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모두의 아이
갓 나온 따끈따끈한 가십!
황후 폐하가, 회임, 하셨다!
그 소식이 몰고 온 파장은 작지 않았다. 유랑을 마치고 도블락으로 돌아온 여행객, 상행을 마무리하고 입성한 상인, 유학을 갔다 온 학생들 할 것 없이 확 바뀐 성내의 분위기에 당황했다.
“황후 폐하께서 회임하셔서 그렇다네.”
“축하할 일이군. 하지만 그게 내가 연회를 열지 못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어서?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성대한 연회를 열려고 했단 말이네!”
“그게 황제 폐하의 명이야.”
“뭐?”
“지금처럼 연회가 열리면 황후 폐하께서는 의무를 다하셔야 하지 않나. 황제께서 황후 폐하의 옥체가 상할까 우려해 출산일까지 전면 파티 금지령을 내리셨네.”
“…….”
기막힌 소식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상인은 수 초 후에야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건 횡포야! 아무리 황제 폐하라고 할지라도 이럴 수는 없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두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도블락에서 연회의 의미가 무엇인가. 식사를 걸러도 파티는 끊이지 않는 게 귀족들의 미덕이지 않은가!
“대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야. 그렇지 않나?”
주변을 둘러보며 동조를 구했지만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았다.
“아니.”
“아니라고?”
“그 대귀족들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명을 받드는데 어쩌겠나.”
“대, 대귀족들이? 대체 누가?”
“검술 명문 스트리고 백작가의 카이로 스트리고.”
“어?”
“용병계의 큰손, 조만간 작위를 받을 것으로 소문이 파다한 레이몬드 스트리고.”
“어어?”
“인맥이 거미줄 같다는 메디치나 치유관의 라스카 메디치나.”
“어째서?”
“수많은 특허권을 틀어쥐어 난다 긴다 하는 상인들을 쥐락펴락한다는 마탑의 그라우지 로스티나루스.”
“…….”
“감히 그들에게 반기를 들 귀족들이 있겠나.”
변화는 파티 금지령만이 아니었다.
명색이 대장군인 카이로 스트리고는 출정을 하지 않았다. 솔선수범하는 카이로를 믿고 발 편히 쉬던 휘하의 장군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전장을 옮겨 다녔다.
레이몬드는 용병단 사업을 임시 휴업했다.
안 그래도 황후의 주치의로서 일 년의 반은 황후궁에서 지내던 라스카는 아예 가문의 일을 대리인에게 위임하고 황후궁을 나가지 않았다.
마탑은 겉보기에는 조용했지만 비도 오지 않는데 매일 무지개가 떴다. 마법사의 숲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탑주가 기분이 좋은 모양이라고 쑥덕거렸다.
묘하게 들뜬 분위기 속에 리체의 납작했던 배는 착실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 *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다섯 알파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위태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신비롭게 부풀어 오른 리체의 배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지만 그 안에 있는 아이를 상상하면 머리털이 쭈뼛 섰다.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인 생각이 들어찼다.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의문이 그들의 속에서 크기를 불리고 불릴 무렵, 리체의 양수가 터졌다.
하던 것들을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달려온 알파들은 시녀들의 단호한 손짓에 한쪽 방에 모여 소식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산실로 마련된 방은 건너에 있는 방으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위치였다.
초조한지 포도주 한 잔을 쉬지 않고 쭉 들이켠 얀테가 하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의 시선은 무릎을 벌린 특유의 방만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은 레이몬드를 향했다.
훈련을 하다 왔는지 그에게선 땀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손질하지 않은 곱슬머리가 잘생겼지만 반항적인 이목구비를 가리듯이 흘러내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홍안의 동공이 맹수처럼 좁아졌다.
출산은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왕왕 있느니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라스카가 그녀의 곁에 있으니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도 잘 넘어갈 수 있을 테지만, 리체의 신변에 닥친 위기 앞에서 레이몬드는 다른 때보다도 침착하지 못했다. 어두운 오라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있으면 없던 불행도 찾아오겠다.”
“신경 꺼.”
“건방진 녀석.”
얀테는 못마땅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요즘 예배당을 자주 찾는다지?”
“…….”
“신에게 구걸하면 아이가 네 씨가 된다느냐.”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한 레이몬드가 눈을 굴렸다. 상황을 파악한 그라우지가 한심스럽다는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정말인가요…….”
레이몬드는 도리어 당당한 태도로 팔짱을 꼈다.
“뭐 문제 있어?”
“부적을 쓰면 아이가 생긴다 수준도 아니고. 하여간 무식하네요.”
그라우지가 손을 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이몬드의 비뚤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리체가 없는 자리에서는 용병단의 수장답게 거친 모습을 유감없이 보이는 레이몬드였다. 그러나 거침없는 그의 성격도 리체의 출산을 앞둔 지금만큼은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꾹 눌러 참는 레이몬드를 보며 의외라는 듯 그라우지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렇게 열정적이니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기분 더러워질 말이라면 하지 마.”
“그런 건 아니에요. 더 늦기 전에 논의했어야 할 일을 얘기하려는 거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카이로와 재차 포도주를 따르는 얀테, 초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레이몬드를 차례로 바라본 그라우지가 툭 뱉었다.
“다들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씨가 아니라면 어쩔 거죠?”
세 사람의 시선이 그라우지에게 향했다.
“무슨 질문이 그러냐. 누구의 아이든, 내 아들로 대우할 것이다.”
얀테가 코웃음을 쳤다.
“……꽤 쉽게 말하네요.”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 그 생각을 한 건 탑주 너만이 아니다.”
창밖으로 멀리 시선을 던지는 그를 보며, 그라우지는 내심 놀라웠다. 혈연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도블락 황실의 일원치고는 파격적인 말이 아닌가. 태어날 아이가 꿀처럼 짙은 블론드에 바다를 들이부은 듯 새파란 눈동자를 가지지 못한다면, 후계자로 삼을 수도 없을 테니 의외였다.
카이로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그럴 줄 알았다. 그라우지는 아직 답하지 않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레이몬드는 뭔가를 상상하는 듯 생각에 잠긴 얼굴이더니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이가 아닌 아이는 상상이 안 돼.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회색 머리나 금발을 했다든가,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어.”
그의 시선은 진지했고, 표정은 차분했다.
“리체의 아이니까.”
“…….”
“내 핏줄이 아니라고 속 좁게 군다면 리체가 싫어할 거야. 씨발, 누구 좋으라고 미움을 받겠어.”
레이몬드의 입꼬리가 악동처럼 올라갔다.
“좋아요.”
그라우지가 손뼉을 쳤다.
“내 생각도 같아요. 라스카도 그럴 테고. 여기서 약속한 거예요. 누구의 핏줄이더라도 태어날 아이는 리체 양의 아이.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아이인 겁니다.”
그 말에 고개를 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다들 생각이 비슷해서. 물론 그래도 속으로는 자기 핏줄이길 바랄 테지만.’
머리를 굴리던 그의 얼굴이 문득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아이는, 리체 양을 닮았겠죠.”
* * *
지루하게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 레이몬드의 초조함이 뇌관을 태우고 마침내 인내심의 끈이 끊어질 무렵,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그라우지였다.
석상처럼 창문을 바라본 채 서 있던 그라우지가 케인을 바닥에 가볍게 내리쳤다.
탁!
딱딱한 돌바닥을 마찰하는 둔탁한 소리가 알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아이가 태어났군요. 울음소리가 아주 우렁차네요. 리체 양과 아이 둘 다 건강해요.”
산실에 소리 마법을 설치한 그라우지의 눈이 환한 빛으로 반짝였다. 침착한 체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 분이 한 시간 같이 긴장하고 있던 네 남자가 나는 듯이 산실로 들어가자, 때마침 아이를 받아 낸 메디치나 가문의 나이 든 치료사가 우렁차게 외쳤다.
“아이의 머리색이……!”
리체를 향해 달려가던 남자들의 발걸음이 일순 멈칫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드러난 귀가 쫑긋 세워졌다.
“머리색이이……!”
숨넘어가게 하는 외침에 레이몬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히 치료사는 레이몬드의 인내심이 끊어지기 전에 말을 완성했다.
“빨갛습니다! 빨개요!”
그녀의 외침이 모두의 머릿속에 꽂혀 각인되었다.
머리가.
빨갛다!
네 남자를 감싼 분위기가 일변했다. 꽃봉오리가 열리듯 레이몬드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
빨간 머리라는 외침에 할 말을 잃은 얀테와 그라우지는 레이몬드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카이로를 흘끗했다. 얀테가 콧방귀를 뀌었다.
“머리색으로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아, 그러셔?”
레이몬드가 얀테를 비웃으며 앞서 나갔다. 그 의기양양한 뒷모습이 리체의 진정한 남편은 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해서, 얀테의 잘생긴 눈썹이 꿈틀했다.
으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앙!
“늠름한 왕자님이십니다!”
모두 리체의 침대 주변으로 모였다. 리체의 옆에는 라스카가 파리한 안색으로 그녀의 몸을 돌보고 있었다. 치료술사지만 출산에 대해서는 무지한지라 퍽 긴장을 했는지 얼굴에 내려온 피로감이 극심했다.
“리체…….”
레이몬드는 차마 리체에게 손을 뻗지 못하고 주먹만 움켜쥐었다. 하얀 슈미즈 밑단을 핏물로 물들인 리체는 핏기 없는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만지면 부스러질 것처럼 연약했다. 레이몬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디 안 좋은 곳은?”
라스카가 고개를 저었다.
“출산 과정은 순조로웠습니다. 당분간 푹 쉬어 기력만 회복하면 됩니다.”
그가 리체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고생했어요.”
고개를 끄덕인 리체는 가쁜 숨을 내쉬며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파란색 눈동자는 지쳐 있었지만 그 안의 깊은 곳은 별을 품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참는 레이몬드를 본 리체가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굳어 있는 거야, 레이?”
“네가, 너무 아파 보여서…… 만질 수가 없어.”
레이몬드가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손, 씻고 왔는데 그래도, 만지면 안 될 것 같아.”
리체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손잡아 줘.”
망설이던 레이몬드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땀을 잔뜩 흘린 손이 살갗에 달라붙자 비로소 안심이 된 레이몬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시는 아이 갖자는 말 안 할게.”
“왜?”
“씨발, 네가 아픈 건 싫어.”
“…….”
“무서워 죽겠다고.”
리체는 무심코 웃어 버렸다. 건장한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게 이다지도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볼품없을 만한데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역시, 지금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거친 말씨와 달리 두 눈 가득한 공포도 귀엽다.
“그건 좀 곤란해.”
“곤란하다고?”
리체는 치료사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힐끗하고, 저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아쉽잖아.”
“더 낳으려고?”
“다섯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레이몬드가 울컥했다.
“그러다 너 죽어.”
“건강해. 음, 튼튼하지는 않지만 라스카가 도와줄 테니까…….”
일견 뻔뻔스러운 말에 라스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예, 저야 리체 양의 마르지 않는 약물 상자니까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데?”
라스카가 지그시 쳐다보자 리체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미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라스카는 피식 웃고는 그녀의 관자놀이에 또 한 번 입을 맞추었다.
“10년 후에는 이곳이 더 북적북적해지겠습니다.”
리체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가 시무룩해진 레이의 손가락을 툭 건드렸다.
“아까부터 왜 그래?”
“……애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이 조금 초췌했다.
“네가 무리하는 건 싫어.”
“하지만 난 레이의 아이를 갖고 싶은걸.”
고개를 든 그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넘실거렸다. 정면에서 그의 눈을 들여다본 리체는 움찔 굳어졌다.
“저기, 나 아직은 몸조리해야 돼.”
“알고 있어. 가슴으로 만족할게.”
‘……무엇을?’
그녀는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생각보다도 끔찍했지만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지금은 안도감에 몸이 흐물흐물 풀렸다. 레이몬드의 손을 꽉 쥐자 그는 더한 힘으로 손을 단단하게 맞잡아 왔다. 하도 악물어 너덜너덜한 입술이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문질러졌다.
“사랑해, 리체.”
리체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감미로운 고백의 언어가 지친 몸을 어루만지는 그때.
으아아아앙!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평온한 시간을 깨뜨렸다. 리체가 눈을 번쩍 떴다.
“그만 우셔요, 왕자님. 뭐가 무서우신가?”
치료사가 아이를 얼러 댔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이란, 본 차원에서도 이곳에서도 전혀 익숙하지 않은 존재지만 어쩐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본능이었다. 리체는 까슬까슬한 입술을 혀로 훔쳤다.
“아이를 내게 줘.”
치료사가 강보에 쌓인 아이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심하셔야 해요.”
“응…….”
리체는 다소 어설픈 자세로 강보를 안아 들었다.
“으아아앙, 아아앙.”
리체는 치료사가 말한 ‘늠름한 왕자님’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신생아 주제에 묵직하기도 했거니와 짧은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몸체는 아주 튼튼해 보였다. 딱 보아도 건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유독 힘이 들었군.’
출산의 고통은, 솔직히 말해서 끔찍했다. 딱 30분 전만 해도 ‘역시 바보 같은 선택이었어!’ 하며 후회했지만.
아이를 내려다보는 리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다섯 알파가 홀린 듯 응시했다.
“흐으, 흐으응…….”
눈을 질끈 감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의 소리가 점차 사그라졌다. 마치 어미의 품에 안겼다는 걸 아는 듯이. 신기한 일에 리체의 눈이 토끼처럼 변했다. 한층 편안해진 쪼글쪼글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자 치료사가 감탄했다.
“어유, 고집 센 왕자님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주 얌전하네요!”
한편 다섯 알파들은 아이를 안고 있는 리체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향해 살포시 미소 짓는 리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북받쳤던 탓이었다. 땀에 젖었고, 잔뜩 애를 써 초췌했지만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그건 어딘가 경이롭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아니, 기적이다.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부터가 기적이니까.
한차례 감동이 지나가고 알파들의 시선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로 향했다. 원숭이처럼 붉은 얼굴에 주름도 쭈글쭈글해서 사람 같지 않은 생김이었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근골이 좋았다. 울음까지 그쳐 주름이 슬슬 펴지는 아이의 얼굴은…….
그 순간 알파들은 벼락처럼 깨달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마.
“이런, 애 아빠는…….”
얀테가 모두의 머릿속에만 떠돌던 이름을 속삭였다.
모두가 수긍했다. 한 사람만 빼고.
“씨발, 무슨 소리야? 내 아이지. 이렇게 날 빼닮았는데.”
다들 수긍하는 가운데 혼자 인정하지 못한 레이몬드만이 팔짝팔짝 뛰었다. 원숭이 같은 아이의 외모에서 어디가 그를 닮았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지.”
그라우지가 쯧쯧 혀를 찼다.
“억지라고? 눈이 있으면 똑바로 봐. 노안이라 안 보이는 건가?”
풍부한 인생 경험으로 심상찮은 기류를 예감한 치료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리들, 여기서는 싸우시면 안 됩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창밖으로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지나갔다.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난, 축복받은 날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봐.”
“용병단에 들어가더니 뇌까지 근육이 들어찼나 보군요. 유전자 검사란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리체의 차원에 있는 걸 만들면 되잖아.”
“시끄러워요. 똥개처럼 짖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누구의 아이든지 상관없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요?”
“누가 봐도 내 아이잖아!”
“눈빛만 봐도 아닌 걸 알겠는데. 눈이 어떻게 되었나요?”
“나긋나긋한 말투로 속 긁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경의 더러운 눈매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한번 하자는 거지?”
“하, 그게 무슨 자세입니까? 설마 덤비려고요? 아니, 경어를 써 주니 맞수처럼 보이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래 봤자 늙다리가 거만하긴.”
“늙…… 뭐?”
아무튼 평화로웠다.
<게임 속 오메가가 되었다(외전)> 완결
게임 속 오메가가 되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