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되돌아온 자리
“선생님! 808호 환자가 의식이 돌아왔어요!”
호들갑을 떨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간호사가 외치는 소리와 다급한 발소리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뛰어 들어오는 사람들.
내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이것이 내가 새하얀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본 풍경이었다.
올려다본 천정은 온통 흰색.
옆을 봐도 흰색.
온통 하얀색의 병실.
그 병실의 병상 위에 내가 누워 있었다.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그 이유가 다 기억났다.
나, 사고를 당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트럭에 치였다.
고양이를 구하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의사의 말로는 다리가 다시 회복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은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재활 훈련을 하자고 하셨지만 난 싫었다.
모든 것이 싫었다.
사고 전부터 사귀고 있던 남자 친구마저 내 곁을 떠났다.
다리병신이 된 여자 친구는 싫다며 내 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평생 걷지 못하는 삶.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살고 싶지 않았다.
왜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죽고 싶어서 엄마가 자리를 비운 틈에 과일을 깎아주던 과도로 목을 찔렀다.
손목을 자르면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목을 찔러 버렸다.
그리고 하얀 시트를 적시는 붉은 피를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것이 기억을 잃기 전의 나였다.
고양이가 되기 전의 나였다.
죽고 싶어 하는 나.
걷지 못하는 나.
모든 사람에게 민폐 거리가 된 나.
세상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나.
그리고 지금, 그런 나로 되돌아왔다.
한 달 좀 넘는 짧았던 외출을 끝내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
꿈만 같았던 시간이 깨어지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던 현실로 돌아왔다.
그건, 꿈이었을까?
고양이가 되었던 것은 꿈이었던 것일까?
걷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꿈을 꾼 것일까?
아주 길고 행복한 꿈을 꾼 것에 불과하다면…….
세상 어디에도 주인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주인님은 내 꿈속에만 존재하는 분이라면…….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 주인님께로…….
꿈이라도 좋다.
되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 주인님께로 되돌아가고 싶다.
이대로 다시 눈을 감으면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립고 그리운 내 주인님께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구, 이 녀석, 미호야.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질렀니!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옆에서 나를 붙들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문득 내 눈에서 주르륵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그리운 얼굴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주인님.
보고 싶은 주인님…….
* * *
“뭐라고 했니?”
의식을 되찾은 지 사흘째였다.
죽을 떠먹여 주던 엄마가 반색했다.
“재활 치료 받겠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가능성이 있다니까 한번 해보자, 응?”
절대 받지 않을 거라고 거부하던 재활 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10%의 지푸라기를 잡고 싶었다.
10%라도 좋았다.
잡을 희망만 있다면 뭐라도 좋았다.
두 발로,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면 주인님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주인님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 한 달간의 시간은 꿈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었다.
이 하늘 아래, 어딘지는 모르지만 주인님이 계신다.
서문대학교 건축학과 이시언 교수.
만약 그 한 달이 꿈이 아니었다면 그곳에 주인님이 계실 것이다.
서문대학교라면 내가 다니던 학교다.
그래서 그렇게 그 건물이 낯이 익었던 건지도 모른다.
꿈이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그곳에 주인님이 계신다.
그리고 날 찾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날 찾아 헤매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재활 치료라면 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로 주인님께로 갈 수는 없다.
적어도 내 두 다리로 주인님께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그게 주인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무엇이라도.
바람이 되어야 주인님께 돌아갈 수 있다면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야 돌아갈 수 있다면 구름이 될 수 있다.
고양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다.
주인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인님. 꼭 돌아갈게요. 그러니까 저를 기다려 주세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몸의 어디에도 이젠 쫑긋한 귀와 꼬리는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여자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