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성욕과 연구의 상관관계
범인들에게 마탑은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어떤 이들은 마탑을 골방에 박혀 심오한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들이 있는 곳이라 상상하지만, 마탑 역시 이 대륙에 존재하는 세력, 그것도 거대한 영향력을 떨치는 힘인 만큼 이해득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누구보다 이득을 따지는 집단이다. 상단에서 신작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기술의 상품은 마탑에서 특허를 낸 게 대부분이고, 그런 만큼 마탑이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범인들은 추측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현대로 따지자면 대기업의 중추라고 보면 될까?
주기적으로 열리는 마탑 내부, 마법사들의 논문 발표회는 조용하면서도 또한 시끄러웠다. 발표 자체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이루어지나 새롭게 내놓는 ‘가설’을 바라보는 이들은 승냥이보다도 집요하고 독수리보다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트집거리를 찾느라 바빴다.
발표회는 한 번 열릴 때마다 적게는 세 개에서 많게는 열 개까지 새로운 이론이 튀어나오는데, 얼토당토 않는 게 있는 반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대단한 게 나오기도 한다.
발표회실은 발표자가 맨 하단에, 지켜보는 자들은 발표자를 가운데 두고 층층이 마련된 자리에 앉아 경청하는 구조였다.
약간 소란스러운 분위기였으나 누군가 연단에 올라서자 찬물을 뿌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최근 1년간 마탑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취급되고 있는 사람의 등장이었다. 마법사도 아닌 주제에 논문의 공동 저자에 등장하더니 슬금슬금 발표자의 자리까지 차지하는 굴러온 돌을 향한 시선은 고까움, 흥미, 호기심 등등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리체가 특유의 냉정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준비된 발표 자료를 읽어 나갔다. 오늘 그녀가 내민 주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들까지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하늘을 나는 전차였다.
“……그래서 출력이 강한 마력석을 동력으로 사용한다면 한 번에 서른 명을 수송할 수 있는 수송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력을 지속적으로 충전한다면 마력석이 망가질 때까지 5년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테니 경제적인 이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법사들은 그녀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이상입니다.”
대륙 석학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익숙하단 듯이 태연하다. 그 우아한 태도에 신분만 믿고 여기저기 나댄다고 못마땅해하던 이들의 눈에도 감탄이 스쳤다. 물론 떠오른 것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지만.
발표가 끝나자 마법사들의 손과 눈이 분주해졌다.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며 의문점을 달궈진 포탄처럼 마구잡이로 쏟아 내려는 그때.
“그럴 듯하지만 이미 대륙 곳곳에 마련된 포탈을 대체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네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상단에 꽂혔다. 각자의 연구실에 처박혀 골머리를 썩느라 머리털이 듬성듬성한 나이 든 마법사들 사이에서 풍성하고 긴 은발을 하나로 묶은 젊은 남자의 얼굴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그가 석학들이 모인 이 마탑에서도 비교할 바 없는 천재임에야.
리체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다 차분히 입을 열었다.
“포탈은 부작용이 많습니다. 마력 거부증을 가진 자들은 이용할 수 없죠. 그리고 통계를 살펴보면 그런 이들이 적지 않고요. 새로운 수송기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탑의 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뜻이 다분히 담긴 고갯짓에 그녀의 눈썹이 미묘하게 치켜 올라갔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하던 그라우지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마탑은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 수송기를 개발하는 데 드는 돈이 적지 않을 텐데 포털을 사용하지 못하는 범인들이 내는 돈으로 개발비를 메꿀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지켜보는 자들의 눈에는 스파크가 튀는 게 보일 정도로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회장을 빠져나가는 마법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쑥덕거렸다.
“분위기 한번 살벌했군. 저번부터 사사건건 부딪치는데 우린 말 한 번 꺼내기 어려우니, 원.”
“싸운 게 분명해.”
“무슨 소리인가?”
“탑주께서 황후만 등장하면 날카로워지잖나. 아까도 봐. 마탑의 재물을 가망 없는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니,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으셨잖은가.”
“그렇긴 했지.”
“게다가 하늘 전차라는 거, 생각보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탑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야. 뭐, 황후께서도 만만찮은 분이시니 더 괜찮은 걸 갖고 오시겠지.”
“황후 폐하 말이야. 역시 처음 봤을 때와는 인상이 많이 바뀌었어. 그땐 영 마음에 안 들었는데 요즘은 그분이 마력만 있었어도 어땠을까 싶어.”
“그 부분이 아쉬운 점이지.”
“아무튼 탑주가 황후의 정부라는 소문은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 것 같군.”
“그건 기정사실이 아니었나?”
“연인을 그렇게 날카롭게 볼 리가 없잖나. 탑주께서 괴롭히시는 게 분명하다고.”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한 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마법사’는 진지한 얼굴로 확신을 했다.
‘이 사람,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동료 마법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바보로구만. 탑주의 그 눈,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는 시선이었어.’
“흐읏!”
좌표의 위치가 항상 바뀌는 움직이는 방. 마탑의 주인스럽게 생명이라도 갖듯 움직이는 방 안의 널따란 침상 위에서 리체는 양팔과 다리를 넓게 벌린 채 묶여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에 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한층 짙어진 페로몬이 방 안을 농밀하게 채웠다. 어지간한 알파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페로몬이었지만 한 세기를 넘게 살아와 알파의 본능을 충분히 억누를 수 있는 그라우지는 흥분에 달뜬 그녀를 앞에 두고서도 느긋했다.
“드디어 소리를 내네요. 이 강도로는 절정에 달하기 힘들겠군요. 보강할 필요가 있네.”
“그라우지…….”
“왜요, 좀 쉬다 할래요?”
“쉬게 해 줄 거예요?”
“음…….”
리체는 눈을 세모꼴로 뜨고 말없이 웃기만 하는 그를 노려보았다. 매번 이런 식으로 묻지만 한 번도 그녀의 말을 들어준 적은 없었다. 분해 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은 진정 사이코와 다름이 없었다. 얄미워 죽을 지경이 된 리체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데이터는 잘 쌓이고 있나요?”
“덕분에 아주 잘.”
그라우지가 웃으면서 리체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문질렀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음핵을 툭 쳤다. 음핵에 달라붙어 있던 자그마한 반지 같은 것이 진동하며 음핵을 압박했다.
“헉!”
일순 입을 크게 벌린 리체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이 정도 진동엔 반응이 바로 오네요.”
그라우지가 검지손가락만 한 리모컨의 단추를 누르자 정체불명의 것이 진동을 멈추었다. 온몸의 힘이 일시에 쭉 풀린 리체가 숨을 헐떡거렸다.
“리체 양이 말해 준 외차원의 물건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요.”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그라우지가 감탄했다. 리체는 작게 이를 갈았다.
“내 비행기보다 그 자위 도구가 말이죠?”
“아까도 말했지만, 리체 양의 비행기는 현존하는 포탈의 장점을 이기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이쯤 되면 내 선택을 믿을 만도 한데. 내가 괜찮다고 한 것 중에 잘 안 된 게 있나요?”
리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일종의 사업 파트너였다. 그녀가 본 차원에 대해 말해 준 내용을 듣고 그라우지가 이것저것 시험 삼아 만들어 낸 것이 대륙 각지에서 불티나게 팔리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
“리체 양의 대륙 은행 잔고를 착실하게 불려 주고 있는 사람의 말을 믿어 봐요.”
리체는 끄응, 앓는 신음을 흘렸다. 그라우지와의 협업은 퍽 매력적이었다. 그와 함께 논문에 공동 저자로 오른 것은 그녀에게 명예를 가져다주었지만, 마탑에서 개발한 상품은 어지간한 상단 부럽지 않은 부를 안겨 주었다.
아직까지도 그녀를 시골에서 올라온 운 좋은 황후라고 생각하는 귀족들은 그녀의 재물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할 터였다.
이득을 셈하는 데는 누구보다 잽싼 리체는 그라우지와 협업하기로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자위 기구를 음핵에 달고 있는 지금은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발단은 ‘클리토리스를 진동시켜 절정에 이르게 하는 도구가 있다’라고 흘리듯이 했던 한 마디였다. 도대체 그 말의 어디에 꽂힌 건지, 무섭게 집중한 그라우지가 불과 한 달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테마전을 열려고요?”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그라우지가 빙그레 웃었다.
“두근두근 아찔한 부부 생활?”
“두근두근, 좋아하시네, 아!”
“음, 화를 내니 아래가 더 벌름거려요. 격렬하게. 야해라.”
말끝에 하트가 붙은 것 같은 뉘앙스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성능이 아주 좋네요. 축하해요, 리체 양. 이게 리체 양을 부자로 만들어 줄 거예요.”
“…….”
“근데 왜 그렇게 불만인 표정이죠?”
“다 좋아요. 다 좋은데 어째서 시험하는 대상이 내가 되는 거예요?”
“그야 내가 이러고 싶은 사람이 리체 양밖에 없으니까요.”
화사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리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웃는 얼굴에서 그녀가 까무러치기 전까지는 이 ‘테스트’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기 때문이다.
“리체 양답지 않게 왜 그렇게 민망해 해요? 오메가 페로몬을 시험해 보겠다며 라스카의 몸을 올라타기도 했던 사람이.”
그라우지가 그녀의 감은 눈꺼풀 위에 쪽쪽 입맞춤을 했다.
“쓸데없이 황후가 되어서 그런가. 이제 와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아니겠죠?”
“말에 뼈가 있네요.”
“그렇게 느꼈어요?”
리체는 눈을 떴다. 그라우지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리체는 약간 부끄러워졌다. 어디 야한 동영상에서나 나올 것 같이 수치스러운 자세로 묶여 있는 건 자괴감이 느껴질 뿐이었는데. 얄미운 말을 하면서 저렇게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건 반칙이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고…….”
“황후 폐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시니, 간만의 만남을 귀하게 여겨야죠.”
완벽한 귀족식 어투로 말하는 내용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반쯤은 진심이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 논문 발표회 이후 처음 보는 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리체는 갑자기 덮쳐 오는 입술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리체의 입술을 집어삼킨 그라우지가 그녀를 발라먹을 것처럼 혀를 집어넣어 안쪽을 싹싹 핥았다.
“나더러 너무하다고 하지 말아요. 오랜만에 보는 연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뿐이니, 너그럽게 받아들여 줘요.”
입술을 뗀 그라우지가 속삭였다. 젖은 입술이 가볍게 붙었다가 떨어졌다. 쪽, 입술을 문대는 입맞춤을 한 그라우지가 씨익 웃었다. 능글맞은 얼굴로 얄미운 말을 잘도 하는 그라우지지만 저런 식으로 구니 내칠 수가 없다.
“이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리체 양은 모를 거예요.”
독특한 억양의 목소리가 귓가에 감미롭게 휘감겼다. 그라우지가 몸부림을 치느라 헝클어진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리체의 엉덩이에 움찔,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틀어 그라우지를 보자 살아온 세월만큼 깊은 눈동자가 보였다.
음험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 듯한 맑은 눈을 보는 리체의 눈꺼풀이 갑자기 파르르 떨렸다.
“흣…….”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쓰다듬는 손길과 달리 다른 손은 태연히 음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질척해진 소음순을 양옆으로 젖히고 구멍을 드러내 그 주변을 누르며 희롱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능란하여 산뜻하기까지 했다. 그가 질질 흐르는 애액을 손가락으로 훔쳐 내고 혀로 할짝였다.
“양을 보니 아직 충분하지 않나 봐요. 진동 기구가 리체 양을 얼마나 기쁘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마음이 설레요.”
그런 걸로 설레지 마! 리체는 그 뜻을 담아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러나 그라우지는 진심으로 기대된다는 듯 사르르 웃기만 했다. 짙은 미소에서 불길함을 느낀 리체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손목과 발목을 칭칭 감은 밧줄이 그녀의 몸을 물귀신처럼 끌어당겼다. 다시 등을 침대에 대는 순간 그라우지가 리모컨의 전원을 켰다.
“흑!”
클리토리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진동했다. 세기가 강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간지러웠다. 닿을 듯 말 듯하는 애타는 느낌에 리체의 발가락이 곱아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구멍 벌름거리는 거 봐. 이걸로는 부족하다네요.”
“이젠 거기와도 대화를…… 아읏!”
그라우지가 망설임 없이 진동 기구의 세기를 높였다. 리체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벌어진 입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클리토리스에 집중된 것 같았다. 엉덩이 근육이 꽉 조이며 발부리가 쫙 펴졌다. 직감적으로 절정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자극이 너무 세서 피하고 싶었지만 진동 기구는 귀신처럼 따라붙었다.
“아, 아아아아악!”
바들바들 떨리던 입에서 비명 같은 교성이 튀어나왔다. 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허벅지가 축축했다. 절정이 이어지는데도 진동 기구는 잔인하게도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물이 마구 튀었다. 리체는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그제야 그라우지가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다.
멍하니 눈을 뜬 리체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백 개 떴다. 본 차원에서의 자위 기구에 대해 얘기하긴 했지만 그녀가 사용한 건 한 번 정도였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얻지 못한 쾌감이 궁금했던 시기다. 생리적인 쾌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미적지근한 느낌이 썩 좋지 않아 서랍에 처박아 두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라우지가 개발한 이 진동 기구는 대체? 성능이 다른 탓일까? 한순간에 높은 산에 올랐다가 곤두박질친 기분이었다. 짧고 강렬한 쾌감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그라우지가 음핵에 달아 놓은 전동 기구를 빼내었다.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허벅지에 흐르는 물 같은 체액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그라우지가 나직하게 감탄했다. 리체는 그가 다리를 벌리고 안으로 파고들 때까지 변변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흐으읏…….”
“윽, 한 번 가서 그런지 엄청 조이네요.”
절정을 맞아 수축된 질이 주는 쾌감에 그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흥분을 참아 내며 그라우지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체는 엉덩이를 꿈틀했다. 민감해진 몸에 가해지는 삽입은 평소보다 자극적이었다. 움찔거리는 그녀의 손에 깍지를 낀 그라우지가 리체의 얼굴에 키스했다. 리체가 가물가물한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뜨거운 숨이 토해졌다. 그라우지에게서 페로몬이 미약하게 새어 나왔다. 체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알파에게 각인한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알파에게 거부 증세를 보였다. 창백한 낯빛을 확인한 그라우지가 쓰게 웃으며 페로몬을 거두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에 다시 입을 맞추며 그라우지가 중얼거렸다.
“우리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후사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계시다던데.”
약간 건조하게 느껴지는 어투에 리체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움직였다. 지적인 교양과 지혜로 반질거리는 남색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리체 양은 어때요? 예전에는 결혼에 부정적이었죠. 지금은 황후가 되었고요.”
“흐읏, 그라우지……!”
가슴이 아프게 꼬집혔다. 그라우지는 태연하게 고개를 숙여 금세 붉어진 유두를 입에 넣어 굴렸다. 흠뻑 젖은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어 비비며 그가 물었다.
“어때요, 리체 양도 아이를 갖고 싶나요?”
리체는 그라우지를 바라보았다. 빤히 쳐다보는 눈빛은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했지만 그 아래는 차가운 겨울 호수의 밑바닥처럼 냉기가 몰아쳤다.
“뭐에 그렇게, 흑, 심통이, 난 거예요?”
“질투가 나서요. 이 몸은 마력의 사랑을 듬뿍 받는 몸이라 아이를 잉태시키지 못하거든요.”
처음 듣는 말에 리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라우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다른 놈들은 리체 양을 임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뜨거워지잖아요.”
“흣, 아, 갑자기 너무…… 윽!”
쑤컹쑤컹. 그라우지가 딱딱한 좆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비좁은 질을 억지로 넓히며 끝까지 파고들자 버거움에 리체의 작은 입이 새처럼 벌어졌다.
“다른 건 괜찮아도 리체 양이 다른 놈의 아이를 배는 건 썩, 기분이 좋지 않군요.”
“하으, 아……으!”
그녀의 손등에 친밀하게 뺨을 비비며 그라우지가 은근히 물었다.
“말해 봐요, 리체 양. 아이를 갖고 싶어요?”
“모, 몰라요. 그런 걸 지금 물어봤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람 앞에서 갖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리체는 집요하게 묻는 그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럴 거면 내 아이를 갖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누구보다도 똑똑한 아이가 나오지 않겠어요?”
“아니, 방금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잖아요?”
“마법사식으로 말이죠. 리체 양의 피와 내 살을 섞어 만든…….”
그라우지는 말끝을 흐렸지만 마탑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며 서재 1층에 있는 수백 권의 책을 독파한 리체는 그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금방 알아챘다.
마법사가 직접 만들어 아이처럼 키운다는 마법 생물체.
“호문클루스?”
그라우지가 빙그레 웃었다.
“금세 답을 찾다니, 리체 양도 제법 마법사스러워졌네요.”
“그건 생각도, 하아, 한 적 없어요.”
“마찬가지예요. 자식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그라우지가 음핵을 지그시 누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리체 양과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못 견디게 가지고 싶어요.”
“흐읏, 아…….”
“리체 양도 몸에 안 좋은 임신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신음하는 리체의 가슴을 제 가슴으로 짓누르고 그라우지가 그답지 않게 졸라 댔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아, 흣! 괴롭히지 말아요!”
은근 슬쩍 던져 놓았던 진동 기구를 음핵에 가져다 대는 그라우지의 행동에 기겁하자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런, 들켰네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잖아! 하악!”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진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좋다고 할 때까지 안 멈출 거예요.”
이건 성고문이다. 해사하지만 단호한 얼굴을 보자 리체는 머릿속이 아찔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