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고양이가 아니야
“으음…….”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온몸이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고 으슬으슬 떨렸다.
“교수님, 정신이 좀 드세요?”
누구 목소리?
미요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목소리일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윤 조교?”
학과 사무실의 윤 조교였다.
“네, 교수님.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열 때문에 잠깐 혼절하셨어요.”
혼절? 내가?
그런데 이 여자가 여기에 있다는 건…….
미요!
“미요는……?! 으윽…….”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현기증이 일어나 다시 눕고 말았다.
“고양이 말씀이신가요?”
고양이? 이상하다? 미요를 봤다면 고양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텐데. 놀라는 기색도 없고…….
“까만 고양이 말씀이시죠?”
윤 조교의 눈에는 미요가 그냥 고양이로 보였나?
그렇게 추측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고양이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아니, 내 눈에만, 나와 함께 있을 때만 사람의 모습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윤 조교의 말에 내 심장이 덜컥거렸다.
“밖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갑자기 무섭게 소리를 지르더니 밖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달아나?”
달아났다는 말에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미요가 달아났다는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교수님! 아직 열이 엄청 심하세요!”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윤 조교가 붙잡았다.
그런데 윤 조교가 내 집엔 왜 왔지?
평소에 윤 조교와 그렇게 친분이 가까운 것도 아니다.
오늘 오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점심을 거르려고 했는데 윤 조교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입맛이 없어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 정오가 넘어가면서 계속 나빠지던 몸이 결국에는 열이 오르며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오후의 강의를 취소하기 위해 윤 조교에게 대신 양해 공고를 붙여달라고 부탁한 것이 문득 생각났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여기까지 왔겠지만, 미요와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 타인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교수님, 고양이는 제가 찾아볼 테니까 교수님은 그냥 누워 계셔요.”
윤 조교가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허리를 꽉 잡고 등에 얼굴을 묻는 윤 조교의 행동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났다.
“윤 조교?”
이건 무슨 행동이지?
“교수님, 실은 전 오래전부터 교수님을…….”
나를?
오래전부터 나를 좋아해 왔다는 윤 조교의 말에 기쁘기는커녕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법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짝사랑해 왔다는 여자와 가까이 지내는 법은 더더욱 모른다.
“교수님…….”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윤 조교의 손에 깃든 욕정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이 여자는 지금 욕정을 품고 있다.
아픈 나를 살펴본다는 핑계로 내 집에 찾아와 지금 욕정 어린 손으로 나를 만지고 있다.
소름이 돋아났다.
내 몸을 만지지 마. 더 이상 내 몸을…….
내 몸을 만질 수 있는 건 내 고양이뿐이다.
내 고양이가 아니면 싫다.
“꺄악!”
등에 감겨 있던 윤 조교의 팔을 뿌리치며 걷어냈다.
“교수님?!”
뒤로 넘어진 윤 조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지만, 그런 윤 조교를 힐끗 내려다본 다음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것인지 함박눈이 골목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미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어디에 갔을까?
설마 오해한 것은 아닐까?
오해해서 달아난 것일까?
“미요……!!”
미요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골목을 걸었다.
혹시나 어느 구석진 골목에 숨어 있을까 싶어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면 전부 뒤지며 걸었다.
이마에서는 열이 뜨거웠고 현기증이 불쑥불쑥 일어났지만 이를 꾹 깨물고 참았다.
나는 그저 조금 아픈 정도이지만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미요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만약 미요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미요……!! 어디에 있어?!”
정신없어 걷다 보니 어느새 미요와 함께 산책을 하던 공원까지 도착해 있었다.
“미요!!”
소리를 질러보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이 틀림없다.
이 추운 날에 코트도 걸치지 않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정신없이 고양이를 찾고 있는 날 보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었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요를 찾지 못하면, 미요가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난 영영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
소리를 치려다 말고 문득 내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미요와 늘 앉던 벤치였다.
그 벤치 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둥그렇게 쌓인 눈 뭉치.
“설마…….”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미요?”
가까이 다가가자 그 윤곽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하얀 눈에 덮인 까만 털.
“미요!!”
틀림없는 미요였다.
“미요!! 정신 차려!!”
미요를 덥석 안고 눈을 털어냈다.
미요의 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안 돼, 미요!! 정신 차려!!”
안 돼.
안 돼!
이렇게 미요를 잃을 수는 없다.
미요를 잃으면 나는…….
“제발 미요……! 날 버리고 가지 마……!”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와락 쏟아져 내려 미요의 얼어붙은 몸 위에 뚝뚝 떨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이렇게 울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잃을 수는 없었다.
소중한 것을 또 잃고 싶지 않았다.
“제발 미요…… 날 버리지 마…….”
젖은 목소리처럼 눈시울이 벌겋게 젖어 들어갔다.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차가운 미요의 털을 적시고 흘렀다.
그때였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미요가 가늘게 눈을 뜬 것이다.
“미요?!”
하지만 힘이 없는지 이내 눈을 닫아버린다.
“미요!! 정신 차려……!!”
“……인님…….”
눈을 뜰 기력도 없는지 감은 채로 미요의 입술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품에 안긴 미요는 고양이의 모습이었지만,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사람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주인님…….”
“미요…….”
“주인님이 우시면…… 제 마음이 아파요…….”
“미요, 집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내가 널 따뜻하게 녹여줄 테니까…….”
“주인님……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그분을…… 이젠 진짜 사람 연인을 만나세요, 주인님……. 고양이인 저는 잊어버리시고…….”
마음이 저려왔다.
미요, 넌 그런 생각을 하고 여기서 이렇게 차가운 눈을 맞고 있었구나.
나를 위해서 여기서 이렇게 차갑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구나.
나를 위해서…….
“아니야, 미요.”
하지만 미요,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아니야, 미요. 고양이가 아니야.”
나에게 있어 넌 고양이가 아니야.
처음에는 고양이였는지 몰라도, 널 데려왔을 때는 그저 고양이였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지금의 넌 고양이가 아니야.
고양이가 아니라…….
내게 있어 너는 고양이가 아니라…….
“넌 내 연인이야, 고양이가 아니라.”
드디어 말해 버렸다.
아니, 더 빨리 말했어야 했다.
미요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더 빨리 알려줬어야 했다.
그런데 바보처럼 너무 늦게 고백해 버렸다.
“주인님……?”
미요가 다시 눈을 흐릿하게 뜬다.
그런 미요를 품 안에 꼭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미요…….”
아아, 그렇다.
난 미요를 사랑하고 있다.
고양이가 아닌 연인으로 사랑하고 있다.
“널 사랑해, 미요…….”
내 단 하나의 연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만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