨다는 걸 뭐로 믿을 수 있겠느냔 말이오? 막상 일 년이 지나 당신이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채운의 눈은 단순히 싫은 여자와 혼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기엔 여전히 너무 싸늘했지만 강희는 그 이유를 알기에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직접 수결한 이혼장고려 시대 혼인은 대개 정략적으로 결정되었지만 이혼과 재혼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특히 대귀족들은 금력과 출세를 위해 이혼을 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여인들도 재력이 있는 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고려 시대의 혼인 제도를 원안으로 삼고 있다을 왕께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지금 당장 드릴게요. 그럼 당신이 일 년 뒤에 전하께 바치면 되는 거예요.”

그녀가 이혼장을 준다는 언약이 진심이라면 그로서도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하지만 채운은 강희의 말이 곱게 들리지가 않았다. 그저 얼마나 자신과 혼인하기 싫었으면 혼인 전에 미리 이혼장을 작성하기까지 했겠는가 하고 고깝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하긴 그녀가 뭘 하건, 뭘 하지 않건 싫고 미운 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필묵을 대령해 드리지.”

속으로 코웃음을 친 채운은 강희의 말이 사실인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막사 한쪽에 있는 지필묵에 당장 손을 뻗었다.

제가 한 제안이었지만 강희는 채운이 당장 이혼장을 작성하려는 것을 보고 묘하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꿈속의 아들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 어른거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가, 이것으로 다시는 가련한 너를 보지 않아도 되겠지?’

마음속으로 꿈속의 아들에게 속삭인 강희는 무너지려는 의지를 추슬렀다.

“아,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준비해 왔거든요.”

그녀는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내용을 그에게 확인시켰다.

거기엔 그녀가 미리 작성해 온 이혼장이 있었다. 내용은 크게 없었지만 ‘도저히 혼인을 지속할 수 없으므로 이혼을 원합니다’라는 글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성 대감이 알게 된다면 펄쩍 뛰겠지만 이는 왕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당장 처리가 되는 효력이 있는 문서였다. 그리고 왕은 이 이혼장을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다.

꿈대로라면 앞으로 일 년이 되기 전에 왕이 바뀌게 될 것이다.

왕위에 오른 왕세자, 아니, 수왕은 벗이라 부르는 채운이 자신을 위해 성강희 같은 여자와 혼인을 하게 된 일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헌데 그 여자가 제 발로 나서서 떠나겠다는 것이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어떻게 여기건 간에 강희는 이것으로 최대한의 진심을 보인 것이다.

채운은 이혼장의 내용을 읽고 다시 강희의 의사를 확인했다.

“정녕 이것이 당신의 제안이라 이거지?”

“네, 그래요.”

그 말을 끝으로 강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완전히 피하고 말았다.

사실은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던 아이…….

가슴을 두 근 반 세 근 반 죄면서도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그런 한심한 부탁을 한 이유는 바로 그 아이 때문이었다.

불과 한 달도 차이 나지 않는 동갑의 이복동생에게 걷어차이고 험한 말에 상처를 입어 피눈물을 흘리던 그 아이가 못내 마음에 걸려서였다.

할 수 있다면 ‘만약 아이가 생기면 내가 키우고 싶노라’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말은 채 꺼내기도 전에 가차 없이 묵살될 말이었다. 그 당시 아들이 생긴 것도 성강희의 도발에 의한 사고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속죄의 마음으로 일 년을 살 생각인 자신이 다시 그런 도발을 할 리가 없었다. 사실 이혼장을 제출할 기한으로 그를 일 년씩이나 붙잡아 두는 것도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니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다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강희는 그 한마디에 모든 걸 담고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알량한 이혼장으론 목숨 빚은 갚을 수 없겠지만 당신을 자유롭게 풀어 줄 날개가 되어 줄 수는 있을 거예요.’

과거에 있었던 철없는 행동은 결코 지울 수가 없었다. 그를 위해 며칠간 고심 끝에 생각해 낸 이 제안이 그의 원한을 풀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남은 인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만행은 벌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강희는 의혹을 지우지 못한 채 쳐다보는 그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할 말은 다 했다.

채운도 더 이상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강희는 다시 말없이 잘 있으란 인사로 허리를 숙이고서 돌아섰다.

* * *

채운은 돌아서서 나가는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간 후 한참 동안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미안하다고? 뭐가?’

자신의 혼사 상대자로 만난 성강희라는 여자는 정말 예상외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이상했다. 그녀가 하고 간 말은 그의 머릿속에 온통 혼란만 초래했고,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한 말만 보자면 그가 처음에 짐작하던 것처럼 지능적으로 혼사를 망치거나 애초에 접점을 없애기 위해 선을 그으러 온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왜 사과의 말을 한 것일까?’

정말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기억하지도 못하는 과거의 그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 여자에게는 벌레 한 마리를 밟아 죽인 것 이상의 의미도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만약에라도 그녀가 한 저 사과의 말이 ‘그 일’에 관한 것이라면 그 한마디 말로 용서가 될 일이 아니었다. 단지 그네가 평민이기에, 그리고 상대가 귀족이기에 당했던 그 억울한 폭행으로 벌어졌던 비극을, 그 원한을 어찌 말 한마디로 용서하겠는가.

아마도 굳이 해석하자면 저 여자의 사과의 말은 이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 모든 과정과 결과를 미리 사과한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던 성강희라는 여자, 그리고 소문 자자한 그 여자와 방금 나간 여자는 도무지 부합되지가 않았다.

정중한 대면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만나긴 했지만 찜찜함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의문만 더해진 느낌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말대로 정말 제안을 하려고 온 것이라면?’

그 ‘조건’이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치솟는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생각하던 도발의 수준치고는 약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로 허락한 것도 공공연히 행패를 부리는 걸 막기 위해 내린 결정 아니었던가.

채운은 의문만 남기고 가 버린 강희 때문에 의식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그의 좌부장인 김상진이 들어오면서 곧장 그녀에 대해 물었다.

“저 여자, 장군님을 찾아온 겁니까? 왜 온 겁니까?”

“상진이, 자네는 그녀가 누군지 아는가 보군.”

퍼뜩 정신을 차린 채운은 물었다.

“네, 제 부모님께서 시전에서 장사를 하시지 않습니까. 거기서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압니다. 워낙에 예쁜 여자 아닙니까. 저잣거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데다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던 터라 눈에 확 띄는 여자였는데요. 생긴 것과는 반대로 나쁜 소문으로 자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은 그 아씨답지 않게 수수해 보이기까지 하니 이상하긴 하군요. 몰라볼 뻔했습니다.”

강희가 나간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연신 해 대는 상진은 혀를 차기 직전이었다.

“그런가?”

별스럽지 않게 답하는 채운이었지만 그의 부장이 알 정도로 유명한 여자인 강희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니, 방금 전까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여자지만 직접 얼굴을 맞댄 후부터는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네. 그런데 진짜 왜 온 거랍니까?”

“내 정혼자이지 않은가? 혼인 전에 정혼자가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온 모양이야.”

“네에? 자, 장군님의 정, 정혼자요?”

“그래, 맞다.”

상진은 헉 소리를 내며 숨 막힌 목소리로 사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아……. 제, 제가 결, 결례를…….”

“훗!”

채운은 그런 상진에게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손을 젓고 말았다.

“됐다, 이제 알면 됐지. 그래, 오늘 훈련에서는 부상자가 없었나?”

제 상관의 부인이 될 여자에게 저 여자라며 삿대질을 하고 예쁜 얼굴이니 소문이 어떠니 한 것은 당장 치도곤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채운은 그냥 넘어가려는 듯했지만 상진은 제가 떠벌린 소리들을 상기하며 다시 가슴을 쓸었다.

상진은 계속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채운이 기다리는 오늘의 훈련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오늘 행군 중 낙오된 병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지난달 들어온 마철이라는 신병인데, 허우대는 멀쩡해서 쌀 두 가마니는 지고 다닐 줄 알았더니 삼십 리도 못 가서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호리호리하고 키도 작은 영천이라는 병兵이 마철의 군장을 얹어 지고는 그와 끝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강단이 있군그래.”

“네, 더군다나 둘이 사촌 간이라고 합니다. 영천이 두 달 형이라고 하는데 두 살은 형인 것같이 마철을 챙기고 보듬는 것이 다른 병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해서 둘을 떼어 놓는 게 나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형제가 한 병영에 있으면서 나누는 귀한 정을 굳이 떼어 놓을 필요는 없었다. 그 자신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채운은 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냥 두는 게 낫겠어. 단, 마철이 못 따르는 만큼 영천을 굴려. 그래야 뒤처지는 녀석도 제 몫을 할 테지. 그리고 영천은 자질을 더 살펴보게.”

“네!”

“그렇지만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낙오라니…….”

한 달 만에 오십 리약 이십 킬로미터 행군에 낙오병이 한 명뿐이란 것이 더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채운의 기준에 대면 영 부족할 뿐이었다.

그의 주군인 왕세자의 지지 기반은 매우 열악한 편이었다. 그중 군사적인 면이 가장 열세인 부분으로, 살아 있는 모후와 외조부의 지지를 등에 업은 가흔 왕자 측과 확실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해서 목표한 만큼 따라 주지 못하는 병사들의 훈련 상황 하나하나가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군왕이 될 자가 신하가 되는 이보다 못하다니, 그것이 왕세자의 형편을 대변하는 현실이라 할 수 있었다.

“송구합니다. 그런데 제 놈 말로는 먹은 것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호소하는데, 제가 그 자리에선 혼을 내긴 했지만 사실 그놈의 말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

최근 몇 년간 곡물 수확은 평년작이거나 그 이상, 이하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 정도여서 나라 자체가 아주 곤궁한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왕세자의 사병은 이렇게 곤궁했다. 이것도 왕세자에게 부족한 것들 중 하나인 것이다.

하루 다섯 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장정들이 두 끼 식사와 중간의 주먹밥 하나로 힘든 훈련까지 견디고 있으니. 당연히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해결될 것이다.

그와 성강희의 혼사가 성사되면서 곧 식량이 지원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창검술에서 신병 넷과 병사 하나가 빗겨 맞아 팔과 다리가 찢어졌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어서 훈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기마병의 훈련이 아직 힘듭니다. 기마병의 수는 이백인데 군마가 백이십 필이어서 기병들도 일반 병사들과 같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또 궁병들도 화살을 직접 조달해서 훈련을 하자니 훈련 시간이 쪼개져서 아직도 훈련 성과가 미비하기만 합니다.”

“알았다.”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는 채운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채운 본인의 무예는 강하지만 그것은 군대의 힘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그가 해적 두목을 쓰러뜨린 일로 그 무리가 와해되긴 했으나 언제 또다시 해적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할 두목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또 그렇게 규합이 된다면 그때에는 우두머리를 없애는 것만으로 해적을 다시 흩어 버릴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필시 해적을 정벌할 군대가 필요하리라.

십여 년 동안 일부러 해적의 성장을 방치하며 고의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 송국도 완전히 우국이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송국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저하의 힘이 아직 약하다. 이 정도로는 너무나 부족해.’

눈앞의 가장 가까운 적으로 대두된 가흔 왕자 측 세력이 너무 컸다. 때문에 국운을 좌우할 왕세자의 왕위 계승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차하면 가흔 왕자 측에서 왕통을 엎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왕세자를 위한 직속 병사들의 육성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한 것이고, 모자란 군량미와 말, 화살 등을 모두 대 줄 수 있는 성도종 대감과 손을 잡은 것이다.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성도종 대감은 나라의 영웅이라 떠오르는 채운이 왕세자를 지지하는 한 수가 왕이 되리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채운은 반드시 왕세자 수를 왕위에 올릴 거라 맹세했다.

“길석이, 밖에 있느냐?”

“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채운은 종자인 길석에게 일러 휘하의 천부장들을 불러오라 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운의 막사에는 좌부장인 상진과 네 명의 천부장들이 모였다. 다른 훈련으로 멀리 나간 우부장 한 사람을 뺀 이 다섯 명이 채운의 휘하 장교들 모두였다.

참으로 초라한 수였지만 앞으로는 고참 병사들을 위주로 장교를 더 뽑을 것이고, 신병들도 더 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맹사강, 최영락, 이세오, 한만식, 이들 네 명의 천부장은 각각 일반 병과와 창검술, 기마술, 궁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최고의 실력자들이었다. 병사들은 이들의 지휘 아래 더 날래고 강한 군병으로 태어날 것이다.

“좌부장과 네 천부장들은 오늘도 수고가 많았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다음 달부터는 하루에 주먹밥 두 개 이상이 더 지급될 것이라 알려라. 또한 부족한 군수품도 그때 다 충당될 것이야.”

“네?”

“네!”

“우왓,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희소식을 들은 네 천부장과 상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지원은 그의 값을 높게 친 반면 너무 형편없는 평판을 가진 딸을 가진 성도종 대감이 돈으로 그를 산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정까지 일러 줄 필요는 없었다.

상진은 이 갑작스런 지원이 장군의 혼인과 관계된 거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것은 부장인 자신들은 물론 병사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채운이 해산을 명하자 상진을 포함한 네 부장은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병과로 흩어졌다.

부장들을 모두 내보낸 채운은 막사 밖에 나가 어둠 속에 아스라이 보이는 벌판을 쳐다보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앞으로 이 벌판에 이런 임시 막사가 아닌 정식 숙소와 훈련장들이 지어질 것이다.’

상상 속의 건물들이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에 서게 되어 있었다. 그 안에 채워진 군병들이 힘찬 구령을 외치며 훈련을 받는 모습도 함께 그려졌다.

채운은 지금 원하지 않는 여자와 혼인을 하는 것 말고는 그가 바라는 건 다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출중한 무예를 닦았으며 그를 알아주는 주군을 만났고, 그 주군을 왕위에 올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중이었다. 게다가 아내로서 절대로 원치 않는 그 여자는 혼인도 하기 전에 제 발로 찾아와 이혼해 주겠다고 했다.

다시 막사로 돌아온 그의 눈에 강희가 두고 간 이혼장이 보였다.

“…….”

이것이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왔다 간 이후로 그녀에게 막연히 키워 왔던 분노와 증오가 한순간에 흐려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눈빛과 사과의 말, 그리고 이혼장.

채운은 잡생각들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혼란스럽고 의심스럽고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생겨 어지러운 느낌마저 든 것이다.

만일 그녀의 의도가 정말 순수한 호의라 할지라도 그가 가진 원한은 겨우 이런 것으로 흐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말간 눈으로 그를 한순간에 흔들어 놓고 가 버렸다.

‘윤채운, 고작 이런 것에 흔들린단 말인가.’

채운은 제 복잡해진 마음을 무시하는 걸로 눌러 버렸다. 당장 훈련의 성과들이 눈에 속속 들어오고 있었고, 사방에 그를 노리는 적들이 있었다.

앞으로 한 달.

혼례를 위해 그가 준비할 건 없었다.

그때까지 그녀를 다시 볼 일도 없으니 이 알 수 없는 마음도 지워지거나 잊힐 것이다.

채운은 자신의 마음이 그런 것이라 정리하고 묻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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