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아가씨와 성기사 (122)화 (122/128)

“생각해 보니까 손이 시려서요.”

“베로니카.”

복부를 쓸어내릴 때마다 리온의 숨이 짧게 멈췄다. 맨날 반대로 짓궂은 장난에 당하다가 먼저 건드리니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가 오늘 아주 신이 났네.”

그녀가 샐샐 웃자 그는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잡아 빼 허리에 둘러매더니 다리를 얽어 완전히 고정시켰다. 웃음을 멈춘 베로니카가 불평했다.

“숨 막혀요.”

“오늘은 사람이 숨 쉬지 않고 얼마나 버티는지 재 보려고.”

“와,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얼마간 끙끙대던 베로니카는 곧 항복, 항복하며 포기한 시늉을 했다. 말은 아닌 척해 놓고 걱정됐는지 팔은 금세 느슨해졌다. 슬쩍 고개를 들자 뭔가를 억누르듯 움직이는 울대가 보였다. 그게 더 충동을 부채질했다. 베로니카는 그의 등을 감싸며 바싹 붙었다가 곧은 등줄기, 그러니까 견갑골 사이에 파인 긴 선을 손끝으로 죽 훑어내렸다. 리온의 허리가 움칠 튕긴 것과 동시에 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심연 같은 눈이 뜨이며 시선이 뒤얽혔다. 건드려 놓고도 순간 움찔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었다. 뚫어지게 보던 그가 입가를 휘었다.

“아까 보니까 강가에 황어 떼가 있던데, 잠깐 보고 잘래?”

어디 해 보자는 말로 들렸어도 착각은 아니겠지. 평연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은 어둠에 그늘져 새카맸다. 이토록 캄캄한 밤에 황어 떼 같은 게 보일 리 없었다.

“…왜요? 피곤한 거 아니었어요?”

“아냐, 계속 생각해 보니까 보여 주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아.”

“뭐, 뭘 보여 주고 싶은데요?”

“물고기.”

“그렇게 많아요?”

“밤하늘의 은하수만큼.”

“거짓말.”

“확인해 보든가.”

서늘한 미소 끝에 리온이 먼저 상체를 일으켰고 베로니카도 지지 않겠다는 듯 따라나섰다. 옆을 지나가도 누운 일행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해 주는 거거나.

숲길로 방향을 틀길 잠시, 모닥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가 그녀의 팔을 당겨 멈췄다. 올려다보자마자 그림자가 호롱을 덮듯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등줄기를 오싹하게 타 내리는 흥분에 베로니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꺾고 그를 받아 냈다. 작은 몸을 가둬 안은 남자가 각도를 바꿔 가며 더 깊이 파고들수록 갈급한 입 안에서 타액이 뒤엉키고 미끄러진 손은 어찔하게 뒷머리를 붙들었다.

“조금만 더….”

숨이 모자랐다.

“한 번만 더 해.”

“황어… 떼는 어디 있는데요?”

할딱이며 묻자 그가 입술 끝을 올리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알고 있었잖아, 그런 거 없다는 거.”

형형한 눈이 어둠 속에서도 새빨개졌을 그녀의 얼굴을 집요하게 훑었다. 가쁜 입맞춤이 먼저 건드린 대가처럼 느껴졌다. 그가 그녀의 콧잔등과 뺨에 키스를 퍼붓다가 허리 숙이기 불편했는지 우뚝한 나무에 올려붙였다.

“완전 거짓말쟁이.”

“그렇지도 않아. 숨 쉬지 않고 사람이 얼마나 버티는지 재 보려던 건 진심이거든.”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입천장을 훑는 야릇한 감각에 파르르 떨던 베로니카는 딱딱한 나무와 건장한 신체 사이에 붕 뜬 채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입술 사이로 밀려드는 체액이 달콤했다.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 줘. 더 많이. 그의 혀를 강하게 빨자 리온이 낮게 목을 울렸다. 습관처럼 몸이 젖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둘만 있던 시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바싹 밀착한 남자가 맞닿은 아래를 천천히 앞뒤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허리가 흔들릴 때마다 휘감고 있던 다리는 스며드는 쾌락에 바르르 떨었다. 미칠 것 같다. 아니, 이미 미친 것 같았다. 천이 몇 겹이나 사이에 있는데도 감촉은 적나라했다.

한 팔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친 그가 다른 손을 그녀의 상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굳은살로 거칠어진 손가락이 현을 뜯는 연주자처럼 그녀에게서 신음을 이끌어 냈다. 앓았다. 끙끙거렸다. 그런데도 끝나지 않았다. 흑, 윽, 몇 번을 울어도.

아무리 급하고 목이 말라도 전희는 집요할 정도로 길었다. 마침내 흠뻑 젖은 베로니카가 애원할 수밖에 없도록. 뭐가 들어오든 완전히 풀린 그녀가 아프지 않도록. 곧장 정점을 건드리는 원초적인 행위 대신 이어지는 애무는 하면 할수록 신경을 덥히고 더 깊은 곳에 들어왔으면 하고 바라게 만들었다.

“리온, 그냥 빨리….”

결국 견디지 못한 베로니카가 이마를 어깨에 문지르자 목덜미에 잘게 입 맞추던 남자가 허벅지를 쓸던 손을 다리 사이로 미끄러뜨렸다. 젖어서 달라붙은 속옷이 질척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사이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예민한 살결에 단단한 손끝이 닿았다. 베로니카는 반사적으로 움찔 떨며 발등을 쭉 뻗었다.

밭은 숨소리. 질척하게 오가는 녹진한 손길과 온전히 몸을 맡긴 단단한 가슴팍. 무섭도록 좋았다. 아프고 알알한 감각마저 짜릿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꼬리에 맺혔다.

연거푸 비벼지고 굴려질 때마다 신음이 높아졌다. 속도가 빨라졌다. 베로니카는 헐떡이다가 그를 바싹 끌어안은 채 새된 비명을 질렀다. 보이지 않는데도 눈앞에 그려졌다. 제가 좋아하는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무언가.

무언가.

감당할 수 없는 감각에 울다가 그의 옷깃을 찢어져라 움켜쥐고 헐떡거렸다. 뭉근한 열기가 머리끝까지 차오르자 눈앞이 번쩍이고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녀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린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곧게 뻗어 있던 발등이 곱아 들며 베로니카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꿰뚫리는 감각이 무자비할 정도로 짜릿하게 등골을 타고 올랐다.

“아, 으….”

숨이 멎을 듯한 소리를 흘리며 목을 젖히자 리온이 무언가 달래는 말을 했다. 안타깝게도 들리지 않았다.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등이 휘었다. 그가 흔들리는 그녀를 시커멓게 잠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공중에 들린 자세보다 열기를 타고 전해지는 남자의 흥분이, 그리고 그걸 억누르려는 숨소리가 더 자극적이었다. 리온은 오늘따라 집착적으로 그녀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모든 게 평소보다 짙고 깊었다.

“계속 옆에 있어. 베로니카. 어디도 가지 말고 계속.”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여러 번 부른 이름에도, 사랑한다는 속삭임에도. 눈앞은 번쩍이고 등은 나무껍질에 아픈 줄도 모르고 쓸렸다. 하얗게 흔들리며 그의 팔뚝에 양다리가 걸쳐진 채 미친 듯이 신음했다. 인간이 이만큼의 자극을 누리는 것은 죄악이 아닐까? 이러다 영원히 쾌락에 취해 허리를 흔들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 달빛에 완전히 흐트러진 남자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베로니카는 기묘한 충격과 함께 독처럼 진한 만족감이 퍼지는 걸 느꼈다. 그녀만이 아는, 아무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몸이 으스러질 듯한 쾌락이 꽂힐 때마다 리온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억눌린 신음을 뱉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들은 연거푸 절정에 도달했다. 어지럼증이 식사 때 잠깐 마신 술 때문인지 비릿함이 감도는 공기 탓인지 불분명했다. 바야흐로 한여름 밤의 열대야였다.

***

“무슨 생각 해?”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 사이로 질문이 넘어왔다. 뒤에서 안고 있음에도 그는 그녀가 깨어 있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멍하니 누워 불을 응시하던 베로니카는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대답했다.

“그냥,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마음?”

“마음이 원래는 이렇게, 동그란데. 혼자서도 온전한데. 사람이 한번 파고들면 이렇게, 구멍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

베로니카는 두 손으로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가 맞닿은 검지를 떨어뜨려 틈을 벌려 보였다.

“그런데 그 사람 모양대로 구멍이 나니까, 이제 그 사람이 빠져나가면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는 거예요.”

“벌레 먹은 사과처럼?”

“응, 맞아요. 근데 형태는 정해져 버렸으니까 그 사람이 아니면 그 구멍은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달까.”

“그럼 공허해지지 않기 위해선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아니죠. 그랬다간 홀로 고여서 외로워질걸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제가 말하고도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베로니카는 같은 질문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무슨 생각 해요?”

“야한 생각.”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제 이야기에서 야한 생각을 할 만한 지점이라곤 한군데밖에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리자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리온은 무표정했다.

“방금 같이 잔 여자가 왜 우울해 보일까. 싫었나. 혹시 아팠나 하는 생각.”

바닥에 팔을 짚고 머리를 괸 남자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살피고 있었다. 짙은 눈동자 기저에 깔린 예리한 불안과 마주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그녀의 심연을 보고 있었다.

씻으면서 물에 다 흘려보냈다고 믿었는데. 티 나지 않게 활기차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온종일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남자를 속이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싫지 않았어요. 아니란 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잘 모르겠는데.”

미간을 찌푸린 리온이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네가 어떤 기분인지 말로 안 하면 몰라.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쉽게 불안해지지. 나보다 저 사람들과 있는 게 더 즐거운가, 중간에 다른 길로 틀고 싶어졌나, 혹시 나랑 떠난 걸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는 항상 직설적이다. 한 치의 오해도 싫다는 듯 돌려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억눌린 초조감이 그녀에게도 또렷이 읽혔다. 베로니카는 당황해서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도리질했다.

“당신이라고 한 점의 불안도 없진 않잖아요. 나한테 그걸 다 털어놓을 수 있어요?”

“아니. 원래라면 입 다물고 잘 살았겠지. 같이 있는 게 네가 아니었다면, 고인 불안이 커져서 관계의 발목을 잡는 게 겁나지 않았더라면.”

베로니카의 눈이 흔들렸다. 그가 그녀와의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순간 와닿은 탓이다.

“난 언젠가 네가 나를 떠날까 봐 무서워.”

“…….”

“내 보잘것없는 출신과, 본명으론 맹세조차 할 수 없는 성가신 신분이 널 질리게 하는 날이 올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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