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그 후 그들은 (17/17)

외전. 그 후 그들은

커다란 부부의 침대에 따스한 햇볕이 내리쬈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아델라는 인상을 구기며 뭐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잠꼬대 같은 거였다.

이저드는 아델라의 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아델라가 편히 잠을 못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어나서 커튼을 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아델라의 구겨졌던 미간이 펴졌다. 이저드는 그 모습을 웃으며 보다가 다시 그녀가 누워 있는 곁에 앉았다.

곧, 사락, 사락, 하는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침실 안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한참 책을 보고 있었을까? 잘 자고 있던 아델라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이저드를 올려다보았다.

“깼나.”

아델라는 눈을 몇 번 더 깜박였다. 이저드가 자신의 곁에 앉아 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씩 웃으며 이저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꿈 아니죠?”

“그럼.”

그는 책을 엎어 놓고 아델라의 머리를 쓸어 주며 웃었다.

“진짜 이저드다. 내 남편이네.”

아델라는 이저드의 허리를 더 꼭 끌어안으며 그에게 붙었다. 이런 아침을 맞아본 게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저드는 그런 아델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도 이런 여유로운 아침을 갖는 게 왜인지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이제 나흘째이기는 했지만.

“언제 오셨어요?”

“밤늦게.”

요즘 계속 일이 밀려 들어와서 그가 잠도 못 자고 일만 한 지도 벌써 나흘째였다. 그동안 이저드는 기사단에서 지냈기에 아델라와 이렇게 대화를 나눈 지 좀 된 건 사실이었다.

“절 나흘이나 독수공방하게 하시다니. 용서 못 해요!”

이저드의 허리를 안고 안 떨어지면서 부루퉁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해도 전혀 설득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델라는 화가 났다는 것을 어필했다.

이저드는 그런 아델라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는 아델라의 이마를 쓸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만회할 기회를 주게.”

고개를 이저드 쪽으로 박고 있던 아델라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살짝 얼굴을 들었다.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려던 아델라의 얼굴이 금세 풀어졌다. 남편의 근사한 얼굴을 보니 없던 화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항상 생각하지만, 이저드는 신이 공들여 만든 조각상이 아닐까? 그의 외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만개했다.

아델라는 결국 웃음을 못 참고 미소를 지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저드는 아델라에게 고개를 숙였고, 아델라는 이저드의 목에 팔을 둘렀다. 둘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꾹 도장을 찍듯 닿자, 아델라가 입술을 맞댄 채 웃었다.

“으음, 좀 부족한 것 같은데요.”

아델라의 작은 입이 투정 부리듯이 작게 오물거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입가에 아까부터 연신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모르겠다.

이저드는 작게 움직이는 아델라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곁에 앉혔다. 그 뒤에 이어진 깊은 입맞춤에, 아델라의 몸이 곧 다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어차피 누우라고 있는 침대이니 몸이 넘어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이대로 다시 누우면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이저드가 입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아델라는 그의 등을 탁탁 쳤다. 아델라의 그만하라는 신호에 이저드는 일단 멈추긴 했다.

“이저드! 입궁해야죠!”

아델라가 급하게 이저드의 준비를 도우려고 일어섰다. 반면, 이저드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는 아델라와 함께 일어서는 대신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이저드?”

“내가 그동안 왜 그리 열심히 일했는지 아는가? 하루라도 그대와 더 붙어 있고 싶어 그랬네.”

그 말인즉, 오늘은 아델라와 붙어 있겠다는 말이었다.

“휴가 받으셨어요?”

아델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저드의 품에서 벗어나 물었다. 그에 이저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요?”

“그래.”

한 번 더 확인한 아델라의 얼굴이 곧 활짝 폈다.

“어! 그럼! 그럼, 이럴 때가 아니에요!”

“음?”

갑자기 아델라의 표정에서 의욕이 넘쳐흘렀다.

“하루밖에 시간이 없잖아요. 하고 싶은 건 엄청 많은데! 우리 나가요! 나들이 가요!”

그녀는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다. 아델라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자, 이저드가 그녀를 잡았다. 그는 뭐가 그리 웃긴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저드가 그녀의 팔을 잡은 덕에 아델라는 다시 폭신한 배게 위에 머리를 뉘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델라는 잠시 멍하니 그를 보고 있었다.

“하루 아니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의 위에서 허락을 구하듯 짧게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닿는 입가나 얼굴이 간지러워서 아델라는 피시식 웃었다. 그 웃음이 신호라도 된 양, 아델라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약간 비낀 각도로 틈도 없이 닿은 입술 사이로 둘의 혀가 얽혔다. 아델라가 숨을 부족해 할 즈음에 이저드는 다시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맞췄다.

그녀의 치열을 훑던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음미하듯 맞댔다. 그녀의 윗입술을 머금고,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볼에, 그녀의 목에, 그녀의 모든 곳에 입을 맞추며 이저드는 한참이나 그녀를 탐했다.

그리고 아델라 또한 이저드의 입술을 탐하며 그를 받아들였다.

* * *

이저드의 청혼을 받은 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청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어서 결혼식을 올린 둘은 현재는 3년 차 부부였다. 둘의 나이는 어느덧 전생에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왔지만, 그때와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저드의 외모만 빼고!’

아델라가 첫 만남에 보고 반한 그 외모. 그 외모 하나는 여전했다.

아델라는 턱을 괴고 자는 이저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잡아먹을 듯 몰아붙일 때는 이 사람이 요 며칠 밤을 새운 게 맞나 싶었는데……. 곤히 자는 것을 보니 확실히 피곤하긴 했나 보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니까 말이다.

덕분에 아델라는 이저드보다 먼저 일어나 그의 외모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그의 외모는 여전히 전생과 똑같이 빛이 났고, 수려했다.

게다가 22살이 된 이저드는 확실히 전과는 비교되게 선이 굵어졌고 몸도 자라 이제는 완연한 성인 남자로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물론 그전까지도 남자라면 남자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남성적인 매력이 확실해졌다고 할까.

‘이러니까 맨날 티 파티에 가면, 부인들이 그렇게 이저드 안부만 묻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솔직히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것에 넋을 놓고, 아름다운 것을 찾고, 혹은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남편이 되니까 아델라는 아주 곤혹스러웠다. 유부남에다가 부부 사이가 그렇게 좋다고 소문이 났는데도, 이저드에게 추파를 던지는 이들이 만만찮았다.

거기에다가 온갖 로맨스 소설에서 이저드의 이름이 등장해, 무심코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었다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난 그런 것들만 집어 드는 걸까? 하여간,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꼭, 꽝이더라.’

원래 그녀는 로맨스 소설을 평소에 잘 안 읽는데, 귀부인들이 하도 재밌게 읽었다고 해서 집어본 거였다. 그런데 읽으려고 펴 본 책의 남자 주인공이 전부 이저드여서 학을 떼고 다시 내려놓곤 했다.

사실 로맨스 소설은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거라 귀부인들은 멀리하는 편이었지만, 다들 암암리에 몰래몰래 읽고는 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티 파티에 만나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에 못 껴서, 호기심에 아델라도 몇 권 사 본 것이었다.

‘이저드를 왜 굳이 소설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

아델라는 꼬물꼬물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이저드를 안았다.

‘이렇게 잘생긴 실물이 옆에 있는데.’

이렇게 온기가 느껴지고 맨살이 닿을 수 있는 실물이 있는데 굳이 로맨스 소설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파티에서 또 책을 추천받았다. 뭐라고 했더라. 외로울 때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 했다. 엄청 비밀스럽게 전해 주기에 무슨 금서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때는 남주인공이 이저드가 아니라 받아들긴 했는데…….

‘어? 근데 그거 어디 있지?’

아델라는 고개를 빠끔히 들어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분명, 어제 읽다가 이게 무슨 로맨스 소설이냐며 혼자 따지며 한쪽에 치워 두고 잔 것까지는 기억에 있었다.

‘엇. 아침에 이저드가 읽고 있던 거!’

설마, 아니겠지.

아델라는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슬슬 이저드에게서 팔을 풀고 침대 주변을 더듬었다. 살짝 움직여서 침대 밑도 확인했지만, 없었다.

‘아, 설마, 진짜로……?’

그녀의 시선이 이저드의 너머, 이저드가 누운 쪽의 침대 바닥으로 향했다. 안 좋은 예감은 왜 항상 맞는 걸까?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정말로 이저드가 누운 쪽 바닥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악, 보셨잖아!’

뭘 그렇게 아침부터 읽나 했다. 이대로 이저드가 깨면 수치사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아직 자는 이저드를 힐끔 보고 주섬주섬 잠옷을 집어 입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 잠옷을 입는 사이, 이저드는 아델라의 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도대체 아델라가 이불 속에서 뭘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저드가 깬 걸 모르는 아델라는 최대한 기척을 안 내고 스르르 이불 속에서 바닥으로 기어 나왔다.

‘일단 없애고 꿈꾸신 것 같다고 하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힐끔 돌아본 이저드는, 여전히 눈을 감고 편히 자고 있었다.

이저드는 이제 아델라의 곁에서만큼은 편히 잠들었다. 웬만큼 아델라가 꾸물거리지 않는 이상, 잘 깨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델라가 평소보다 더 많이 뒤척여서 깨게 되었지만.

그러나 아델라는 이저드가 일 때문에 피곤해서 평소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델라는 조용히 발걸음을 죽이고, 침대를 빙 돌아 이저드 쪽으로 향했다.

다시 봐도 역시, 이저드 쪽에 떨어져 있던 게 그 책이 맞았다.

‘일단 서랍에 넣어 두고, 이따 치워야지.’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꾸부정하게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그 순간.

탁, 하고 이저드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꺅!”

그가 깨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한 아델라는 책을 놓치고 그의 품에 잡혀 들어갔다. 그녀는 순간, 아, 안 돼! 라고 생각했지만, 이 마당에 다시 책을 집어 들 수는 없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얇은 천 사이로 느껴졌다. 그의 뛰는 심장도, 그녀의 등을 통해 함께 느껴졌다.

따뜻한 그의 맨살이 닿으니, 아델라는 긴장해서 어깨를 움츠렸다. 이저드는 그녀의 어깨에 턱을 괴고 떨어진 책을 힐끔, 바라보았다.

“뭐 하나? 나 몰래?”

“어……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아델라는 얼굴이 화끈화끈했지만, 일단 시치미부터 뗐다. 뻔히 바닥에 책이 떨어졌는데도, 그녀는 뻔뻔하게 아닌 척 다른 곳을 보았다.

이저드는 아델라를 마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왜인지 그런 아델라를 놀려주고 싶어 싱긋 웃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네.”

“뭐, 뭘요?”

아델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 안 봤나?”

“그, 그러니까 뭘요?”

아델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이저드를 돌아보았다. 아델라의 어깨에 턱을 대고 있던 이저드는 턱을 떼고 아델라와 눈을 마주쳤다. 역시,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저드는 그런 아델라에게 눈웃음 지으며 슬쩍 그녀의 잠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런 거?”

“이저드!”

이저드의 나쁜 손장난에 결국 아델라가 항복하며 그의 손을 저지했다.

“못됐어요. 다 봤으면서!”

이저드의 행동이 멈추자, 아델라는 냉큼 책을 줍기 위해 일어섰다.

“다 안 봤네. 현실적으로 그 자세가 가능한가? 왜 굳이 그런 힘든 자세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저도 잘 모르겠지만, 가능하니까 쓰여 있지 않을까요? ……근데, 다 안 봤다면서요!”

귀부인이 은밀하게 건네준 로맨스 소설은, 로맨스 소설을 가장한 야설이었다. 요즘은 또 이런 수위 높은 이야기들이 대세인 건지, 이것보다는 덜 했지만 수위가 있는 것들이 서점 구석에 쫙 깔린 걸 요전에도 본 적 있었다.

“그대가 뭘 읽던 건가 궁금해서 앞부분만 읽었네. 그러는 그대는?”

“전! 저도, 요 앞만 조금……, 진짜 조금 봤어요.”

아델라가 민망함에 시선을 피하자, 이저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델라는 비록 민망했지만 이저드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에 이끌려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

“누가 뭐라 했나? 누구에게나 욕구는 있는 법이네.”

“오해거든요? 저 욕구불만 아니에요.”

뚱하니 말하는 아델라를 안고 있던 이저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자신의 품에 안겨 투덜거리는 아내의 모든 모습이 귀여워서 큰일이었다. 이 감정이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끓어오르는 욕망 정도는 참을 수 있을 만큼 정신력이 버텨 줬는데, 요즘에는 어째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녀와 닿을수록 점점 갈증이 일고, 심장이 뛰어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틈 없이 붙어 있음에도 부족함을 느꼈다.

“음? 난 읽는 욕구를 말하는 거였는데.”

“아, 이저드으!”

분명 예전에는 자신이 나서서 놀렸던 것 같은데, 언제 전세가 역전된 걸까. 아델라는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이저드를 보았고, 이저드는 큭큭 웃으며 그녀의 비죽 튀어나온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장난이었네. 욕구불만은 내 쪽인 모양이야.”

짧게 입을 맞췄던 방금과는 다르게 그가 깊고 진하게 아델라의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장난이었던 아까에 비해 이번에는 진짜로 그의 손이 아델라의 맨살을 훑고 치맛자락 안으로 들어왔다.

“으응.”

두 사람의 거리만큼이나 틈 없이 붙어 있던 입술 사이로 아델라의 짧은 신음이 터졌다. 덕분에 잠시 둘의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곧, 그 신음마저도 이저드의 입안으로 먹혀들어 갔다.

그는 거침없이 아델라의 입술을 머금었고, 또 안으로 침범했다. 그런 이저드를 받아들이는 아델라는 조금 숨이 찬 듯 보였지만, 금방 그의 리드를 따라 몸을 맡겼다.

그렇게, 잠잠했던 열기가 다시금 둘 사이를 잠식했다.

한 번 마음이 맞은 부부는, 그날 내내 나들이는커녕 온종일 저택에서만 하루를 보냈다. 그들이 저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는 하루가 지난 그다음 날이었다.

* * *

“후잉, 흐잉.”

아이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다가 곧, 자신을 안고 있는 이의 밝은 미소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데이빗은 웃는 것도 예쁘네!”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델라였다.

아델라는 꽤 신난 표정으로 아이를 안은 채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이저드는 미소를 머금고 그런 그녀를 따랐다.

하루를 저택에서 보낸 아델라는 그 다음 날에야말로 밖에 나가자며 이저드를 데리고 근교 도시로 여행을 나왔다.

수도에서는 하루 반, 그러니까 왕복 3일이 걸리는 거리의 소도시였다. 이곳을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현재 축제가 열리는 도시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이 곳은 수도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오랜만에 다른 도시로 나온 둘은 잔뜩 들떠 있었다. 물론, 단둘은 아니었지만 아끼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것 또한 단둘이 여행 온 만큼이나 그들을 들뜨게 했다.

“데이빗 안 무거우세요?”

부부와 함께 여행 온 이들은 다름 아닌 헤이든과 린다였다. 아델라의 곁에는 린다가, 이저드의 곁에는 헤이든이 함께했다.

린다는 아델라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봤지만, 아델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내 웃고 있었다.

“안 무거워요. 린다 경은 쉬고 계세요!”

아델라가 익숙하게 안고 있는 데이빗이라는 갓난아이는 린다와 헤이든의 아들이었다.

아리스가 즉위한 후에도 둘의 사이가 영 좋아질 것 같지 않더니, 헤이든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 후 정확히 2년이 지나 둘은 혼례를 올렸다. 린다에게 아이가 생긴 것이다.

그때도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까지도 둘이 정말 자주 싸워서 아델라는 둘의 사이가 틀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루어질 운명은 언젠가 결국 이루어지는 건지, 정말로 둘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그동안 그녀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혹시 한 생명을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 걸까 봐.

“어째 우리 부부보다 아델라 님이 데이빗을 더 아끼는 것 같습니다.”

헤이든이 이저드의 곁에서 함께 걸으면서 웃었다.

“아델라가 그대들의 아이를 보려고 손꼽아 기다리긴 했지.”

이저드는 아델라가 그동안 마음고생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저리 데이빗을 안고 보살피는 것이 전부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저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데이빗이 무사히 태어난 날, 아델라는 산파에게 데이빗을 받아 린다에게 보여 주며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랐다.

그동안 불안했던 감정과 린다가 힘들어했던 과정, 그리고 린다의 형제를 대신해 린다의 손을 꼭 마주 잡고 출산 현장을 함께하며 겪은 감정들 모두가 합쳐져 그녀는 헤이든보다 더 울었다.

먼저 울고 있던 헤이든은 아델라가 엉엉 우는 걸 보고 울음을 멈췄다. 왠지, 거기서 자기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헤이든은 린다에게 핀잔을 들었다. 자기도 안 우는데, 넌 왜 우냐며.

어쨌든, 그때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꼭 아득히 먼 때처럼 느껴졌다.

“그나저나, 소식은 없습니까?”

헤이든이 물은 ‘소식’은 이저드와 아델라의 아이에 대한 소식이었다.

“때가 되면 소식이 오겠지. 혹여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네.”

일단 이저드의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아델라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이저드는 아직 둘 다 젊기에, 아이가 늦게 찾아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저드는 이대로도 좋았다. 행복했다. 그저 그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그러나 자신과는 다르게 아델라는 어떤 압박을 느끼고 있을까? 이저드도 제스트윈 가의 유일한 후계자여서, 언제고 대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저드는 데이빗을 안고 린다와 수다를 떨며 웃는 아델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 * *

두 부부는 오랜만에 다른 도시에 나와 여유로움을 즐겼다. 평소 다들 시간 비우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다들 휴가가 맞아 오랜만에 즐겁게 여행했다.

아델라는 아직 축제의 열기로 빛나는 창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저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쏙 들어가 이저드의 곁에 앉은 아델라가 그를 꼭 껴안았다.

“이런 날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주 만들도록 해 보겠네.”

“아니에요. 다들 바쁜데, 제가 방해할 수는 없죠! 또 시간 맞으면 이렇게 여행 와요.”

“그대도 바쁘지 않은가.”

“궁보다야 덜 하죠. 학기제라서 쉬는 달도 있고.”

아델라는 아리스 즉위 후 3년 정도는 케스너 후작 부인의 병간호를 하며 궁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케스너 후작 부인이 세상을 뜬 후부터 그녀는 왕궁을 멀리했다. 릴리아를 만날 때 빼고는 거의 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릴리아와의 만남도 전보다 많이 줄였다. 답답했던 릴리아가 잠행을 하고 아델라를 만나러 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아델라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아리스와 릴리아가 혼인을 하면서 아델라가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릴리아와 아리스 사이에 아이가 생길 때까지 아델라는 열심히 몸을 사려야 했다.

혹, 둘에게 피해라도 가면 안 되니까 말이다. 어떻게 성사된 결혼인데.

처음, 둘을 반대하던 귀족들이 가장 꼬투리를 잡은 것이 바로 릴리아의 재가였다. 그 재가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원래는 벨제프 자작가가 한미하다는 점도 꼽았지만, 그 이야기는 금방 사라졌다. 거사에 큰 공을 세워 가주가 된 아델라가 제스트윈 공작가의 예비 안주인이 되면서, 집안의 격으로는 꼬투리를 잡을 만한 무엇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들이 가장 크게 꼬투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재가에서 오는 문제점들이었다.

특히, 아리스의 핏줄도 아닌 이들에게 왕위 계승권이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튼의 경우를 보라며.

솔직히 아예 작정하고 속인 모튼의 사건과는 좀 달랐지만, 왕실의 자손도 아닌 이들이 혹여 왕좌를 탐해 또 나라의 기강이 흔들릴까 염려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말 하나는 다들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하던지.’

아델라는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혀를 내둘렀다.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델라에게는 릴리아가 너무 소중했기에, 그녀는 그 모든 논란을 잠재울 일을 오래도록 차근차근 준비해 뒀다.

그 첫 번째로, 아델라는 이저드와 혼인하기 전에 레널드를 가문에서 제명했다. 그들이 유독 난리치는 이유는 아델라보다는 레널드에게 있었다. 그는 아들이었으니까.

사실 딸은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가면 왕위에서 저절로 멀어지기 마련이었지만, 아들은 아니었다.

만일 릴리아가 아리스와 혼인을 하게 되면 레널드는 왕자가 되고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왕세자가 될 수 있었다. 레널드가 릴리아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쨌든 서류상에서 레널드는 릴리아의 자식이었다.

그 때문에 아델라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레널드와 릴리아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반대하는 이들이 더는 이 일을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물론 레널드가 자기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난리를 치긴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다른 제안을 했다. 바로 아델라가 공을 세워 받은 작은 영지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추천서였다.

아델라가 아리스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다들 쉬쉬하고 있었지만, 레널드가 과거 왕권에서 모튼에게 얼마나 충성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그는 제베르 왕궁에서는 중앙 관직에 나아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제베르 왕국의 자잘한 사정까지는 잘 몰랐다. 그에 레널드는 아델라의 제안에 혹했다. 그것도 무려, 하이크 제국의 황실 기사단에 추천서를 넣어 주겠다는데 쉬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근신 처분을 받고 벨제프 자작가 저택에서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나았다. 적어도 기회라는 것이 생긴 거니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많은 인재가 꿈에 그리는 하이크 제국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가문을 중요시했던 사람도 아니어서 아델라는 그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후에, 린다의 형제인 보르만에게 레널드의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꽤 열정적이고 쓸모가 있어 추천서 믿고 뽑은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괜히 린다의 이름에 먹칠이라도 할까 봐 사실 엄청 걱정했다.

‘린다 경은 추천서만 써 주는 거고, 선택은 보르만 경과 황태자 전하께서 하는 거라 자기랑은 상관없다고 했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걱정됐다. 린다를 포함해, 그녀의 가문에까지 폐를 끼치면 어쩌나 싶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썼지만.

어쨌거나 레널드는 하이크 제국에 가서 열심히 잘하고 있었다. 하긴, 제베르 왕국에서도 열심히 하긴 했었다. 아무 기반 없이 부기사 단장까지 지냈으니까 말이다. 충성을 바친 사람이 모튼이어서 문제였지.

레널드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살길은 무슨 수를 쓰든 얻어 내던 사람이었으니, 아마 그곳에서도 잘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레널드가 가고 남은 사람은 바로 아델라 자기 자신이었다.

아델라는 릴리아와 아리스의 혼인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둘이 혼인을 올리기도 전에 이저드와 결혼식을 치렀다.

둘이 결혼하기도 전에 유일한 왕위 계승후보인 아델라가 이미 다른 가문 사람이 되었는데, 그 누가 더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 부분은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뿐이었지만, 아델라와 이저드의 사정을 모르는 몇몇 귀족들은 아델라가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취후의 보루로 혼인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이저드와의 결혼으로 왕위 계승권, 남의 자식, 재가, 한미한 집안 등등 여러 논란을 한 번에 종식시켰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실제로 이 덕분에 반대하던 귀족들이 잡을 만한 꼬투리를 잃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리스 즉위에 큰 공을 세운 제스트윈 가문, 세이즈 가문, 웨일 가문 등등 유력 가문 대부분이 아리스의 뜻을 존중하고 있어 다른 귀족들은 이 일을 더 언급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상황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성사된 혼인이었다. 그 혼인에 아델라가 걸림돌이 되는 건 질색이었다.

아델라는 둘이 잘 살고, 편히 살날만을 바라며 궁을 나왔다. 덧붙여 피곤했던 궁 생활을 청산하고,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애들도 말 잘 들어서 비교적 편해요. 다들 배움에 열망이 강해서 그런가? 초롱초롱해서 귀여워요.”

그녀는 고아원에서 무료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고아원은 아리스의 새로운 정책 중 하나였다. 이미 펜베르크 지역에는 있었지만 수도에는 처음 세워지는 시설이었다.

이전까지 귀족들은 버려진 평민 아이들까지 딱히 신경 쓸 이유가 없었기에 그런 건물 자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빈민촌에서 살아온 아리스는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제스트윈 공작과 웨일 후작, 세이즈 백작 등등 유력 가문들을 설득해 고아원을 세웠다.

일단 왕이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라, 시설을 맡을 귀족은 있었다. 하지만 평민 아이들에게 글과 공부를 가르칠 귀족들은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귀족들은 평민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꺼려했다. 모두 거절하고 기피하니, 결국 보다 못한 아델라가 나섰다.

그리고 아델라가 발 벗고 아이들을 가르치자, 그녀를 따르는 몇몇 귀부인들과 심지어 한 나라의 왕비인 릴리아까지 고아원에 들러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러자, 그렇게나 꺼려하던 귀족들이 하나둘 자원에 나섰다.

그 덕분에 아델라는 전보다 시간이 조금 났다. 전에는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게 너무 많아, 이리저리 정보를 얻느라 이저드한테 왕궁 도서관 책을 어찌나 부탁했는지 몰랐다.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하던 때를 회상하며 아델라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대가 좋다면 다행이네.”

이저드는 아델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토닥였다. 둘은 잠시간 그렇게 서로를 안고 반짝이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다음에는 바다에도 가 봐요. 남쪽 지역 축제도 그렇게 멋지대요. 바다 위에 배도 띄워 놓고 그런다던데.”

“그래. 다음 휴가에는 그리로 가지.”

어디든 좋았다. 어디든 그녀와 함께라면 좋았다. 아델라가 좋아한다면 더욱. 그동안 이렇게 휴가를 내기가 힘들어서 근교 여행만 다녔지만, 앞으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저드는 아델라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에게 기댄 채로 그의 손에 깍지를 끼고 맞잡았다.

“너무 짧게만 느껴지네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았는데.”

저택에서 하루, 오다가다 하는 시간이 3일, 그리고 여행이 또 3일. 벌써 이저드가 받은 휴가를 거의 다 썼다. 오늘 잠을 자고 내일 수도로 향하면 휴가를 다 쓰게 된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그냥 다음 휴일에는 저택과 수도에서 늘어지게 노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델라.”

“네?”

이저드는 기댄 아델라를 보며 약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왜요?”

이저드가 말이 없자 아델라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음…… 혹시 말이네.”

“네.”

“아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나?”

이저드의 물음에 아델라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었다.

“제가 그런 티를 냈던가요?”

그러고 보니, 요즘 다들 아이 이야기를 하긴 하던데. 티 파티에 가도 아직 소식은 없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

“아니, 낸 적 없네. 혹시 혼자 삭히고 있나 싶어서.”

아델라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우리 결혼 초에 잠깐 아이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고, 그 뒤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네요. 전 그때랑 변함없어요. 아이가 우리 사이에 내려와도 행복할 것 같고, 설령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거라고요. 아, 물론,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맞으면 좀 슬프겠지만.”

“절대 그럴 일 없어. 그런 생각 말게.”

그의 단호한 대답에 아델라는 그의 손을 잡고 히힛 웃었다.

“알아요. 이저드도 그럴 일 없고, 아버님도 그럴 일 없다는 걸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루하루 즐거울 수 있는 걸요. 아무 걱정 없이.”

“아버지?”

“네. 사실, 아버님이 몇 달 전에 집에 들르신 날 있잖아요.”

수도에 일이 있어 잠시 올라왔던 제스트윈 공작이 아델라와 이저드가 어찌 사는지 보려고 저택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는 이저드가 일이 많아 저녁에야 집에 들어왔던 날이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주변에서 뭐라 하던 둘이 행복할 생각만 하라고 하셨어요. 이저드가 속 썩이면 아버님께 말하고, 주변에서 안 좋은 소리 들으면 아버님께 와서 이르랬어요. 절대 주변 신경 써서 불행해지지 말라고.”

미하일은 직접적으로 후계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혹여, 아델라가 후사에 관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델라와 이저드가 후사 걱정 없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싶었다.

무엇보다 죽은 그의 아내가 워낙 몸이 약해서, 이저드를 낳을 때 전전긍긍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델라가 더욱 걱정됐다.

솔직히 미하일의 눈에 아델라는 첫 만남보다 많이 성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약해 보였다. 그런 아이가 임신을 한다니. 혹, 몸이라도 상할까 염려되었다.

이저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은 했다. 하지만 미하일은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도 양자를 들여 후계자로 키우는 방법까지 이미 생각 중이었다.

“아버지께 선수를 뺏겼군. 아버지께서 그리 생각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

“저도 몰랐어요. 결혼할 때, 둘이 잘 살라고만 하셔서, 아버님의 의중을 몰랐거든요. 워낙 내색을 안 하시니까.”

아델라는 그래도 손자를 보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 하고 은연중에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미하일은 보기 좋게 아델라의 짐작을 깨 주었다. 게다가 말을 마친 미하일은 이저드가 돌아오기도 전에 수도를 떠났다. 정말 그 말만이 하고 싶었나 보다.

그때 얼떨떨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 그리고. 저 안 불안하게 루가 그, 뭐지?”

“응?”

아델라가 창밖을 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음……. 아! 생애 보는 뭐, 운세인가? 하늘의 운명을 본다는 점성술이었던가요?”

“그게 왜?”

“루가 유명한 점성술사한테 알아 왔다고 얼마 전에 알려 줬거든요! 내년이랬어요!”

물론,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었다. 일종의 미신이었으니까. 그냥 루가 아델라를 위해 알아보고, 알려 줬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델라의 세상에는 아직도 행복한 일이 한가득이었기에 아이가 찾아오지 않는다 해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저 가끔, 이 행복을 아이에게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녀에게 있어 많은 행복한 상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루…… 루가?”

기분이 좋은 아델라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한편, 이저드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델라는 루가 전해 준 이야기가 그저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이저드는 미래의 이야기를 미리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루가 점성술사한테 알아 온 게 아니고 스스로 점지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네. 그러니까 걱정 말래요.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다 즐기고, 다 하랬어요.”

정말로 하고 싶은 거 다 즐기고, 다 해야겠다. 이저드에게 루가 내뱉은 말은 전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미신을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이저드를 닮았으면 좋겠다.”

“난 그대를 닮았으면 좋겠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하니, 꼭 다시 신혼 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침대에 앉아 도란도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잠을 자기도 아까워 손을 꼭 잡은 채로 선잠이 들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서로에게 기댄 채, 그렇게.

지금처럼 둘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며 그렇게, 언제고 함께할 것이고, 이들의 이야기 또한 쭉 계속될 것이다. 굴곡 없이 편안하게, 포근하게,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Fin

@k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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