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2. 그들이 다인플이 불가능한 이유 (17/25)

02. 그들이 다인플이 불가능한 이유

“엄한 짓을 하는 놈은 없었어?”

여전히 여장을 한 채로 레이몬드가 물었다. 리체는 위에 올라탄 채 뺨을 그의 가슴에 대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너처럼 막무가내인 사람은 없었어.”

“그 말은 다른 방법으로는 했다는 거네?”

레이몬드의 눈매가 접히며 나른한 붉은색 눈동자가 반쯤 가려졌다. 그러나 일견 평온해 보이는 눈은 안에서부터 위험하게 번쩍였다. 이렇게 지내자고 무언의 협의를 한 이후로도 레이몬드는 다른 알파들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다른 알파들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는 듯하나, 기회만 생기면 쳐 낼 마음이 가득할 터였다.

“슬슬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이 생길 때인데.”

“왜 그렇게 생각해?”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자 레이몬드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눈을 내리깔자 속눈썹이 드리워져 얼굴에 깊은 그늘을 만들었다. 검은색 생머리에 더해 퇴폐적인 분위기가 은은히 흘렀다.

“널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질 테니까…….”

머리를 다소 강하게 붙잡은 레이몬드는 그녀가 통증을 느끼기 전에 손을 놓았다. 그리곤 그녀의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가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비비적거렸다.

“얀테는 황제고, 라스카는 네 주치의에다가 연구 파트너고, 그라우지는 마탑과 논문으로 얽혀 있고…….”

“…….”

“카이로는?”

“그는…….”

리체는 매일 아침 전달되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떠올렸다. 가시는 모두 정리되고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싱싱한 장미는 그가 어떤 눈으로, 어떤 마음으로 꽃을 골라냈을지를 생각하게 했다. 화려한 향기를 뿜는 꽃에 코를 묻을 때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아 둔 장미들은 시든 것들을 빼놓았음에도 풍성한 다발을 형성했다.

“카이로는 신사야.”

상념에서 빠져나와 레이몬드를 보았다.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입술을 벌려 목덜미를 깨물었다. 아! 약하게 비명을 지른 리체가 레이몬드의 검은색 가발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뭐 해? 개야?”

레이몬드는 그녀를 안은 팔에 강하게 힘을 줄 뿐이었다. 리체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지만 얼굴을 보이기 싫은지 고개를 젓는다.

“그런 얼굴 하니까, 질투 나잖아.”

웅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리체는 한숨을 쉬고 몸에서 힘을 뺐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그녀의 눈에 창가에 달라붙은 뭔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안력을 돋우자 다람쥐였다. 다람쥐가 창문에 몸을 대자로 붙인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람쥐가 어떻게 여기까지…….’

저렇게 작은 동물이 올라오기엔 만만찮은 높이일 텐데. 까맣고 커다란 눈이 창문을 넘어 리체를 뚫어져라 보았다. 문득 리체는 기이한 기시감이 들었다.

다람쥐가 머리로 창문을 밀더니 안으로 쪼르르 들어왔다. 창가의 앞에 있는 탁자로 훌쩍 뛰어내려 와인 잔에 들어 있는 포도주를 홀짝거렸다. 그러더니 팔로 얼굴을 비비며 세수를 하고는 다시 리체를 바라본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다람쥐가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람쥐가 입가를 닦아 내다가 보라색으로 물든 두 손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람쥐는 리체와 레이몬드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마치 고민에 빠진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설마…….’

다람쥐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 리체는 의심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라우지?”

그 말이 키워드라도 된 양 다람쥐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손바닥만 했던 작은 동물이 멀쑥한 신사로 변하는 광경은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웠다. 리체의 목소리에 함께 고개를 돌렸던 레이몬드도 그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근엄한 마탑주의 모습이 된 그라우지가 기다란 케인을 바닥에 찍었다.

쿵!

그는 곧장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럴 줄 알았지. 한 달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오지에 떨어졌다고 죽었다기엔 그 쓸모없는 목숨 줄이 너무 길잖아요.”

“네 혓바닥도 쓸데없이 긴 것 같은데.”

레이몬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징그럽게 망할 놈. 그가 하아, 한숨을 쉬며 리체의 헐벗은 몸을 끌어안고 이불을 끌어 올렸다.

“방금 그건, 뭐예요? 어째서 짐승의 모습으로?”

리체의 물음에 그라우지는 멋쩍은지 헛기침을 했다.

“레이몬드 군이랑 같은 거예요. 들키지 않게 여기까지 오려면 짐승의 모습을 빌리는 게 편리하니까요.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마법입니다. 모습만 짐승이 되는 게 아니라 습성도 비슷하거든요. 게다가 이름을 불려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계도 있어 불편하죠.”

“어차피 일주일 후면 볼 텐데 싫어하는 짓까지 하면서 왜 왔어요?”

그라우지가 서운한 얼굴로 리체를 보았다.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

“보고 싶어서요.”

산뜻하게 떨어진 목소리에 리체가 눈을 끔벅였다.

“오늘 하늘이 너무 맑아서, 혼자 보기엔 아까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못 견디게 리체 양이 보고 싶어서.”

그래서 왔어요. 그라우지는 가볍게 말했으나 더할 나위 없이 진심이라는 걸, 짙은 눈동자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던 리체는 갑자기 드리워진 어둠에 눈을 깜박였다.

“지랄.”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 레이몬드가 못마땅한 기색을 팍팍 드러냈다.

“너도 이런 식으로 ‘규칙’을 깨면서 감히 나를 그딴 곳으로 보내?”

“걸린 사람이 멍청한 거지. 누가 그렇게 좀도둑처럼 밤에 드나들랬어요?”

“이게 뚫린 입이라고…….”

“그래도 지금은 머리를 좀 썼군요. 밖에서 봤으면 정말로 여자인 줄 착각했겠어요. 그건 뭡니까? 가슴에 뭘 넣은 거예요?”

리체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레이몬드의 손가락을 벌렸다. 그 틈으로 본 그라우지가 역겨운 표정으로 레이몬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레이몬드의 체온이 올라갔다.

“뒤늦게 창피한 모양이죠?”

“닥쳐. 당장 안 꺼져?”

“내가 나가서 어딜 갈 줄 알고요. 내가 이대로 얀테에게 이르면, 이번에야말로 1년 동안은 돌아올 수 없을 전선에 보내질 텐데.”

“그럼 넌 무사할 줄 알아?”

“규칙을 먼저 어기는 건 좋지 않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은 눈치 게임 중이잖아요. 리체 양은 하나고, 그녀를 원하는 사람은 다섯이나 되는데. 기회가 있을 때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에요.”

뒤로 갈수록 낮아진 그라우지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변했다. 천천히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선 상쾌한 솔 향을 닮은 향수 냄새가 났다.

그가 리체의 눈을 가린 레이몬드의 손을 치워 냈다. 리체가 눈을 깜박거리자 그라우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어때요? 리체 양, 지금은 우리 셋뿐이에요.”

“그라우지, 당신 지금…….”

“좆, 한 번에 두 개 갖고 싶지 않아요?”

유혹적인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리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라우지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레이몬드가 으르렁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기껏 혐오하는 방법까지 써서 찾아왔는데 레이몬드 경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얀테가 알면 발광을 할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간만에 가진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건 경도 마찬가지 아닌가?”

레이몬드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절대 이 시간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라우지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아…….”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레이몬드가 눈을 위로 올렸다. 그의 입술이 투명한 액체로 젖어 있었다. 리체가 눈을 내리깔고 그의 입가를 손가락으로 쓸어 주자 레이몬드가 미묘하게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할짝. 혀가 분홍빛 살점을 이리저리 갈라 댔다.

“읏……!”

리체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그라우지가 앞으로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젖꼭지를 건드렸다. 그리곤 젖꼭지를 살짝 누른 채로 슬슬 돌렸다. 야릇한 자극에 리체의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평소보다 반응이 빠르네요.”

“아음, 응…….”

“좆을 두 개나 물 생각에 흥분한 건가요? 응? 리체 양, 말해 봐요.”

“아니에요, 이런, 변태 같은 일에…….”

“변태 같다니.”

하하, 웃은 그라우지가 귓가에 속삭였다.

“리체 양도 이미 변태가 되어 버렸잖아요.”

“내가 무슨…….”

“그런데 왜 이렇게 흥분한 거예요? 이미 가슴 두근거리고 있잖아요. 그렇게 기대가 돼요?”

그라우지가 귓가를 지분거리다 얇은 귓불을 물었다. 다디단 페로몬 냄새를 흠뻑 들이켜자 숨결이 거칠어졌다. 젖꼭지를 돌리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흐응!”

“이거, 음란하게 밝히는 몸이 되어 버렸어요.”

리체의 뱃가죽이 안으로 훅 들어갔다. 그때 레이몬드가 혀로 그녀의 구멍 주변을 꾹꾹 눌러 대며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상하로 비볐다.

“아직까지 풀어진 상태야. 엄청 부드러워서, 빠는 것만으로도 쌀 것 같아…….”

중얼거린 레이몬드가 혀로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넓적한 혓바닥의 면으로 질벽 위를 문질러 대자 간지러운 쾌감에 리체가 다리를 파드득 떨었다. 레이몬드는 그녀의 떨리는 허벅지를 강하게 끌어안고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짓뭉갰다.

“앗, 읏, 아아! 이상, 잠깐, 이상, 이상해!”

리체의 엉덩이가 튀어 올랐다. 레이몬드가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고 음부를 입으로 강하게 붙였다. 리체가 그의 머리를 붙잡으려고 하자 그라우지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손등에 키스했다.

리체는 양쪽에서 결박당한 채 몰려오는 쾌감을 그대로 맞아들였다.

“학!”

등골이 오싹해진 리체는 목을 뒤로 꺾었다. 질구가 수축하며 자궁구가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작게 떨리는 그녀의 가슴을 그라우지가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풍만한 가슴이 출렁였다.

“계속 흐르네……. 기분 좋았어?”

떨리는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든 레이몬드가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그리곤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클리토리스를 검지로 가볍게 쳤다.

“하읏! 만, 만지지 마.”

“민감해?”

“응, 으응…….”

레이몬드가 혀를 내밀어 음핵을 부드럽게 빨아 주었다. 그의 성기는 이미 핏줄을 곤두세우며 꺼떡이고 있었다. 리체는 헐떡이는 숨을 억누르며 눈을 내리깔아 그의 성기를 보았다. 그의 어깨에서 허벅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자유로워진 발끝으로 성기를 툭 건드리자 레이몬드의 눈썹이 휘어져 올라갔다. 리체는 젖은 입술로 할딱이며 웃었다. 야한 미소에 레이몬드의 시선이 못 박혔다.

“레이.”

간드러진 목소리에 레이몬드도, 그라우지도 어깨를 굳혔다.

“해 줘.”

애교가 밴 리체의 요청에 레이몬드의 콧김이 세졌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빨던 클리토리스를 엄지로 문지르며 다른 손으로는 성기를 붙잡았다. 귀두 끝에서부터 선액이 방울져 맺혔다.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질질 흘릴 것 같았다. 흥분한 건 레이몬드뿐만이 아니었다.

“젠장, 이러니까 내가 변태라고 하는 거예요. 스위치가 켜지면 정신 못 차리고 야해지니까. 남자를 미치게 만든다고요.”

여유로웠던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그라우지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 아파!”

리체가 그의 손등을 붙잡았다. 그러나 떼어 내는 대신 그대로 원을 굴리듯 돌렸다.

“이렇게, 살살…….”

그라우지의 이마에 혈관이 곤두섰다. 손에도 힘이 들어갔지만 억지로 빼고 리체가 움직이는 대로 손을 돌렸다. 살짝 눌린 가슴살이 손바닥 아래로 튀어나왔다.

“오늘은 살살해 주는 게 좋아요? 저번에는 강하게 빨아 달라고 했잖아요.”

“으응, 흣, 아, 좋……아.”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응…….”

리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냉철히 눈을 빛내는 마탑에서의 모습과 달리 잔뜩 풀어져 흐무러지는 꽃잎처럼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마탑에서의 리체가 여왕 같았다면 침대 위에서의 리체는.

“정말…… 리체 양처럼 날 미치게 하는 창녀도 없을 거예요.”

“그런 말, 하지 말랬죠…… 으읏!”

“싫다면서 가슴은 왜 이렇게 뛰는 거죠?”

그라우지가 낮게 웃었다. 귓가에 노골적인 말을 퍼부으며 그녀의 정신을 빼놓는 그라우지를 노려보던 레이몬드가 리체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부드럽게 돌렸다.

“이쪽을 봐.”

리체는 흥분으로 달아오른 레이몬드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에 혀를 내밀어 할짝였다. 강아지가 핥는 것 같아 리체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마에 핏대가 솟은 그라우지가 리체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하아, 체취를 들이마시며 코로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애처롭네요. 리체 양의 관심을 하나라도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게.”

레이몬드가 눈을 굴렸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그라우지가 빙그레 웃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리체는 몸을 가볍게 긴장시켰다. 레이몬드가 흥분해서 그라우지를 후려치는 상상이 생생했다. 그라우지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러나 레이몬드는 그라우지의 웃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씨익 올리는 것으로 그쳤다.

“너무 날 세우지 말지?”

“…….”

“같은 정부 처지에.”

의외의 반응인 듯 그라우지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레이몬드의 얼굴에 어린 웃음기가 은은했다. 아무리 스트리고가의 혈통이라지만 실력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 게 밑바닥 용병 세계였다. 용병단에서 처절하게 굴렀던 레이몬드에게선 사내 냄새가 났다. 예전의 퇴폐적이지만 얄팍하고 신경질적이던 분위기가 망치로 내리친 것처럼 묵직하고 납작해졌다.

레이몬드는 그라우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혀를 내밀어 리체의 아랫입술을 간질였다. 그러곤 슬쩍 빨아들인다. 리체의 말랑말랑한 입술이 레이몬드의 젖은 입술 사이로 쏘옥 빨려 들어갔다.

“흐읏…….”

아랫입술을 내준 채 리체가 신음을 흘렸다.

“제법, 사람을 긴장시킬 줄 아네요.”

그라우지가 입술로 리체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곤 그녀의 가슴을 한가득 쥐었다. 마법 공학으로 새로 만들어 씌운 왼팔은 사람의 체온보다 차가워서 리체는 몸을 가볍게 떨었다. 비교적 따뜻한 오른손은 손가락을 세워 귀밑을 부드럽게 건드렸다. 리체가 간지럽다는 듯 어깨를 움찔움찔했다. 오싹하게 달아오르는 성적 긴장감에 목의 맥박이 뛰었다. 그런 마음이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정면에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본 레이몬드가 목을 낮게 울렸다.

“욕심쟁이.”

비난하듯 툭 쏘아붙였지만 그의 손등엔 푸른 핏줄이 흉악하게 곤두섰다. 흉터가 생긴 손등과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은 거칠기 짝이 없어서, 그 손으로 허벅지를 잡히자 묘한 감각에 리체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라우지가 뒤에서 목덜미를 빨아들였다. 손으로는 젖꼭지를 쭉쭉 잡아당긴다. 신음한 리체가 그를 돌아보려는 순간, 레이몬드가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그 얼굴, 나만 보여 줘.”

리체는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레이몬드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놓아 주지 않았다. 레이몬드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어느새 질척거리는 음부를 파고 든 손가락에 리체의 다리가 절로 벌어졌다. 레이몬드가 흣, 웃었다.

“그렇게 몸이 달았어? 먹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네.”

“이상한 말 하지 마.”

“싫어. 좋아하면서 왜 싫다고 해?”

일부러 느릿느릿 말하는 게 분명했다. 속이 타라고. 리체는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좌우로 문질러 대는 레이몬드의 행동에 엉덩이만 움찔거렸다. 애무당하는 젖꼭지 쪽에선 찌릿거리는 감각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구멍이 벌름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품지 못한 내부가 아쉬움을 호소했다.

“우리 황후 폐하께서 솔직하지 못하셔서, 미천한 신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을 내리깔고 음부를 흘끗한 레이몬드가 미묘하게 웃었다.

“모르겠는데요.”

클리토리스에서부터 미끄러진 검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

리체가 다리를 활짝 벌렸다. 그녀의 시선은 안으로 빨려 들어간 손가락에 못 박혔다. 레이몬드가 손가락으로 왕복 운동을 하며 엄지로는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튕겨 댔다.

“응? 어떻게 해 드릴까요?”

레이몬드가 나른하게 웃었다. 눈매에 반쯤 가려진 눈동자는 흥분에 잠겨 있었고, 다리 사이는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그런데도 무작정 달려들지 않는 것이, 인내심이 퍽 상승한 듯싶었다. 그가 달라지기를 원했으면서도 이런 상황에서마저 뜸을 들이는 그가 얄미워 리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가 흩어졌다.

“응……. 해 줘.”

“뭐라고? 안 들리는데.”

“레이.”

리체의 숨결에서 복숭아 향이 새어 나왔다. 다디단 체취에 레이몬드의 시선이 끌리듯 그녀의 눈으로 향했다. 리체는 뇌쇄적으로 풀어진 눈으로 그를 보며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달싹였다.

“내 안으로 들어와 줘.”

레이몬드의 손가락이 느려졌다. 리체는 발가락으로 그의 팔꿈치를 툭 쳤다. 흠칫 놀라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빨리.”

“너, 너……. 너 진짜.”

레이몬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언제 그녀를 약 올렸냐는 듯 씩씩대는 그를 보며 리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배부른 고양이 같은 표정에 레이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입술을 비틀었다. 악동을 연상케 하는 미소에 리체가 불길함을 느끼는 찰나, 레이몬드가 바지춤을 내려 기다란 페니스를 꺼냈다. 핏줄이 불끈 솟은 검붉은 성기는 몹시도 위험해 보였다.

눈치 빠른 리체가 불안하게 입을 여는 순간.

“잠깐만…… 하악!”

씨익 웃은 레이몬드가 그녀의 안으로 흉기 같은 페니스를 처박았다.

“네가 그렇게 조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져.”

속삭인 레이몬드의 턱 근육이 도드라졌다. 리체는 가까워진 그의 허리에 본능적으로 다리를 감았다.

“아, 너무, 조이지 마……. 하, 미칠 것 같아.”

레이몬드는 그녀의 안에 몸을 파묻은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리체의 숨이 파르르 흔들렸다. 안에서 맥동하는 성기와 핏줄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너무 둘이서만 즐기면 질투 나는데.”

그라우지가 리체의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며 다른 손을 배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아랫배 어느 한쪽에 당도한 손이 그대로 꾹 누르자, 리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그라우지가 그녀의 귓불을 물고 그대로 꾹꾹 눌러 댔다.

“그, 그만, 만지지, 만지지 맛!”

레이몬드는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그라우지의 손을 치우려고 하다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는 하얀 다리를 보고 멈칫했다. 눈을 가늣하게 접은 레이몬드가 허리를 뒤로 뺐다가 앞으로 전진했다. 두툼한 귀두가 깊숙하게 삽입되었다. 살짝 튀어나온 그녀의 뱃가죽을 그라우지가 다시 내리눌렀다.

“아악!”

리체가 펄쩍 뛰었다. 그녀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레이몬드가 몇 번 얕게 추삽질을 했다. 그라우지는 그의 것이 깊게 들어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리체의 뱃가죽을 눌렀다. 자지를 쥐어짜는 압박감에 레이몬드가 신음을 삼킬 무렵, 그라우지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그때, 리체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아, 아, 아아……!”

일그러진 눈매의 주름에 두 알파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엉덩이를 위로 쳐든 리체의 허리가 붕 떴다. 교접 부위에서 물이 팍 튀었다. 레이몬드의 배에까지 닿을 정도로 거센 분출이었다. 레이몬드와 그라우지는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윽, 으읏, 으으…….”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는 리체의 아래에서는 여전히 조르륵 맑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리체가 눈을 뜨고 레이몬드를 바라보자 마법이 풀린 듯 그제야 레이몬드가 헐떡였다. 일그러진 눈이 리체를 쥐어뜯을 듯 노려보았다.

“어디 하나 안 야한 곳이 없어, 너는…….”

“레이, 흑, 몸이, 계속 떨려…….”

흔들리는 리체의 손을 꽉 움켜쥔 레이몬드가 사랑스럽다는 듯 손등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나 가슴이 너무 뛰어.”

“…….”

“네가 흥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리체는 그가 자신의 손을 물고 빨고 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한차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절정을 느꼈더니 몸이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늘어져 있던 다른 손이 잡혀 갔다. 레이몬드의 것보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을 야릇하게 문질렀다. 살짝 고개를 틀자 그라우지의 날카로운 턱이 겨우 보였다.

“내 것도 만져 줘야죠, 자기. 그런 모습을 보니까, 참을 수가 없어져서.”

“그렇게 부르지 말랬죠.”

“이래 보여도 누군가의 정부가 되어 본 적은 없어서 말이에요. 보통 이렇게 말하지 않나?”

“안 그럴걸요.”

“난 마음에 드는데요.”

“…….”

“자기.”

그라우지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녀의 손가락 마디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그대로 아래에 밀어뜨렸다. 바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손등에 닿았다. 리체는 순순히 손을 펴 그의 것을 움켜쥐었다. 그라우지가 숨을 들이켰다. 딱히 직접적인 자극이 없었음에도 벌써부터 딱딱해진 것을 매만지며 리체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라우지는 그녀의 손에 하체를 밀어붙이며 풍만한 가슴의 아랫부분을 손등으로 쓸어 넘겼다. 가슴이 흘러내리며 손등에 젖꼭지가 닿았다. 슬쩍 손등으로 젖꼭지를 올린 그라우지가 그대로 젖꼭지를 툭툭 치며 문지르자 리체는 등을 구부렸다. 야릇한 감각이 오싹하게 올라왔다.

한편 레이몬드는 여전히 그녀의 손등을 물고 빨며 천천히 페니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 절정에 오른 리체의 안이 페니스에 쫀득하게 달라붙었다.

“부드럽고, 뜨겁고…… 아, 리체. 너무 좋아.”

“흐읏, 리체 양. 좀 더, 세게, 세게 만져 줘요.”

거친 숨소리와 흥분에 들뜬 속삭임에 귀가 어지러워졌다. 그만큼 흥분이 배가되어 솟구쳤다. 리체는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레이몬드의 허리를 다리로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녀로 인한 자극에 두 알파들의 신음이 깊어졌다.

“아, 리체!”

“읏, 리체 양…….”

나직하게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레이몬드의 목덜미 솜털이 오소소 곤두섰다. 레이몬드는 리체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채 허리를 쳐올렸다. 리체의 뒤에 자리 잡은 채 허리를 들썩이고 있던 그라우지도 신음을 흘리며 눈을 번쩍 떴다. 리체의 날씬한 상체를 감싸 안은 그라우지의 팔뚝에 힘줄이 솟았다. 레이몬드의 눈에 그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읏!”

리체의 신음이 높아짐과 동시에.

퍽!

“……응?”

뺨에 스친 싸늘한 기운에 리체는 눈을 크게 떴다. 홱 뒤를 돌아보자 그라우지의 고개가 꺾일 것처럼 돌아가 있었다.

방금까지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정염의 열기가 식고 얼음 같은 정적이 찾아들었다.

레이몬드가 리체를 와락 껴안았다.

“다른 놈이 널 만지는 거 못 보겠어.”

리체는 입술이 말랐다. 레이몬드의 충동적인 성향엔 이제 놀랄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아니었나 보다. 용병단의 책임자가 되면서 변한 줄 알았는데. 사실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마법사인 그라우지가 어디서 이렇게 맞아 봤겠는가. 은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뺨을 가렸지만 붉어진 피부를 숨길 수는 없었다. 얼이 빠진 모습에 리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할 수 없지. 그라우지가 화를 내기 전에 선수를 치는 수밖에.

“……그렇다고 때려? 예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 바보 멍청이.”

그라우지 들으라고 부러 심하게 말했는데.

“싫은데 어떡해.”

어린애 같은 투덜거림이 돌아왔다.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레이몬드의 말은 그라우지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그라우지는 고개를 돌린 그대로 붉어진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혀로 볼 안쪽을 더듬는 그 모습이 어쩐지 음산했다.

“저기, 괜찮아요, 그라우지?”

“아뇨. 안 괜찮습니다.”

“…….”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흐린다고 했던가요? 여기선 똥개 한 마리가 사방 천지를 뛰어다니는군요.”

그라우지가 천천히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혀로 볼을 쓸어 내는 그는 침착해 보였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싸늘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등골이 오싹해진 리체는 무심코 안전 레버를 붙잡듯 그의 성기를 세게 움켜쥐었다. 눈살을 찌푸린 그라우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에 리체는 조심스럽게 손에서 힘을 뺐다. 미안하다는 눈짓을 하자 그가 실소를 흘렸다.

“하, 정말 당신은…….”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한풀 꺾인 냉기에 리체는 내심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선 안 돼요.”

“뭐가요?”

“뭐든 안 돼요.”

“내가 뭘 할 줄 알고요.”

“그게 뭐든.”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라우지의 어깨가 조금 누그러졌다. 신경을 곤두세웠던 딱딱한 선이 부드러워지자 리체는 레이몬드에게도 경고의 말을 던졌다.

“여기서 싸우는 건 금지야.”

“하지만.”

“말 안 들으면, 다신 안 봐.”

각인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히 위협용일 수밖에 없었지만 레이몬드는 사형 선고라도 받은 듯 처참해졌다. 뾰족하게 올라갔던 승모근이 시무룩하게 내려앉았다.

간신히 두 사람을 진정시킨 리체는 한숨을 삼켰다. 그러곤 자신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아직도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가시지 않은 흥분이 배 속에 자글자글 고여 들었다. 한편으로는 중단된 정사에 아쉬움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경계심이 들었다.

이런 걸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평소엔 있는 줄도 몰랐던 그녀의 도덕적 허들이 도드라져 제 존재를 과시했다. 리체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이, 레이몬드와 그라우지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꺼져.”

“…….”

“내 말 안 들려?”

“아무리 그래도 똥개랑은 말 섞기 싫은걸요.”

“뭐라고?”

그라우지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개 짖는 소리까지 해석할 수 있는 재주는 없어요.”

“…….”

“사람 말을 좀 해 줄래요?”

퍽!

리체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보이는 광경은 주먹을 뻗은 레이몬드와 손으로 막은 그라우지였다. 막아선 게 쉽지는 않은 듯 그라우지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리체는 바로 앞에 두드러진 레이몬드의 힘줄이 솟은 팔을 보았다. 레이몬드는 그라우지의 방어를 뚫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힘을 풀지 않았다. 팽팽한 기 싸움에 피부가 후끈후끈해졌다.

안경 너머, 그라우지의 눈이 날카로운 예기를 더했다. 억누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연…… 무식하게, 힘만…… 세군요.”

레이몬드는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좆만 한 다람쥐가 이걸 막네?”

리체의 한숨에 그녀의 허리를 감싼 레이몬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은 여전한 상태였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기세가 강렬해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과 얼어붙은 냉각수의 싸움처럼 보였다.

허구한 날 싸움인가. 그런 주제에 용케 시간을 공유한다느니 뭐니 하는 말을 꺼냈네. 그녀가 금방이라도 폭발하려는 둘을 말리려는 순간이었다.

“폐하, 지금 황제 폐하께서 막 당도를……. 황제 폐하, 벌써 들어가시면!”

아니 됩니다……!

시녀의 말리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흩어졌다. 리체는 노곤하게 풀어졌던 정신 줄이 바싹 서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꼈다.

‘아니, 잠깐만. 이런 전개는 좀 아니잖아?’

그녀가 대처를 할 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리체의 시선이 문밖에 꽂혔다. 얀테가 귀신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니, 귀신 같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어느 귀신이 저런 양기를 뿜어낼 수 있겠는가.

황제가 됐다고 황태자 시절보다 더한 위엄을 황금 망토처럼 둘렀던 얀테의 얼굴이 헐벗은 리체와 그녀에게 뒤엉킨 두 남자를 본 순간 하얗게 탈색되었다. 붉으락푸르락한 낯빛에다 푸른 귀기가 눈빛에 어렸다. 얀테의 시선은 그들에게 못 박힌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은 내게 약속된 날일 텐데.”

리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에 손이 절로 올라갔다. 지끈. 두통이 마구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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