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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고양이의 보은 (15/15)

에필로그 고양이의 보은

안녕.

내 이름은 나비야.

이름이 왜 그 따위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이름은 내가 짓는 게 아니라 주인님이 지어주는 거잖아? 주인님의 센스가 꽝이면 가엾게도 고양이의 이름은 비극이 되는 것이지, 뭐.

속설에 고양이는 아홉 번 산다고 하잖아?

난 겨우 두 번 죽고 이제 세 번째 사는 중이야.

내 첫 번째 죽음은 불행하게도 폭력에 의한 죽음이었지.

동네 술 취한 건달이 나에게 화풀이를 했거든.

그때 내 주인은 아주 착한 남자아이였었는데 그 아이는 내게 정말 잘해줬었어.

나를 돌봐주고 나에게 친절했었어.

그리고 나를 위해 울어주고 날 묻어주기까지 했지.

물론 그 묻은 장소가 냄새나는 하천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중에 은혜는 꼭 갚고 싶었어.

내가 두 번째 생을 얻은 건 몇 년이 지나서야.

어느 날 정신이 들어보니 다시 고양이의 삶을 살고 있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길을 건너는데 말이야,

아, 나란 고양이의 인생은 정말 기구하기도 하지.

갑자기 차가 들이닥쳐서 또 요절을 하고 말았네?

그런데 이번에는 나 혼자 죽은 게 아니야.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안고 죽은, 아니다, 죽진 않았다.

하여간에 그 여자가 나를 안고 사고를 당한 거야.

그 여자가 한 용감한 일에도 불구하고, 난 뭐 죽었지만 어쩌겠어.

그런데 그 여자가 나를 위해 해준 일은 고맙잖아.

난 은혜를 아는 고양이거든.

고양이는 원래 은혜를 알아.

사람들이 제멋대로 고양이가 정이 없다 어쨌다 개가 더 낫다 하지만 고양이도 은혜는 안다고.

그래서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그 병원을 찾아갔었어.

어떻게 알고 갔느냐고?

난 죽었으니까 못할 것이 없지.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의 혼은 많아.

물론 재수 없는 개의 혼도 많지만.

그런데 이 여자가 자살을 시도한 거야.

헐.

그래도 이 여자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진 않아서 죽지는 않았어.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이 여자를 죽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죽었긴 했지만 그래도 날 살리려고 한 여자인데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 싶었을 때, 그 남자아이가 생각났어.

내 첫 번째 주인 말이야.

그래서 그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나 찾아가 봤더니 얘도 사는 게 영 아니더라고.

그래서 이 친절한 나비님께서 그 멍청한 두 사람을 친히 이어주기로 결심했지.

내 생명의 은인인 두 사람이 서로 좋은 인연을 맺으면 좋잖아?

그래서 고양이의 마법을 살짝 부렸다고나 할까?

고양이가 마법도 부릴 수 있느냐고?

모르는구나?

까만 고양이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괜히 옛날 사람들이 검은 고양이가 마녀의 조수라고 말한 게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마녀 밑에서 일했다는 소린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런데 인연은 인연인지 두 사람, 지금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눈만 마주치면 아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니까.

저런 식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다 보면 곧 아이도 생길 거야.

아주 많이 생길 거야.

그건 참 좋은 일이지.

“앗, 고양이다.”

어, 그녀가 날 발견했어.

“야오옹.”

이러면 또 귀엽게 울어주는 센스.

“주인님. 우리 이 고양이 키울까요?”

그녀의 옆에는 생산적인 내 첫 주인이 서 있네?

두 사람 몸에서 풋내가 나는 거로 봐서 또 생산적인 일을 하고 산책을 나왔구나?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음란한 커플이라니까.

“그럴까? 까만 게 귀여운데?”

내 첫 번째 주인이 또 날 주우려고 하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생명의 은인도 합세하고 말이야.

역시 이 두 사람과 나는 인연은 인연인가 봐.

“야옹.”

그럼 신세 좀 져볼까?

세 번째 다시 사는 고양이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할지 모르겠다는 이 예감은 뭘까?

“이름을 뭐로 하지?”

“나비 어때요? 나비?”

하, 작명 센스하고는.

어째 두 사람이 똑같냐?

하지만 뭐, 나쁠 건 없지.

“야아옹.”

마음에 들진 않지만 허락한다는 뜻으로 살짝 울어준다.

난 마음이 너그러운 고양이니까.

그런데 두 사람, 어딜 가는 중이었지?

나를 품에 안은 음란 커플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집 쪽은 아니라는 것.

“안녕하세요, 교수님.”

사람들이 내 첫 번째 주인을 보며 인사를 해온다.

아, 첫 번째 주인이 일하는 대학이구나.

두 번째 주인이 다니는 대학이기도 하고.

오호, 이 두 사람 좀 보게.

아주 보란 듯이 손을 꼭 잡고 다니잖아?

‘우리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아주 광고를 하는구나, 광고를.

응?

저 여자는 누구지?

저기서 우리를, 아니, 내 두 주인님을 째려보는 저 여자는 누구지?

아, 윤 조교.

내 첫 번째 주인을 짝사랑하던 그 여자.

이봐, 처자.

이미 배는 떠났으니까 그만 냉수 마시고 정신 차려.

이 남자는 임자가 있는 남자니까.

“윤 조교님이 노려보고 있어요.”

내 사랑스러운 두 번째 주인님이 첫 번째 주인의 귀에 속삭인다.

승리자의 목소리다.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 한 주제에 첫 번째 주인 놈, 아니, 주인님이 두 번째 주인님의 허리를 팔로 감아 바짝 끌어당긴다.

이건 바로 전설의 염장질?

그리고 두 사람이 내 눈앞에서 다정하게 키스했다.

키스하는 두 사람 주위에서 부러움에 가득 찬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꺄악. 교수님, 너무 야해요!”

“교수님, 너무하신다. 애정질이 장난 아니잖아요!”

하지만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끈적하고 뜨거운 키스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아!

내 머리 위에서 키스하지 말라고!

울려 퍼지는 고양이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겠지만.

『고양이가 아니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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