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주인님에게서 떨어져!
“으응…….”
졸린 눈을 들어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큰일이다.
주인님이 출근하실 시간이 지났다.
어젯밤 늦게까지 야한 짓을 하느라 새벽에 잠이 들었던 것이 문제였다.
“주인님! 벌써 아침…….”
“괜찮아…….”
주인님의 손이 내 어깨에 툭 하고 올려진다.
처음 듣는 주인님의 나른한 목소리였다.
주인님은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기 때문에 이런 졸음 섞인 나른한 목소리는 처음이다.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쉬는 날이야…….”
아, 토요일.
그렇다, 오늘은 주인님이 출근하지 않는 날.
마음껏 주인님과 침대에서 뒹굴어도 되는 날이다.
하루 종일 혼자서 주인님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
“주인님, 수염이 자라 있어요…….”
처음 보는 주인님의 턱수염.
그런데 그 턱수염이 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입술이 겹쳐졌다.
“응…….”
내 등으로 손을 두른 주인님이 나를 바짝 끌어안고 키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입술을 빠는 부드러운 키스에 이어, 이내 젖은 혀가 입술을 벌리고 들어와 내 혀를 단단히 휘감아 버렸다.
“으응, 응…….”
질척한 소리가 날 정도로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
숨도 못 쉴 정도로 격렬하게 키스하던 주인님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더니, 주인님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미요…….”
목소리만으로 등줄기에 전기가 흐른다.
“아…….”
난 그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배꼽 아래에 단단한 것이 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주인님의 그곳이 단단해져 있었다.
“느껴져?”
주인님이 허리를 쓰윽 밀어붙인다.
“으응…….”
“하고 싶어?”
“아, 아침이잖아요, 주인님…….”
“원래 이런 건 아침에 하는 거야.”
주인님의 노골적인 유혹에 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불 속의 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그런 내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주인님이 살짝 벗겨냈다.
“아응…… 추워요, 주인님…….”
이불이 벗겨지자 몸을 부르르 떨며 주인님을 쳐다봤다.
“추워? 그러면 따뜻하게 해주면 되는 거지?”
주인님이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아앙…… 주인님…….”
주인님의 손이 내 다리를 붙잡아 벌린다.
다리를 활짝 벌리게 되자 부끄러운 나머지 고양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내게 주인님이 천천히 몸을 겹쳐왔다.
벌어진 채로 벌름거리는 입구에 젖어 있는 주인님의 분신 끝이 와서 닿았다.
“하으응…….”
입구가 열리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흔들었다.
딱딱해진 주인님의 그것이 내 입구를 쿡쿡 찔러왔다.
장난스럽게 입구를 찌르던 주인님의 그것이 움찔거리며 애액을 흘리고 있는 내 젖은 속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아아아앙!”
“전부 들어갔어, 미요.”
귓가에 주인님의 숨결이 닿았다.
“엄청 조이는걸, 미요?”
“하으응…… 몰라요…….”
부끄러운 말을 던지는 주인님의 시선을 피해 가쁜 숨을 흘려냈다.
내 양쪽 무릎을 안아 든 주인님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에서 주인님의 기둥이 휘젓기 시작하자 쾌감이 발끝에서 가슴 끝까지 밀려 올라왔다.
“아앙! 아아앙!”
주인님의 움직임이 격렬해지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안쪽이 휘저어지고 있어……!
잠이 덜 깨 나른하던 몸에 전기가 흘렀다.
“아앙! 아아아앙!”
그때 주인님이 허리를 떨었다.
그리고 동시에 몸속에서 뜨거운 것이 터졌다.
“하아앙……!”
평소보다 일찍 절정을 맞이한 주인님의 기둥이 내 안에서 주르륵 빠져나갔다.
“주인님, 벌써…….”
“미안, 미안. 아침이잖아. 아침에는 급해지니까.”
주인님이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맞춰준다.
“아침에는……그런가요……?”
한 번도 아침에는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남자는 원래 아침에 좀 약해.”
다정하게 웃으며 주인님이 내 등 뒤로 팔을 두른다.
“자, 아침이니까 같이 씻자. 내가 닦아줄게.”
주인님은 날 닦아주는 걸 좋아하신다.
물론 내가 물을 무서워하니 최대한 물이 닿지 않게, 물수건으로 깨끗하게.
“네?”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욕실까지 주인님의 품에 안겨 들어와 깨끗하게 물수건으로 닦아진 다음 주인님께서 내게 한 말 때문이었다.
“여기를 면도하고 싶어.”
주인님의 손가락이 나의 새카만 체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꼬리털처럼 새카만 체모였다.
“며, 면도라니, 주인님…….”
“깨끗하게 면도해서 매끈매끈한 미요의 야한 속살을 보고 싶어.”
“하, 하지만…….”
쉽게 허락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데 안 되겠어? 미요?”
하지만 부탁이라는 주인님의 목소리에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 그럼 여기에 누워, 미요.”
바닥에 타월을 깔아주며 주인님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타월 위에 누운 다음 양다리를 크게 벌렸다.
“자, 더 크게 벌려. 그래야 잘 깎을 수 있으니까.”
“으응…… 부끄러워요…….”
한껏 다리를 벌리자 주인님이 면도기와 거품을 손에 들었다.
주인님의 손에 들린 면도기가 무서웠지만, 주인님의 얼굴에 담긴 미소에 겨우 안도했다.
주인님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괜찮아, 난 주인님을 믿어.
귓가에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차가운 것이 아랫도리에 닿았다.
“끝났어, 미요.”
주인님이 물수건으로 면도를 끝낸 곳을 닦아내고 있었다.
“끝났어요, 주인님?”
“그래, 한번 볼래? 굉장히 귀여워.”
주인님이 두 팔로 나를 안아 올렸다.
“꺄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나를 번쩍 안아 든 주인님이 거울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소변을 보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자세로 주인님께 안긴 내 모습이 거울에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귀엽지?”
주인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거울에 비친 내 그곳은 매끈매끈 깨끗했다.
“귀, 귀엽지 않아요…….”
귀엽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
“내가 보기엔 귀여운데?”
웃으며 나를 전신 거울 앞에 내려놓은 주인님이 손가락으로 조금 전에 면도한 곳을 더듬었다.
“하읏…….”
거울을 통해서 내 그곳을 더듬고 있는 주인님의 손가락이 전부 보였다.
다리 사이의 중심 안으로 주인님의 손가락이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앗! 흐응……!”
허리가 튀어 올랐다.
그곳을 애무하는 주인님의 손가락이 너무 짜릿했다.
어쩌면 체모가 사라져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너무 예뻐, 미요.”
귓가에 속삭이며 주인님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젖은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하읏…… 주, 주인님…….”
손가락이 들락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다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음란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짓궂게 속삭이며 주인님이 내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긴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아직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이라서 주인님이 일찍 끝내 버린 탓에 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주인님을 더 원하는데…….
이렇게 몸을 뜨겁게 만들어 버리고 나 몰라라 해버리는 주인님이 얄미워.
“우리 미요, 표정이 왜 이렇게 샐쭉하지?”
다 알면서.
다 알고 있으면서, 주인님은 짓궂다.
“자, 나가서 아침 먹자.”
정말 이대로 끝내시려고요?
정말?
정말 이대로 끝?
그럴 수는 없어!
“주, 주인님!”
다급한 나머지 주인님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욕실 밖으로 나가려던 주인님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돌아본다.
“왜?”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용기를 냈다.
괜찮아.
난 고양이니까 이 정도 애교쯤은 괜찮아.
“저어…….”
세면대에 기대어 천천히 다리를 크게 벌렸다.
그리고 깨끗하게 면도되어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음란한 곳을 주인님께 보여주었다.
아직도 물기가 어린 음란한 꽃잎을 벌려 그 안의 좁고 붉은 구멍을 주인님께 전부 내보였다.
좁고 붉은 구멍이 꿈틀거리며 주인님을 유혹했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지?”
다 알면서 약 올리는 주인님.
너무 얄밉지만, 또 너무 사랑스러운 것은 내 눈에 콩깍지가 꼈기 때문일까?
“하, 핥아주세요. 주인님의 혀로…….”
“핥아주는 건 고양이가 하는 거잖아. 우리 발칙한 고양이는 고양이가 해야 할 것과 주인님이 해야 할 것도 모르는 바보 고양이라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걸까?”
“그, 그루밍이라구요, 그루밍.”
그래, 이건 그루밍이야. 다만 내 혀가 짧아서 나를 핥지 못하니 주인님이 당연히 주인 된 도리로 내 몸을 그루밍해 줘야지.
“그루밍?”
주인님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성큼 다가선 주인님이 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난 깜짝 놀라 주인님의 가슴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러면 침대에서 그루밍할까?”
꺅.
좋아요, 아주 좋아요.
나를 침대로 데려간 주인님이 천천히 내 다리를 벌렸다.
나는 주인님의 혀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겨우 숨을 내쉬었다.
내 은밀한 구석을 샅샅이 핥고 빨아줄 주인님의 혀, 그 혀를 기다리며 다리를 벌린 채 주인님을 올려다봤다.
“으응…….”
주인님의 손가락이 내 꽃잎을 벌리고 그 안으로 천천히 혀를 밀어 넣었다.
“하읏…… 주인님…….”
원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아찔한 뜨거움.
내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며 주인님이 내 샘물을 빨아 마셨다.
꽃잎을 물어뜯듯이 애무하는 주인님의 입술 안에 뜨거운 물이 왈칵왈칵 쏟아지는 걸 나 역시 느낄 수가 있다.
“아아! 주인님……! 아아!”
뜨겁게 소리 지르는 내 다리 사이에 주인님이 얼굴을 파묻었다.
겹쳐진 속살을 벌리고 그 안의 붉은 살점을 자극적으로 빨아올리면서도 손가락으로 나의 민감한 돌기를 문지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인님의 음란한 애무에 점점 달아오르는 내 몸 안에서 뜨거운 물이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아아! 주인님! 미칠 것 같아요! 너무 뜨거워! 아아아!”
나를 다리를 활짝 벌린 채로 허리를 떨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젖은 소리를 내며 내 음부를 빨던 주인님이 들썩거리는 내 엉덩이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내 음부에 코를 박고 힘껏 빨아들인다.
“아읏! 아아! 아아아!”
물어뜯듯이 음부를 빨아들이는 주인님의 타액과 내 애액이 범벅이 되어 시트를 적셨다.
“하아…… 하아…….”
마침내 주인님이 내 다리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나는 뜨거워진 전신을 떨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열기가 오른 내 눈에 바지를 벗는 주인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엎드려 봐.”
“으응…….”
흥분해서 팽팽하게 부푼 주인님의 검붉은 페니스에 나까지 덩달아 입안에 타액이 고였다.
주인님의 말대로 주인님께 엉덩이를 내보이며 엎드리자, 주인님의 손이 쳐든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하읏…….”
빨리 넣어주기를 바라며 실룩거리는 내 엉덩이를 주인님이 살짝 깨물었다.
“아앙.”
엉덩이를 살짝 깨문 주인님이 혀로 엉덩이를 핥다가, 아래로 손을 넣어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내 젖은 계곡을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두 개의 손가락이 젖은 꽃잎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 그 안에 감추어진 돌기를 문지른다.
“하읏, 읏, 주, 주인님…….”
참을 수 없는 자극에 나는 엉덩이를 흔들며 신음했다.
빨리 들어와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바람을 알아차린 듯 내 엉덩이를 잡은 주인님이 뜨겁게 젖은 계곡 안으로 단단하고 굵은 것을 쑤욱 밀어 넣었다.
“하아아아! 아아!”
뜨거운 살덩이가 뒤에서 밀려들어 오자 행복한 신음이 내 입에서 터져나왔다.
아찔할 정도의 쾌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뒤에서 주인님이 허리를 움직이며 한 손으로는 출렁거리는 내 젖가슴을, 그리고 한 손으로는 은밀한 돌기를 문질렀다.
“헉, 헉.”
“아아! 아아앙!”
주인님이 힘껏 허리를 쳐올리며 물건을 찔러 넣었다.
황홀감에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였다.
Rrrrr-
Rrrrr-
핸드폰 벨이 울린 것이다.
받지 마요, 주인님.
우리의 이 뜨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저런 전화는 받지 마세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주인님이 손을 뻗어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나와 연결된 채로 주인님이 애써 숨을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으응…….”
내가 엉덩이를 움찔거리자 주인님이 살짝 당황해서 손으로 내 등을 꾸욱 누른다.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다.
“아, 윤 조교. 무슨 일이야?”
심술이 났다.
나와 먼저 이것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곳에 관심을 빼앗기는 주인님 때문에 살짝 심술이 났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여자의 목소리라서 더 심술이 났다.
“그건 윤 조교가 알아서 해. 윤 조교, 그런 것 잘하잖아.”
윤 조교가 누굴까?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여자.
나 말고 다른 여자.
진짜 인간 여자.
그런 것 싫은데…….
“일정? 잠깐만. 스케줄표 확인을 해야 해서. 잠시만.”
어?
어어어어?
주인님이 내 안에서 몸을 빼냈다.
어? 이건 아니잖아요.
막 달아오르던 참에 이건 아니잖아요.
원망스러운 내 눈빛에도 주인님이 침대에서 내려가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재에서 들려오는 주인님의 통화 목소리에 갑자기 서러워졌다.
왠지 모르게 그 윤 조교에게 밀려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졌다.
이렇게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다 내가 주인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내가 사랑하는 만큼 주인님도 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건 역시 욕심일까?
주인님의 통화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웅크렸다.
이미 식어버린 다리 사이가 마음만큼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 * *
빠아아앙-!!
“꺄악!”
무서운 차 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헉…… 헉…….”
잠에서 깨어나 숨을 헐떡거렸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와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힌 걸 깨달았다.
“무서운 꿈을 꾸다니…….”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무서운 차가 나를 향해 덮쳐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껴져서 더 무서웠다.
진짜 차가 나를 향해 덮쳐온 듯한 느낌.
나, 기억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을 당한 걸까…….
갑자기 소름이 돋아났다.
오늘은 화요일.
그리고 지금은 오전 11시.
「오늘 밤에도 산책하자.」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주인님은 그렇게 말했었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자. 요즘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느라 큰길까지 나가면 굉장히 예뻐. 미요가 좋아할 만한 반짝거리는 것들이 잔뜩 있다니까.」
반짝거리는 것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주인님이다.
반짝거리는 것보다 주인님을 더 좋아한다는 걸 주인님은 알고 있을까?
산책이 즐거운 것도 주인님과 함께라서 즐거운 거라는 걸 알고 있을까?
주인님과 함께 지내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 달.
이제 겨우 한 달을 같이 지냈는데 마음은 일 년, 십 년을 같이 지낸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고 백지 상태에서 처음 본 것이 주인님이니, 내 삶은 주인님과 함께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기억에 없는 이전의 삶은 내 삶이 아니다.
지금이 진짜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대로 계속 주인님과 함께 살아가자고.
“주인님, 지금 뭘 하고 계실까…….”
주인님의 직장은 알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주인님의 책상 서랍 안에 주인님의 명함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문대학교 건축학 교수 이시언.』
그게 주인님의 명함이다.
“보고 싶다, 강의하시는 주인님 모습.”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짓궂은 호기심이 슬쩍 밀려 올라왔다.
고양이는 호기심 빼면 시체 아니던가.
“가볼까?”
물론 주인님이 강의하는 서문대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지만 찾아가 볼 수는 있다.
“좋아. 몰래 주인님을 훔쳐보고 오는 거야.”
그러다가 주인님 눈에 띄면 주인님과 함께 돌아오면 그만이다.
결심을 하자, 서랍 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양이가 되어버렸지만 이편이 움직이기에 더 좋으니 상관은 없다.
* * *
까만 고양이가 명함을 한 장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반응은 ‘꺄, 귀엽다’였다.
역시 난 귀여운 고양이.
“이 고양이, 주인을 찾아가나 봐.”
“똑똑해.”
한 무리의 지나가는 여대생들이 내 입에 물린 명함을 살펴보더니 손짓을 한다.
“우리 이 대학에 다니는데 같이 갈래?”
오, 빙고.
“말을 알아듣나 봐. 신기해.”
“나 고양이 키우고 싶다니까.”
여대생들의 수다를 들으며 그 품에 폴짝 뛰어올랐다.
주인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것은 별로였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 역시 주인님께로 가기 위한 과정이니까.
지나는 풍경을 유심히 봐두는 까닭은 돌아오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떤 건물이 있는지, 어떤 다리를 지나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기다 보니 어느새 대학의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건축학과 사무실은 저쪽이야.”
한 여대생이 손짓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야옹.”
고맙다는 뜻으로 예쁘게 한번 울어준 다음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녀들이 가르쳐 준 곳으로 달려갔다.
코너를 돌자 ‘건축학과’라고 쓰인 팻말이 내 눈에도 들어왔다.
이제 주인님이 강의하시는 강의실만 찾으면 된다.
어디에 계실까?
학과 건물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 전에 여기에 와본 적이 있었던 걸까?
처음 오는 곳인데 묘하게 눈에 익었다.
꼭 이전에 와본 것처럼 느껴지는 이 기시감은 무엇일까?
“야옹.”
하지만 묘한 설렘도 잠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내 발을 잡았다.
“점심? 약속은 없는데?”
주인님의 목소리였다.
역시, 정확히 찾아왔다.
주인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짝 고민했다.
내가 여기 왔다는 걸 알릴까, 말까?
알리면 주인님이 강의하시는 모습을 훔쳐보고 싶다는 내 야망(?)이 수포로 돌아가고, 알리지 않으면 주인님의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주인님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얼른 담 뒤로 숨어버렸다.
“윤 조교도 점심 약속 없어?”
“네. 그러니까 같이 점심 먹어요, 교수님.”
“난 그다지 당기지 않아서. 속이 별로야.”
“어머, 그거 숙취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교수님 안색이 안 좋아요.”
“숙취?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뭘. 그냥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감기는 초반에 잡아야 해요.”
주인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주인님 곁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윤 조교.
그 이름을 난 알고 있다.
주인님께 전화했던 그 여자다.
윤 조교라는 여자는 긴 생머리에 옅은 화장을 한 늘씬한 미녀였다.
주인님과 함께 걸어가는 그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려서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왔다.
주인님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켜. 주인님의 옆자리는 내 자리야. 주인님 옆에서 그렇게 웃고 있지 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뛰어나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고양이.
훌쩍.
눈물이 핑 돌았다.
주인님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른 여자와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괜히 왔다고, 괜한 짓을 해버렸다고 생각하며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 *
두근거리며 걸어갔던 길을 시무룩하게 돌아와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다 보니 어느새 밥 때가 지났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주인님과 그 여자의 다정한 모습만 눈에 어른거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주인님은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속이 상했다.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고양이라서 안 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주인님…….”
그때였다.
덜컹.
현관문이 열린 것이다.
“주인님?”
주인님이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현관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들어온 주인님이 그대로 침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인님?!”
문득 가슴에 불안감이 밀려 올라왔다.
주인님을 따라 침실로 들어가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다음 침대에 풀썩 쓰러진 주인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양복 상의가 구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님이 침대에 쓰러지셨다.
“주인님!”
깜짝 놀라 주인님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
“뜨거워…….”
감기에 걸리신 것일까?
「그냥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던 주인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병이 난 것이 틀림없다.
밤마다 날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얼음주머니를…… 아니, 약을…….”
허둥지둥 뭐라도 해보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 손을 가지고는 주인님을 위해 물수건도 짜드릴 수 없고, 죽을 끓여 드리지도 못한다.
게다가 약국에 약을 사러 가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이런 때에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 자신이 고양이라는 것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
눈을 뜨지 못하고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만 겨우 내쉬는 주인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서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세면대에 물을 틀고 물이 무서웠지만 눈을 질끈 감고 그 차가운 물에 꼬리를 적셨다.
“히익……!”
꼬리에 차가운 물이 묻자 몸에서 진저리가 쳐졌지만, 꾹 참았다.
물을 듬뿍 적신 꼬리를 손에 들고 다시 주인님께로 달려갔다.
“이렇게라도…….”
차가운 물에 적신 꼬리를 주인님의 이마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님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시 한 번…….”
다시 꼬리에 물을 적시기 위해 욕실로 달려가려고 할 때,
딩동-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다.
“아?!”
순간 당황해 버렸다.
주인님은 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난 반 고양이의 모습이다.
누가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습을 한 채로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딩동-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어떻게 하지?
허둥지둥거리다가 모자를 찾기 위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모자로 귀를 감추고 패딩으로 꼬리를 감춘 다음 문을 열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처 모자를 찾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주인님이 들어올 때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다.
“실례합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알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
윤 조교의 목소리였다.
어떡하지? 들켜 버리겠어……!
“실례합니다. 이 교수님?”
그녀가 왜 여기를 찾아왔지?
여긴 주인님과 내 공간인데…….
“이 교수님, 저예요. 윤 조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머, 교수님. 이 열 좀 봐.”
윤 조교가 주인님이 계신 침실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조심스럽게 방을 나와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걸어가 침실 안을 엿보자 주인님의 침대 옆에서 몸을 숙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늘씬한 몸매에 세련된 옷차림의 윤 조교가 주인님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안 돼! 하지 마……! 주인님의 몸에 손대지 마……!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
저 여자가 주인님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싫었다.
주인님은 나만의 주인님인데…….
그때였다.
“약을 먹을 수 있게 물을…….”
여자가 돌아선 것이다.
아!
들켰다.
저 여자에게 내 모습을 들켜 버렸다.
“어머.”
윤 조교가 나를 향해 놀란 눈을 떴다.
이제 어떻게 하지? 들켜 버렸어.
“예쁜 고양이가 있었네?”
응?
윤 조교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고양이?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어느 틈엔가 고양이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예쁜 고양아. 네 주인님이 감기 몸살로 많이 아프시니까 저쪽에 얌전히 가있을래?”
윤 조교가 나를 밀어낸다.
목덜미를 잡고 나를 대롱대롱 집어 든 윤 조교가 그대로 나를 소파에 내려놓았다.
“거기 얌전히 있어. 아픈 사람에게 고양이 털이 좋을 리가 없으니까.”
명령하듯이 내게 말한 윤 조교가 돌아서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물 한 컵을 가지고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로 안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 약 드세요 교수님.”
그녀가 주인님께 약을 먹이고 있을 것이다.
“누워 계시면 제가 죽을 끓여 드릴게요.”
그 말이 들려오고 얼마 후 그녀가 침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주방의 싱크대 앞에 서서 뭔가를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인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저 여자는 내가 주인님께 해드리고 싶었던 모든 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렌지 위에서 죽이 끓고 있는 동안에 그녀가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 안을 정리한 다음, 물수건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주인님의 곁에 앉아 주인님의 이마 위에 물수건을 얹어주는 그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
이것이 질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저 여자를 질투하고 있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저 여자를.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저 여자를 질투하고 있었다.
“교수님, 얼른 나으셔야지요.”
그녀가 다정하게 속삭이며 천천히 몸을 숙인다.
그녀의 입술이 주인님의 뺨에 닿는 것을 보는 순간 몸의 털들이 거꾸로 섰다.
“캬아아악(하지 마)!!”
BORI 공금갠소요게X
내 입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흉포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머?!”
갑작스러운 내 울음소리에 윤 조교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러니, 고양아?”
“캬아악(주인님에게 손대지 마)!”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저 여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에 불과했다.
결국은 고양이였다.
사람이 될 수 없는 고양이.
주인님의 옆자리에 설 수 없는 고양이.
문득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왈칵 밀려 올라오는 눈물을 참으며, 윤 조교가 들어오느라 살짝 열려 있던 현관으로 달아났다.
그대로 층계로 달려 내려왔다.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낄 수 없는 그 자리에 조금도 있고 싶지 않았다.
주인님에게 다정하게 다가가는 그 여자를 잠시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달아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주인님과 늘 산책하러 가던 공원에 이르러 있었다.
주인님과 함께 걸었던 길, 그리고 함께 앉았던 벤치.
벤치 위에 올라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처럼 잔뜩 찌푸려 있었다.
흑…….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인님…….
주인님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제야 겨우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주인님께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진짜 사람 여자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곁에 있으면 주인님이 사람 여자를 만나는 것에 걸림돌이 된다.
결국, 내가 주인님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어…….
절망적인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눈물로 젖어 있는 코끝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눈송이였다.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떨어진 눈송이가 코끝에서 녹아내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나둘 떨어지던 눈송이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간다.
그 함박눈을 맞으며 내 까만 털이 어느새 하얗게 변해갔다.
추워…….
주인님이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그 품을 떠올리며 벤치 위에 몸을 웅크렸다.
웅크린 몸 위로 하얀 눈이 덮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