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 임신 섹스 (24/25)

09. 임신 섹스

보라색 물감을 퍼뜨린 듯 어두운 밤하늘에 노란 보름달이 떴다. 달 주위로 감색의 구름이 모이자 청명했던 달빛이 구름에 먹힌 듯 흐려졌다.

모자이크 창문을 뚫고 쏟아져 내리던 달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벽에 켜 둔 몇 개의 촛불을 제외하고 불빛 하나 없는 방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침대 위의 아담한 몸이 낭창하게 휘어졌다. 여린 몸을 가운데 두고 바글바글 몰려드는 거대한 체구들은 멀리서 보면 먹잇감을 뜯어 먹는 괴물처럼 보였으나, 흘러나오는 소리는 모골이 쭈뼛할 만큼 지나치게 농염했다.

“흑!”

“지친 겁니까? 아랫입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윽, 그렇다고 힘을 주면……. 하아, 리체, 그러면 사정해 버려요, 아, 아아!”

통통한 허벅지 사이에 자리 잡은 라스카의 등 근육이 꿈틀거렸다. 예쁘게 자리 잡은 엉덩이 근육이 일순 탄탄하게 올라붙었다. 곧 그의 몸이 그녀의 위로 허물어져 내렸다.

“쌌으면 나와.”

얀테가 라스카의 어깨를 잡고 뒤로 젖혔다. 후희를 즐기지도 못하고 따뜻한 몸에서 떨어져 나온 라스카는 기분 나쁜 상실감에 두 눈을 매섭게 치떴다. 온유한 성격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알파. 제가 품었던 오메가를 빼앗기는데 순순히 굴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이것이 ‘규칙’이었으므로 별말 없이 물러났다.

얀테는 리체의 양 발목을 붙들고 위로 올렸다. 레이몬드의 성기를 입에 문 채 리체가 그를 곁눈질했다. 레이몬드의 커다란 성기가 안쪽 점막을 찔러 볼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게 무척이나 음란했다. 타액을 질질 흘리며 레이몬드의 것을 삼키려고 애쓰는 리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를 쏘아보는 시선에 얀테는 등골이 오싹했다. 입술이 실룩거리며 날카롭게 올라갔다. 리체가 손으로 흔들어 주었던 성기는 이미 끄트머리에서부터 선액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의 안에 처넣어 망가질 때까지 미친 듯이 박아 대고 싶은 마음을 참고 단숨에 손가락 두 개를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안으로 쑤셔 넣었다.

“흡!”

리체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켰다. 눈빛은 한층 매서워졌다. 뭐 하는 짓이냐고 질책하는 시선이다. 그런데도 얀테는 공기 중에 떠도는 향을 깊게 들이마시고 킬킬거렸다. 발정기를 맞은 오메가는 어떤 자극이든 쾌감으로 받아들인다. 금세 쫀쫀하게 달라붙는 내벽에 감탄하며 입술을 핥았다.

“손가락을 야금야금 물고 있어. 맛있다는 듯이 삼켜 대고. 그렇게 좆이 고픈가, 황후?”

“아, 읍, 으.”

리체는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입 안에 성기가 가득 차 읍읍 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무심코 혀를 움직이자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가 움찔거렸다. 레이몬드가 땀에 젖은 손으로 제 것을 품은 리체의 뺨을 매만졌다.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자 리체가 성기를 빼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크으, 아직, 빼지 말아 줘.”

레이몬드가 다른 손으로 리체의 목덜미를 붙들고 끌어당겼다. 두툼한 귀두가 목구멍을 쿡 찌르자 숨이 막힌 리체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성기의 맛이 입 안에 가득 들어찼다. 레이몬드의 페이스에 그대로 휩쓸려 가려는 찰나.

찰싹!

리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얀테가 손바닥을 펴 클리토리스와 음부를 때린 것이다. 리체의 토끼 같은 눈을 바라본 얀테가 광기에 찬 웃음을 지었다.

“때리니까 더 조이는군.”

손가락으로 보지 구멍을 벌린 얀테의 눈매가 좁아들었다.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신의 사자같이 잘생긴 얼굴이 타락한 천사처럼 돌변했다.

“다른 놈들 좆물이 가득 든 상태로도 부족하단 건가. 얼른 새로운 걸 먹여 달라고 토해 대고 있잖아.”

“아니, 읍! 하읏!”

리체가 몸에 힘을 주자 구멍에서 덩어리진 액체가 줄줄 새어 나왔다. 희뿌연 체액이 하얀 허벅지와 엉덩이를 타고 내려간다. 이제 텅 비었다는 듯 벌름거리는 소음순을 엄지로 문지른 얀테가 다른 손으로 흥분이 극에 달해 절로 꺼떡거리는 성기 기둥을 잡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달라붙는 내벽을 뭉개듯이 침입하고는 단숨에 가장 깊은 안쪽을 쾅, 하고 때렸다. 리체의 입이 헤 벌어졌다. 아래 깔린 혀에 레이몬드의 성기가 비벼졌다.

아랫입과 윗입을 빼앗긴 알파들의 손이 그녀를 어루만지고 민감한 성감대를 애무했다.

온몸 전체에서 끊이지 않는 자극에 리체는 머릿속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하읍, 윽, 하앙!”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며 내벽이 얀테의 성기를 끊어먹을 듯이 조였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이냐.”

이마에 힘줄을 세운 얀테가 사납게 웃었다.

리체는 한창 때의 팔팔한 사내, 그것도 우성 알파를 다섯이나 상대하고 있으면서도 지치지를 않았다. 도리어 아랫입으로 정액을 먹으면 먹을수록 물에 적신 꽃잎처럼 생생하게 피어나니 알파들의 좆물만 쭉쭉 빨리는 상황이었다. 다섯 알파들이 하나의 오메가를 탐한 것도 벌써 다섯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좆물이 그녀의 안에 흘러 들어갔는지,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쯔걱쯔걱, 철퍽!

“박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구나.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꾸물꾸물 새어 나와. 보여?”

얀테는 다시 손을 들어 리체의 음부를 찰싹 내리쳤다. 따끔한 통증에 리체가 엉덩이를 꿈틀거렸다. 얀테는 그의 것을 품느라 살짝 솟아오른 아랫배를 그대로 눌렀다.

“하, 으, 하아앙!”

오돌토돌한 내벽이 수축하며 성기를 쥐어짰다. 그게 얼른 움직이라는 재촉처럼 느껴진 그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원래 있던 차원이든, 이곳이든 어느 곳에서 만났더라도 널 내 전용 창녀로 만들고 싶었을 거다. 리체, 내 황후. 고귀한 자리에 걸맞지 않게 음탕하고 천박해.”

“아, 그런 말, 읍,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읏!”

리체가 눈을 치켜떴지만 성기를 쪽쪽 빨면서 하는 말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만 얀테에게만 집중하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쑤걱쑤걱 대며 안을 후벼 파던 얀테가 성기를 가장 깊숙한 곳에 묻고 사정했다. 좆물이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머릿속이 고양감으로 달아올랐다.

쾌감에 미쳐 날뛰고는 있지만 모두의 의지는 명확했다. 각자 자신의 씨앗으로 리체를 임신시키기 위해서 가장 깊은 곳에 사정하고 있었다.

쾌락에 들떠 흐물거리는 리체를 둘러싼 알파들의 눈빛은 소유욕과 갈망으로 얼룩덜룩했다.

“임신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구나.”

얀테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른하게 웃었다. 성기를 천천히 빼내자 허연 정액이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그 양이 상당했다.

“하, 구멍이 좆물로 가득 차서 이제는 알아서 흘러나오는군.”

리체는 하아, 하아 가쁜 숨을 쉬었다. 달아오른 몸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얀테의 저속한 말도 흐리게 들렸다.

문득 차가운 게 클리토리스를 건드렸다. 눈을 반짝 뜨자 그라우지가 왼손으로 클리토리스를 어루만지며 웃고 있었다. 리체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고개를 내려 툭 튀어나온 살점을 부드럽게 빨았다. 입술로 잘근잘근 씹고 혀를 내밀어 할짝인다. 얀테의 사나운 삽입에 달아오른 몸을 달래 주는 애무였다. 축축하게 적셔진 클리토리스를 다시 차가운 손이 매만졌다. 뜨겁게 빨리다가 차갑게 식혀지는 감각의 간극이 머릿속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쾌감의 불씨에 리체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달싹거렸다.

“리체 양은 정말 끊임없이 느끼는군요. 만지는 사람 입장에선 보람이 느껴지는 반응이에요.”

그라우지가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짓뭉개며 그녀의 젖꼭지를 비틀었다. 집중이 흐려지는 리체의 턱을 붙든 레이몬드가 허스키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혀 내밀어 봐.”

리체가 혀를 내미는 순간 혀의 정중앙에 뭉툭한 귀두를 문질렀다. 그녀가 눈을 굴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야한 표정과 부드러운 혀의 감촉에 레이몬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입보지, 기분 너무 좋아, 리체…….”

“레이, 읍, 하아, 흣.”

“아, 리체, 리체!”

퓻! 혀에 딱 붙은 귀두 끄트머리에서 정액이 터졌다. 리체의 불그스름한 입술과 혀가 정액으로 흠뻑 젖었다. 눈을 깜박이는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한 손으로 휘어잡은 레이몬드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잠깐, 나 입에……!”

입에 정액이 묻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맞추는 행위에 리체가 경악했다. 레이몬드는 입술에 묻은 정액과 안으로 들어간 정액을 그녀의 타액과 함께 싹싹 빨아 먹었다. 입술이 떼어지자 흥분한 홍안이 그녀의 눈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았다.

“씨발, 하고 싶어. 넣고 싶어…….”

중얼거린 레이몬드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경의 차례가 아닌데.”

그라우지가 딱 잘라 말했다. 레이몬드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리체의 젖꼭지와 클리토리스를 매만지며 그라우지가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이번은 내가 양보해 주죠. 나는 경 다음에 해도 되니까.”

레이몬드가 의외라는 얼굴로 눈썹을 올렸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냉큼 리체의 다리 사이로 자리를 옮겼다. 온갖 체액으로 끈끈해진 리체의 음부를 굳은살 박인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소음순을 헤쳐 구멍을 찾았다.

레이몬드가 한 번 사정했으면서도 언제 그랬냐 싶게 발기한 성기를 삽입할 때 그라우지는 동그란 반지 모양의 도구를 꺼내 들었다.

“읍, 하…….”

“젖꼭지가 귀엽게 바들거리고 있어요. 통통하게 솟아올라선 꼭 빨아 달라는 것처럼.”

그라우지가 손가락으로 분홍빛 젖꼭지를 톡 쳤다. 그러곤 능숙하게 젖꼭지에 반지를 꼈다. 처음 들어갈 때에는 약간 헐렁하다 싶었던 것이 곧 줄어들어 젖꼭지를 알맞게 조였다. 피가 잘 흐르지 않을 정도로 젖꼭지가 조여지자 리체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라우지는 집게를 꺼내 팽팽해진 젖꼭지를 물게 했다. 그는 리체에게서 다양한 성인용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 후로는 이상한 도구를 만들어 리체에게 시험해 댔는데, 수치스러워하는 그녀를 볼 때면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후후, 리체 양에게 박아 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느끼는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좋답니다.”

그라우지는 집게로 물리지 않은 다른 쪽 젖꼭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지로 인해 생기를 잃어 가는 젖꼭지를 향해 혀를 내밀어 날름 핥았다. 리체는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피가 흐르지 않아 감각이 둔해진 곳에 뜨겁고 말캉한 혀가 닿는 감각은 생경했다. 기묘한 쾌감이 가슴을 맴돌았다.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그라우지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때마침 레이몬드가 안을 후벼 파듯 움직였다. 성기에 빨판처럼 달라붙은 질벽이 쓸렸다. 레이몬드가 거침없이 질벽을 문지르며 추삽질을 했다. 쯔억쯔억. 끈끈한 속살끼리 엉키며 전류 같은 쾌감을 일으켰다.

“하으, 응, 앗, 아앙…… 아!”

그라우지가 귓가에 속삭였다.

“박히면서 빨리니까 좋아요?”

몸이 흔들릴 때마다 젖꼭지에 매달린 집게가 달랑거렸다. 거기서부터 아릿한 통증이 일어났다. 리체가 집게를 떼어 내려고 손을 뻗자 그라우지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러곤 붉어진 채 가쁜 숨을 내쉬는 리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방긋 웃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흑, 아윽, 조금, 조금만, 천천히, 아! 그라우지, 손, 손이…… 아파!”

“리체 양은 임신 섹스에 더 느끼는 것 같네요. 이러다간 바로 임신해 버리겠는걸요.”

리체의 아프다는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우지가 태연하게 말했다. 아프다기에는 허리를 뒤트는 그녀의 움직임이 너무 요염했다.

“하아, 엄청, 좋아하고 있어, 리체 보지가.”

벌름거리는 구멍을 좆으로 틀어막으며 레이몬드가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익숙하게 밀고 들어오는 혀에 리체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열어 주었다. 인사하듯 그녀의 혀를 건드린 레이몬드의 혀가 부드럽게 치열을 훑었다. 그리곤 입천장의 오돌토돌한 부위를 문질렀다. 간지러운 감각에 리체의 목덜미가 굳어졌다.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아래로 당긴 레이몬드가 턱을 든 리체의 입 안을 더 깊게 탐했다. 혀의 넓적한 부위로 천장을 매만지다 혀를 꼿꼿이 세워 목구멍 가까이의 부드러운 살을 쑤셔 댔다. 리체는 키스에 온 정신이 팔려 버렸다. 레이몬드의 키스는 입으로 하는 섹스 같았다. 마지막으로 혀를 쪽 빨아들인 그가 입을 뗐다.

“하아, 하아.”

리체는 요염함으로 가득한 퇴폐적인 눈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레이몬드가 리체의 젖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쿠퍼액과 음액으로 척척한 손이 풍만한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핥던 입술이 아래까지 내려갔다. 허리 아래로는 마구잡이로 박아 대면서 살갗 이곳저곳을 애무하는 혀는 실크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그가 그라우지의 도구로 인해 딱딱하게 곤두선 젖꼭지를 물었다. 볼이 파일 만큼 강하게 흡입하자 아랫배가 번개라도 맞은 듯 찌릿거렸다.

“흐윽!”

“하아, 여기서 나오는 젖을 먹고 싶어.”

레이몬드가 부드럽고 큰 가슴에 뺨을 비비며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내 아이를 임신하면 그 젖은 내 거야.”

“레이, 혀, 간지러!”

“상상만으로도 쌀 거 같아, 흣.”

쯔억쯔억, 찌걱찌걱. 넘치는 음액과 사정액으로 박을 때마다 물이 튀었다. 레이몬드가 안의 것을 모조리 뺄 것처럼 사선으로 질 내부를 후벼 팠다. 그 탓에 귀두가 안쪽의 윗부분을 반복적으로 자극했다. 온몸이 성감대라지만 유독 느끼는 부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아, 아앙! 아아, 거기, 거기 좋……아!”

성감이 극대화된 리체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보름달을 휘감은 구름처럼 혼몽해진 눈동자가 쾌감에 절여졌다. 긴 정사에 힘이 빠졌는데도 엉덩이가 끊임없이 움찔거렸다.

“아, 아……, 하앙!”

그라우지가 그녀의 다리 아래로 손을 넣어 달달 떠는 부드러운 허벅지를 진흙 주무르듯 매만졌다. 배와 가슴 사이에 키스하며 올라간 손이 질척한 비부에 닿았다. 회음부를 부드럽게 문지르다가 손을 더 올리자 격렬한 움직임에 빠르게 튀던 레이몬드의 고환이 손등을 때렸다.

“크읏!”

안쪽을 강하게 조이는 리체의 움직임에 사정을 참으려 얼굴을 찌푸리던 레이몬드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리체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경멸 어린 눈빛이 그라우지에게 쏘아졌다.

“뭐 하는 거야? 더러운 손 안 치워?”

소름이 돋은 건 그라우지도 마찬가지였다.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표정을 굳힌 그라우지는 리체의 달콤한 신음에 금세 얼굴을 풀었다. 그녀의 다리 아래에서 손을 뺀 그라우지가 체액에 흠뻑 젖은 리체의 거웃을 지나 돌출된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레이몬드가 자극하는 쾌락점에 더해 예민한 클리토리스까지 자극당한 리체는 뒤로 자지러졌다.

“아, 아아! 잠깐, 자극이, 너무 세요. 잠깐만, 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느껴 버려요, 리체 양. 그 편이 더 사랑스러우니까.”

리체가 엉덩이를 들며 움찔거리자 그라우지가 매끈한 볼기를 후려쳤다.

짝!

“기분,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이상해애! 흐, 아, 아앗!”

엉거주춤하던 허벅지가 쭉 당겨졌다. 발로 몸을 지탱하니 엉덩이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공중에서 허리가 낭창하게 휘어졌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탱탱해지며 음부에서 오줌처럼 투명한 물이 쏘아 올려져 레이몬드의 가슴과 배를 적셨다.

질의 엄청난 압박감에 절로 성기가 반쯤 빠져 버렸다. 그 상태로 멍해 있던 레이몬드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리체가 음란하게 가는 광경에 머릿속이 심하게 자극되어 성기 끝에서 정액이 물처럼 질질 흘렀다. 미간에 주름이 꿈틀거리고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시선은 여운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리체에게 꽂혔다.

“씨발…….”

목소리가 잔뜩 거칠어졌다.

“엄청나. 질질 쌀 정도로 좋았어?”

“하아, 하아, 하.”

“내가 박아 주는 게 제일 기분 좋아? 하아, 미친, 씨발, 존나 좋아, 리체…….”

레이몬드의 홍안이 별을 박아 놓은 듯 반짝거렸다.

“또 한 번 싸 보자, 리체.”

추삽질을 재개하려고 하는 레이몬드의 몸이 뒤로 밀렸다. 쯔억! 성기가 엉겨 붙는 소리가 나다가 길고 검붉은 성기가 리체에게서 빠져나왔다.

“뭐야?”

흉악한 눈길을 받은 그라우지가 유들유들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쌌으니 끝났잖아요. 양심이 없군요.”

레이몬드의 눈썹이 사정없이 꿈틀거렸다. 제게 반응하는 음란한 몸이 저 앞에 있는데 가로막는 그라우지가 대수일까. 하지만, 여기 있는 건 그라우지 하나만이 아니었다. 여섯 명의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시키는 ‘규칙’을 그의 손으로 깨뜨릴 수는 없었다. 마침내 레이몬드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제기랄. 너, 죽여 버리고 싶어.”

“나중에. 리체 양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라우지는 건성으로 대꾸하고 그를 밀어 냈다. 조금 전의 광경에 홀려 버린지라 레이몬드를 상대하는 게 귀찮았다. 육욕을 즐기기는 하나 지적인 욕구가 언제나 성욕을 이겨 왔었다. 알파치고 이성적인 면모가 강한 성향 탓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버리기 힘든 알파의 본능이 흐려진 것일 터. 그러나 지금은 흥미로운 고대의 마법 문자를 발견했을 때보다도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본능에 잠식되는 감각이 낯설면서도 흥분되었다.

그라우지는 아직 허벅지를 달달 떨고 있는 리체를 뒤집어 엎드리게 했다. 그녀의 엉덩이만 들어 올려 먹음직스럽게 통통한 엉덩이를 쪼개자 물기에 젖은 살점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흐, 흐아아, 아. 안 돼. 나 지금 너무, 민감…… 해! 아, 흣, 윽!”

단단하게 다물린 분홍색 살점에서부터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래쪽까지 손가락으로 훑어 올렸다.

“금세 손가락이 젖어 버렸어요. 침대를 이렇게 더럽히다니, 시녀들이 청소하기 힘들겠군요.”

웃음기 어린 나직한 목소리엔 놀리는 기운이 가득했다. 수치심을 느낀 리체가 얼굴을 붉히자 그녀의 얇은 귓바퀴에 입을 맞추며 그라우지가 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곱게 간 진흙에 파고드는 듯했다.

“으, 살이 너무 부드러워요. 얼마나 해 댔는지, 문드러진 것처럼…….”

악마 같은 입술이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었다.

“근데도 모자라죠? 더 느끼고 싶죠?”

“아, 뭐 하는, 그라우지…….”

“하필 레이몬드와의 정사에서 그렇게 느낄 게 뭐랍니까. 질투 나게. 그보다 더 느끼게 하고 싶잖아요.”

“아! 흑!”

“쉴 틈 없이 느끼게 해 줄게요.”

부드러운 입맞춤과 달리 클리토리스에 뭔가를 끼우는 손놀림은 무자비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는 리체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이건 안, 돼! 하악!”

잔뜩 간 탓에 민감해진 클리토리스가 빠르게 진동했다. 그라우지가 클리토리스에 끼운 기구의 마법 때문이었다. 리체의 눈이 홉뜨였다. 그라우지는 몸부림치는 그녀의 엉덩이를 붙들고 솜을 잔뜩 넣어 빵빵한 쿠션을 아랫배에 밀어 넣었다.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고 나서야 허벅지를 갈라 그대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입술을 내밀어 혀를 핥은 그라우지의 눈빛이 환희에 젖었다.

“하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엄청나게 조이네요. 자지를 다섯 개도 삼킬 수 있겠는걸요.”

“무슨, 미친 소리를, 아응, 하앙!”

퍽! 예고 없이 강하게 쳐올렸다. 클리토리스에서 오는 진동이 덩달아 강해졌다. 쳐올리는 속도가 적응할 새도 없이 빨라지자 리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리체 양.”

“아앙, 아읏!”

“바오밥나무 앞에서 누구의 손을 잡을 때 가장 좋았어요? 맹세의 서약을 다섯 번이나 했지만 모두 똑같이 좋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모, 몰라…….”

“대답할 때까지 이거 안 멈춰 줄 거예요.”

리체는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그의 질문에 그녀를 물고 빨던 다른 알파들의 눈빛까지 묘해졌다. 진득해지는 손길에 리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쾌감이 너무 지나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발정기를 맞이한 몸은 지나치게 민감하고 자극에 약했다. 그라우지가 독촉하듯 전동 기구의 강도를 높였다.

우웅, 우웅.

클리토리스에서 오는 저릿하고 간지러운 감각에 발가락이 마구 구부러졌다. 뭐라고 참을 수도 없이 입을 크게 벌렸다. 소리 없는 절정을 맞이한 리체의 발가락이 꿈틀거렸다.

“나도 궁금해. 누가 가장 좋았어?”

레이몬드가 그라우지의 집게를 꾸욱 누르며 젖꼭지를 빨았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인가?”

얀테가 그라우지의 리드미컬한 삽입을 받아들이는 리체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허리에 입을 맞추었다. 라스카는 젖꼭지를 매만지고 카이로는 그녀의 턱을 들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모두가 답을 바라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자극에 리체의 입술이 금붕어처럼 벙긋거렸다. 금방이라도 대답하고 싶었지만 곧 입술 안쪽을 꽉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그라우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폐하는 고집쟁이네요.”

그라우지가 진동 기구를 직접 떼 내어 클리토리스에 대고 문질렀다. 클리토리스 전체에 퍼부어지는 고문 같은 자극에 리체가 교성을 질렀다.

“아앗, 아아! 그마안, 그만! 너무, 하응, 응, 또, 또 가아!”

어깨와 허리, 그리고 엉덩이와 허벅지로 이어지는 근육이 팽팽해졌다. 이윽고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탁,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침대 위에 늘어졌다. 팔다리가 파들파들 경련했다. 분출은 없었지만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드라이 오르가즘이었다.

“크읏, 안에 깊숙하게, 쌀게요. 예쁘고 똑똑한 아이를 갖는 거예요.”

흥얼거린 그라우지가 하반신을 그녀의 엉덩이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단언한 대로 좆을 그녀의 안에 깊이 묻고 사정했다.

“흐으, 흐으…….”

헐떡이는 리체의 어깨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라우지가 몸을 떨어뜨렸다. 완전히 몸을 비키지는 않은 채 그녀를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가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하고 땀이 촉촉이 배어 나온 그녀에게선 달콤한 페로몬이 진동을 했다. 그라우지의 길쭉한 눈매가 나른하게 휘어졌다.

“발정기를 맞은 암컷의 모습이에요. 임신할 수밖에 없겠어.”

비록 얀테와 레이몬드가 뿜어내는 페로몬은 역겨우나 그것을 상쇄할 정도로 리체의 향은 매혹적이었다. 저 페로몬과 섞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치밀었지만 그라우지는 억지로 욕망을 눌렀다. 각인한 알파의 페로몬을 듬뿍 휘감은 지금에야말로, 자궁이 활짝 열려 임신하기에 적기일 것이다. 각인하지 않은 알파의 페로몬은 몸을 굳게 할 뿐. 짙은 아쉬움을 삼키며 그라우지가 그녀의 봉긋한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리체는 힘들게 몸을 돌렸다. 피로감에 몸이 무거운데도 머리가 맑았다. 발정열로 인해 흐렸던 머릿속이 구름이 걷힌 듯 또렷하다.

정액을 마구 먹어 치운 탓일까? 정말이지, 제가 생각해도 탐욕스러운 몸이다.

한숨을 쉬었던 리체는 땀에 젖어 흐릿한 시야에 카이로가 보이자 움찔했다. 지켜보기만 하던 카이로가 나서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다리 사이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리체는 약간 부끄러워졌다. 나머지 알파들이 엄청나게 싸 대서 못 볼 꼴일 것이다. 결벽증이 있는 카이로가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리체가 다리를 모으자 카이로의 손이 무릎에 닿았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리체는 그를 흘끗하고 다리에 슬며시 힘을 뺐다.

다른 알파들과 달리 위아래를 완벽하게 차려 입은 카이로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곤 질척한 음부 주위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리체의 얼굴이 얼룩덜룩 붉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카이로. 씻으면 되니까…….”

카이로가 무뚝뚝한 눈을 들어 그녀를 보더니 입매를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여기까지 혼자 씻기는 힘들 거다.”

그가 아무것도 끼우지 않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더듬었다. 부드럽게 자극하자 구멍이 벌름거리며 머금고 있던 것을 왈칵 토해 냈다. 리체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카이로의 다리 사이 윤곽이 또렷해서 더더욱. 그는 각인까지 했으니 더 닿고 싶고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카이로의 결벽적인 성향을 떠올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씨물이 가득한 음부에 성기를 들이밀 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이번엔 뒤처리만 해 줄 생각인가 보았다.

리체는 얼마간 저항했지만 그가 좀처럼 놔주지 않자 결국 다리에 힘을 풀었다. 카이로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안을 휘저을 때마다 희뿌연 덩어리가 울컥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굵은 관절이 내벽을 은근하게 문질렀다. 리체의 무릎이 움찔움찔 떨렸다.

‘미쳤어. 발정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 봐.’

리체는 이를 악물고 그의 손길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다행히도 카이로는 좆물을 제거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리체는 힘이 들어가는 아랫배에서 신경을 끄려고 노력하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야릇한 신경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복잡한 수식이나 화학식 따위가 머릿속에 길게 이어졌다.

그때 카이로의 검지와 엄지 사이가 질구에 걸렸다. 밖으로 나온 엄지가 자연스럽게 클리토리스 부근을 건드리자 머릿속으로 외웠던 수십 개의 수식들이 수증기처럼 증발했다. 리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발정 난 짐승 같으니…….’

다른 사람들을 핀잔 줄 주제도 되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카이로의 작업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안을 휘저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카이로가 손가락을 뺐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희뿌연 액체가 덕지덕지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에 닦아 내는 그를 보며 리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끝났다.’

그 순간 카이로가 그녀의 골반을 붙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리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이로? 왜……?”

카이로가 그녀와 눈을 맞추며 삽입했다. 거근이 밀고 들어오자 숨이 턱 막히면서도 리체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부드러운 내벽이 착 감싸 안는 기분 좋은 느낌에 카이로의 눈매가 불그스름해졌다.

“귀찮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정성껏 긁어냈다지만 아직 다른 알파의 흔적이 남아 있을 구멍에 삽입한 카이로는 당황하는 리체의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를 퍼부었다.

“굳이 지금 할 필요는…….”

“그대와의 아이를 갖고 싶은 건.”

카이로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리체.”

“흣!”

유독 묵직한 카이로의 성기가 안쪽을 느릿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박아 댔다. 숨이 막혀 와 리체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카이로의 뜨거운 숨이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대를 온전히 차지하지 못해 가끔은 화가 나도.”

“…….”

“어떤 모습의 그대도 사랑할 것을 다짐했으니.”

바오밥나무 아래에서 한 그날의 맹세가 뇌리를 스쳤다. 리체의 얼굴이 쾌감으로 일그러졌다. 카이로가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허리를 움직였다. 거대한 산이 몸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무게감에 가르릉, 고양이처럼 신음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큼하고 촉촉한 페로몬이 폭발적인 기세로 흘러나왔다.

쾌감에 흐느끼는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다섯 알파는 가장 은밀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매혹적인 여체를 격렬하게 탐닉했다.

여섯 명이 치루는 정사는 타락한 천국도의 모습이었다.

* * *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이르러서 의학은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지만 망가진 환경 탓인지 번식이 힘들어진 인간의 육체는 임신을 위해 고도로 발달한 의학 기술에 의지하곤 했다.

게다가 각인이라는 특수한 상황. 각인한 알파가 있는 오메가는 그의 페로몬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 정설이었다. 그건 곧 잉태와도 연결이 되었다. 여기서 리체는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각인한 알파가 있지만 그녀는 얀테의 페로몬에 의해 재구성된 육신이다. 그의 페로몬에 최적화된 몸이라 아이를 갖는다면 얀테의 씨앗일 가능성이 컸다. 얀테와 발정기를 보낼 때마다 임신 가능성을 알려 주던 시스템 메신저가 그 가설에 확신을 더했다.

‘아이가 생긴다면 얀테의 아이일 거야.’

수태를 기대하는 알파들이 눈을 반짝일 때마다 리체는 미약한 안쓰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생긴 몸이니 어쩌겠는가.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고심하던 라스카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얀테의 페로몬에 대한 반응성이 가장 좋으니 임신이 된다면 정자는 그 사람의 것일 수밖에 없어요.”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편법을 쓰면 다른 수가 나옵니다.”

“다른 수?”

“몸이 착각하게 하는 겁니다.”

라스카는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가설을 설명했다. 발정기는 본래 수태가 목적인 현상이다. 얀테의 페로몬이 발정기를 불러들이니 그녀의 몸은 이미 그의 것을 받아들여 잉태할 준비가 된 상황. 그러나 얀테의 페로몬에 절여진 몸으로 다른 알파의 씨앗을 품는다면? 착각에 빠진 육신의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파고든 씨앗이 무사히 착상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메가의 몸이 가리는 건 페로몬이지 정자가 아니니까요.”

라스카의 그 이론 때문에 여섯 명이 뱀처럼 뒤엉켜 난잡한 정사를 벌였다. 그 낯 뜨거운 밤이 생각난 리체는 살짝 달아오른 뺨에 부채를 부쳤다.

“더우십니까?”

그녀의 다른 손목을 붙잡고 라스카가 물었다. 리체는 머릿속 생각을 들킬까 봐 애써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라스카는 별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녀의 손목을 붙든 라스카의 손가락 끝은 투명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가진 치유의 이능이다.

‘언제 봐도 사기적인 능력이야. 한 대에 수억을 호가하는 장치가 필요 없으니까. 라스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몸값이…….’

세속적인 생각에 잠긴 리체의 입꼬리가 실룩실룩 올라갔다.

“리체, 표정이 이상합니다.”

“아?”

“여기에 집중해 주세요.”

“하지만 라스카가 매일같이 몸을 살펴 주고 있잖아요.”

주치의인 그는 원래도 주기적으로 리체의 몸을 살폈지만 요즘은 틈나는 대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이능을 발휘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리체는 한숨을 흘리듯 웃었다.

“너무 기대하지 말아요. 피임약을 꽤 오래 먹었으니 당장 아이를 갖기는 힘들 거예요.”

그녀의 말을 유의했는지 라스카가 손을 뗐다. 속눈썹이 길게 드리워진 눈매에 깊은 그늘이 생겼다. 리체는 낙담한 그를 위로했다. 라스카가 이렇게 아이를 바랄 줄이야.

“라스카, 괜찮아요. 내 몸은 좀 특이하잖아요. 게다가 태맥이 잡히기엔 시기가 이르기도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은 다른 생각이었다.

‘애가 들어섰을 가능성은 희박해.’

물론 생리를 아직 안 하기는 했지만, 그건 주기가 불규칙해서…….

“배 속에 다른 게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스카의 밤하늘 같은 눈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언제 어느 때고 침착한 그답지 않은 눈빛. 리체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임신이 분명합니다, 폐하.”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어때요? 둘만 있을 때도 폐하라고 하질 않나, 이름을 부르질 않나, 헷갈려서…….”

“당황하지 말아요.”

라스카가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아프도록 잡힌 손에 리체의 주절거림이 뚝 멈추었다. 눈이 마주치자 리체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라스카가 환하게 웃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