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그리고 어느 날
하늘이 서서히 흐릿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흐려지는 하늘빛에 집으로 돌아가는 시언이 발걸음을 서두른다.
뺨에 와서 부딪치는 바람은 뼛속까지 얼려 버릴 듯 차가웠다.
코트 자락을 꽉 여미고 걸음을 서두른다.
서두르는 걸음이 찍어낸 발자국이 얼어붙은 거리에 흔적처럼 남겨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려댈 듯 흐린 채였고 아마도 오늘 밤이나 내일쯤은 올해의 첫눈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또다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의 겨울이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진 지 두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아, 손 시려…….”
시언이 빨갛게 언 손가락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온몸을 감싸는 훈훈한 공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아무렇게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랜만에 카레를 해먹기 위해서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온 카레 재료들을 늘어놓고 그때부터 손길이 분주해진다.
덜그럭거리는 소리, 물 끓이는 소리, 그리고 서서히 풍겨나는 카레 냄새.
따뜻한 겨울의 냄새였다.
손을 닦은 다음 시언이 허리에 감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두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연다.
집 안 가득 차 있는 카레 냄새를 빼기 위해서였다.
아직 저녁 5시.
손님들이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2년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시언에게 주말에 같이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실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거리 펫샵의 직원들이다.
처음 개다래나무와 캣닢을 사기 위해 들렀다가 인연이 되어, 그 후에는 가끔 시언이 펫샵에 들러 고양이들을 구경하며 조금씩 친해진 것이다.
사람과 사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시언이지만, 고양이에게 친절한 그 직원들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은 주말에 이렇게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친구들이 오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그 차가운 바람을 살짝 즐겨본다.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렇게 싫었던 찬바람이 이젠 조금 반갑다.
음식을 익히는 열기 앞에서 땀을 조금 흘렸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그다음은 뭘 할까…….
맥주는 그 친구들이 사오기로 했다.
맥주를 마시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이 사라지면 헤어진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근처 편의점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 돌아와 밤새 혼자 영화를 보면, 그것으로 주말이 끝나 버린다.
눈이 내리면 길이 질퍽거릴 것이다.
눈이 내리면…….
“…….”
입술 안에서 소리 나지 않게 이름 하나를 불러보다가 이내 입을 다물어 버린다.
불러도, 아무리 불러 봐도 닿지 않는 이름이라면 부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애가 타게 불러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이름이라면.
이미 부를 만큼 불렀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찾을 수 있는 만큼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다시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다시 봄이 오고 여름, 가을이 지나고 두 번째 겨울이 되었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수없이 계절이 반복되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돌아올 그녀였다면 벌써 돌아왔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도 문득 생각해 본다.
혹시 그것이 꿈은 아니었을까 하고.
만약 꿈이었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꿈이건 현실이건 더 이상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젠 누가 문을 노크해도 반갑게 뛰어나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더 이상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채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체념.
2년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다.
체념.
“미요…….”
입술이 열리며 조용히 그녀를 불러본다.
조용히, 조용히 불러보는 입술 위로 소리 없이 눈물이 타고 흘러내린다.
“주책없게…….”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찬바람을 들이마셨다.
미요야…… 넌 내가 우는 걸 바라지 않겠지. 넌 네가 없다고 내가 우울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겠지? 봐, 너 없어도 난 잘살고 있어.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 여전히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고 이렇게 잘살고 있어. 울거나 그렇게 하지 않고 말이야. 주책없게 울거나 하지 않고 정말 잘살고 있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전혀 외롭지도 않게……. 하나도 외롭지 않아. 하나도 쓸쓸하지 않아. 조금도…… 아프지 않아…… 보고 싶지도 않아…… 네 생각 따위 조금도 안 해…… 네 얼굴 이제는 기억도 못해…… 아니, 기억 안 할 거야. 절대로…….
다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낼 때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열려 있어요!”
펫샵 친구들이 왔을 것이다.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눈물 자국을 지워야 했다.
빨갛게 변한 눈을 들키기 싫었다.
외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두 번째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 * *
“어, 눈이다.”
이마에 뭔가 차가운 게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하나씩 떨어지고 있는 작은 눈송이들이 거리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손등에 떨어져서 녹아내리는 눈송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시언이 거리를 둘러봤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겨울의 밤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인적도 거의 없었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다.
원래 예정은 저녁을 먹고 9시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일정이었지만 사람이 술이 들어가면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잔뜩 마시고 취해서 그의 집에 널브러진 손님들은 아마 내일 아침까지 먹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내일 아침에 그 손님들을 먹일 도시락을 미리 사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손에 든 편의점 봉투 안에는 도시락과 우유, 그리고 주스가 들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마주친 행인은 거의 없었다.
운이 좋아야 취객이나 늦게 귀가하려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 정도일까.
“첫눈이네 첫눈.”
그다지 감흥도 없는 목소리로 시언이 중얼거렸다.
첫눈에 들떴던 게 언제였던가 싶다.
걸음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시언의 머리 위로 하얀 눈송이가 소복소복 내려앉고 있었다.
“눈 싫다. 내일 출근길 미끄러울 텐데…….”
걸음 자국마다 살며시 새하얀 눈이 덮여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밤을 감싸 안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하아…….”
머리 위에 어느새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털 생각도 하지 않은 여자의 시선이 불 꺼진 2층의 거실 창에 가서 멎었다.
12시가 가까워진 시간.
벌써 잠이 든 것일까?
하긴 시간이 늦었다.
충분히 잠이 들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층계를 천천히 밟아 올라간다.
2층을 올라가자 주방 쪽의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은 것은 아마 환기를 위해서일 것이다.
조심성이 없다.
혹시 밤에 도둑이라도 들면 어떡하려고 창문을 열어놓는가 말이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거실에는 불빛이 없었는데 주방 창으로는 불빛이 보인다.
그리고 그 불빛에 비쳐 집 안의 풍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막 욕실에서 나온 듯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은 채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여자의 옆모습에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그 소파는 예전에는 그녀와 그녀의 다정했던 주인이 사랑을 속삭이던 소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여자가 앉아 있다.
그녀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옆모습이 이제는 그녀가 이곳에 있을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렇구나……. 주인님, 다른 좋은 사람이 생겼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그랬구나. 우리 주인님은 다정한 분이니까 틀림없이 좋은 분이 옆에 생겼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2년도 넘게 돌아오지 않는 나 따위는 기다리지 않고 미련 없이 다른 사람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가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잘하셨어요, 주인님. 잘하신 거예요.
잘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쓸쓸함에 가슴이 저리다.
어쩌면 여전히 자신을 기다려 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이 서러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며 가슴이 서러워졌다.
하지만 서러워도 걸어야 했다.
여기서 머뭇거리다 그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였다.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먼발치에서라도 주인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제가 너무 늦은 거겠죠. 너무 늦게 와서…… 너무 늦었으니까 이제 보고 싶다는 제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겠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으며 그녀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행복하세요, 주인님…….’
한 번 더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방의 작은 창을 바라보던 그녀가 몸을 돌려 발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 층계를 내려와 하얗게 눈이 쌓이기 시작한 거리를 걸어갔다.
그녀의 뒤로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응? 뭐지?”
집으로 돌아온 시언이 맨션의 입구에서 멈춰 섰다.
입구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눈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은 시언의 2층 거실 창이 올려다보이는 바로 아래에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마치 누가 아래에서 그의 거실을 올려다본 것처럼 말이다.
작은 발자국이었다.
별것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맨션 입구로 들어간 시언이 2층의 층계로 올라갔다.
그리고 현관을 향해 걸어가다 문득 발을 멈췄다.
주방 쪽의 창문이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놀러 와서 함부로 남의 욕실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쓰고 있는 손님들이 보인다.
소파에 머릿수건을 감고 있는 애견 미용사 여자와, 지금 막 욕실에서 나오고 있는 펫샵 주인 남자.
또 멋대로 욕실을 쓰고 있네…….
지난번에 주의를 줬는데도 또 저런다.
말없이 고개를 젓던 시언이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가 서 있는 바닥에 물기 어린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았다.
누군가 눈을 밟고 들어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 듯한 발자국.
이런 시간에 누가 여기에 왔을까?
올 사람이 없다.
게다가 이 위치라면 안을 들여다보고 서 있다가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런 시간에 일부러 2층까지 올라와서 안을 엿보다가 돌아가 버린 발자국의 주인.
문득 시언이 맨션 밖,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찍혀 있던 발자국을 떠올렸다.
자신이 있을 거실을 올려다보다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말없이 돌아가 버린 작은 발자국.
설마…….
시언의 손에서 편의점 봉투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시언이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층계를 뛰어내려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거리로 달려 나갔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이미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남아 있던 발자국은 지워진 지 오래다.
펑펑 내리는 눈에 발자국이 덮여 버려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시언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쫓아가서 잡아야 했으니까.
더 멀리 가기 전에, 더 멀리 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전에…….
그전에…….
“이 바보야!!”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봤지만, 밤의 어둠을 감싸 안고 내리는 눈이 소리마저 삼켜 버린다.
“이 바보 고양이야!! 어디에 있어?!!”
주택가를 빠져나와 큰길까지 달려 나온 시언이 사거리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러도 10m도 뻗어 나가지 못하는 소리를 누가 들을 수 있을까.
“어디 있냐고!! 주인님이 부르잖아!! 주인님이 부르는 데도 안 오는 바보 고양이가 대체 어디에 있어!!”
두 번 세 번 있는 힘껏 목이 터지라고 부르다가 다시 오른쪽 길로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다가 눈에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달렸다.
이미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있어?! 어디 있느냐고! 제발, 제발 좀 나타나란 말이야!’
달리고 또 달려도 어둠이 내린 눈 덮인 하얀 거리만 이어져 있을 뿐.
마침내 시언의 발이 힘없이 멈췄을 때,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눈도 멈췄다.
시언도 멈추고 눈도 멈추었다.
“바보…… 바보 고양이…….”
지친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시언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눈 위에 시언이 내놓은 발자국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다.
‘아닐 수도 있어.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한 거야. 미요가 왔다면 그냥 갈 리가 없잖아. 그래, 미요가 아니야.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시언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흘러나왔다.
터덜터덜 돌아오던 시언의 눈앞에 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잡힌 것은 그때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가까워지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익다.
돌아서 있는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눈에 익다.
꼬리도 없고, 쫑긋한 귀도 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눈에 익다.
그립도록 눈에 익다.
“아…….”
천천히 돌아서는 그 모습이 낯익다.
알고 있는 눈동자, 알고 있는 콧대, 그리고 알고 있는 입술…….
내내 그리웠던…….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천천히 돌아선 그녀가 작게 말했다.
“그냥 가려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요……. 그래서 혹시나 절 찾고 있는가 해서…….”
그녀가 수줍게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고양이 손이 아닌 손을 애처롭게 붙잡고 불안한 눈동자로 애써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앞으로 시언이 한 걸음 다가섰다.
“꼬리는 어디 갔어?”
“사라졌어요…….”
“귀는?”
“그것도…….”
“젤리 손바닥도 사라졌겠네?”
“네…….”
“면도는 하고 있어?”
시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얼굴을 물들인 채로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쁜 고양이구나.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멋대로 털까지 기르고.”
“주인님…….”
“고양이는 가출한다는 말이 맞았어.”
“저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그녀를 시언이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세찬 심장의 박동이 지금 이 순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미요…….”
“주인님…….”
서로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가슴으로, 끌어안은 팔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서로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상대의 눈동자 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서로 등에 닿은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를 확인하면서 시언이 그녀의 입술을 덮어버렸다.
포근하게 겹쳐지는 입술에 잠시 숨을 멈춘 그녀가 천천히 시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서로 숨결이 뒤엉키는 입안에서 혀를 휘어 감았다가 놓으며 시언이 그녀의 눈가에 속삭였다.
“하루만 늦게 돌아왔어도 다른 고양이를 들이려고 했는데, 내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는 거야.”
그것이 시언이 그녀의 입술을 다시 덮기 전에 속삭인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하얗게 눈이 덮인 자정의 어느 골목 어귀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이 있었다.
마치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이, 상대를 놓으면 그게 끝인 것처럼 서로 소중하게 끌어안은 두 사람이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누며 그렇게 서 있었다.
첫눈이 내리던 그 새벽에, 그 하얀 첫눈이 온 세상을 덮던 그날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