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눈치 게임이 끝났다
적막이 두껍게 쌓인 눈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가운데, 분위기는 해가 사라진 북해처럼 냉랭했다.
“넌 내 황후야.”
삼십여 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얀테가 꺼낸 첫 말이었다. 얀테가 분위기를 잡는 게 의아하여, 먼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기다리고 있던 리체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던 얀테가 ‘하’ 하고 이마를 쓸어 올렸다. 눈이 부시도록 짙은 금발은 뒤로 넘긴 채 깔끔하게 고정된 상태라 그의 손에 넘겨지는 머리카락은 없었다. 괜한 손짓을 리체가 흘끗하고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얀테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황후라는 자각이 아예 없군그래.”
“……있어야 하나요?”
“뭐?”
리체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삼십 분이 넘는 정적이 흐르는 동안 무료함이 번졌던 리체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얀테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황후라는 자각을, 해야 하나요?”
“…….”
“어째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바람피운 아내가 된 것 같아서 기분 별로예요.”
“똑똑한 네가 모르는 게 있다니, 그거 참 놀랍군.”
리체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눌렀다. 아까부터 지끈거리는 두통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빈정거리지 말아요. 레이몬드와 그라우지가 규칙을 어겨서 그런 거라면, 그 규칙은 내가 관여한 게 아니란 걸 말해 둘게요. 그건 당신들끼리 멋대로 정한 거였어요.”
리체는 열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섯 알파들의 지지고 볶는 싸움에 뛰어들 만한 왕성한 혈기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두고 본 것이다. 알아서 규칙을 정하고 질서를 세운다면 그녀에게도 나쁠 것이 없으니까.
그녀의 속내가 드러났을까. 몸을 일으킨 얀테가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리체는 얀테의 손에 턱을 내어 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얀테의 눈이 차갑게 타올랐다.
“내 황후는 마음이란 게 없나 봐.”
“…….”
“다섯이나 되는 알파들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그럴 리가. 그건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
“왜, 내가 사랑을 입에 담으니 우습나?”
정곡을 찔린 리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 알파를 공평하게 사랑한다니. 얀테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말랑한 단어를 붙일 수 없는 유일한 상대였다. 차가운 그녀의 눈빛에 얀테는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려고 했어.”
“무엇을?”
“네 마음이 바뀌기를.”
얀테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졌다.
“너를 황후로 만들면서까지.”
“…….”
“다른 놈과 달리 공식적인 남편이 된다면 나를 향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내겐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
“하지만 고작 너를 내 곁에 붙들어 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왜 이렇게 몰라? 네 애정 하나하나에 목말라 하는 나를, 어떻게 이리 모를 수가 있어?”
얀테는 입을 조개처럼 다문 리체를 야속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잠시 흔들렸던 눈빛이 이내 매섭게 변했다.
“내가 그 빌어먹을 ‘규칙’을 어겼을 때는 날 그렇게 단호하게 밀어내더니, 방금 그놈들에게는…….”
“…….”
리체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듯 얌전하고 무심한 얼굴. 얀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턱에 이르는 고통에 리체가 신음을 내며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얀테의 눈매가 가느스름하게 변했다. 황제로서 잔혹한 일을 행할 때처럼 잔인한 눈이었다. 과거의 일이 떠오른 리체가 흠칫하고 뒤로 물러나려 하자 얀테는 그만큼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뺨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했다.
“아, 내 좆보다 그 자식들의 좆이 더 맛있는 건가.”
나직한 목소리에 뺨의 털이 오소소 곤두섰다.
“날이 갈수록 음탕해지기만 하니, 그 음란한 구멍을 더 만족스럽게 채워 주는 좆이 더 끌리는 거겠지. 두 개나 집어삼키려는 걸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가. 내가 장난감이라도 주문할까? 내 것과 함께 꽂아 주면 만족하겠어?”
리체는 심장이 철렁했다.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거린다. 핀트가 나가면 온갖 독살스러운 말을 하는 얀테의 말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데다가 ‘날이 갈수록 음탕해진다’는 말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마음이 없냐고?
아무도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어째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리체는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간다는 목적이 사라진 이후, 리체는 방향키를 잃어버린 배에 탄 기분이었다. 황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마탑과의 연구를 비롯한 소일거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뒤바뀐 육체가 때때로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제 와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건만.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비교적 혼자 있고 싶어지고, 혼자 있을 때면 생각에 깊게 빠져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가벼운 우울증이 있는 상태.
그녀는 비교적 정확하게 자신의 상태를 진단했다. 그러나 변화된 육신에 적응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얀테에게 발정 난 암컷 취급을 받으니 마음 한구석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왜 우는 거야?”
얀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신이 우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리체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눈물이라니. 창피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당장 닦아 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이 세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얀테의 앞에서만은 그 자존심이 뿌리까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리체는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눈물 젖은 눈은 평소의 앙칼짐을 반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처연해 보여서, 턱을 붙잡은 얀테의 손이 미세하게 부드러워졌다.
“당신은 내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 적도 없으면서, 내게는 미안함을 느끼라고 강요하네요.”
“…….”
“좆을 좋아한다고요? 스스로를 돌아봐요. 누구보다 내 몸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내게 그런 비난을 퍼붓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리체의 말에 얀테는 가슴을 찔린 얼굴이 되었다. 예전에 비해서는 앙금이 풀어진 상태라고는 하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남은 앙금은 녹아 없어진 것보다 훨씬 단단한 채로 수면 깊이 파고들어 있어서, 사라지기엔 노력과 시간이 많이 걸릴 터였다.
얀테는 홧김에 뱉은 말을 후회했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하는 사과 따위,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알지 못했다. 남을 속여 넘기고 안심시키기 위한 간계로 하는 사과는 능란하게 할 수 있지만 리체는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속기는커녕 더한 경멸의 눈빛을 보내겠지.
얀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차가운 눈물을 닦아 내고 싶어 손가락만 움찔할 뿐이었다. 그러나 턱을 놓기도 전에 또르륵, 눈물은 알아서 흘러내렸다. 얼굴을 닦아 낸 리체는 눈가가 약간 젖어 있을 뿐이었다. 평소의 냉철함을 되찾는 그녀를 그는 하릴없이 응시했다.
“내가 황후가 되기에 부덕하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네요.”
“해결책?”
그녀는 얀테를 미묘하게 비껴 낸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저를 쳐다보지 않는 그녀의 시선에 초조함을 느낄 때, 리체가 서늘하게 선언했다.
“이혼해요. 이런 말도 우습지만.”
“결혼 서약을 잊었나?”
“읊으라 해서 읊은 서약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
“……말 쉽게 하지 마.”
“황제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추문을 만드는 게 싫다면, 좋아요. 수녀복이라도 입죠.”
점입가경이었다. 리체는 말문이 막힌 얀테를 두고서 거침없었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면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의 명성에는 크게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 내 선택이라고 미루면 되니까.”
“리체.”
“이렇게 보니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네요.”
“…….”
“수녀가 되겠어요.”
그런 얘기가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얀테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화가 잔뜩 난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고한 자리에 오른 후 신하들을 특유의 오만함으로 찍어 누르는 그가 유일하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는 대상은 오로지 리체뿐이었다.
폭탄선언을 해 놓고서 리체는 뭐가 문제냐는 듯 무심한 눈이었다. 이를 악무는 얀테를 보고 리체가 감흥 없는 눈으로 물었다.
“왜요? 이제는 좀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들었어요?”
얀테는 침음을 삼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혐오감이 딸기씨처럼 박힌 이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차마 행할 수가 없었다. 그가 그 자신인 이상은. 리체를 붙잡으며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이, 그 정도가, 얀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내려놓음이자 양보였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그의 자존심은 가히 태산과 같아서, 그 어떤 단단한 날붙이도 틀어박히지 못할 터였다.
눈을 뜬 얀테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니. 다만 의문이 들어서 말이야.”
“…….”
“내 좆 없이는 살 수 없는 네가 수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정도로 내게 화가 난 건가? 욕구 불만이야?”
리체가 하아, 한숨을 쉬었다.
“이런 순간까지 빈정거리다니 더 상대하기도 싫네요.”
“리체.”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건 당신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일 년에 한 번. 컨디션을 잘 조절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수 있겠죠.”
리체의 말에 얀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날을 정해 만나요.”
제법 평온하게 건네지는 해결책은, 그 잔잔함과 달리 얀테의 기분을 끝 간 데 없이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다.
“……제대로 생각해서 말해. 내가 널 수녀원에 처박지 못할 줄 알아?”
“바라는 바예요.”
“네 음란함은 어떻게 해결하려고? 설마 레이몬드를 달고 갈 건 아니겠지? 벌써부터 수녀원장이 내게 항의하러 오는 게 눈에 선하군. 황후 폐하의 신음 때문에 수녀들이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있어요……. 그 음탕한 구멍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녀원이 망가질 거예요! 라고 말이야.”
얀테가 야비하게 웃었다. 리체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 피식했다.
“예전처럼 말하기로 완전히 마음먹은 건가요? 좋네요. 점잖은 척하는 건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
“뭐, 수녀원장이 당신을 찾아가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요. 이참에 내 인내심을 극한으로 시험해 볼 수 있겠네요. 극복한다면 나는 내가 아주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리체는 의자를 뒤로 밀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황제 폐하.”
치마를 살짝 잡고 얀테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어느새 익숙해진 사교계식 인사는 몹시도 우아했다. 얀테는 일순 멍해졌다.
아무리 부부라고 할지라도 감히 황제에게 당신, 당신 하는 호칭의 무례함보다는 훨씬 정중한 인사인데, 얀테는 시궁창에 처박힌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물러나지 않았으나 잠시 잠깐, 실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이벤트! 부부 싸움. 그들은 냉전 중.
마스터는 싸움이 싫어요! 얼른 화해하세요!
D-7
성공 시 보상: 섹스는 화해 섹스가 최고! 섹스 쾌감 MAX.
실패 시 페널티: 페널티는 없지만, 화해하세요! 화해해! 화해해!]
허공을 바라본 리체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네.”
“네?”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리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문자를 통과했다. 귀환이 실패하고 난 뒤 며칠 되지 않아 시스템 창이 점점 이상해졌다. 게임기로 위장했던 차원 이동 기기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아마도 본 차원의 출입 제한 구역에 보관되어 있을 텐데 위험한 물건이니만큼 건드리려는 사람도 없을 테고, 방치되어 있는 사이에 회로라도 망가진 건가.
‘내용도 그렇고 글씨도 흐려진 걸 보면 얼마 남지 않았겠어. 본 차원과 연결된 마지막 흔적까지 사라지는 건가.’
있든 말든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 착잡했다. 무표정하게 걷는 그녀를 한 발 뒤에서 따라오던 시녀가 흘끔거렸다.
“할 말 있니?”
“네?”
리체는 무심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아니야?”
잠시 머뭇거리던 시녀는 다시 한번 리체의 서늘할 정도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고는 딱 붙었던 입술을 어렵게 달싹였다.
“어째서 황제 폐하를 그렇게 싫어하세요? 저렇게 황후 폐하를 좋아하시는데…….”
“…….”
“마음을 주신 다른 분이 계신 걸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지도 않으신 것 같은 걸요. 물론 이건 주제 넘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저는…….”
시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황후 폐하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한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한 듯 시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걸음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황후궁으로 돌아가는 길, 반듯하게 정돈된 대리석 포석을 밟는 소리만 일정하게 울렸다. 리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가 그러니 시녀 또한 발을 놀렸다. 전전긍긍한 시녀가 마침내 괜한 말을 했다며 후회하는 표정을 지을 때.
“난 잘 모르겠어.”
“……네?”
시녀는 그 무엇보다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리체의 말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너만이 아니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그래. 그들이 그렇게 사랑을 퍼붓는데 어떻게 그리 무덤덤할 수 있냐고 하지.”
“네, 네?”
시녀가 당황하자 리체가 그녀를 흘끗했다.
“너는 내게 배정됐지만 원래 황제의 사람이니까, 지금도 황제의 편을 들고 있잖아.”
“아니에요, 저는 단지…….”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얼마나 많은 파티에 나갔는지 알고 있잖아? 카이로, 레이몬드, 라스카, 심지어 그라우지까지 어쩌면 그렇게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파티장에서 내게 빈정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어.”
리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화제의 인물들에 시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리체는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다만 약간 힘이 빠져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그들을 좋아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이 생각하고 신경 쓰고 스킨십했던 사람이 없어. 그런데 왜 다들 부족하다고 하는 거야.”
“…….”
시녀는 조금 놀란 얼굴로 리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똑똑하고 냉정한 리체라면 이런 고민은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황제의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시녀는 머뭇거렸다. 리체를 모시면서 생각했던 말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황후 폐하의 감정이 지나치게 희미하고 건조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황후 폐하를 사랑하시는 분들의 열기에 비하면, 온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온도라서.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닌가요? 뜨겁고, 안절부절못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저는 황후 폐하가 폐하를 사랑하시는 분들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는걸요.
하지만 이런 불경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시녀는 길고 긴 말 대신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조금 더, 표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황후 폐하의 사랑을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
리체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아래로 처진 팔, 이어진 어깨는 둥그스름했다. 똑 부러진 모습이 사라진 그녀는 어쩐지 평소보다 왜소하고 쓸쓸해 보였다.
황제에 의해 황후궁에 배정된 전속 시녀가 되었을 뿐, 그녀에 대한 충심이 깊지 않은 시녀는 그녀를 감싸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스스로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성적이고 냉철해서 차갑게 느껴지는 그녀에게 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황후 폐하…….”
언제 약한 소리를 했냐는 양, 금세 차가워진 낯으로 리체가 말했다.
“어쨌든 네 마음은 알지만 황제는 어쩔 수 없어. 그가 뼛속까지 황제인 이상, 그리고 내가 나인 이상 그와는 평생 평행선을 달릴 테니.”
“…….”
“하지만 네 의견은 참고할게. 표현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 중요하단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리체는 생각에 골몰했다. 대책을 찾으려는 냉철함은 익숙한 것인지라 시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군.”
나직한 리체의 중얼거림에 시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 안 좋은 생각이 드네.’
시녀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리체는 황후궁으로 돌아간 즉시 황후의 마차를 불러 외출을 나갔다. 목적지는 수도 북부 지역 몽파뉴엘 평지의 그랜드다젤 대수도원이었다. 그리고 황후의 마차가 돌아왔을 때, 마차에서 내린 것은 땀을 뻘뻘 흘리는 마부와 새파랗게 질린 시녀뿐이었다.
* * *
“폐하, 저녁 기도를 드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리체는 책을 분류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놀이 내려올 기미가 보였다. 그녀는 책상으로 시선을 끌어 내렸다. 갈색의 떡갈나무 책상은 아무런 무늬 없이 단출하지만 크기가 매우 크고 몹시 무거워서 어지간한 청년 사제 네 명이 있어야 옮길 수 있었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사람 한 명이 양팔을 모두 벌린 정도인 커다란 책상 위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왼쪽은 제법 깔끔하게 정돈되었으나 오른쪽은 제목의 첫 글자도, 저자도 구분할 수 없이 무질서했다.
“오늘 안에 적어도 이 책장은 분류를 다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폐하께서 그런 일을 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도와주신 덕에 도서관이 훨씬 깔끔해지기는 했습니다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인걸요. 수도원에서는 모두가 자기 할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귀한 식량을 먹고 허투루 쓰이는 인력이 없는 검박한 생활에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요.”
차갑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수도원장은 ‘그게 아닌데’ 하는 얼굴을 했다. 그 기색을 모른 척하며 리체는 책을 정리하느라 착용하고 있던 하얀색 면장갑을 하나씩 벗었다.
“저녁 기도가 끝난 후에는 스크립토리움(필사실)에 있을게요. 벨리움 성서 상권의 필사는 늦은 저녁에는 끝낼 수 있을 거예요.”
수도원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 어려운 책을 벌써 말입니까?”
지식인들이 모인 수도원에서도 필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글씨를 알아야 하며 그냥 알아서도 안 되고 필체가 아름다워야 했다. 게다가 오래된 성서는 복잡한 필기체라 해석이 어렵기도 했다. 똑똑하신 분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작업 속도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던 수도원장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후의 뛰어난 능력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황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무슨 일로 수도원에 머물고 있는지 또한.
“흠흠, 여기 오기 전에도 황제 폐하께서 친히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갑니다, 폐하…….”
“…….”
묵묵부답으로 책을 들춰 보는 둥 딴짓을 하는 리체를 본 수도원장은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황제 폐하뿐만이 아닙니다. 마탑주께서도 그렇고, 메디치나 치유관장과 레이몬드 스트리고 경까지. 협박 편…… 아니, 얼마나 많은 문의를 주시는지요. 이 늙은이가 밤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합니다, 수도원장. 아직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해서 그래요.”
리체가 옅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알 수 없는 쓸쓸함과 고뇌가 풍기는 낯은 공허한 구석이 있어, 수도원장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게 다인가요?”
“네? 아, 유력한 귀족 가문에서도 안부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궁금하시다면 편지함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에요.”
리체는 그녀의 방 한편에서 시들어 가고 있을 장미 다발을 떠올렸다. 수도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싱싱했었지만 지금쯤은 보기 싫게 시들었을 것이다.
댕, 댕―.
잠깐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겼던 리체는 고개를 들었다.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었다.
* * *
검은 베일을 쓴 리체는 저녁 기도를 끝낸 사람들이 예배당을 빠져나가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기도를 하는 건 아니었다. 본 차원에 있을 때도 가끔씩, 템플 스테이를 하고는 했다.
그녀는 무던하고 예민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따금씩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응어리져 혼란할 때가 있었다. 그게 연구에도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 휴가를 신청해 절을 찾았다. 동료들이 국외의 아름다운 휴양 섬에서 휴가를 즐기고 올 때 그녀는 차분한 산속 암자에 처박혀 머릿속을 비워 냈다. 그렇게 며칠 있다 보면 머릿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졌다.
이곳 수도원에서 지낸 지도 일주일, 아직 머릿속의 수런거림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리체는 고개를 들었다. 뾰족한 천장과 천장을 기준으로 길게 내린 모자이크 기법으로 장식된 커다란 창과 아기 천사가 그려진 평화로운 느낌의 벽화를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웅장한 예배당은 빈 공간에서 몰려든 공허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쓸쓸한 분위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얼굴로 차분하게 빠져나오던 리체의 눈에 맨 뒤의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차분한 붉은 눈이 그녀를 따라왔다. 그대로 걸음을 멈춘 리체의 눈이 점차 커다랗게 뜨였다.
“카이로…….”
기도 시간 내내 말을 하지 않아 살짝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한 사람이 빠져나간 후에야 그가 몸을 일으켰다. 앉아 있을 때에도 거대했던 체구가 일어나 서기까지 하자 무거운 위압감이 번졌다.
얼음처럼 냉기가 흐르는 무표정한 얼굴과 단단한 뺨과 턱에선 완고함이 풍겨 나왔다. 검은색 정장은 사제들의 쥐색 엘브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이목구비의 잘생김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그는 그의 정체를 모르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기를 두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 걸까. 리체는 가벼운 긴장감을 느꼈다. 그가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왔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목전에 다가온 카이로의 얼굴을 천천히 올려다보는 리체의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렸다.
다 팽개치고 이곳에 처박힌 나를 질책하려고 온 걸까. 다섯 알파 중에 그녀를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카이로일 것이다.
어렵게 카이로의 눈을 보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이파리 하나 상하지 않았던 싱싱한 장미 한 송이가 리체의 뇌리를 스쳤다.
“무슨 기도를 올렸지?”
울림이 풍부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예배당의 공허함이 순식간이 물러가는 느낌에 리체는 얼떨떨했다.
“아무것도.”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리체는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
“그런 거나 물어보려고 왔어요?”
조금 까칠했나. 완벽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공간에 카이로가 있어서 놀라기는 했다. 카이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체가 시선을 비껴 내려는 때.
“응. 난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해. 몰랐나?”
카이로의 눈빛이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리체가 굳은 듯 서 있자 카이로가 그녀의 얼굴을 가린 반투명한 베일을 조심스럽게 위로 올렸다. 리체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떨떠름한 표정을 보인다면 또 그를 상처 입히게 될 테니까. 마음이란 게 없다는 얀테의 말이 심장 속에서 뛰었다.
그러나 얼굴을 가려 주는 베일은 사라졌고, 리체는 카이로의 선명한 눈빛을 마주했다. 몇 초간 시선을 주고받았다. 문득 하아,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리체가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얼굴을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리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카이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피했다.
“외부인은 참석할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왔어요?”
“수도원장을 설득했지.”
협박했다는 거다. 리체는 주름이 가득한 수도원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내가 안 오는 게 좋았을까? 아직 혼자 있고 싶은 거라면.”
“그럼 혼자 있게 해 줄 거예요?”
“응. 그대 말은 다 들어주고 싶으니까.”
“그럼 좀만 더 시간을 주세요.”
“…….”
“카이로?”
리체가 움직임 없는 카이로를 슬쩍 올려다보자 그가 생각에 골몰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안 되겠어.”
“어?”
“이런 곳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아.”
두 눈에 의문이 번지는 그녀를 보며 카이로가 베일을 놓았다. 검은 베일이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그녀는 단단한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남자의 향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낯선 향이었다. 익숙한 페로몬 냄새가 아닌, 향수 냄새. 리체는 금방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는지 깨달았다. 카이로와 수도의 거리를 걷다 지나쳤던 향수 가게에서 맡고 좋다고 했던 그 향이었다.
언젠가부터 카이로는 그녀와 있을 때면 페로몬을 내뿜지 않았다. 각인한 알파가 생긴 그녀의 몸이 점차 레이몬드와 얀테의 페로몬 말고는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기다리겠어. 그대가…… 좀 더 솔직해질 때까지.”
지독하게 잘 어울렸던 쇠와 불의 냄새 대신 풍기는 낯선 사향 냄새. 불완전한 평온함을 느끼며, 리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 * *
터질 것처럼 두꺼운 허벅지가 엉덩이 아래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일주일 내내 수도원에 있으면서 금욕 생활을 이어 갔던 리체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하는 몸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가뿐히 품에 안은 채 피아노 의자에 앉은 카이로는 한 손을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렸다.
리체가 머무는 방에 온 카이로가 피아노에 관심을 보일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던 그녀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려오자 눈을 번쩍 떴다.
“이 곡은…….”
“저번에 좋아했던 것 같아서.”
“원래 피아노를 칠 줄 알았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아주 잠깐. 그 이후로는 피아노 앞에 앉을 시간도 없이 검을 붙잡았지.”
“그래도 꽤 잘 치는데요.”
“연습했어. 그대 귀에 소음으로 느껴지면 안 되잖아.”
“…….”
“듣기 거슬리진 않아? 한 손으로 치니까 좀 어렵군.”
리체는 큼, 잠긴 목을 풀며 대꾸했다.
“응. 듣기 좋아요.”
“…….”
“그…… 귀찮지는 않았어요?”
카이로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던데. 그대 덕분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보고, 좋았어.”
“바쁜 와중에?”
“아무리 바빠도 소일거리 정도는 할 수 있지. 오히려 그대 덕분에 여러 가지 취미가 생겼으니, 일상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 매일이 다채로워.”
차분한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학생 때는 사춘기란 게 있었나 싶게 평탄히 넘어갔으면서 이제 와서 자신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따지는 건 퍽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나 보다.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하란 말이야.’
남들이 쉽게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일들이 이렇게 어렵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그 간극이 매우 크다. 똑똑한 척을 한다고 비난하던 동료들의 말이 영 허튼 말은 아니었던 걸까.
그렇게 땅을 파는 와중에 얀테에게서 안 그래도 고민하던 부분을 아프게 꼬집히니 아무리 자신이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힘들었다. 그랬는데, 카이로의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하고도 다정한 목소리를 듣자 어쩐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는 걸 보이기는 싫다.
리체는 고개를 틀어 카이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잔떨림을 느꼈을 테지만 카이로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건반만 두드렸다. 한 손으로 하는 연주는 그의 말대로 조금 어색한 데가 있었지만 듣기 좋았고, 들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그녀는 마음의 술렁거림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어요?”
“엄격하셨지. 가문에 대한 책임감이 크셨고, 신앙심도 깊었어. 아버지는 출정하기 전에는 꼭 이 수도원에 들러 기도를 드리셨고.”
이 수도원? 리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아직 축축한 그녀의 눈이 덤덤한 그의 눈을 훑었다. 시선이 마주친 카이로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쩐지 익숙해 보이더라니.”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는 나도 종종 기도를 드렸었지만, 오늘은 길을 헤맸는걸.”
길을 헤매는 카이로라, 상상이 안 된 리체는 살짝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 좋다는 듯 카이로가 눈빛으로 미소를 더듬었다.
“그대는 양친과 친했나? 그러고 보니 그대 입에서 가족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군.”
“나요? 나는…….”
리체의 눈빛이 생각에 잠겨 들었다. 미소가 천천히 걷히는 그 얼굴에 카이로의 시선이 꽂혀 들었다.
“무심한 사람들이었죠. 워낙 바쁘다 보니…….”
리체는 그 말만 하고 눈을 감았다. 카이로는 그녀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게끔 가슴을 내어 주고 건반에서 손을 뗐다. 흘러내린 긴 머리칼을 치워 주는 손길은 매일 아침 장미 꽃잎을 확인할 때처럼 세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